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작가의 책장
은유 작가가 추천한 책 제목을 오래 곱씹어 본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과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글 : 은유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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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 

마쓰모토 도시히코 저 / 김영현 역 | 다다서재 

 

제목을 여러 번 읽었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게 기쁨이나 자산이 아니고 고통이라니. 그럴 수가 있나. 그런 사람도 있다. 일본의 약물 의존증 권위자인 저자가 자해, 자살, 약물 의존증에 관한 25년 임상 경험을 들려준다. 사람에게 의존하지 못하는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고통을 택한다는 것. 사람 공부 시켜주는 책이다. 읽고 나니 제목의 숨은 뜻이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연결. 



 

 <봄밤> | 영화

강미자 감독


권여선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술에 약간 중독돼 있다며 말했다. “평생 이 정도의 위험은 감수하며 살고 싶습니다. 위험은 언제나 의미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의 단편 ‘봄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그 증거다. 술은 있는데 말이 없다. 폭력이 없고 소멸이 있다. 서사가 없어도 의미가 남는다. 그저 함께 있음으로 완성되는 현존의 에로스. 죽음의 의지가 생에의 의지가 되는 잔잔한 기적.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제임스 퍼거슨 저 / 이동구 역 | 여문책

 

나 이제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구나. 오십 세를 지나며 든 생각이다. 생의 전반기가 세상으로부터 얻어가는 과정이라면 후반기는 세상에다가 돌려놓는 과정이다. 그게 순리라고 좋은 책들은 말한다. 근데 어떻게 누구와 무엇을 나눌지는 잘 배우지 못했다. 투자와 축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집어 든 책이다. 부제가 분배에 관한 인류학적 사유. ‘누가 무엇을 왜 가져야 하는가?’ 답을 얻지 못해도 의문을 품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질문을 던진다. 


 

 

<3학년 2학기> | 영화 

이란희 감독


수능을 치지 않는 고3 학생의 2학기는 어떻게 채워질까. 특성화고에 다니는 주인공은 현장실습을 나간다. 어색한 작업복을 입고 쇠를 자르고 용접을 배운다. 이 영화는 소외된 현장실습생 서사에 갇히지 않는다. 학생의 시간에서 노동자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생의 이행기 서사다. 한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존재의 위태로움과 강인함을 실감 나게 담아낸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자기 뜻과 주변 상황을 세심히 살펴 욕망을 조율하고 처신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인간사 보편적 삶의 풍경을 담아내면서도 지금 여기의 문제를 놓치지 않는 수작이다. 

 

 


『기억의 유령』

W. G. 제발트 저 / 린 새런 슈워츠 편 / 공진호 역 | 아티초크

 

기억, 망명, 죽음에 대해 쓰는 제발트는 늘 궁금한 작가였다. 몇 권의 책을 집었으나 완독에 실패했다. 제주도 종달리에 있는 ‘소심한 책방’에서 이 책을 만났다. 제발트의 인터뷰와 평론글이 실린 선집이다. 밀도 높은 글과 대화를 보는 것이 좋아서 평론집과 인터뷰집을 선호하는 나는 주저 없이 골랐다.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흡수"하여 세상에 토해내는 한 작가의 세계관과 문학적 태도가 심도 있게 펼쳐진다. 제발트로 들어가는 너른 입구가 되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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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

<마쓰모토 도시히코> 저/<김영현> 역

출판사 | 다다서재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제임스 퍼거슨> 저/<이동구> 역/<조문영> 감수

출판사 | 여문책

기억의 유령

<W. G. 제발트> 저/<린 섀런 슈워츠> 편/<공진호> 역

출판사 | 아티초크(Artichoke Publishing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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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르포 작가 『글쓰기의 최전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있지만 없는 아이들』, 『해방의 밤』, 『아무튼, 인터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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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G. 제발트

오늘날 세계적으로 가장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독일 작가 중 한 사람이다. 1944년 5월 18일 독일 남부 알고이 지역의 베르타흐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와 스위스 프리부르에서 독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1966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곳에서 어학을 가르쳤다. 1970년부터 노리치의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문예학을 가르치는 한편, 1973년 알프레트 되블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오스트리아문학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한 뒤, 1988년 이스트앵글리아 대학 독일문학 교수로 임용되었고 이듬해 영국문학번역센터를 창립했다. 첫 산문시집 『자연을 따라. 기초시』(1988)를 출간한 뒤, 첫 장편소설 『현기증. 감정들』(1990)을 발표했다. 『현기증. 감정들』은 스탕달과 카프카에 화자 자신을 겹쳐넣고, 단테와 발저, 그릴파르처 등 이미 죽은 이들과 마주하는 환영에 사로잡혀 흘려다니는 일종의 여행 문학이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제발트의 섬세하고 농밀한 언어는 경이롭고 독창적인 문학의 출현을 알리는 첫 신호였다. 뒤이어 『이민자들』(1992), 『토성의 고리』(1995) 등을 발표하며, 1990년대 후반 “오늘날에도 위대한 문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수전 손택의 찬사와 함께 영어권 독자들에게 먼저 주목을 받았다. 한편 문학연구가로서 『불행의 기술』(1985), 『급진적 무대』(1988), 『섬뜩한 고향』(1991), 『공중전과 문학』(1999)을 발표했다. 1999년 『공중전과 문학』으로 문학연구가이자 비평가로서의 면모를 발휘하며 독일 사회의 민감한 반응과 거센 반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2001년 『아우스터리츠』를 발표해 다시 한번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나, 그해 12월 노리치 근처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번 거론된 바 있으며, 베를린 문학상, 북독일 문학상, 하인리히 뵐 문학상,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하인리히 하이네 문학상, 요제프 브라이트바흐 문학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사후에 브레멘 문학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등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