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화성남 금성녀, 완전히 엮은 거….
어릴 때부터 파란색과 분홍색을 모두 좋아했다. 갈색은 똥색이라 싫었다. 장난감 총도 갖고 놀았지만 주방놀이 장난감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공룡과 공주는 다 싫었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축구, 농구, 야구 등 공놀이를 즐기면서도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도 싫지 않았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보다 더 영향이 큰 건 문화라고 생각한다. 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권을 모아 읽는 것은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직업병인 것 같다.
글ㆍ사진 이금주(서점 직원)
2017.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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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그러니까 여성혐오라는 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즘 내부에서 쓰던 학술 용어였다. 2016년 메갈리아와 강남역 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여혐은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해 한 논문 검색 사이트는 사회과학분야 최다 검색 키워드로 여성혐오를 선정하기도 했다. 여성혐오를 문제 삼는 페미니즘 관련한 책도 쏟아졌다. 『나쁜 페미니스트』,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 『그럼에도 페미니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등등이 그렇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가치 중 하나가 다양성인데, 이들 책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또다른 가치가 일상인데, 이들 책은 일상과 맞닿은 소재를 주로 다뤘다. 그런 면에서 이들 책은 다소 대중서 성격이 강하다.

 

그에 비해 토론토대 영문학과 교수인 마리 루티가 쓴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조금은 학술서 느낌이 난다. 저자가 저격하는 대상이 학문이다. 대중에게도 인기가 많은 진화심리학이 마리 투리가 저격하는 대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이 어떻게 여성과 남성의 성이 다른지를 강조하고, 그 학문이 부각한 성차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공헌하며, 가부장제는 어떻게 여성의 일상을 옥죄는지 파헤친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이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다는 사실이다.

 

진화심리학이 어떻길래 저자는 300쪽 내내 이 학문을 공격하는 것일까? 저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진화심리학의 폐해는 우리 문화에 가장 깊이 뿌리박힌 몇 가지 성 고정관념에 과학적 인증을 찍으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사회 곳곳에 침투한 화성남 ? 금성녀 논리, 즉 “남성은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는 수사법에 유전적 근거가 있음을 우리들에게 납득시키고 싶어 한다. (중략) 인간의 성을 생식과 동일시하고, 성차이에 관한 사회적으로 조건화된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적’ 가설들을 세우며, 남성과 여성이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그 차이를 과장한다. (30~31쪽)

 

진화심리학은 이성 간의 깊은 관계를 번식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후기 산업사회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다. (중략) 천 명의 자식을 남기고 싶어 하는 21세기 미국 남성이 실제로 있다면 나도 한번 만나보고 싶다. (60쪽)


진화심리학을 반박하는 저자의 전략은 간단하다. 인기 있는 진화심리학 저서의 주장을 요약하고, 그 저서의 본문을 인용한 뒤 반박하는 방법이다. 마리 루티가 선택한 저서는 네 권인데, 로버트 라이트의 『도덕적 동물』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 제프리 밀러의 『연애』, 크리스토퍼 라이언ㆍ카실다 제타의 『왜 결혼과 섹스는 충돌할까』 등이다. 한국에도 모두 번역된 책이다. 이중에서 앞에서 언급한 두 책이 진화심리학의 모범답안인데, 나머지 두 책은 모범답안과는 다소 다른 주장을 편다.

 

먼저 모범답안을 살펴보자. 라이트와 버스 모두 ‘구애하는 수컷 vs 선택하는 암컷’이라는 이분법에 한 치의 의심이 없다. 이들에 따르면 배우자로서 남자는 어리고 예쁜 여성을 선호하고, 여성은 돈 많고 능력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이런 논리를 발전시켜 라이트는 일부일처제보다는 일부다처제가 사회 해법으로 적절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비록 버스의 수사는 라이트만큼 노골적이진 않지만 그 역시 전통적인 성규범이 자연의 이치라고 주장한다. 이들 모범답안에서 남자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하며, 여성은 조신하고 수동적이어야 한다. 외도를 하는 남자를 여성이 미워하지 말라는 게 모범답안이 내놓는 조언이다. 남자는 외도하도록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들 모범답안과 달리 제임스 밀러와 크리스토퍼 라이언ㆍ카실다 제타는 ‘구애하는 수컷 vs 선택하는 암컷’ 이분법에 반대한다. 밀러는 한쪽의 일방적인 구애와 다른 한쪽의 일방적인 선택은 허구라 주장하며 상호 선택을 내세운다. 라이언과 제타는 보노보라는 영장류와 수렵채집 사회에 관한 인류학적 설명을 동원하면서 성욕을 느끼지 않는 여성이라는 신화를 부순다. 그렇다면 라이트와 버스의 진화심리학이 문제지, 모범답안을 비판하는 다른 진화심리학은 괜찮지 않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밀러는 상호 선택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 정교한 구애 의식에 참여하는 과정에서도 지적 능력을 개발할 필요가 더 큰 쪽은 남자라고 본다. 실제로 밀러는 “남성들은 졸업장을 따고, 책을 쓰고, 스포츠 경기를 하고, 다른 남성과 싸우고, 그림을 그리고, 재즈를 연주하고, 사이비 종교를 창시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주장했다. 즉 문화 생산은 남성의 성적 과시라는 말이다. 라이언과 제타의 추론 역시 모범답안에서 그리 멀지 않다. 비록 라이언과 제타는 여성의 성욕을 인정하면서도 결혼의 신성함을 지키는 일에 모범 답안과 비슷한 처방을 내린다. 남자의 외도를 눈감아주기, 그게 답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진화심리학이 갈수록 고정된 성 역할이 모호해지는 현대 사회를 설명하지 못하며, 성차가 생물학적 본능이라는 증거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 없으며 생물학적 본능과 문화적 영향을 뚜렷하게 가를 수 없다고 논증한다. 덧붙여 저자는 성차를 규정짓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보다는 문화적 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마리 루티는 인류가 두 성 사이의 성차를 부각할 게 아니라 두 성을 하나로 묶는 요소를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생물학적 본성에 따라 살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 규범들 가운데 어떤 것이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은 것이고 어떤 것이 버리고 싶은 것인가’(212쪽)”일 것이다.

 

더 읽는다면…

 

젠더 만들어진 성
코델리아 파인 저 | 휴먼사이언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중심은 마음으로 뇌로 옮겨졌다. 관측 장비의 발전으로 뇌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뇌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우리는 뇌과학 덕분으로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됐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뇌과학이 완벽한 진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부 뇌과학 전문가는 여성과 남성의 뇌가 다르다고 - 여성의 뇌는 공감력에서 뛰어나고 남성은 수리적, 공간적 지각력이 뛰어나다 - 말하는데, 진화심리학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 여기서도 반복된다. 방법론에서 결함이 있는 연구도 있고, 생물학적 본성과 문화적 영향 사이를 딱 가를 수 없다. 물론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가 다를 순 있다. 그러나 차이보다 같은 점이 더 많을 터. 동일함보다 차이를 강조하려는 시도는 종종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저 | 사이언스북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의 저자 마리 루티가 진화심리학의 '모범 답안'이라 표현하는 책이다. 1994년 당시 신생 학문이었던 진화심리학을 대중화하는 데 영향을 미친 저서로 발간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의 본질을 생식으로 보고, 둘은 각각 다른 전략을 취해왔다고 설명한다. 남성은 구애하고, 여성은 선택한다는 가설로 인류의 과거는 물론 현대 사회의 연애와 사랑, 성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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