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연선이 장편소설 『구름이 겹치면』으로 첫인사를 건넵니다. 그와 우리의 만남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는 우리 곁에 오래도록 가깝게 있었던 사람, 읽고 쓰고 들려주는 이로서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그는 채널예스 신연선 기자로,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오은의 옹기종기」의 작가 캘리로 이미 친밀합니다. 그는 탁월한 인터뷰어이자 작가로 타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이야기를 공글려왔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그의 소설은 『구름이 겹치면』인데요. 이 소설은 가정 안에서 오랜 세월 다친 서인과 불법 촬영 피해로 일상을 잃어버린 지윤, 이 둘의 어깨를 얼싸안고 다독이는 바인이 나눈 우정을 그립니다. 그는 소설을 쓰는 행위에 대해 “그 사람이 되어보려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결코 네가 될 수 없지만, 그 거리를 최대한 좁혀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요. 그렇게 우리의 세계를 안전하게 넓혀 나가자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는 “각자 지닌 소수자성과 다수자성을 함께 의식하자”는 이야기를 잊지 않는데요. 한 개인이 지닌 다양한 정체성이 상호 교차적으로 형성되고, 그에 수반되는 차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구름이 겹치면’ 보이는 세계가 아닐까 합니다.
늘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사람의 새로운 이야기
이렇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 기쁩니다. ‘첫 장편소설 출간을 축하드린다’는 인사로요. 소설가 신연선과의 첫 만남을 많은 분들이 반가워하실 것 같아요.
『구름이 겹치면』의 정식 출간 전, 전주 책쾌 행사를 통해 독자분들을 대면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책을 팔고 영업하면서 건넸던 말이 “혹시 소설 좋아하세요?”였어요.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읽다 보면 쓰고 싶어지잖아요. “저는 그래서 쓰게 된 것 같아요”라는 말을 덧붙이며 인사를 했어요.
소설을 쓴다는 것이 제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라는 건 쓰면서 깨달은 거예요. 소설 집필 기간에는 쓴 시간도 있고 쓰지 않은 시간도 있었는데, 안 쓸 때도 계속 뭔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결국 쓰는 일은 어떤 시간을 완성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제 책 좀 읽어주세요” 하고 홍보해야겠지만, 그 대신 같이 쓰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책읽아웃―오은의 옹기종기」를 만들 때도 그랬는데, 청취자분들을 항상 동료라고 생각했거든요.
마찬가지로 독자분들을 동료라고 느끼시는군요.
네, 독자분들 역시 동료라고 생각해요. 많이 읽는 분들, 지금도 읽고 계시는 분들은 언젠가는 분명히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쓰는 게 왜 이렇게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고들 하지만, 누가 쓰는지, 누가 읽는지에 따라 또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에요. 각자의 맥락과 배경이 다르니까요. 게다가 여전히 여성들의 삶, 여성들의 이야기는 너무 적게 쓰여졌고요. 제가 소설가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지만, 그저 같이 쓰는 동료로서 “저도 썼으니까 여러분도 한번 써보세요” 하고 말할 기회가 생긴 것 같아서 좋아요. 지금은 그 마음이 제일 커요.
‘어떤 독자가 내 책을 읽을까’를 상상하기보다 같이 쓰는 동료로서 독자를 생각하시다니 새로워요.
더도 말고 “여러분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 않으세요?” 이렇게 말 거는 마음으로 독자분들을 생각해요.
정말 제목다운 마음입니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생각해보면 다들 좀 외로운 것 같아요. 특히 이렇게 여자들에게 적대적인 세상에서는 더욱이요. 어떻게든 덜 외로워지게 하는 일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을 써서 말 거는 일을 하게 된 것인데, 그 일이라는 건 다양할 것 같아요. 그래서 여성 창작자들의 음악, 사진, 영화 같은 것들을 적극적으로 수신하고, 그에 대해 발신하고, 그런 것들이 만나서 서로 공명하는 상상을 많이 해요.
그게 쓰는 힘이 되었겠어요.
네, 그러니까 전혀 일방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 저 혼자 소설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말이 참 좋네요. 누군가의 작업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하니 용기도 생기고요.
