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날] 편지와 일기
국경을 넘는 한국 문학 ① : 『식물적 낙관』의 김금희 작가가 들려주는 식물 일기가 편지 교환이 되기까지.
글 : 김금희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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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책의 날 특집 – 국경을 넘는 한국 문학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문학, 특히 여성 작가들의 책이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해외의 다양한 독자와 만나는 모습을요. 언어의 장벽을 넘은 책은 어떤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닿고 있을까요? 국경 너머의 독자들과 연결되는 경험, 그 환대와 오해, 얽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식물적 낙관』이 사이먼 앤 슈스터(Simon & Schuster)를 통해 영미권에 소개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여러 가지 의미로 ‘만감’이 교차했다. 2009년 등단한 이래 내 책이 영미권에 수출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 중국, 타이완, 태국, 이탈리아에서 단편집과 장편소설이 번역되어 있는데도 나는 내 책이 먼 세계에 나가 있다는 의식을 거의 하지 못했다. 번역되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받았다. 번역자들이 보내오는 질문과 이메일들은 노트북 앞에 앉아 한국어 무더기 안에서 어떻게든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을 옮기기 위해 안간힘 쓰는 나를 일깨우곤 했으니까. “어제는 꿈에서 경애를 봤어요” 하는 고백들, “작가님은 어떻게 이런 감정을 이겨내셨어요?” 하는 몰입의 고백들. 그럴 때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옮겨내기 위해 내가 그랬듯 자기 인생을 내어주고 있다. 그런 시간이 흐르면 책은 번역되어 국제우편으로 도착했다. 내가 읽을 수는 없는 그 언어들은 번역자의 시간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번역된 책을 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번역자를 통해 기사나 평론을 전달받기도 했지만 그것이 아니라 ‘독자’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이들의 이야기 말이다. 평소 리뷰들을 잘 찾아보지 않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독자평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번역기를 통해 해당 국가의 이런저런 플랫폼을 서칭해야 할 텐데 그렇게까지 하게 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일본에 내 책이 나갔을 때 도쿄 서점에 가서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지 확인하기는 했다. 두 군데 서점에 갔는데 모두 책이 있었고(아, 그러면 좋은 일은 아니었나? 팔리지 않았으니) 나는 앞으로 도쿄를 떠올릴 때면 내 책이 놓인 곳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안심하며 돌아왔다. 


책의 영미권 진출은 여러모로 중요할 것이다. 새로운 독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나를 좀 더 수월하게 설명할 수 있다. 국제행사에 참여할 때, 외국 작가들을 만날 때, 심지어 내 책의 영상 판권 계약이 진행될 때도 “영어로 번역된 책은 없나요?”라는 질문을 받아왔다. 『식물적 낙관』이 예정대로 번역, 출간된다면 나는 이제 2년 안에는 그런 질문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독자 반응 찾기에 소극적인 작가에게도 세계 각지의 독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들면 『식물적 낙관』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그 줄기의 끝이 궁금해진다. 


영미권 판권 계약을 하면서 나는 일하는 방식의 차이를 어렴풋이 느꼈다. 출판사는 출간 이전부터 홍보를 계획하고 있었고 도움받을 대상들(협업 가능한 플랫폼이나 단체, 인터넷 인플루언서, 전문가 등)을 리스트업해 보내주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편집자 레터를 통해 『식물적 낙관』을 왜 번역하고 싶은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식물의 삶을 통해 우리가 더 가까워진다는 점을 알아차리는 작은 행동, 식물의 동반자,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을 돌보는 회복력과 적응력에 대한 지속적인 생각, 삶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다는 그 편지를 나는 소중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식물적 낙관』은 사람들이 식물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알려준 책이기도 했다. 다른 주제를 다룬 에세이보다 판매량이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사인회 때도 “식집사세요?” 하고 물으면 “아니요, 작가님이 좋아서 샀습니다.” 하는 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 대답 또한 좋았지만 더 기쁜 건 『식물적 낙관』 덕분에 식물에 ‘입덕’했다는 분들이었다. ‘행동’으로 옮겼다는 건 그 어떤 것보다 큰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영국의 스크리브너(Scribner) 편집자들 역시 원고를 읽고 식물 가게로 달려갔다고 전했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좋은 것을 좋은 곳에 두기를 바라는 마음, 사실 『식물적 낙관』의 집필 목적이 있다면 그런 사소한 바람일 텐데 그것이 더 넓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쁘고 벅찼다. 


아직 책이 출간되지 않았으므로 저 세계와 주고받은 것은 나의 식물 ‘일기’와 출판사와 주고받은 ‘편지’가 전부다.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이 지나면서 그것은 나의 어느 부분 큰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쓰는 방식이 달라지거나 독자의 틀을 더 넓게 잡거나 책을 통한 이윤의 창출을 더 ‘낙관’하게 되지는 않았다. 일상은 『식물적 낙관』을 쓰던 시절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식물이 지니고 있는 ‘삶’의 에너지에 집중하고 있던 그때 나는 식물에 관한 어떤 글이라도 다 쓰고 싶었다. 연재 지면을 준 기자 역시 소설이건 에세이이건 상관없다고 내게 선택권을 주었으니까. 


나는 처음에는 식물에 관한 엽편을 쓰겠다고 결심했다가 생각을 바꿔 식물과 함께하는 하루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는 이 책이 나라는 작가를 더 넓은 세계로 데려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낙관을 내게 선사한 것이었다. 


부기 - 현재 『식물적 낙관』은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폴란드, 러시아 등에 번역, 소개될 예정이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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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대온실 수리 보고서』, 『첫 여름, 완주』,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나의 폴라 일지』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현대문학상, 우현예술상, 김승옥문학상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