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의 감초, 구두점
구두점에 관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아마도 다음 문장일 것이다.
a. I will not wear any garment which distinguishes me from other laymen.
b. I will not wear any garment, which distinguishes me from other laymen.
얼핏 보면 두 문장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문장 (a)는 ‘나는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키는 어떠한 옷도 입지 않을 것이다’란 의미이고, 문장 (b)는 ‘나는 어떠한 옷도 입지 않을 것인데, 그것이 나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켜줄 것이다’란 의미다. 얼마나 다른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옷을 벗고 다닌다면 그야말로 다른 사람들과 확실하게 구분되긴 할 것이다. 이 두 문장의 차이는 딱 하나, 콤마(,)의 유무다. 실수로 종이에 묻은 파리똥처럼 사소해 보일지 몰라도, 이 작은 점 하나로 인해 첫 번째 문장은 일반 신자들과 구분되도록 입지 않겠다는 한 성직자의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전하는 데 반해, 두 번째 문장은 벌거벗고 다니겠다고 선언하는 정신 이상한 성직자의 모습을 전달한다.
띄어쓰기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c.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d. The penis mightier than the word.
문장 (c)는 ‘펜은 칼보다 더 강하다’란 시사적인 문장인데 비해, 문장 (d) ‘칼보다 강한 남근’이란 당혹스런 표현이다. 철자 하나 들어갈 공간이 있고 없음에 따라 이러한 의미 차이가 생겨난 것이다.
구두점의 역사
구두점이 생긴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마침표는 매우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일찍이 1세기경에 퀸틸리안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다듬어지고, 변형되고, 적용되었지만, 다른 많은 구두점들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구두점은 왜 생겨났을까? 바로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섬세한 의미 차이를 표현하고 싶을 때, 우리는 다양한 구두점을 이용한다.
e. You want to see me.
f. You want to see me?
선언하는 문장과 물어보는 문장을 구별하려면, 물음표(?)를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즉 문장 (e)는 ‘넌 날 만나고 싶구나’라는 평서문이고, 문장 (f)는 ‘넌 날 만나고 싶은 거야?’라는 의문문이다. 마침표(.)와 물음표(?)의 차이 때문에 이런 의미의 차이가 생긴다. 혹은 이러한 의미의 차이는 마침표와 물음표라는 구두점의 차이로 표현할 수 있다.
비단 영어뿐 아니다. 우리말에서도 다양한 구두점들이 활용된다. 아직까지 우리말 글쓰기에서 콜론(:)이나 세미콜론(;)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쉼표, 따옴표 등은 왕성하게 사용된다. 국어의 글말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구두점들이 아주 최근에 와서야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도 구두점이 없다. ‘예수께서 가라사대...’라고 한 후 마침표 없이 다음 문장이 시작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말글에서도 구두점은 전혀 볼 수 없다. 구한말의 신문들이나 서적들, 조선시대의 서적들을 보면 구두점은 없고 가끔 문장이나 단락이 끝나는 부분이 동그라미 표시가 있을 뿐이다.
구두점이 없어서 생긴 학문, 훈고학
이러한 사정은 중국도 마찬가지다. 공자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논어』를 펴보는 순간, 혹은 한자를 공부하기 위해 『천자문』을 펴는 순간 우리는 적잖이 당황하게 된다. 어디에도 마침표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쉬어 읽어야 하는가? 어디에서 문장이 끝나는가? 알 수 없다. 구두점이 없음으로써 공자의 말씀을 수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어디까지가 주어인지, 해당 글자가 도대체 동사인지 명사인지 알 수가 없다. 주어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짐은 당연하다. 공자의 유명한 구절을 보자.
順天者興 逆天者亡
이 구절의 고전적 번역은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흥하고, 하늘에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이다. 그러나 언어학적으로 처음 두 글자를 주어로 하고, 세 번째 글자를 ‘것’으로 해석해도 된다. 즉 ‘하늘에 순종한다는 것은 흥하는 것이고, 하늘에 역행한다는 것은 망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 때문에 중국에서는 일찍이 훈고학이라는 언어학 분야가 생겨났다. 훈고학이란 ‘오래된 학문의 뜻을 밝히는 학문’이다. 여기서 오래된 학문이란 공자의 가르침을 뜻하는 것이고, 훈고학은 오늘날 해석학 내지는 언어학을 말한다. 중국은 아리스토텔레스만큼이나 오래 전에 언어학이 고도로 발달했는데, 이렇게 발달한 이유는 재미있게도 구두점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구두점의 역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구두점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사소한 구두점 하나라고 하찮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구두점은 문장의 멋을 위해 쓰는 장식품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조문의 의미를 바꾸고,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구두점의 궁극적인 역할은 ‘의미를 명시적으로 밝혀주는 것’이다. 영어로는 specification of meaning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구두점을 무시하고는 제대로 된 글말을 쓸 수 없다.
그렇다면 입말에서도 구두점을 사용할까? 입말에서는 구두점의 기능이 어조를 통해 나타난다. 가령 마침표는 평서문으로 문장의 끝을 내려 읽고, 물음표의 기능인 의문문은 문장의 끝을 올려 읽는다. 쉼표는 잠깐 쉬어 읽고, 영어에서는 인용을 나타내는 큰 따옴표 (“”)의 경우 두 손가락을 꼬부려서 나타내기도 한다. 즉, 형식은 달라질지라도 구두점은 글쓰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표현력의 확장을 위해 사용되는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는 10년 전 마침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요즘에는 쉼표(,)와 마침표(.)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일을 정확하게 끝맺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마침표 없는 만연체 문장을 계속 읽어가는 것처럼 피곤한 일이다.
정확한 글쓰기는 사고를 명료하게 해준다. 다르게 말하면 사고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말과 글로 표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구두점이 제공하는 풍부한 표현력과 명료함을 허술히 여기고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글을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잘 쓰기 위해서는 이 외에도 생각해봐야 할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앞으로 하나씩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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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요소소윌리엄 스트렁크 저/장영준 역 | 윌북(willbook)
정확한 문장을 쓰는 핵심 규칙을 명쾌하게 정리한 책이다. 영미권 사람들이 잘 쓴 영어와 잘못 쓴 영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 책으로,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도서’이며, 스티븐 킹, 댄 브라운, E. B. 화이트 등 대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는 책이기도 하다. 사소해보이지만 무시해서는 안 되는 구두점에 대해 거의 유일하게 친절한 설명을 한 책이다.
장영준
국내 최고의 촘스키 전문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 집필 당시 세계적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에게 논문 지도를 받으며 그의 제자로 이름을 알렸다. MIT와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방문학자로 활동했고, 중앙 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는 오르고라는 필명으로 활동한다. 저서로는 『한국어가 사라진다면』 (공저), 『언어의 비밀』 , 『그램그램 영문법 원정대』 시리즈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촘스키, 끝없는 도전』, 『번역과 번역하기』, 『영어에 관한 21가지 오해』, 『최소주의 언어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