그래서 ‘책 나왔다, 끝!’ 이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하는 마음이에요. 어떤 새로운 발신이 올지 기대하게 되고요. 발신의 형태는 여러 가지일 수 있겠죠. 한 줄 후기일 수도 있고, ‘이 사람도 이런 걸 썼는데 나도 한번 써볼까' 혹은 ‘나도 이런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의 싹을 틔울 수도 있을 테고요. 만약 정말로 어떤 마음의 싹을 틔울 수 있다면 영광일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쓰셨어요?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쓰죠? 보통은 뭐가 되고 싶어서 쓰잖아요.
삿된 마음도 분명히 있죠. 그런데 그게 중심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정말 이럴 줄은 몰랐던 것 같아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쓰면서 정작 이런 마음은 저 멀리 밀려나고, 정말로 말 걸고 싶다, 듣고 싶다는 마음이 코어가 되어갔어요.
“소설을 쓴다는 건 정말로 그 사람이 되어보려고 노력하는 일이었어요.”
장편소설을 그런 태도로 쓰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엔 장편소설을 쓰리라고는 생각을 못 하고 시작했거든요. 이 소설은 ‘누군가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을 상상하며 출발했고, 그런 이가 다른 영혼의 아픔이나 외로움이나 고통을 발견하고 도움이 될 수 있겠다, 그런 존재가 있다면 너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어요. 다만 쓰다 보니 제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 더 많더라고요. 누군가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와 관계한 누군가가 회복하는 세계 안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고, 제 안의 문제의식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확장해 나갔어요.
작가의 말에 “소설 쓰는 일이 결코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라고 썼는데, 같이 읽고 쓰는 동료들이 제게 있거든요. 그분들이 이 소설은 장편소설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어요. 저는 이 이야기가 얼마나 길게 갈지 커질지 예상을 못 한 채로 써나갔기 때문에, 중간쯤 이르러서는 어디까지 가야 할지, 얼마나 더 가도 되는지도 모르겠는 곤란함이 있었는데요. 동료들의 세세한 피드백 덕분에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었어요. 나아가 그들에게 주고 싶은 장면들을 쓰게 되면서 이야기를 키워나갈 수 있었고요. 너무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하지만 정말 좋았을 것 같아요.
정말 그랬어요. 그러다가도 완전히 막힌 순간이 또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때는 진짜 더 쓰지 못할 것 같았고, 이 소설이 꼴도 보기 싫었어요. 그러다가 서인, 바인과 지윤에게 좋은 장면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다행히 솟아났어요. 소설은 보기 싫었지만, 제가 불러들인 인물들이 너무 힘든 상태인데, 이들에게 숨 쉴 구멍은 주고 마무리하자 싶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쓰고 너무 좋았어요. ‘진짜 다행이다, 세 사람에게 이런 순간을 줄 수 있어서’ 했어요. 독자분들께서는 어떻게 읽어주실지 모르겠지만, 쓰면서는 정말 기뻤어요.
작가의 말에 따르면, 『구름이 겹치면』의 작업을 2022년에 시작하셨어요. 이 끝맺음을 하시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궁금합니다.
2022년은 그동안 버티고 버티다 무너졌던 시기였어요. 갑자기는 아니고 예전부터 계속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거든요. 세월호 참사, 강남역 살인 사건, n번방 사건 등등의 일들을 지나오면서 그랬어요. 그러다가 같은 해에 작가이자 독립 연구자이신 김지승 선생님의 <메두사의 웃음으로: 여성적 글쓰기는 가능한가> 수업을 들었어요. 같이 읽고 쓰는 분들을 만나고 싶어서요. 혼자 너무 외롭고 계속 무너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쌓고 드디어 뭔가 써보고 싶어졌는데,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거예요. 그러고 나서 한 1년 가까이 일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때 이렇게 같이 읽고 쓰는 분들이 있었기에 그나마도 버틸 수 있었지만요. 『구름이 겹치면』을 쓰는 동안은 완전히 넘어지고 엎어져 울다가 조금 몸을 일으키기도 하고, 두 발로 서기도 하고 좀 걷기도 하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완성할 때까지 약 2년 반에서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저에게 무척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무척 밀도 높은 시간이었어요.
