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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와 『예술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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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체제의 중심지가 된 에도는 정치상업 도시로 성장했지만 문화적으로는 내내 빈곤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메이레키 대화재로 수도의 7할이 불탔고 이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신흥도시로서의 자유로움’에 더해 ‘어차피 불나면 말짱 도루묵인데 살아 있을 때 즐기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우키요에는 일본 도자기 덕분에 유럽에 알려진 걸로 지금껏 나는 알고 있었다. 명나라가 망해 중국산 도자기의 대량 수출이 막히자 유럽의 상인들은 일본으로 눈을 돌렸는데 마침 사가현에서 만든 ‘이마리 도자기(이마리 항에서 수출했기 때문에 그리 불렀다고 함)’가 유럽인들의 각광을 받게 되자 일본의 자기 생산은 일대 호황을 맞는다. 이때 운반하는 과정에서 도자기가 깨지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완충재로 우키요에를 신문지처럼 구깃구깃 접어서 사용하였고 이것이 펠릭스 브라크몽이라는 화가의 눈에 띄는 바람에 유럽의 미술가들에게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성 짙은 이 일화는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 오늘날 연구자들의 견해라고 한다. “최초의 발견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브라크몽이 과장한 혐의가 짙고, ‘일본 도자기가 유럽에 한창 수출되던 시기’와 ‘프랑스 미술에서 우키요에의 특징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시기’가 어긋난다는 것이 이유인 듯하다.

 

그래도 어쨌거나 마네와 고흐가 우키요에로부터 영감을 얻은 건 사실이겠거니 했는데 손철주 선생의 『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를 뒤적뒤적 훑어보니 영향을 받은 정도에서 그친 것도 아닌 모양이다. 예컨대 “모네는 우키요에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그린 <후지산 36경>이 같은 장소를 연작화한 것임을 알아채고 해 뜨는 광경 하나를 수십 차례 그리는 원숭이 흉내를 냈다. 숫제 ‘일본 여인으로 변장한’ 어쩌구 하는 제목까지 등장시킨 그였다. 드가는 <빨래하는 여인>을 그리면서 화면 중심에서 벗어난 우키요에 특유의 구도를 써먹었다. 마네도 <부채와 여인>에서 왜풍 장식을 슬쩍 가미했으며, 그의 <에밀 졸라의 초상>은 일본 병풍과 우키요에를 인물 못지않은 소도구로 썼다. 가장 심각한 증세를 보인 화가는 반 고흐였다. 히로시게의 목판화 <신 오하시 다리의 소나기>를 통째 베꼈다”고 하니 이쯤 되면 표절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었구나 싶던 내가 우키요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에도시대 소설을 출판하면서부터다. 미야베 미유키가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 같은 유명인을 캐스팅하지 않고 서민들의 모습을 그리기로 한 이유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수 있었던 에도시대야말로 권력자들의 힘이 강해질수록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도 더욱 강해졌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의 이런 컨셉에 따라 에도 서민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우키요에를 표지로 쓰자고 (내가 아니라 디자이너가)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시리즈의 첫 권인 『외딴집』은 상권에서 히로시게의 ‘명소 에도 100경’ 가운데 <신 오하시 다리의 소나기>를 사용했고 하권에서 ‘도카이도 53역참’ 중 <쇼노>를 써먹었다. 바쁘지 않은 형제자매님들은 이 그림들과 고흐가 그린 <빗속의 다리>, 펠릭스 발로통의 <소나기>를 비교해 보셔도 좋겠다.

 

크기변환_외딴집1권표지.jpg크기변환_외딴집2권표지.jpg
『외딴집』 상권, 하권 표지

 

