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을 목숨 걸고 쟁취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권유. 그 소중함을 『소년이 온다』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함께 읽으며 생각해 봅니다.
글ㆍ사진 민용준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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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다른 오늘은 결국 어제가 있기에 가능해진 오늘이기도 하다. 결코 당연하지 않은 지금을 만들어준 이름과 얼굴과 시간과 선택들에 관한 세심한 슬픔과 강인한 고뇌가 있었던 그 시절이 돌아올 수 있고 사소하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 『소년이 온다』『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바로 그런 오늘을 위한 이야기이다.

 

누이는 1980년 4월 30일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광주 큰집에서 산후조리를 했다. 그리고 정확히 18일 후 광주에서는 난리가 났다. 길을 걷다 난데없이 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해 만신창이가 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몇몇은 군용 트럭에 실려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갔다고도 했다. 그 5월에 혈기왕성했던 아버지는 매일 같이 집을 나갔다가 느지막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 덕분에 할머니는 어지간히 속을 끓였다고 했다.

 

1980년 5월 27일을 앞두고 광주에는 막대한 계엄군 병력을 동원해 전남도청을 사수하는 시민군을 소탕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그날 전남도청에 머무는 누구라도 살기가 힘들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퍼졌다. 길에서 계엄군을 만나면 험한 꼴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도 집을 나서려던 아버지를 할머니가 붙잡았다고 했다. 핏덩이를 두고 죽으려는 것이냐며 그날만큼은 강경하게 막았다고 한다. 그렇게 아버지는 집에 남았고, 어김없이 찾아온 그날 밤 광주에서는 그 누구도 전남도청 방향에서 울리는 굉음을 피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사라진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의 밤을 지나 1980년 5월의 광주는 계속됐다. 

 

나는 1982년 5월에 태어났다.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광주에서 1980년 5월이란 공기를 마시듯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곱씹을 수밖에 없는 그 끔찍함이 내가 발 딛고 있는 땅에서 벌어진 역사라니 거짓말 같지만 아니라 더욱 끔찍했다. 화가 났고 끝내 슬펐다. 그 슬픔과 함께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집을 나갔다면, 그날 밤 전남도청을 지켰다면, 나에게 지금이란 존재할 수 없는 시간 아닐까. 그렇다면 그날 밤 얼마나 많은 지금이 사라진 걸까.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 밤 사라진 이름과 얼굴과 함께 사라진 지금들을 떠올려보았다. 나에게는 있지만 너에게는 없어진 지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릴 수 없게 된 이름과 볼 수 없게 된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존재할 수 없으니 기억할 수도 없게 된 너에 대해서, 불이 꺼지는 세계의 줄기 속 어딘가 웅크리고 있었을 너를.

 

한강 작가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가족과 함께 광주에서 서울로 이사를 떠났고, 뒤늦게 광주에 있던 친척을 통해 해당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광주에서 벌어진 학살의 참상을 보존하고자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만들었다는 ‘광주 사진첩’이라는 책자를 통해 자신이 떠나온 땅의 진실과 직접 대면하게 됐다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결국 12세 때 보았던 그 진실로 향하는 필연적인 운명이었을 것이다. 만악을 폭로하고 진실을 알리겠다는 구호 같은 마음보다는 일찍이 찾아온 질문이 태어난 땅으로 가야만 그 답변에 조금이나마 다다를 수 있다는 깨달음의 결과였을 것이다. 모두가 가져야 했던 질문을 일찍이 품고 끝내 내려놓을 수 없었던 한 사람으로서 가야만 했던 길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1980년 5월의 광주에 관한 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한강 작가는 거듭 묻다가 끝내 알았다고 했다. 한강 작가가 일기장에 적었다는 이 질문은 본래 이러했다고 한다.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하지만 1980년 5월의 광주에 관한 자료들을 거듭 접하고 되물을수록 이것이 성립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 1980년 5월의 광주에 고립된 심경을 남긴 젊은 야학 교사 박용준의 일기에 적힌 문장들은 벼락처럼 다가왔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살고 싶었던 박용준은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옆 광주 YWCA를 최후까지 사수하다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그의 나이 25세였다. 


