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 사용했던 소재나 주제로는 시 창작 강의를 다시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서간체로 시 쓰기>라는 수업만은 주기적으로 반복하여 만들었다. 8주 동안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그걸 시라고 우겨보는 수업이다.
누구에게 주려고 시를 쓰는가? 화자는 누구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자꾸 잊어버리거나, 좀처럼 신경 쓰지 않는다. 물론 시가 불특정 다수를 위해 쓰일 수 있고, 대부분의 시가 그렇게 써진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실제로 나도 처음 시를 쓸 때는 그저 누구에게든 가닿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를 썼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시가 도무지 써지지 않았던 어떤 새벽에 24시간 카페에서 드디어 그 중요한 질문이 내게 찾아왔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주려고 시를 쓰는가?
질문 앞에서. 나는 먼저 모두의 마음에 드는 시를 쓰겠다는 생각이 엉터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시를 쓰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둘째치고 그런 생각으로 쓴 시 속 화자가 아첨꾼이나 우유부단한 떠중이가 될 확률이 높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다음으로 따라온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내 시가 누구의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니? 누구를 기쁘게 할까? 슬프게 할까? 놀라게 할까? 어떤 감정이나 특정한 주제로 고정되지 않고, 오랜 세월이 흘러서도 갑자기 그 사람의 기억에서 떠오르는, 깊은 곳에 보관되는 시. 나는 언제나 학생들이 그런 시를 쓸 수 있도록 독려하고자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지 쓰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을 낳아준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고 가정하면 바로 이해가 될 것이다. 사랑해요.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여러분을 낳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말이면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분 자신이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발신인이 여러분이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이 정념을 확보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말을 전한다는 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시를 써보려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대개 시를 통해서 자신이 뭔가 좀 특별한 사람이고 싶어 한다는 데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편지라는 형식은 특히 여러분을 흔해빠진 사람으로 만드는 저주처럼 느껴지곤 할 것이다.
「나의 자랑 이랑」은 내가 쓴 시 중에 많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해준 시다. 재밌는 것은 내가 이 시를 오직 한 사람에게 주려고 썼다는 점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이랑은 실재하는 내 친구이며, 그는 훌륭한 음악가이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근면한 사람이며, 죽음에 반대하고 삶에도 반대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이 시에는 나와 이랑이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아주 사적인 것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사연이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으므로, 이 시를 좋아해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대상에도 깊이 공감해주었던 것이다.
넌 기억의 천재니까 기억할 수도 있겠지.
네가 그때 왜 울었는지. 콧물을 책상 위에 뚝뚝 흘리며,
막 태어난 것처럼 너는 울잖아.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네가 사귀던 애는
문밖으로 나가버리고. 나는 방 안을 서성거리며
내가 네 남편이었으면 하고 바랐지.
뒤에서 안아도 놀라지 않게,
내 두 팔이 너를 안심시키지 못할 것을 다 알면서도
벽에는 네가 그린 그림들이 붙어 있고
바구니엔 네가 만든 천가방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좁은 방 안에서,
네가 만든 노래들을 속으로 불러보면서.
세상에 노래란 게 왜 있는 걸까?
너한테 불러줄 수도 없는데.
네가 그린 그림들은 하얀 벽에 달라붙어서
백지처럼 보이려고 애쓰고 있고.
단아한 가방들은 내다 팔기 위해 만든 것들, 우리 방을 공장으로, 너의 손목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
그 가방들은 모두 팔렸을까? 나는 몰라,
네 뒤에 서서 얼쩡거리면
나는 너의 서러운,
서러운 뒤통수가 된 것 같았고.
그러니까 나는 몰라,
네가 깔깔대며 크게 웃을 때
나 역시 몸 전체를
세게 흔들 뿐
너랑 내가 웃고 있는
까닭은 몰라.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고 싶은 너.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오리발 같아 도무지 신용이 안 가는 너는, 나무 위에 올라 큰 소리로 울었지.
네가 만약 신이라면
참지 않고 다 엎어버리겠다고
입술을 쑥 내밀고
노래 부르는
랑아,
너와 나는 여섯 종류로
인간들을 분류했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대단한 발견을 한 것 같아
막 박수치면서,
네가 나를 선한 사람에
끼워주기를 바랐지만.
막상 네가 나더러 선한 사람이라고 했을 때. 나는 다른 게 되고 싶었어. 이를테면
너를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
나로 인해서,
너는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어느 날 네가 또 슬피 울 때, 네가 기억하기를
네가 나의 자랑이란 걸
기억력이 좋은 네가 기억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얼쩡거렸지.
