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문장(노안 이후 비로소 보이는 문장)
‘붓다가 된다’ 함은 모든 존재와 삶을 안락과 평화로 이끄는 일이다. 이 말은 ‘붓다가 된다’는 말과 ‘올바른 역사의 구현’. ‘ 건전한 사회의 실현’ 이라는 말이 표현만 다를 뿐 사실은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현응, 『깨달음과 역사』, 226 쪽
1.
서점 나들이를 좋아한다.
보고 싶었던 책, 이슈가 되고 있는 책, 특히 온라인 장바구니에 넣어두고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았던 책들을 옆에 쌓아두고 후루룩 보거나 촘촘히 본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던 혜민 스님의 책도 그렇게 봤다. 사자니 망설여지고, 외면하자니 베스트셀러의 이유가 궁금했던 책. 전작이 그러했듯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내용이겠거니 생각하며 후루룩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촘촘히 읽기 시작했다. 배고픈 손이 밥그릇을 움켜잡듯 공허한 마음이 자꾸 스님의 ‘뻔’한 말씀을 붙들고 있게 한다. 특별할 것이 없어도 완독을 하게 하는 특별함, 거저 1위가 될 리 없다.
페이스북으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구독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고민인 여자, 사업에 실패해서 자살을 생각하는 남자, 암에 걸려 우울한 주부 등 사연은 천태만상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그 자리에서 듣고 바로 해법을 주는 것은 작두 타는 선녀보살이나 하는 짓이라고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늘 스님의 처방을 들으며 무릎을 친다. 교과서적이거나 비현실적이거나 뜬구름 잡는 답은 거의 없다. 손오공이 여의봉을 부리듯 고집멸도(苦集滅道) 붓다의 법(法)을 상황에 맞게 다루는 스님의 놀라운 순발력은 종교를 넘어 즉문즉설을 당대 최고의 힐링 상담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서점과 페이스북을 나오면서 나는 두 스님의 말씀을 잊어버린다. 보거나 들을 때는 좋으나, 딱 거기까지다. 내 근기의 부족함이겠지만, 뭔가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다.
2.
2011년 대학원에서 명상을 만났다. 정확히는, ‘명상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명상이라는 것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것이 뭔지도 잘 모르고, 사업기질이 발동해 치유여행을 만들었다. 여행을 하면서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는 힐링여행이었다. 서울시는 아이디어가 가상하다고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서를 내려줬다. 다음 해에 우리 사회에 힐링 열품이 불었다. 여기도 힐링, 저기도 힐링이었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업체와 관공서의 워크샵은 힐링으로 대체되었다. 나는 열심히 프로그램을 짜고, 스트레스 완화와 마음챙김 명상을 지도하고 수금하러 다녔다.
노매드 힐링 여행
나는 이 현상이 꽤 오래갈 줄 알았다. 배가 부를수록 외로움이 커져가는 결핍의 시대에 힐링은 ‘트랜드’가 아닌 ‘문화’가 될 것이라 낙관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작년 회사의 매출이 줄더니 올해 매출은 폭망 중이다. ‘힐링’이라는 단어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고 있다. 진정으로 원하면 우주가 이루어진다는 무한 긍정의 레토릭이, 사기이거나 집단최면 이거나 또는 누적된 시차병으로 생긴 헛소리라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면서 힐링은 뜨거운 감자에서 식은 피자로 목하 급락 중이다.
사람들은 슬쩍 묻는다. 이제 힐링 다음은 뭐가 오는 거지?
3.
따지고보면 힐링이 무슨 죄냐.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찜질방에서 등을 지지면서, 아이고 이것이 힐링이다, 라고 할 때의 그 힐링은 곧 소시민의 행복이다. 목사님과 스님과 신부님의 말씀 듣고 눈물 뚝뚝 흘린다면 그건 또 민초들의 정신적 힐링이다. 무엇이든 나를 돌봐주고, 나에게 용기를 주고, 내 심신을 위로한다면 그 자체로 의미있는 힐링이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면 힐링이 향하는 방향일 것이다. 나의 명상은 나의 괴로움을 없애주지만, 팽목항 유가족의 괴로움을 없애주지 못한다. 나의 기도가 내 마음에 평화를 주는데, 전철에 부딪혀 죽어간 비정규직 알바생의 평화에는 닿지 못한다. 명상실과 기도실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힐링, 그것이 온전한 힐링인지를 나는 올해 치유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성하면서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이 책에서 빛 줄기 하나를 발견한다.
4.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의 『깨달음과 역사』는 1990년에 출간되었고 작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젊은 현응이 불교도의 한 사람으로서 불교를 구체적인 현실과 역사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산물이다.
이 책의 열쇳말은 ‘보살’이다. 흔히 절에 다니는 여자 신도를 일컫는 그 보살, 그러나 보살은 대승불교에서 여기는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이다. 현응스님은 보살의 어원을 통해 붓다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한다.
보살이란 보디(Bodhi)와 사트바(Satva)의 합성어다. ‘보디’는 붓다처럼 세상은 실재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며 ‘사트바’는 중생이라는 말로 삶과 역사를 의미한다. 깨달음은 깨달음이며 역사는 역사다. 즉 삶의 법칙을 깨달았다고 해서 붓다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깨달은 자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갖고 이웃과 사회의 문제에 대해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 역사성을 가질 때 진정한 보디사트바, 즉 보살이 된다. 역사의식을 가진 붓다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응의 핵심주장이다. 성불하라는 덕담 속에서 성불은 곧, 당신 홀로 깨닫고 고통을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이웃과 함께 하라는 것임을 ‘노비문장’은 말하고 있다.
책과 법문과 설교와 명상과 기도와 요가 등 자기만의 방식을 통해 내 마음속에 자비와 사랑을 채우고 몸을 균형있게 가다듬으며 매 순간을 마음 챙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첫 번째 힐링이다. 다음에 할 일은 그 자비와 사랑과 건강함을 이웃과 사회로 나누어주는 것이다.
탐내고 욕심 내고 어리석은 것들을 내려놓은 후 세상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라한(개인적 힐링)은 이제 팽목과 구의역에서 보살(사회적 힐링)이 돼야 한다. 이렇게 소승적인 힐링에서 대승적인 힐링으로 확장하는 것이 한국땅에서 조로(早老)의 길에 들어선 힐링을 다시 살려내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치유의 미래라고, 감히 생각한다. 도래하는 인공지능의 기계 세상에 그나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우위성을 확보하며 사피엔스가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이타적인 자애심과 연결성의 철학 때문일 것이라고, 또한 상상한다.
윤용인(<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저자, 노매드 대표이사)
<딴지일보> 편집장을 거쳐 현재 노매드 힐링트래블 대표를 맡고 있으며, 심리에세이 《어른의 발견》, 《심리학, 남자를 노크하다》, 《사장의 본심》, 《남편의 본심》, 여행서 <<시가 있는 여행> <발리> 등의 책을 썼다. 또한 주요 매체들에 ‘윤용인의 심리 사우나’, ‘아저씨 가라사대’, ‘남편들의 이구동성’ 등 주로 중년 남성들의 심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을 써 왔다.
ldj1999
2016.06.10
칼럼인데 오늘은 딱 한가지 비유법이 괜히 신경 쓰이네요.
뜨거운 감자에서 식은 피자...
그냥 개인적인 음식 선호도에 따른 비유겠지만
영어에서의 핫 포테이토가 인기있는 아이템이 아닌
손에 쥐고 있기 어려운 애물단지 라는 뜻과 겹쳐서.
그냥 소심한 딴지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