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근본 문제를 왜 소수의 대자본가에게 맡기는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 교수는 말했다. 최근 펴낸 『자본론 공부』를 통해서다.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을 비롯해 새삼 ‘자본’과 ‘자본주의’ 등에 대한 관심이 불붙고 있는 이때, 김 교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다시 꺼냈다. 물론 지금 상황과 시대에 맞는 『자본론』의 재해석이다. 책은 대학로 벙커1에서 이루어진 김 교수의 강연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시민 상대의 강의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자본론』을 이해할 수 있게 알려줄지 고민했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알려주고, 새로운 사회는 어떤 사회일지 함께 고민하자는 강의였다. 책은 이렇게 잇는다.
“결국 자본 또는 자본가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사라져야, 대다수 국민들이 일자리를 얻고 사람다운 생활을 하며 자기들의 개성과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 혁명의 시대에, 한 줌도 안 되는 거대한 자본가계급의 독재 때문에 국민 전체가 죽어가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사실상 『자본론』에 있습니다.”
김 교수는 지난 10월 1일, 서울 중구 스페이스 노아에서 『자본론 공부』가 그동안 자신이 쓴 책 가운데 정치적인 색깔이 가장 강하다고 말했다. 부연하자면, 그는 『자본론』에 ‘혁명하자’는 이야기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신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법칙을 설명했다는 것.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재생산?유지되는 한편으로 무너져가는 과정을 말했다. 이어 새로운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사유했다. 『자본론 공부』는 이런 사유를 주로 다뤘다.
산업자본이 중요한 이유
김 교수는 ‘산업자본의 순환’에 대해 먼저 꺼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본가와 노동자, 크게 나눠 두 개의 계급이 있다. 자본가는 노동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계급, 노동자는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계급이다. 경제 호황에서는 두 계급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황이나 위기 상황에서는 다르다. 노동자는 일자리가 없으면 먹고살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중요한 것이 산업자본이다. 노동자를 고용해서 생산물(재화, 서비스)을 만든다. 기계, 원료 등의 생산수단을 사고 노동력을 산다. 상업자본은 물건을 사서 팔고 그 가격차이를 가져가는 주체다. 금융적 자본은 은행이 자신이 가진 돈이든 예금으로 받은 돈으로 산업자본 등에 빌려줘서 이자를 받는다. 예금이자와 대출이자 차이로 이득을 얻는다.”
산업자본과 달리 상업자본이나 금융적 자본은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는다. 생산하는 것은 산업자본뿐이다. 노동자를 고용해 상품을 생산해 잉여가치를 얻는다. 상업이윤은 상품을 파는 과정을 상인이 대신한다. 산업자본가가 상품을 팔려고 하면 직판매장을 만들고 상업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므로 공장마다 직판매장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상인이 산업자본가 대신 상품을 팔아준다. 그래서 상인에게 나눠주는 것이 상업이윤이다.
김 교수에 의하면, 2003~2012년 가운데 2008년에 공황이 왔다. 공황이 오자 기업이 거둔 이윤의 많은 부분이 배당금으로 흘러갔다. 또 기업 이윤의 상당 부분은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데 활용됐다. 같은 기간,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기업 449개의 이윤을 조사했더니, 이윤의 53%가 자기 회사 주식을 사는데 쓰였다. 37%가 배당에 사용됐다. 김 교수는 기업 이윤으로 공장을 짓거나 고용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털었다고 설명했다.
“배당을 많이 하면 주가가 올라간다. 그러니 실제로 투자한 것이 없었다. 고용도 늘지 않고 경제성장도 안 됐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는 주주가치를 올렸을 뿐이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산업자본이 커져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고 잉여가치를 크게 내야한다. 또 새로운 기술혁신이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이 죽었다.”