 


현재는 과거를 도울 수 없고, 산 자는 죽은 자를 구할 수 없지만 과거는 현재를 도울 수 있고, 죽은 자는 산 자를 구할 수 있다. 그렇게 소년이 왔다. 『소년이 온다』는 한강 작가가 따라간 물음 끝에서 비로소 찾아온 답변 같은 물음이 열어준 소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2014년 5월 19일에 출간한 『소년이 온다』에 관한 소식을 듣고 바로 구입했지만 쉽게 읽을 수 없었다. 보기 전부터 마음이 달아올라서 책장을 펼치면 활활 타오를 것 같았다. 그래서 늦은 봄에 산 책을 주저하다 말라가는 그해 가을 즈음에 읽었다. 마음속에 서리가 앉았다가 천불이 일었다가 죄다 시리게 내려앉다가 뜨겁게 증발했다가, 이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 책장 끝에 다다르니 재 같은 감상이 수북했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상을 어린 소년 동호의 육신을 빌리듯 조명하고 조망하며 시작한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중학생 소년 동호는 전남도청 옆 상무관을 찾는다. 군인들에 의해 죽은 시민들의 시신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그곳에서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는다. 자신의 집에 정미 누나와 함께 하숙하는 친구 정대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함께 금남로에 나갔지만 혼자 돌아온 동호는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찾아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에 왔다. 그곳에서 비록 친구를 찾진 못했지만 시신 안치와 정리를 돕는 여고생 은숙과 대학생 선주와 진수를 만난다. 이들은 모두 1980년 5월의 광주와 강력하게 묶여 살아가고 죽어가는 운명으로서 나란히 그늘진다. 

 

동호의 육신을 ‘빌리듯’이라고 기술한 건 그 참상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과 심경을 묘사하고 관통하되 그것을 묘사하고 관통하는 주체가 그 육신의 주인이 아닌 것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너’라고 지칭하는 화자는 언뜻 보면 넋이 된 타자 같기도 하지만 자신의 육신에서 분리된 의식이 구술하는 재현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 모든 상황을 뒤늦게 환기하고 복기하는 제삼자의 의식으로 재현되는 상황처럼 보인다. 실시간의 목격이 아니라 지나고 떠나온 시공간의 기억을 되새기는 누군가의 심연과 나란히 서서 바라보듯, 마치 떠나지 못하고 붙잡혀 있는 영혼의 음성에 귀 기울이듯, 그렇게 읽게 된다. 그 끝에서 ‘너’를 지칭하던 그 시선과 음성의 주인은 끝내 이렇게 다짐한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로부터 전이되는 통증이란 이런 것이다. 육체를 넘어 영혼의 상처에 공감하는 것. 시대의 피해자이자 불의의 저항자들이 되레 죄책감을 끌어안고 양심의 가치를 되묻는 모습과 마음 앞에 서는 것. 시대의 그늘을 어둡게 드리운 주제에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반성하지도, 참회하지도 않는 악의와 악행의 주체가 뻔뻔하게 숨을 쉬는 시대에서 되레 그늘에 가려진 이름과 얼굴과 슬픔과 아픔들. 『소년이 온다』는 그런 그늘 아래 가려진 이름을 하나씩 찾아가 불을 밝히고 호명하는 진혼과 위령의 발걸음을 옮기듯 꾹꾹 눌러 밟고 담아낸 초혼의 행적과도 같다. 그래서 1980년 5월의 광주에 관해 충분히 들었고 일찍이 인지했다는 이들에게도 다른 차원의 체험이자 여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캄캄한 상황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힘든 상상력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살아있는 한, 상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희망과 문학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문학에서 하는 일 또한 끈질기게 상상하는 일입니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문학은 세계의 고통을 면밀히 사유하며 전이하지만 끝내 그것은 세상을 병들게 만들고자 지어내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 고통을 견디고 이겨낼 의지를 전파하고 이를 함께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권하는 마음을 투사하는 행위일 것이다. 실제로 그러했던 마음으로 움직였던 육신이 쓰러지고 꺾이는 것처럼 보였다 해도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강건하게 소명하는 것. 그렇게 잊힌 이름을 부르고, 죽은 얼굴을 되살리는 것. 『소년이 온다』는 그렇게 한동안 고통과 오욕으로 매장된 것처럼 보였던 1980년 5월의 광주에 깃든 빛을 캐내어 닦아 제 자리에 올려놓았다. 해가 지날수록 더더욱 빛을 발하기에 세계의 어둠을 몰아내듯 더더욱 높은 곳으로 띄워 올리는, 그런 일.

