검색

살아있는 포스트 펑크를 듣다

LCD 사운드시스템 'American Dream'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6년 만에 돌아온 팀이 새 시대에 스스로 진화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레트로니 현대니 상관없이 여전히 끝내주는 노래를 만들어낸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시켜준다. (2017.09.20)

image1.jpeg

 

거침없는 패기에 관록을 더하고 거대한 야망을 아로새긴다. 새천년 레트로-리마스터 제임스 머피와 그의 크루 LCD 사운드시스템의 ‘아메리칸 드림’은 과거로부터 빌려온 일렉트로 디스코 펑크(Funk) - 프로토 펑크(Punk)에 브라이언 이노와 데이비드 보위를 더하고, 1980년대 신스팝의 불꽃놀이와 대곡 지향의 치밀한 구성을 취하며 로큰롤 종언의 2017년을 장악하려 한다. 대중음악의 역사로부터 수집한 잔해를 모아 신선함을 창조해내는 제임스 머피는 ‘태어나지도 않은 시절의 음악조차 신세대에게 밀린다(Losing my edge)’며 허세를 조롱하던 12년 전과 달리, 그 자신을 ‘절름거리는 디스크 샵의 베테랑, 이정표 같은 사람’(Tonite)으로 선언하며 과거의 현재 진행형 적용을 꿈꾼다.

 

신경질적인 피아노와 하이햇으로 출발하는 「Oh baby」부터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잠깐의 긴장을 거쳐 신스 베이스가 성큼성큼 발을 내딛으면서 꿈결같이 나른한 에코 보컬을 곁들이는 것은 익숙하다 하더라도 종반부 브라이언 이노 식 거대한 일렉트로 황홀경을 펼쳐내는 건 분명 낯설다. 곧바로 이어지는 토킹 헤즈식 비트 쪼개기 리듬에 6분짜리 노이즈를 넣은 「Other voices」와, 복고적 드럼과 베이스 루프를 쌓으며 무아지경의 신스 & 기타 변주 트랜스 상태를 선사하는 「I used to」에서도 보다 겹겹이 쌓인 소리의 층이 제일 먼저 들어온다. 「North american scum」과 「Drunk girls」류의 상징적인 미니멀리즘은 줄어든 대신, 과거의 혁신적인 사운드를 가져와 그들을 기리고 또 확대 재생산하는 경향이다.

 

제임스 머피는 보위의 유작 <Blackstar>의 프로듀서로 내정되어 있었고 스스로의 부담감으로 이를 고사했음에도 퍼커션 주자로 앨범에 참여하며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과거에도 「Time to get away」 등 보위 식 전위를 실천했던 팀이었지만 <American Dream>에서는 그 잔향이 더욱 깊다. 「Change yr mind「의 도입부부터 휘몰아치는 기타 연주, 불길한 드럼 머신의 전주를 따라 무아지경의 일렉트로 댄스로 이어지는 「How do you sleep」은 우리를 <Low>와 <Heroes>의 B 사이드 속 어떤 지점으로 데려가고, 건조한 기타 리프가 질주하는 「Call the police」는 베를린을 직접 언급하며, 엄숙한 12분간의 마무리를 짓는 「Black screen」에선 <Station To Station>을 들어 충격과 전위의 아이콘에게 경의를 표한다.

 

1970년대 뉴욕 펑크 씬의 일렉트로 실험가였던 수이사이드의 알란 베가를 기리는 톱 트랙 「Oh baby」, 크라프트베르크 식 인트로를 거쳐 무아지경 디스코로 빠져들어가는 「Tonite」과 여기에 1920년대 브릴 빌딩 사운드를 첨가한 「American dream」까지, 앨범은 살아있는 일렉트로닉 - 포스트 펑크 역사책이라 해도 될 정도다. 그러나 <American Dream>은 곰팡내 나는 낡은 서적이 아니다. 「Other voices」와 「Tonite」처럼 당장 어깨를 들썩이게 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으로 조곤조곤 전개를 이어가다 마무리 지점에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몰고 오는 「Call the police」와 「How do you sleep」 등은 8분, 9분의 러닝타임을 무색하게 만든다. 특히 「How do you sleep」부터 「American dream」까지 이어지는 28분짜리 서사시는 너무도 유연하게 앰비언트 - 일렉트로 디스코 - 포스트 펑크 - 두웁 발라드를 이어 하나의 트랙 같은 유기성을 보인다. 그 자신도 인정하듯 ‘사운드 베테랑’이 된 제임스 머피의 멋진 솜씨가 모든 트랙에서 번득인다.

 

<American Dream>은 이제까지의 LCD 사운드시스템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지독한 음악 마니아가 과거로부터의 파편을 모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형적인 팀의 작법이지만 이처럼 부피가 크고, 과거에 경외감을 보내는 시선은 새로운 경향이다. 이처럼 <American Dream>은 6년 만에 돌아온 팀이 새 시대에 스스로 진화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레트로니 현대니 상관없이 여전히 끝내주는 노래를 만들어낸다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확인시켜준다. 21세기의 브라이언 이노, 크라프트베르크, 데이비드 보위를 꿈꾸는 야망가의 컴백작은 심지어 빌보드 앨범 차트 1위까지 손에 넣었다. 요즘 말로 하면 ‘성공한 덕후’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레트로 마스터의 승리’다.


김도헌(zener1218@gmail.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유홍준만의 글쓰기로 만나는 진짜 추사

유홍준 교수가 30여 년 추사 공부의 결실을 책으로 엮었다. 서예 뿐 아니라 고증학, 시문 등 수 가지 분야에서 모두 뛰어났던 불세출의 천재 추사 김정희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이 책은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에 이름을 떨친 위대한 한 예술가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막말 사회에서 더 빛나는 정중함의 힘

막말, 갑질 등 무례함이 판치는 시대. 성공하고 싶다면 매너부터 챙겨라! 저자는 무례한 사람은 바이러스처럼 사람과 조직을 파괴한다고 경고하며, 정중함의 실질적 효용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정중한 사람 그리고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세련된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하루키 단편

무라카미 하루키와 카트 멘시크의 '소설X아트' 프로젝트 최신 단편.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은 한 소녀의 평범하면서도 은밀한 하루를 그린 소설로,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화제를 모았다. 생일의 의미는 물론 인생의 의미를 묻는, 짧지만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소설.

책 먹는 여우가 쓴 두 번째 탐정 소설

『책 먹는 여우』의 작가 프란치스카 비어만과 ‘책 먹는 여우’가 공동 집필한 두 번째 탐정 소설이 탄생했다. 돼지 삼 남매 공장에 나타난 검은 유령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한 탐정 ‘잭키 마론’ 의 활약이 펼쳐진다. 유명 동화의 주인공들로 재구성한 탐정 판타지.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