<메두사의 웃음으로: 여성적 글쓰기는 가능한가> 외에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 창작 강의 <더 좋은 소설을 향하여>도 수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시간을 버티기 위해 읽고 쓰는 자리, 그것도 안전한 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돼요.
같이 읽고 쓰는 동료들은 조해진 작가님의 소설 창작 강의 때 만난 분들이에요. 지금까지 이분들과 모임을 하고 있어요. 내가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커뮤니티를 찾으러 간 곳에서 진짜 좋은 동료들을 만났죠. 김지승, 조해진 선생님 두 분의 수업도 정말 좋았고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온 우주가 나를 도와주고 있구나.’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많이 힘들었던 우리들이 서로를 찾아다닌 게 아니었을까 해요. 열심히 찾으면 서로 발견되는 것 같고요.
이 소설의 시작은 서인이라는 인물이 착상되면서부터일 텐데요. 서인을 염두에 두고 쓰면서 자연히 지윤과 같은 인물을 불러오셨으리라 짐작되었어요.
맞아요. 서인은 누군가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 굉장한 선의를 베푸는 사람, 또 우정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인의 그런 면이 그와 전혀 관계없는 이에게 닿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때가 n번방 사건 뉴스가 보도되기 시작할 때였거든요. 그 뉴스를 보면서 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문득 이 군중 속에 몇 명이나 이 범죄에 연루되어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조여오더라고요. 너무 고통스럽고요. 그 숫자가 컸기 때문에 이 공간에 가담한 사람 한 명쯤은 분명히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 제 세계가 너무 위축되더라고요. 너무 무서워서요. 버스도 못 타겠고 밤에 외출도 못 하겠고, 집 밖에서는 화장실도 아예 못 가서 방광이 터질 것 같은 상태로 집에 돌아오곤 했고요. '가해자가 그렇게 많다면 피해자도 너무 많을 텐데, 그 사람들 다 어떻게 살고 있지?’ 그런 생각과 함께 저도 분명 피해자라고 생각했고, 서인의 응시와 우정이 그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이의 회복을 상상하며 썼어요.
여성 혐오 범죄 소식을 들으면 마치 제가 겪은 것만 같아요. 완벽히 타자의 일이지만 완전히 그 사람만의 일은 아닌 게 돼요. 겪는다는 표현을 쓴 것은, 이 소설을 쓰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소설을 쓴다는 게 정말로 그 사람이 되어 보려고 엄청 노력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에요.
완벽한 타인을 동료로 품어 안는 다정함으로
아주 오랜 시간 지금 그 자리의 반대편에서 작가분들에게 질문을 던져오셨어요. 자리가 바뀌어 질문을 받는 자리에 앉게 된 소감이 궁금해요. 주인공이 된 기분을 어떻게 느끼시는지요.
계속 무슨 생각을 하냐면요. 녹취 풀기 편하셔야 하는데, 중언부언하면 안 되는데……(웃음) 만약 제가 이 일을 안 해왔다면 훨씬 더 멋대로 얘기했을 것 같아요. 이렇게 조심스러워지는 것도 동료의 마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방금 주인공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제가 인터뷰어로 일을 할 때 당연히 인터뷰이가 중심이지만 함께 플레이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대화할 수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난 복이 있어서 지금과 같은 태도를 가질 수 있었는데, 그런 한편 저를 정말 동료로 존중하지 않으시고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쏟아내셨던 분들도 있었어요. 그런 분들은 반면교사 삼게 됐고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좋은 것이 지금 저의 태도가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제 세계에서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이분법으로 나누어져 있거든요. 제 안에 서열이 강하게 서 있는 거죠. 이걸 깨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덕분에 듭니다.