(「나의 자랑 이랑」 전문, 『에듀케이션』)
우리는 항상 사변적인 것을 작품에 쓰기를 꺼린다. 그러지 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기 쓰고 있네”라는 말은 문학 작품에 대한 가장 흔한 부정적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기에게는 죄가 없다.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어떤 사실을 쓰는 일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것이 사적인 것이든 아니든, 그저 내 시에서 확실히 작동하고 있게만 두면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공감에 인색한 사람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모르는 것도 알고 싶어 하는. 오히려 끊임없이 계속 알고 싶어 하는. 텍스트에 등장하는 화자에 대해서, 텍스트 뒤편에 있는 작가에 대해서, 작가 뒤에 있는 작가의 무의식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시가 일기 같아 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쓴 것에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는지만 판단하면 된다.
어떤 공간은 밉기도 하고, 따뜻하면서 동시에 춥기도 하다. 서간체 시는 그 공간을 일일이 구체적으로 묘사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내 편지를 받을 사람이 그곳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같이 겪었으니까. 그리하여 우리가 어떤 공간에 함께 있었는지 환기하기만 해도, 그리고 내게 어떤 공간이 가장 특별하게 기억되는지 밝히기만 해도, 혹시 너도 그런지. 묻기만 해도, 우리는 언어를 통해, 언어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떤 감정으로도 특정되지 않는다. 특정되지 않는 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며, 언제든 다시 꺼내어볼 때마다 되돌아오는 질문이다.
나의 자랑 이랑에게 이 시를 선물하였을 때, 이랑은 시가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좀 우울하고 무겁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처음엔 크게 실망했다. 내겐 정말 만족스러운 시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이랑은 방을 청소하다가 내가 준 시를 발견하고,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는 시인 것 같다고 자신의 일기에 적었다. 이랑이 쓴 일기를 읽은 날. 나는 그럴 줄 알았다고 생각하면서, 정말 깊고 좋은 잠을 잤다. 내가 쓴 시는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는 시. 내가 앞으로 쓸 시도.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는 시. 그 어떤 감정으로도 특정되지 않고. 오랜 세월이 흘러서도. 갑자기 그 사람의 기억에서 떠오르는. 깊은 곳에 보관되는 시.
우리는 종종 하나의 감정을 뼈대로 삼아 한 편의 시를 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시에 특정할 수 없는 감정을 봉인하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언제나 시 한 편에 한 편의 시만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연으로 구분된 시가 있다면. 연마다 다른 시를 쓴다고 생각하면서 시를 쓸 수도 있다. 1연에서는 선생님을 미워하고, 2연에서는 선생님을 사랑하고, 3연에서는 선생님과 갔던 공간을 묘사할 수 있다. 특정할 수 없는 감정을 시에 봉인하려 한다고 해서, 아예 어떤 감정도 제대로 드러내지 않거나, 모호한 얘기만 늘어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 감정도 드러내고, 저 감정도 드러내어 함께 두는 것. 그리하여 사연과 인물과 공간이 알레고리를 이루도록 도우면, 자연스럽게 서간체 시가 만들어지곤 한다.
그렇게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있다면, 일단 제목을 열두 개 정도 써보라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내 수업에 왔던 어떤 학생은 자기 어머니에게 굉장히 불만이 많았다. 어머니가 미우면 밉다고 쓰면 된다. 그러나 그 학생이 쓴 시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개별적인 존재로 묘사되지 않았고, 성격이 조금 꼬인, 전형적인 어머니로만 그려졌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니라 어머니의 상징으로만 그려졌던 것이다. 제목을 열두 개 쓰라는 과제는 열두 편의 시를 상상하라는 요청이다. 그렇게 하면 열두 편의 시에서 열두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나의 어떤 어머니는 성격이 조금 꼬인, 다른 어머니들과 별다를 바 없는 어머니일 수 있지만, 나의 어떤 어머니는 나와 함께 산책이나 소풍을 했던 어머니일 수 있다. 나의 어떤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이며, 누군가의 친구이며, 가끔은 자기 자신이나 자식을 통제하거나 괴롭히는 일에도 완전히 지쳐버린, 종종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 사람이기도 하다.
바로 편지 형식의 시를 쓰려고 하는 여러분 자신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많은 제목들이 한 편의 시 속에서 서로 충돌하고, 보호하고, 모른 척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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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케이션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김승일
200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데뷔. 시집으로 『에듀케이션』, 『여기까지 인용하세요』, 『항상 조금 추운 극장』, 산문집으로 『지옥보다 더 아래』가 있다. 2016년 현대시학 작품상. 2024년 박인환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