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지 않는 인간은 없지요. 모든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자랍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덜 자란 것 같거나 괜찮은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느낌에 시달릴까요. 성장은 언제, 어떻게 일어나며 성장의 징표는 무엇일까요.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성장할 수 있을까요. 세 권의 소설과 함께 이런 고민에 대해 풀어가보려고 합니다.
『맡겨진 소녀』
클래어 키건 저 / 허진 역 | 웅진지식하우스
인물이 어떤 사건, 어떤 시절을 겪은 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소설이라면 대부분의 소설들은 성장소설의 범주 안에 들어갑니다. 성장이 나약하거나 불우한 인물이 키와 몸이 자라고 앞으로 나아가며 변화하는 것이라면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는 성장소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주인공 소녀는 가족을 떠나 친척 아줌마 아저씨와 지내는 동안 자신이 달리기를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삶의 소소한 기쁨들에 대해 눈을 떠갑니다. 빈곤한 대가족 사이에서 지내며 체념하고 있던 감정들이 건강한 일상속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고요. 그곳에서 소녀의 불분명했던 대답 ‘에’는 점차 ‘네’가 되어갑니다.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가 있다는 것도 배우게 되지요.
자신이 속해있던 익숙한 세계-그것이 좋거나 나쁘거나, 와 상관없이-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가는 것, 그 낯섬 속에서 자기가 머물렀고 지나온 세계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는 것은 성장의 기본 조건이고 시작입니다. 그 새로운 세계에는 문제와 어려움이 존재하고 방해자도 등장하지만 조력자나 인도자가 등장해서 주인공이 문제를 지나가고 그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루』
킴 투이 저 / 윤진 역 | 문학과지성사
소설 『루』의 응우옌 안띤은 베트남 전쟁을 피해 열 살 때 보트 피플이 되어 생과 사를 넘나드는 여정을 통과하게 됩니다. 말레이시아 수용소의 환경은 열악하고 정착지인 캐나다 퀘백은 낯섭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생이라는 싸움에서는 슬퍼하면 진다”는 베트남 속담을 붙잡아요. 많은 디아스포라 문학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소외와 정체성의 혼란, 소통의 어려움을 다루는데 주력한다면 『루』는 주인공이 이국의 도시에서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시간을 지나는 동안 “어떤 말은 표현되지 않음으로써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성장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응우옌 안띤은 이 여정 속에서 너그러운 선생님과 천사 같은 친구 조안 같은 조력자를 만나 나이를 먹고 키가 크는 실제적 성장도 이루지만 고통을 다르게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선을 갖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성장은 문제의 상황을 지난 모두가 획득하게 되는 것이 아니지요. 갈등이 벌어지는 상황과 그 속의 자신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사람만이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 / 안인희 역 | 문학동네
성장소설의 흥미로운 점은 소설 속 주인공이 방해자나 갈등 상황에서 벗어난 뒤에 조력자와도 결별하게 된다는 것이에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통해 크로머라는 악, 문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자신이 깨고 나가야할 새로운 세계의 문이 자기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누가 도와줄 수 없고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그 안에 그대로 머물고 싶던 평화를 위협했다”고 느끼고 “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나 자신의 일이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소설의 뒷부분에 유럽의 정신과 시대의 징표에 대해 언급하며 데미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은 한 번도 자신을 안 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유년의 세계를 지나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며 몸과 마음이 자라는 것만이 성장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어떤 문제나 갈등을 겪지만 그것을 지나가는 동안에는 그저 덤불을 헤치며 나가는데만 주력하느라 세계와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상황에 매몰되고 말지요. 그래서 성장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그것을 통해 성장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깊은 고찰이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나가버리게 되고요.
“진정한 연대는 개개인들이 서로를 앎으로써 새롭게 생성될 테고……”
데미안의 이 말을 들여다보면 성장을 통해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뒤 우리는 타인을 돌아보며 그도 알아가게 되고 거기에서 연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너는 어쩌면 다시 한 번 나를 필요로 할 거야.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이전과 다른 세계로 이동한 뒤에도 인생에는 또 다른 크로머가 나타나고 우리는 인도자를 기다리게 되지요. 그러나 데미안은 싱클레어 안에 데미안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 안의 데미안을 발견하는 것, 싱클레어가 곧 데미안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어른이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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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