이와 관련해 좋았던 경험들이 「책읽아웃―오은의 옹기종기」 때 있었어요. 프로그램 전면에는 진행자와 출연자가 있고 저는 뒤에서 대본을 쓰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각개전투로 일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공동 작업이라는 걸 실감하면서 존중을 바탕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 것 같아요. 영화를 예로 들면, 감독이나 배우만 잘한다고 해서, 그런 서열을 세워 일한다고 해서 멋진 작품은 안 나올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인터뷰어로 일했으니 저의 전문성을 너무 높일 필요도, 또 너무 폄훼할 필요도 없이 스스로를 신뢰하자는 마음을 갖고 있거든요. 그것과 함께 각자 영역의 전문가로서 동일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로서 만나는 경험, 그것을 공감하면서 일하는 분위기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구름이 겹치면』은 서인, 지윤, 바인 세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로 읽힙니다. 서인과 지윤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한편 바인의 이야기는 따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데요. 바인의 이야기가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빠지게 된 것인가요?
원래부터 없었어요. 서인과 지윤은 상처받은 인물인데, 이 둘을 어떻게 만나게 하고, 그 상처를 서로 안으면서 새 힘을 적립하게 해줄 것인가 고민할 때, 바인이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됐어요. 사실 바인이 정말 중요한 인물이긴 하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세 사람이니까요. 다만 별도의 바인의 이야기를 담는 데 치중하지는 않으려고 했어요. 나중에 바인의 이야기는 따로 더 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우선은 이 소설에서 제가 조금 더 집중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람은 가정 폭력의 상처가 깊은 서인과 불법 촬영 범죄 피해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지윤이었어요. 이들의 상처가 어떻게 희미해질 수 있는지를 제일 많이 고민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려고 했어요.
소설 창작에 있어서 중요한 가치라고 하면 최근에는 도덕성에 있는 것 같아요. 그간 이를 저버린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지요. 있는 사실을 그대로 옮겨도 안 되지만 당사자성이 부재한 창작자들이 빠지는 함정이 있고요. 그래서 이 작업을 시작하실 때 그 면을 무척 고민하셨을 것 같았어요.
너무, 너무, 너무 고민합니다. 앞서 말씀을 좀 드렸지만 함부로 ‘너는 나다’라고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너를 너로만 남겨두는 세계는 그대로 위험한 것 같아요. 나는 결코 네가 될 수 없다는 한계를 알지만, 그 거리를 최대한으로 좁히는 건 필요하다고 믿거든요. 만약에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빈약하고 단순한 세계가 될 것 같아요. 당신은 당사자가 아닌데 왜 광장에 서 있는가, 왜 그 사람 옆에 서 있느냐고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면 연대라는 가치는 존재할 수 없을 거예요.
정말 좋은 소설을 읽으면, 나와 닮은 인물에게서 발견한 부분을 보고 회복될 때가 있잖아요. 쓸 때도 비슷한 것 같거든요. 만약에 제가 지윤과 같은 일을 경험한 적이 없으니 그것에 대해 쓰지 않고, 더 열심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타자화된 시선을 가진 사람으로 남았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의 피해 사실을 작가적인 욕망으로 도구 삼아 쓸 수도 있다는 얘기예요. 하지만 그런 마음은 정말 상상도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소설이라는 세계 안에서 적극적으로 그 사람이 되어보려고 해요. 그러니까 당사자성에 관한 한 대상화해 쓰는 것이 문제이지 당사자성이 부재한 사람이 쓰는 것 자체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맞아요. 우리가 혼동하는 것 같아요.
어떤 문제는 너무 중요해서 모든 사람이 많이 얘기해야 하고, 또 각자의 방향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를 해석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한 사람에게 한두 가지 면만 있는 게 아니라서 각자 그 면면이 엄청 복잡하게 얽힐 때 드러나는 진실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소설 상에서 미흡한 점이 발견된다면, 그건 쓰는 제 역량의 한계일 테고요.
구름이 겹치면 보이는 세계
그렇게 말씀하시니 소설 제목이 참 절묘한 것 같아요. 제목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이 제목은 핀드 김선영 대표님이 지어주셨어요.
가제는 뭐였어요?