그럼 이쯤에서 대관절 ‘우키요에’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우키요(浮世)’는 글자 그대로 풀면 ‘뜬세상, 떠다니는 세상’인데 ‘실체가 없고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여기에 ‘그림 회(繪)’가 붙은 우키요에(浮世繪)는 에도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풍경을 그린 풍속화라 하겠다. ‘에도’는 (1) 일본의 수도였던 옛 도쿄, (2) 에도가 일본의 수도였던 시절,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우키요에는 에도시대(1603~1867)에 수도였던 에도에서 통용된 그림인 셈이다. 도쿠가와 체제의 중심지가 된 에도는 정치상업 도시로 성장했지만 문화적으로는 내내 빈곤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메이레키 대화재로 수도의 7할이 불탔고 이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신흥도시로서의 자유로움’에 더해 ‘어차피 불나면 말짱 도루묵인데 살아 있을 때 즐기자’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 결과 귀족주의적 풍속화와 구별되는 우키요에가 이 시기를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신흥 상인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도시답게 에도에는 유흥가와 가부키 극장이 빠르게 생겨났고 유곽도 많이 들어섰다. 가부키 배우들과 유녀들은 당시의 유행을 선도하는 존재로 오늘날로 치면 연예인과 비슷했다. 때문에 초창기 우키요에 화가들이 그들에게 집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게다가 에도는 남녀의 혼욕이 자연스러웠을 만큼 성적으로 개방돼 있었다. 이에 발맞추어 우키요에 화가들은 엄청난 양의 춘화를 그린다. 우키요에와 함께 우키요에 춘화도 시작되었고 우키요에의 대부분이 춘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혹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보셨는지. 거대한 문어가 여자의 성기에 빨판을 꽂고 있는 그림이 바로 우키요에의 대표적 화가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문어와 해녀>다. 이 그림이 훗날 수많은 만화가와 애니메이터를 비롯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문어와-해녀.jpg

<문어와 해녀>, 호쿠사이, 1814년

 

가쓰시카 호쿠사이와 더불어 유명세를 떨쳤던 기타가와 우타마로와 우타가와 히로시게를 공부하다 보면 우키요에 역사상 최대의 미스터리로 꼽히는 작가 도슈샤이 샤라쿠와 만나게 된다. 언제 태어나고 죽었는지, 샤라쿠가 본명인지, 왜 갑자기 자취를 감췄는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조사했으나 여전히 밝혀진 바가 없고 1794년 5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열 달 동안 140점이라는 엄청난 수의 우키요에를 남겼다는 것만이 유일한 단서다. 이를 토대로 제기된 가설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샤라쿠 공방설-열 달 동안 140점을 그리려면 이틀에 한 점을 그려야 한다는 얘긴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명의 화가들이 공방을 차려서 가상의 인물 샤라쿠를 내세운 다음 우키요에를 제작했다는 설.

 

(2) (샤라쿠 공방설의 연장선상에서) 샤라쿠 별인설-당시 샤라쿠는 쓰타야 주사부로라는 에도 최대의 출판업자에게만 그림을 넘겼는데 이것은 쓰타야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 것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 ‘복면작가 샤라쿠’를 만들어 성공을 거두지만 “샤라쿠의 정체가 사실은 그림에 완전히 문외한”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했기 때문에 끝까지 수수께끼로 감췄다는 설.

 

(3) (샤라쿠 별인설의 연장선상에서) 샤라쿠 김홍도설-샤라쿠의 활동 시기가 마침 단원 김홍도의 활동 기록이 없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조선의 풍속화가인 김홍도가 정조의 밀명을 받아 일본에서 샤라쿠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는 설.

 

(1)은 다카하시 가츠히코의 소설 『샤라쿠 살인사건』에, (2)와 (3)은 이연식 교수의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에 보다 상세히 설명돼 있는데 『예술가로 산다는 것』을 보면 마쓰모토 세이초는 공방설이나 별인설을 아예 인정하지 않은 듯해서 재미있다. 왜냐면 세이초 역시 엄청난 양의 작품을 발표해 버리는 바람에 공방설이니 별인설이니 하는 루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사후에 일어난 일이니까 이를 예감했다고까지 하면 오버일 테지만 어쨌거나 이런 글을 끼적이고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쓰타야 주사부로와 비슷한 심정으로 독자들이 샤라쿠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다. 세이초의 신간 『예술가로 산다는 것』, 가격은 12,80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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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로 산다는 것마쓰모토 세이초 저/이규원 역 | 북스피어
이 책에는 리큐를 비롯해, 새 시대의 권력자의 모습을 불상으로 표현한 운케이, 오늘날 우키요에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지만 당시에는 인기가 없었던 샤라쿠 등, 먼 훗날 업적을 인정받게 된 예술가가 아닌,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일에 몰두했던 예술가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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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홍민(북스피어 대표)

미남이고 북스피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가끔 이런저런 매체에 잡문을 기고하거나 라디오에서 책을 소개하거나 출판 강의를 해서 번 돈으로 겨우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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