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올린 요일별 에세이, 책이 되어 나오다
이 책은 한 편의 영화처럼 읽힌다. 삶의 풍경들을 아름답게 묘사한 문장들이 잘 정제된 영화 속 장면들을 마주한 듯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
201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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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저자인 고수리 작가는 ‘KBS 인간극장’ 팀에서 방송작가로 일했고, 카카오 브런치에 ‘그녀의 요일들’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연재해왔다. 작가 자신을 비롯해 ‘평범한 주인공들’의 삶을 다룬 요일별 에세이로 연재 당시 많은 독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며, 2015년 다음 카카오가 주최한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2000:1의 경쟁률을 뚫고 금상을 받았다.


이 책은 한 편의 영화처럼 읽힌다. 삶의 풍경들을 아름답게 묘사한 문장들이 잘 정제된 영화 속 장면들을 마주한 듯 선명하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텅 빈 새벽 거리에 눈 쌓이는 소리만 ‘싸박싸박’ 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길에 총총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던 엄마의 머리 위로 조용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싸박싸박. 눈에 눈이 쌓이고, 눈끼리 조그맣게 부딪쳐 움직였다. 싸박 싸박 싸박.” 이 부분을 읽고 나면 ‘싸박싸박’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된다. 신혼여행 첫날밤 비행기가 한쪽 날개로 날아서 러시아 땅에 불시착했던 그때를 “반쯤 불행했지만 배로 행복했다”고 추억하고, 아빠가 술 드시고 오는 날이면 엄마, 남동생과 함께 집을 떠나 있어야 했던 순간을 ‘피크닉’이라고 표현하며 불행한 시간 속에서도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포착해 담담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가공되지 않은 그녀의 일상이 주는 묵직한 감동이야말로 읽는 우리에게 ‘삶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무게의 위안으로 다가온다. 작가에게 책을 낸 소회를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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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책 제목이 참 인상적입니다.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됐다는 독자들도 많던데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어렸을 때,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걸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곳은 시골이어서 가로등도 별로 없었어요. 혼자 울면서 한참을 걸어가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본 밤하늘은 잊을 수가 없어서 아직도 꿈에 나타나곤 해요.


누구나 살다 보면 깜깜한 어둠 속을 걸을 때가 있잖아요. 견딜 수 없이 우울하거나 죽을 것같이 힘든 날들이 찾아와 우릴 어둠 속으로 떠밀곤 하죠. 하지만 우린 어떻게든 그날들을 살아내야만 하는 존재, 어둠 속을 더듬어 걸어가야만 하는 보통사람들입니다. 저는 말해주고 싶었어요. 지금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그 어둠은, 해가 지면 찾아오는 짙은 밤처럼 당연한 삶의 이면일 뿐이라고. 깜깜한 하늘을 올려다보면 희미하지만 포근한 달빛이 당신을 비춰주고 있다고요.


제가 알고 있는 삶은 그래요. 약간의 빛, 소소한 일상, 소중한 사람, 따뜻한 말 한마디. 굳이 대단한 것들이 아니라도 우린 충분히 괜찮은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제목처럼, 제 글이 독자분들에게 달빛 같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글이 소중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애착 가는 글이 있으실 것 같아요.


‘눈 내리던 밤’이라는 글이요. 힘들게 살았던 시절에 홀로 눈길을 걸어가던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가장 처음 썼던 글이자,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마음을 담은 글이었어요. 그리고 스스로의 다짐이 담긴 글이기도 하죠. 제가 글 말미에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하얀 눈처럼 담백하고 따뜻한 글을 쓸 것이다. 손가락으로 몇 번을 지웠다가 또 썼다가. 우리가 매일 말하는 익숙한 문장들로 싸박싸박 내리는 눈처럼, 담담하게 말을 건넬 것이다. 삶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위로의 말을.’ 이 말은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태도이자 작가로서의 각오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만큼 개인적인 상처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꺼내 주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망설임도 걱정도 아주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동생이 말했어요. “왜 상처받은 사람들은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야 해? 그건 말도 안 돼. 누나, 떳떳하게 글 쓰고 더 많은 사람을 위로해 줘.”라고요. 참 고마웠죠.


‘상처’ 혹은 ‘불행’이라고 부르는 것들. 그런 어두운 것들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아요. 많이 힘들죠. 괜한 손가락질이나 외면을 받기도 해요. 그럼에도 제가 솔직한 글을 쓴 이유는 스스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였어요. 나아가 저처럼 아픈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 주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제 글을 읽어 주리라는 기대는 없었어요. 혹시나 마음이 아픈 이들이 우연히 지나치다가 제 글을 읽는다면, 그저 함께 공감하고 위로받길 원했습니다. 어떤 위로는, 지나가는 사람의 따뜻한 말 한마디로도 충분할 때가 있거든요. 제 글이 그런 위로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의 글을 쓰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글을 쓸 때, 엄마가 제게 부탁했어요. “수리야, 넌 삶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난 이제 겨우 서른인데. 내가 그런 이야기를 쓴다면 사람들이 진지하게 읽어줄까? 네가 뭘 아냐며 비웃지는 않을까?”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데, 나이는 상관없어. 아파 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는 글을 쓸 수 있어. 넌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글 실력이 서툴다 하더라도, 네가 타인들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이해하는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엄마의 조언을 새기며 글을 썼습니다.

 

첫 책 출간 후, 작가님의 일상에 조금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인들에게서 따뜻한 연락이 많이 왔어요. ‘네 글을 읽고 있는데 자꾸만 눈물이 난다. 정말 네가 대견하다. 고맙다.’고요. 서로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눴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오랜 친구들에게도 잘 몰랐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렇게 주위 사람들과 한 뼘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그리고 책을 읽은 독자분들의 메일도 많이 받았습니다. 책에 대한 감상 말고도 어둠 속을 걸었던 기억들도 나눠주셨어요. 그럴 땐 정말 작가가 되어 감사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사람들이 다가가기 쉬운 작가가 되고 싶어요. 마음껏 이야기를 털어놓고 소통할 수 있는 편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책 출간 후, 뭔가 대단한 변화가 생기진 않았지만, 저는 지금 일상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삶에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쓰실 계획인가요?


지금까지 개인의 이야기를 썼다면, 앞으로는 타인의 이야기 ‘사람 글’을 써보고 싶어요. 누군가의 공식적인 프로필이나 직업에 관한 이야기 말고, 그가 경험했던 삶의 어떤 순간들에 관해 쓰는 것이죠. 미처 알 수 없었던 속 깊은 마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소소한 기억, 좋았다가 나빴다가 아팠다가 괜찮았다가 그래도 미소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글로 그려 보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 제 방식대로 인터뷰하고 있어요. 무척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아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독자들에게 제 마음이 온전히 가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깜깜한 어둠 속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희미하지만 포근하게 빛나는 달빛처럼, 따뜻한 슬픔, 뭉클한 행복, 소중한 사람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요.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으니까. 이 책을 덮고 나서, 우리의 주변이 조금은 더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갈 수 있는 단단한 힘이 보태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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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고수리 저 | 첫눈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는 제목처럼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격려와 희망, 따뜻함을 전한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어제 나의 일상 같은 글이, 친근하게 다가와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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