'내게만 보이는 세계’였어요. 제게 서인이라는 인물이 착상됐을 때만을 담은 제목이어서 다시 짓고 싶었는데, 끝날 때까지 못 정했어요. ‘제목이 너무 중요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도저히 모르겠다’ 하고 있었는데, 대표님이 엄청 고민을 하시다가 마침내 이 제목 발견하셨고 둘 다 너무 좋아했어요.
이 제목은 책의 “그 바람에 우리의 구름이 조금 겹쳐졌다(231쪽)”에서 발견된 것이에요. 서인과 바인이 자기들과 전혀 무관한 지윤의 일을 어떻게든 해결해보려고 의기투합해 결국 무언가를 이루는 장면에서의 한 문장이에요. 둘이 너무 기뻐하다가 서로의 구름이 겹치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이 바로 이것이거든요. 서인이 지윤을 보자마자 울잖아요. 비슷한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상처에 고립되는 게 아니라 서로 덜 아프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나누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언젠가의 저를 회복시키기도 했고, 제가 힘이 차올랐을 때 누군가와 깊이 연결되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 어린 소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서인은 나름 히어로잖아요? 하지만 너무 연약해서 그 어디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히어로고요. 하지만 서인의 능력으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요. 이 소설에서 제일 좋았던 점이기도 해요.
서인을 히어로로 읽어주셨다니 좋아요.(웃음) 사실 이 세 사람은 마지막까지도 실제로 달라진 게 거의 없어요, 겉으로 봤을 때. 하지만 내면이 달라졌죠. 그게 정말 중요한 변화고요. 지윤은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전혀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했는데, 서인과 바인과 함께한 후로 도서관에도 가고 혼자 카페도 가게 됐어요. 저는 이것이 정말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 변화를 가져다준 존재가 서인, 바인이라는 것 역시 중요했고요.
누구나 주의 깊게 누군가를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본다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영혼을요. 앞서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상상하는 것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쓰다 보니까 그 능력 자체가 얼마나 놀라운지 환상적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어요. 만일 그 점이 중요했다면 완전히 다른 장르가 됐을 텐데, 제게는 누군가의 상처를 내 것처럼 겪어보겠다고 나서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중요했거든요. 그런 마음들이 서로를 어느 정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썼고요. 누구나 서인이 될 수 있고, 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읽는 내내 서인이 부럽기도 했는데, 바인 같은 친구가 있어서였거든요. 그러면서 동시에 바인이 맑고 밝은 힘을 가질 수 있었던 힘은 뭘까 궁금했어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덕분이었을까요? 바인에 대해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결국 이 소설로 하고 싶으셨던 메시지가 도출된다고 느꼈어요.
사실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난다’는 말은 너무 위험한 것 같아요. 서인이 바인의 구름을 보고 얘기하잖아요. 누구보다도 맑고 투명도가 높은 구름을 가진 사람이라고요. 그런 특별한 영혼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은 가혹한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해도 망가지지 않고, 너무 호의적인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해서 보존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이 소설에서 가장 환상적인 요소를 꼽자면 바인의 그 영혼이에요. 아마 많은 독자분들도 그런 영혼을 가진 사람을 살면서 한 번은 목격하셨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은 분명히 있고 그런 사람이 주변을 일으키는 것을 저도 목격한 적이 있거든요. 물론 바인에게도 망가지거나 일그러진 내면이 있어요. 바인에게도 큰 상처가 있었으니까요. 다만 바인은 다쳤지만 훼손되지 않는 사람, 그런 강인한 면모로 주변을 끌어올리는 사람이라고 믿으며 썼어요.
소설 출간에 대해 끝과 동시에 시작인 것 같다고도 말씀하셨어요. 그다음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이 소설을 쓰는 작업이 제게는 지윤한테 더 가까워지고 적극적으로 그 사람이 되어 보는 일이었는데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더 이해를 해보고 싶은 사람들에 대해 쓸 것 같아요. 나아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도요. 오히려 그런 이들이 내 주인공이 되면 그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됐던 작업이 『구름이 겹치면』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가장 잘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나의 엄마, 그리고 그들 세대예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탐구해보고 싶어요. 조금 썼고, 쓰고 있어요. 계속 그렇게 써나가고 싶어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이해해보는 작업이 쓰는 이유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꼭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하나 있었어요.
