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웹소설 연구자입니다. 그리고 웹소설과 관련된 각종 인터뷰, 교육, 자문을 다니지요.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저에게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웹소설과 관련되어서 ‘돈’과 관련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기 작가는 진짜 돈을 많이 버나요? 인기작이 아니라 데뷔 작가들은 평균적으로 돈을 얼마나 버나요? 웹소설 작가로 데뷔하는 게 정말로 쉽나요? 글 쓰는 데 상상력이 얼마나 들어가나요 등등.
재미있는 건 생각보다 이런 질문들의 빈도가 낮다는 점입니다. 일단 웹소설 연구자를 굳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경우 웹소설 생태계의 일반적 생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보니 굳이 시장의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웹소설을 ‘쓴다’라는 행위 때문에 그렇습니다.
웹소설은 최소 70편 이상의 긴 여정을 떠나야 하는 글쓰기 작업입니다. 인기 작가들도 1년에 1~2종을 겨우 쓰고, 길게 연재하는 작가들은 2~3년 동안 한 개의 작품에만 몰입하는 경우도 많지요. 길게는 6~7년 이상 하나의 작품을 연재한 사람도 있지요. 게다가 작품을 바로 연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초보 작가들은 플랫폼의 심사를 통과하고 유료 작품을 연재하기까지 평균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 기간을 버티게 해주는 건 미래에 올지도 모르는 막연한 수익이 아니라 내면의 이야기를 끄집어 선보이고 싶은 욕망이고, 글을 써야만 하는 운명이지요.
그래서인지 제게 가장 많이 물어보시는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회빙환*은 언제까지 유행할까요?”
*회빙환 : 회귀, 빙의, 환생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웹소설 독자 사이에서 통용된다.
그러나 저는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회빙환’은 웹소설 스토리텔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연출 기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연극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체호프의 총’이나 영화에서 주로 이야기되는 3막 구조, 또는 소설에서 주로 이야기하는 내러티브 훅이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유행이란 말을 쓰진 않고 단지 그 기능을 쓸 때 효과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뿐이지요.
회빙환이 유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것이 목격된 게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가는 장르의 문법 사이, 웹소설은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문법을 찾아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뿐입니다.
웹소설 스토리텔링의 구조가 남들의 인정을 받는 사회적 성취욕구를 다룬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위해 주인공은 『소설 속 엑스트라』나 『나 혼자만 레벨업』처럼 사회의 최약체 계급 (노예, 짐꾼, 비각성자)이거나 『귀환용사의 골목식당』이나 『귀환자 삼촌의 푸드트럭』 같이 세대가 흘러 밀려나거나 잊힌 존재 (귀환물, 귀농물, 은퇴) 또는 『이혼 후 로또 1등 감독님』, 『이혼 후 먼치킨』이나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특정한 구조적, 사회적 관습에 의해 능력을 제약당하거나 (막내, 이혼물) 『소설 속 엑스트라』, 『백작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등 윤리적, 도덕적 하자가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신체 (엑스트라, 망나니, 악녀, 빌런)로 조형됩니다.
제약된 신체적, 사회적 조건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던 주인공은 회빙환이라는 기적에 의해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갑니다. 그 대비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한편 독자들의 작품 참여를 유도하는 문법이 회빙환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회빙환이라는 문법 자체는 영원히 불멸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회빙환이란 문법이 고정된 상태로 멈춰있는 건 아닙니다. 웹소설의 문법은 무척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거든요. 그걸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하제 작가님의 『영광의 해일로』입니다.
『영광의 해일로』
하제 저 | 문피아
『영광의 해일로』는 탑가수 헤일로가 자신의 없는 평행세계의 고등학생 ‘노해일’이 된 것으로 시작합니다. 상황을 파악한 노해일은 과거 자신의 노래는 전설로 불렸는데 과연 이 세계의 사람들도 내 노래를 만족할 것인가 증명하고 싶어 하지요. 이러한 인정욕구가 『영광의 해일로』의 중심 서사가 됩니다. 기존의 회빙환이 보여주던 문법을 약간 비틀어 주인공의 능력을 유지한 채 주인공이 살아왔던 역사를 완전히 지워버리고, 주인공이 부재한 공간에서 주인공의 자기증명 투쟁을 메인 서사로 내세운 것입니다. 이처럼 기존의 문법을 조금씩 비틀어가면서 회빙환은 여전히 강력한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한 명의 아마추어 작가는 웹소설을 쓰기 위해 골머리를 앓으며 여러 시도를 하고 있을 겁니다. 그 시도는 회빙환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지의 고민일 수도 있고 회빙환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의 고민일 수도 있겠지요. 이런 고민이 낳은 작품들의 여정을 한 차례 훑어보시면 여러분들도 웹소설의 재미를 만들어내는 문법과 플롯장치와 변주에 대해서 한층 더 깊은 이해도를 가지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소설 속 엑스트라
출판사 | KW북스
[세트] 나 혼자만 레벨업 (총14권/완결)
출판사 | 파피루스
[세트] 귀환용사의 골목식당 (총13권/완결)
출판사 | 알에스미디어
[세트] 귀환자 삼촌의 푸드트럭 (총7권/완결)
출판사 | 스토리위즈
[세트] 이혼 후 로또 1등 감독님 (총11권/완결)
출판사 | 스토리위즈
이혼 후 먼치킨
출판사 | JHS BOOKS
[세트] 재벌집 막내아들 (총13권/완결)
출판사 | JHS BOOKS
백작가의 망나니가 되었다
출판사 | 도서출판 청어람

이융희
장르 비평가, 문화 연구자, 작가. 한양대학교 국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장르문학을 창작하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창작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장르 비평 동인 텍스트릿의 창단 멤버이자 팀장으로 다양한 창작, 연구, 교육 활동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