 

*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아일랜드의 소도시에서 석탄 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빌 펄롱(킬리언 머피)에 관한 영화다. 석탄을 퍼 옮기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빌 펄롱은 어딘가 속 모를 고민에 사로잡힌 것만 같다. 집에 돌아와 석탄이 잔뜩 묻은 손을 단단한 솔로 박박 문질러 닦아내는 순간에도,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앉아있는 식탁에서도,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어둠이 내린 창밖을 보는 순간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번뇌에 휩싸인 듯 고독한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로 늘 생각에 잠긴 것처럼 혼자가 된다. 늘 어딘가로 가 있는 사람처럼 그렇다. 이유가 있다. 그는 좀처럼 놓을 수 없는 유년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어느 주말 석탄 배달을 위해 수녀원을 방문해 창고를 열었다가 예기치 못한 사건과 마주하게 되면서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뜬 분위기 속에서 홀로 내려앉아 있었다. 


 

클레이 키건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씨앗을 발견한 건 2005년이었다. 2005년 아일랜드에서 발표된 ‘펀스 보고서(The Ferns Report)’는 아일랜드 웩스퍼드주에 있는 가톨릭 펀스 교구 성직자들의 성적 학대 혐의를 조사한 정부의 공식 보고서다.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의 수녀원에서는 거룩한 신의 가호를 등에 업고 긴 시간 동안 만행을 저질렀다. 혼전임신한 미혼모나 성매매를 하는 매춘부를 ‘타락한 여성’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특정 시설에 감금한 채 노동을 착취하고 인권을 탄압했다. 세계 각지의 수녀회에서 이와 같은 시설을 운영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지만 그중에서도 아일랜드의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막달레나 세탁소’가 가장 악명이 높았다. 아일랜드 정부가 70여 년간 은폐했던 가학의 역사가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실린 신문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가 창고에 갇힌 누군가를 발견하는 장면이 떠올랐고, 그 장면은 오랫동안 제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습니다.” 일찍이 아일랜드를 떠나 뉴올리언스로 이주한 가족과 함께 10대 시절부터 미국에서 살았던 클레어 키건은 아일랜드로 돌아와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2005년에 신문을 읽다가 펀스 보고서를 다룬 기사 덕분에 해당 사건을 접하게 됐다. 클레이 키건의 마음속으로 파고든 이 사건은 끝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위한 씨앗이 됐다. 그리고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맡겨진 소녀』 이후 두 번째로 영화화된 클레이 키건의 소설이기도 하다.

 

지난해 <오펜하이머>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출신 배우 킬리언 머피는 일찍이 클레어 키건의 소설의 팬이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역시 2020년에 발간되자마자 읽었으며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당시 그는 <피키 블라인더스>를 연출한 팀 밀란츠 감독과 함께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영화화를 제안했고, 뒤늦게 영화화 판권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직접 그 권한을 취득했다. 그 이후로 <오펜하이머> 촬영장에서 만난 맷 데이먼이 벤 애플렉과 함께 설립한 자신들의 제작사가 가진 철학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동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시나리오를 전달했고 그렇게 결코 사소할 수 없는, 막강한 퍼즐이 완성됐다. 