우리 각자의 다면성을 깨닫는 태도, “그렇구나, 알아두겠다!”
얘기해주세요.
최근까지 제일 고민이 깊었던 문제였어요. 작가 소개에 제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고 있다. 특히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한 도시에서 평생을 지낸 빈약한 세계에 공간과 깊이를 더하는 귀하디귀한 자양분임을 안다”라고 썼어요. 서울이라는 공간이 사실 한국이라는 사회 안에서도 아주 비대하게 자본이나 인구가 집중돼 있는 곳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고 그 세계에서 겪은 빈약함을 문학이나 책 읽기로 넓혔다”라는 이 서술이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서울에서도 저 동북쪽 끝에서 평생 자라면서 어떤 결핍이 있었고 차별도 받았는데, 그렇다고 이런 것들만 경험하면서 살았다고 절대 얘기할 수 없다는 걸 이젠 알거든요. 그게 제가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에요. 그 가난한 동네에서 평생 살았지만, 그럼에도 무척 편리한 패스 카드가 있는 삶이었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서울 시민이자 이성애자 여성이고, 게다가 원어민이고요. 그러니까 주권이 보장된 국민이면서 다수자성과 소수자성이 제 안에 있다는 얘기죠. 이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문학 덕분이에요. 각자 갖고 있는 소수자성을 의식하는 동시에 다수자성도 의식하자는 이야기를 꼭 나누고 싶었어요.
결국은 교차성 이야기네요.
맞아요. 누군가의 어떤 면을 다양한 방향에서 보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유의 이야기할 때의 두려움은 결국 나의 미진함을 드러내는 것인데, 지금 대화를 나누면서 드는 다행스러움은 그 미진함이 극복이 된다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채워질 수도 있겠구나 싶다는 거예요.
상처를 드러냈을 때 달라지는 세계, 그 가능성의 세계를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미진함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하고 싶어요. 미진하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각자가 가진 다양한 미진함에 대해서도 마음껏 얘기하고 들어볼 수 있는 환경을 상상하고 싶어요.
심지어 저는 지금 ‘작가의 말을 읽고 여기서 이야기할 만한 부분을 찾지 못하고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미진함이다'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서로 극도로 위축됐을 때 발생하는 문제예요. 저 역시 그렇게까지 위축되었다면 이 이야길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을 받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었어요. 어떤 독자분도 제가 만일 이 얘기를 안 했다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이 인터뷰를 읽고 “이 사람 좀 그렇네” 하는 반응을 보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이렇게 미진한 존재이고, 미진함을 미진함이라고 알게 해주는 도구로서의 책에 대해 얘기하는 걸 멈추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많이, 같이 읽고 쓰고 싶어요.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더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이게 제게 큰 숙제였어요. 대화하고 나니 하고 싶은 얘기에 가깝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덮어두고 생각을 못 하고 있었는데, 이 문제의식은 제 안에도 있었어요. 누군가 지금의 제 상태에 대해 표현한 말을 두고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저는 제 소수자성을 들여다보기에 급급해 명백한 다수자성이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거든요. 제 다면성을 비로소 깨닫게 된 계기였어요. 이 대화를 통해 다시 복기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다각도로 생각해보고 그 안에서 나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세계는 참 다를 것 같아요. 왜 그 얘기 기억나시죠? 광장에서 어떤 분이 “우리 딸들 수고했어”라고 하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근데 저희가 사실은 딸이 아니에요”라고 했더니 그분이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고 했다는 일화요. 그 태도요. “아, 제가 미진했군요. 알겠습니다” 하고 그 세계를 좀 더 들여다보려고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렇구나. 알아두겠다.”(웃음)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 “그렇구나. 알아두겠다.”(웃음)
맞아요.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만 할 수 있어도 우리 세계가 많이 달라질 거예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구름이 겹치면
출판사 | 핀드

표기식
사진 작가.

염은영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더불어 읽습니다.
감성광부
20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