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왼쪽)과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 사진_한국문학번역원
5월 16일 밤(현지 시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소설이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고 「채식주의자」 의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 문학상과 함께 세계 문학상 중 권위있는 상으로 손꼽히는 상이다. 인터내셔널 부문은 2005년에 제정되어 비영어권 작가의 영어소설에 격년제로 수상하다, 2016년부터는 작가와 번역가에게 매년 수상한다. 올해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터키의 오르한 파묵과 중국의 옌렌커, 앙골라의 호세 에두아르도 아구아루사,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트, 오스트리아의 로베르트 제탈러 등 총 6명의 작가가 최종 후보로 올라 경쟁했다.
「채식주의자」 는 영국인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으로 지난해 1월 영국 포르토벨로(Portobello)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2014 런던도서전(London Book Fair)’을 통해 작품이 소개되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심사위원장인 영국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인 보이드 톤킨은 「채식주의자」 의 영어 번역판을 "놀라운 번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한강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소설 3편을 하나로 연결한 연작 소설집이다. 주인공 '영혜'는 작가가 10년 전에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선보인 식물적 상상력을 변주한 인물로, 어느 날 꿈에 나타난 영상에 사로잡혀 육식을 멀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영혜의 남편은 처갓집 사람들을 동원해 영혜를 말리고자 하고, 장인이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 하자 영혜는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는다. 단순한 육식 거부에서 식음을 전폐하는 지경에 이르는 영혜는 몸에 옷 하나 걸치기를 꺼리고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전이된 모습으로 변해간다.
한편 '몽고반점'에서 비디오아티스트이자 영혜의 형부인 '나'는 영혜의 엉덩이에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혜의 몸을 욕망하고, '나무 불꽃'에서는 영혜의 병수발을 들어야 하는 '인혜'가 링거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영혜를 큰병원으로 데리고 가기로 결심한다. 각 소설에서 각기 다른 시선으로 조명되는 욕망은 결국 주인공의 상처와 기억의 문제로 수렴한다.
소설가 한강의 이력
소설가 한승원의 딸로 태어난 한강은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집 『여수의 사랑』(1995년), 장편 『검은 사슴』(1998년), 『그대의 차가운 손』(2002년), 『바람이 분다, 가라』(2010년),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2013년) 등을 출간했다. 가장 최근작으로는 2016년 소설집 『흰』을 출간했다.
여타 1970년생 작가 중에서도 한강은 ‘차세대 한국 문학의 기수 중 한 명’으로 여겨졌다. 2005년에도 심사위원 전원의 일치로 한강의 「몽고반점」이 이상문학상을 거머쥐고 2014년에 『소년이 온다』로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특이한 소재와 인물로 만드는 이야기가 독자들이 읽기에 어렵다고 느낄 부분도 많지만 차원 높은 상징성과 뛰어난 작법으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을 쓴다.
작가 한승원의 딸이라는 이력이 항상 붙어다니지만, 이미 독자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문학가로 우뚝 섰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도 한강의 작품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산문과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인 내용의 조합이 충격적”(에이미어 맥브라이드)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채식주의자」 이외에도 만해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해외 번역 판권도 20개국에 팔리는 등 앞으로도 한강의 소식을 국내외로 들을 일은 많아 보인다.
한강의 주요 작품
채식주의자
한강 저 | 창비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를 바라보는 그의 남편 '나'의 이야기이다. '영혜'는 작가가 10년전에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선보였던 식물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인물이다. 희망없는 삶을 체념하며 하루하루 베란다의 '나무'로 변해가던 단편 속의 주인공과 어린 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에 철저히 육식을 거부한 채로 '나무'가 되길 꿈꾸는 영혜는 연관고리를 갖고 있다.
검은 사슴
한강 저 | 문학동네
알 수 없는 광기가 각 도는 '인영'의 실종과 그녀를 찾으려는 인물들의 미로찾기 같은 여정을 기록한다. 검은 사슴은 광부들 사이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동물이다. 검은 사슴은 깊은 지하에 살면서 채굴을 하러 내려온 광부들과 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자신의 뿔과 이빨을 바치지만, 사람들은 사슴을 배신하고 검은 사슴은 어둠의 세계에 남겨진다. 어둠 가운데서 상처를 안고 있는 인간들이 그 상처와 대면하는 이야기.
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저 | 문학과지성사
'라이프캐스팅'(인체를 직접 석고로 떠서 작품을 만드는 것) 방식으로 작품을 만드는 조각가가 화자로 나온다. 살아있는 사람을 석고로 뜨는 일, 즉 껍질을 떼어내 껍데기로 만드는 일은 결국 그 껍데기 속의 텅 빈 공간과 상처를 응시하는 일일 것이다. 작가는 거의 중성적일 만큼 밋밋한 가슴, 아름다운 어깨의 선을 가진 상체의 뒷부분, 제왕절개한 자국이 드러난 아랫배, 납작하게 처진 엉덩이들이, 저마다 찢어지고 기워진 형태로 흩어져 있는 인체 작품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바라보기를, 그 상처를 나와 '완전히 섞인 껍질'로서 인정하기를 요구한다.
희랍어 시간
한강 저 | 문학동네
어떤 원인도 전조도 없이, 주인공은 말을 잃는다. 시간이 흘러 주인공이 이혼을 하고 아홉 살 난 아이의 양육권도 빼앗기는 등 말을 잃어버린 후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다 놓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이미 저물어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로 더듬더듬 말한다. 가족들을 모두 독일에 두고 십수 년 만에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볼 수 없다던 마흔이 가까워오지만 아마 일이 년쯤은 더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아카데미의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주의 깊게 지켜보지만 여자의 단단한 침묵과 마주하자 두려움을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선 본 적 없는 지독한 침묵과 점점 소멸해가는 남자의 미약한 빛이 만나 찰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소년이 온다
한강 저 | 창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그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받는 내면을 그린다. 1980년 광주를 살아 낸 열다섯살 소년의 이야기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를 통해 한강만이 풀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광주의 5월을 새롭게 조명한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백지연 평론가)." "이 소설을 피해갈 수 없었"고,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작가 스스로의 고백처럼 소설가 한강의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작품이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저 | 문학과지성사
소설가로 유명한 한강이 여덟 권의 소설 단행본을 출간하는 틈틈이 쓰고 발표한 시들 가운데 60편을 추린 시집이다. 「저녁의 소묘」 「새벽에 들은 노래」 「피 흐르는 눈」 「거울 저편의 겨울」 연작들의 시편 제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시집의 정조가 충분히 감지된다. 어둠과 침묵 속에서 피 흘리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피 흘리는 언어의 심장을 응시하며 인간을 확인하려는 시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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