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 히데키, 백영서 편/박제이 역 | 독개비
“한국의 마음에 관한 글을 써주세요.”
처음 이 의뢰를 받았을 때, 나는 다소 시니컬했다. 실증주의에 기반한 심리학에서 ‘한국의 마음’이란, 언제나 어딘가 애매모호하고 정량화하기 어려운 것으로 치부되었기에, 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아마 시인이나 소설가, 문화인류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라면 조금 더 자유롭게 ‘한국적으로’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마음’을 연구한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자연과학적 입장과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말해야 하는 심리학자일수록 ‘한국의 마음’이나 ‘일본의 마음’ 같은 표현을 선뜻 사용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다소 어정쩡하게 ‘(한국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마음’으로 살짝 바꿔 이해한 원고를 제출했다. 편집진은 좀 더 한국의 역사성이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춰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수정은 어렵다고 억지를 부려 결국 원고는 그대로 책에 실렸다. 한국과 일본의 저자, 편집진 사이를 오가며 오랜 시간과 노력을 거쳐 출간된 책을 들여다보니, 내 글은 이 책 안에서 이방인, 혹은 관찰자 같은 위치에 놓여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다른 저자들의 원고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고 있다면, 나의 글은 경계 위에 서 있다. 끝내 그 경계에 서고자 했던 나의 마음은, ‘한국인의 마음을 읽는’ 작업 안으로 깊이 들어앉은 많은 저자들이 더욱 존경스럽고 멋져 보이게 만든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가 이불 속에 들어와 함께 잤다”는 권정생을 알지 못하면 한국의 어떤 한 ‘마음’ 또한 알지 못하리.“ (공선옥, 40쪽)
“이렇게 대답해야겠다. 기다림이야말로 한국인의 정서이자 한국의 마음이라고. 언제 나타날지도 모를 뗏목을 강 건너에서 하냥 기다리며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져온, 그러나 지구상에 얼마 남지 않은 전통방식의 가치를 묵묵히 기록해 동시대와 후대에 보여주고자 하는 이의 마음이야말로 한국의 간곡한 결 아니겠냐고.” (손세실리아, 147쪽)
“시간은 이렇게 흘렀는데도 『관촌수필』이나 『죽음의 한 연구』는 늙지도 소멸되지도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심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신경숙, 159쪽)
“이 책을 읽을 때면 어떤 것이 자꾸 눈에 밟힐 것이다. 내게 둘도 없는 존재일 수도 있고 떠나보내지 못한 기억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라. 눈동자의 흰자위와 검은자위도 무채색이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생생하게 재확인한다. 이 책에 실린 마음은 눈물이 되기 직전의 마음이다. 사랑을 향해 몸 안쪽에서 물줄기처럼 맹렬하게 흐르는 마음이다.” (오은, 180쪽)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 나서 크고 작은 호의를 베푼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는’ 바로 그 마음이다. 평소엔 사는 데 찌들어 있는 줄도 모르는 마음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정 많은 사람들, 누군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국적에 상관없이 이 책을 추천한다.” (최인아, 272쪽)
“침묵조차 소설에 담으려 한 장엄함과, 그 소설에 쓰인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을 한없이 소중히 담아내는 섬세함에 감동받았다. 이 세계에 있는 목소리에, 침묵에, 그저 귀를 기울이려는 그녀의 작품이 있기에,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아직 괜찮다고 믿는다.” (고바야시 에리카, 318쪽)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추악한 잔인함. 상상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육체와 마음의 고통이 빈틈없는 필치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나열된 단어들 자체는 깨끗하고 한없이 아름다우며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펼쳐 있기에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 한 권의 책을 만남으로써 한국문학의 깊은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마에다 엠마, 427쪽)
한국은 시의 나라다. 따라서 한국·조선의 ‘마음’에 접근하려면 시를 통하는 것이 본질이리라. 그중에서도 윤동주의 시어는 평이하므로(물론 앞서 말했듯이 그 해석은 간단하지 않지만) 우선 그의 시심을 가지고 놀아보기를 권유한다. (쓰지노 유키, 496쪽)
이 책은, 2014년 출간된 『한국의 지(知)를 읽다』와 2024년 출간된 『한국의 미(美)를 읽다』를 잇는, ‘한국의 진선미(眞善美)’ 시리즈 3부작의 완결작이다. 2025년 3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되며 10여 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인, 소설가, 언어학자, 번역가, 서점인, 출판인, 저널리스트, 심리학자, 철학자, 미술가, 음악가, 사진가, 건축가, 영화제작자 등 122명의 저자가 ‘한국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을 추천하는 글들을 모은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한국인의 마음에 어떤 역사가 새겨져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122명의 저자가 추천한 300여권의 책들을 통해 우리 마음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드문 기회다. 우리 마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한국의 마음을 읽다
출판사 | 독개비
한국의 미를 읽다
출판사 | 연립서가

변지영
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순간의 빛일지라도, 우리는 무한』 『우울함이 아니라 지루함입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나에게』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