 

“신앙을 갖고 있다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사람들에게 강요할 때에는 문제가 생기죠. 절대주의에도 그런 문제가 있고요. 그리고 그건 아일랜드의 오랜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그것을 오랫동안 강요해 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시기에 아일랜드의 젊은 여성과 소녀들이 끔찍한 수감 생활을 했다는 것으로부터 그런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빌이 겪고, 실행하는 일이 진정한 보편성을 전한다고, 사람들이 정말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킬리언 머피가 설명하는 것처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종교적인 억압에 기대어 체제의 권위를 세우던 아일랜드의 지난 역사를 한 사람의 개인적인 심연을 빌려 바라보는 이야기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지극히 사소해 보이는 한 사람의 인생 안에 긴밀하게 엮인 시대와 사회와 관계와 개인의 역학을 세심하게 기워 넣는 작업에 가깝다.

 

원작소설의 빌 펄롱도 대단히 활달하거나 외향적인 성격의 사내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빌 펄롱은 상대적으로 대단히 과묵하고 예민한 인상이 짙어진 것 같다. 그건 아무래도 캐릭터를 해석한 배우의 특성에서 기인한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어딘가 깊게 배어든 피로와 우울과 긴장을 좀처럼 떨쳐내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 느껴지는 빌 펄롱은 다정하고 속 깊은 사람이다. 세심한 배려가 몸에 밴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그가 불안을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마다 은근한 압박이 전해진다.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듯 예민한 표정이 조용하고 평온한 마을의 일상을 의심하게 만든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빌 펄롱 역의 킬리언 머피

 

빌 펄롱은 늘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제일 먼저 손부터 씻는다. 석탄을 퍼 나르고 운반하는 일을 마치고 나면 온몸이 시커멓다. 손톱 아래 까만 검댕이가 가득 끼어 있다. 그래서 빳빳한 솔로 손을 비벼 샅샅이 닦아낸다. 마치 부정한 기운이라도 지워내듯 열심이다. 이렇듯 강박적인 그의 모습은 종종 그의 잠재적인 기억으로 연결된다. 아버지의 정체를 모르는 미혼모 자식이라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됐던 유년시절에 집을 내주고 함께 살 수 있게 허락해 준 윌슨 부인(미첼 페어리)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은 찰스 디킨스의 낡은 책에 관한 기억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거듭 떠오른다. 직소 퍼즐을 갖고 싶었던 그 시절의 기대와 실망이 교차한다. 그래서인지 딱히 받고 싶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없는 어른이 돼 버린 것인지 몰라도 그 이후로 일찍이 여읜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해 준 윌슨 부인과 함께했던 고마움 이외에 정리되지 못한 의구심이 마음속에 거듭 맺힌다. 좀처럼 외면할 수 없는 어떤 현실에 대한 감각이 꿈틀거린다.

 

“어쩌면 펄롱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일 수도 있을 거예요. 반대로 수녀원장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아주 평범한 여성일 수도 있겠죠. 저는 선악의 대립을 그리는 이야기가 지루하다고 생각해요. 선악이 대립하고 끝내 선이 승리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 쓴 이야기만큼 지루한 게 또 있을까요? 보통은 그렇지 않잖아요. 세상은 결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클레어 키건은 아일랜드의 오랜 악행을 고발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을 추앙하기 위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쓴 것 같지 않다. “그를 영웅처럼 연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신경쇠약을 겪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빌 펄롱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 또한 그를 전형적인 영웅으로 둔갑시킬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물론 클레어 키건과 킬리언 머피가 빌 펄롱이 내린 선택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코 반어적인 의미를 띠지 않아서 되레 엄중하게 다가오는 제목처럼 빌 펄롱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 세상의 사소한 평온에 반하는 아주 사소한 격동인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 이후를 알려주지 않고,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을 읽든, 영화를 보든, 누구나 상상할 것이다. 저 선택의 결과는 결코 사소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후에 닥칠 풍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걱정할 수 없는 입장을 걱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의 입장이라면 어떠했을까? 사소한 일처럼 모른 척 지나갔을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이처럼 사소할 수 없는 질문을 심어주는 작품이다. 폭력과 억압의 역사로부터 벗어난 오늘은 그때보다 안전하고 평온하기에 더더욱 사소할 수 없는 질문들. 그렇게 지나오고 다다라 돌아보는 역사란 누군가의 선택과 결정과 다짐과 감당을 넘고 넘어 비로소 다다를 수 있었던 시간이다. 계절처럼 때가 되면 바뀌는 그런 것이었을 리 없다.