소득불균형은 커졌다. 정보도 없고, 자본력도 약한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없었다. 자본력이 큰 사람만 돈을 벌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래서 산업자본이 가장 중심적이어야 한다. 마르크스도 그래서 『자본론』의 1, 2권, 3권 중에서 3편까지는 산업자본을 다뤘다. 3권의 4편에 상업자본, 5편에서는 금융적 자본, 6편에서는 토지소유가 차례를 이었다. 산업자본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김 교수는 산업자본에서는 잉여가치가 어떻게 나오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르크스, 노동가치설을 말하다
그는 라면 공장을 예로 들었다. 자본가가 밀가루와 노동자를 사서 100원을 투자해 하루 400개의 라면을 만들어 시장에 라면 1개당 120원에 팔았다고 가정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기 전, 잉여가치가 어떻게 나오는지 연구를 했다. 다른 연구들 모두 100원짜리를 120원에 팔아서 이윤을 본다고 설명했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반대했다. 100원짜리 물건을 120원에 팔면 20원의 이익을 본다지만, 소비자는 20원 손해를 본다는 것.
“이윤이 생긴 게 아니다. 물건을 사고팔 때는 물건의 가치대로 팔아야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상품은 상품 가치대로 매매된다는 것이 『자본론』의 핵심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데서 이윤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가가 투자한 돈은 100원인데, 노동자가 밀가루를 가공하는 생산 과정에서 어떤 변화가 있어서 120원이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생각해냈다. 인간의 노동만이 가치를 창조한다! 노동가치설의 핵심이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경제학에서 혁명을 일으킨 지점이다. 노동자에게 30원을 임금으로 줬다면 이것이 노동력의 가치라는 것. 마르크스가 설명한 임금의 원뜻은 노동자가 임금을 받아서 의식주 생활을 하고, 어제 오늘 내일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노동력의 가치다. 즉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의식주 생활을 하고 가족생활을 꾸려야 한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드는 비용이다.
“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는 말이 거기서 나온다. 상품가치가 120원이었는데, 밀가루 가격 70원은 옮아왔고, 노동을 통해 50원의 가치가 상품에 추가됐다고 이해해야 한다. 노동자가 노동을 함으로써 50원의 가치를 라면에 붙였다는 뜻이다. 그래서 라면 값이 120원이 됐다. 그런데 노동자가 50원 가운데 30원을 임금으로 받았다면 20원은 자본가에게 바친 것이다. 10시간 노동이라고 치면, 6시간은 임금으로 지불받은 노동이나 4시간은 잉여노동, 지불받지 못한 노동이라고 말한다.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이 창조한 가치가 다르다는 얘기다.”
아담 스미스 등 고전학파에서는 노동과 노동력을 구별하지 않았다. 노동을 통해 30원의 가치를 창출했다고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를 50원으로 봤다.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가면서 임금노동자는 시골에서 땅을 강제로 뺏겨서 도시로 내쫓긴 사람들, 즉 무산대중(프롤레타리아)이었다. 이들이 가진 것은 몸 하나다. 이들이 창출한 가치 50원을 전부 가져가면 자본가은 가져갈 것이 없었다. 자본가는 20원을 가져갔다.
“노동자가 노동을 해서 창조한 가치 50원 가운데, 20원은 노동자에게 어떤 대가도 주지 않고 착취해 간다. 현실이 그렇다. 임금노동자도 자본가도 평등하지 않다. 잉여가치는 임금노동자가 생산과정에서 대가를 받지 않고 자본가에게 준 것이다. 은행자본은 이자율을 높이길 바라고, 잉여가치의 분배를 둘러싸고 노동자를 착취한다. 잉여가치가 20원인데, 자본가가 노동 시간을 14시간으로 연장하고 임금을 그대로 줬다고 치자. 잉여노동 시간이 8시간이면 잉여가치는 40원이 된다.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는 것, 이윤을 증대하는 중요한 방법이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위하여
자본은 축적됐다.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적립된 것이다. 자본가는 한 일이 없다.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는 자본 자체는 노동자의 피와 땀이었다. 그런데도 실업은 늘어난다. 자본가가 자본 축적을 위해 있는 노동자를 짜낼 뿐 고용을 창출하진 않는다. 그렇다면 실업자는 민간 자본만의 몫일까. 김 교수는 노동시간을 줄이면 실업자가 없어진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덧붙였다.
“취업희망자는 도서관에 앉아 스펙을 쌓기보다는 일자리를 달라고 정부에게 시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지난 4월 정부가 발표한 공식실업자가 103만 명이나 그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실질 실업자 수는 666만 5천명, 실질 실업률은 23.0%다. “우리나라는 통계를 거짓으로 낸다.” 마르크스는 노동과 소유의 관점에서 본 새 사회의 특징을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공장을 공동소유하고 공장은 사회 전체의 계획에 따라 운영되면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사회라고 말했다. 이것에 의하면,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한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포함되지 못한다. 정부와 관료들이 권력을 갖고 소유하고 있었을 뿐 대중들은 힘이 없었다. 김 교수는 그래서 마르크스의 구상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아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자개연)’이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은 타인 노동이다. 자본가는 자신이 일하지 않고 임금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한다. 그러나 자개연에서는 공동 노동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군가는 15~16시간을 일하지만 노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나. 일 할 수 있는 사람이 다 일하는 것이 평등한 사회다. 기계나 자산 등도 공동소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개연으로 이행하는 싹은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2개를 들었다. 하나는 주식회사, 나머지 하나는 (생산자)협동조합이었다. 주식회사는 소유(주주, 자본가)와 경영(월급쟁이 사장 노동자들)이 분리된다. 주주는 아무 것을 하지 않아도 매년 회사 이윤을 배당으로 얻는다. 즉 불로소득자다.
“혁명을 해서 노동자 계급, 일반 서민이 국회에서 모든 주주가 가진 주식을 반납하라는 법 하나만 만들어도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면 자본가가 없어질 수 있다. 없어져도 회사(경영)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반면 협동조합은 자본가가 없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돈을 출자해서 회사를 만든다. 착취하는 자본가도 없고, 노동자들끼리 해나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가 없어도 새로운 사회로 갈 수 있는 물질적인 기반은 있다. 김 교수는 왜 대자본가 몇 명이 한국경제를 요리하도록 놔두는지 물었다. 문제는 그 지점에서 생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가면 이윤율이 0가 돼서 자본주의가 망한다고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 정치가들이 주장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은 모두가 참석해서 능동적으로 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의 주인은 노동계급이라고 했다. 아래로부터 혁명을 해야 한다. 입만 벌리고 있으면 감이 떨어지나. 『21세기 자본』은 마라크스의 『자본론』과 다른 이야기로 자본가 계급의 부와 소득이 커지고 빈부격차가 커지면 이것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결론 낸다. 마르크스는 분배를 개선하려면 자본주의를 타파하지 않고는 분배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른바 분배를 가지고 야단법석을 떨고 거기에 중점을 두는 것은 도대체 잘못된 것이다.”
-『자본론 공부』中
김 교수는 소득분배보다 생산수단, 토지를 누가 가졌느냐가 분배에서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든 시민이 생산수단을 공동소유 하도록 한다면 분배가 자연스레 해결된다고 덧붙였다.
“지금 자본가들은 그렇게 많이 얻고 있는 이윤을 무엇에 사용하고 있나! 배당을 많이 줘서 주식 가격을 올릴 뿐, 노동자 고용이나 투자 등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다. 그럼으로써 불황이 계속 된다. 신자유주의, 금융화, 주주 가치 이데올로기 등이 관습화 돼 있다. 자본주의 질서를 변혁시키는 것, 모든 생산수단이나 공장을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차지해서 계획적으로 운영하는 것. 그래야 빈부격차가 없어지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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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공부김수행 저 | 돌베개
김수행 교수는 이 책에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찬양했고 어떻게 비판했는가를 이야기한다. 동시에 “미래 사회의 태아를 자본주의가 잉태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자본론』을 읽어야 지금의 현실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의 새로운 사회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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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