 

“문학이든 인생이든, 영웅은 대부분 좋은 결말을 맞기 어렵습니다. 고통을 겪죠. 이 나라에서 용감하게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맞섰던 사람들도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자신의 삶과 자신이 일해온 모든 것에 칼을 꽂은 사람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제 해석이에요. 제 쓴 이야기라고 해서 그것이 끝내 어떻게 될지 다 알 수는 없어요.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할 수 없어요. 그저 이야기를 쓸 뿐이죠.” 클레어 키건의 말처럼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결국 그 이후의 사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끝내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 숭고하고 결연하게 무언가를 품게 만드는 마음으로 맺혀 계속 나아가는 것만 같다. 제목과 달리 결코 사소할 수 없었던 사실에 관한 소설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었다. 더 이상 알 길이 없는 이후의 상황에 대한 예감은 가혹하게 기운다. 결코 사소하게 넘길 수 없는 내일이 닥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다짐하는 펄롱의 입장 앞에서 함께 숭고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육체를 부수고 영혼을 흔드는 극악한 폭력에 수많은 이들이 휩쓸리고 짓눌리며 왜곡과 오명의 모욕과 수치로 내몰리고 부스러진 것 같아도 마지막까지 형태를 부지하며 더욱 선명해지는 질문은 살아남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만악의 시간으로 시계를 돌린다. 누군가는 사라졌고, 누군가는 스러졌고,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기억한다. 그렇게 돌아가고 또 돌아간다. 끝까지 지워지지 않는 질문을 남긴 시간을 향해, 멀어질수록 더없이 강하게 끌어당기는 그 물음의 시대로 다시 또다시, 그렇게 영원히 지울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양심의 증표로 거기 남아 세상의 극악과 부정에 맞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선사하는 법이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는 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찾아,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 봅니다. 역사를 응시하고 묻는 건, 인간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저는 기억을 품고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능력에 항상 이끌립니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건 지금의 줄기를 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당연한 무엇이 목숨을 걸고 쟁취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모두가 눈 감고 고개 돌려서 계속 눕혀둬야 한다고 강압했던 시대에 홀로 눈 뜨고 다가가 손을 내밀고 일으켰던 이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권유란 이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마저도 불가능했고,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만든 시간을 등질 수 있기에 이제는 가능한 말들을 기꺼이 나눌 수 있다는 건 실로 다행이지 않은가. 비로소 돌아온 소년과 이처럼 사소할 수 있는 시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그러한 지금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는 것은. 그럼으로써 그것이 결코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한 다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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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준

<무비스트>, <엘르>, <에스콰이어> 등의 매체에서 기자/에디터로 밥벌이를 하며 영화와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비롯한 세상만사에 관해 기사와 칼럼을 썼다. 현재에는 프리랜서 작가, 평론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불리며 집필과 방송, 강연 등 다양한 활동을 모색 중이다. 13인의 감독 인터뷰집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썼으며 지난 여름에 쓴 에세이집 <가을이 오면 떨어질 말들>이 이번 가을에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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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그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Antarctica)』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최근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이 책은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재 아일랜드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영화로 제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