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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미 저자와 나만의 ‘사관’을 찾다

역사영화,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 교육 김정미 저자의 『한국사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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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한국사 영화관』을 쓴 김정미 저자가 영화로 보는 한국사를 이야기했다. 이번 행사는 제 10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 ‘릴레이 강연회’ 중 하나로 마련되었다


〈관상〉, 〈왕의 남자〉, 〈변호인〉 등 한국 역사영화의 인기가 거세다. 최근에는 이순신의 임란 해전을 다룬 <명량>이 1600만 관객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화제가 되는 것은 흥행 성적뿐만 아니다. 역사영화는 역사를 ‘상상’을 통해 드러낸다는 점에서 논쟁을 낳기도 한다. 역사영화를 볼 때, 역사 지식과 함께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면서 역사콘텐츠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대학 강의도 하고 있는 김정미 저자는 역사영화가 역사교육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2000년대 이후 개봉한 한국 역사영화 중 역사적으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20편에 대한 일종의 주석인 『한국사 영화관』은 이러한 믿음에서 나왔다. 10월 5일, ‘영화로 보는 한국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 역시 한국 역사영화를 통한 역사교육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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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영화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 교육


한국 역사영화의 주된 배경은 조선시대다. 김정미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대중이 조선에 대한 학습이 많이 되어 있다는 점, 조선 시대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까이 있지도 않아 평가나 해석이 자유로운 시대라는 점을 들었다.


“조선시대는 비교적 평가나 해석이 자유로운 시대입니다. 삼국시대처럼 너무 먼 과거도 아니고, 그렇다고 근현대처럼 너무 가까운 시기도 아니기 때문이죠. 역사영화는 ‘영화’이기 때문에 모든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드러낼 수는 없고, 어느 정도 변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역사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의 분위기 자체를 익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임진왜란 직전의 당파싸움과 반란 등의 사회상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 <명량>은 배가 정말 13척이었는가 등 논쟁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영화를 통해 임진왜란의 분위기, 그 당시 배의 형태 등을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김정미 저자는 조선후기를 다룬 영화 중 특히 <광해, 왕이 된 남자><최종병기 활>에 주목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역사학적 관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그전까지 한국영화는 조선후기를 다룰 때 광해시기를 잘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 집권 당시의 대동법 등 그 시기의 사회상을 잘 드러냈습니다. 광해라는 인물에 대한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90년대 이후부터 쭉 광해는 폭군이 아니라는 연구성과가 꾸준히 나왔는데, 대중에게는 여전히 광해가 연산군에 비견되는 폭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죠. 이 영화를 통해 ‘실제로 광해는 폭군이 아니었다’는 학계 연구가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최종병기 활>은 병자호란을 역적 집안의 딸과 아들을 주인공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7년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에 비해 병자호란은 1636년 12월에 일어나 이듬해 1월에 종전된 속전속결의 전쟁입니다. 아주 짧은 기간 내 전 국토를 빼앗기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던 사건이죠.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유는 정권의 패착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외교책을 잘못 쓰는 바람에 온 백성이 고통 받게 된 것이죠.” 


유독 영?정조 시대를 다룬 영화가 많은 이유 


조선 후기 영화에는 <역린>, <조선명탐정>,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음란서생>, <미인도> 등 정조 시대를 다룬 것이 특히 많다. 정조는 90년대 이후부터 학계에서 조명 받기 시작했다.


“90년대 이전에는 조선 후기가 흔히 ‘몰락을 거듭하다 결국 식민화된’ 시대로 평가절하되고는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일제시대 식민사관의 잔재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식민사관은 쉽게 말하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렇게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일본이 지배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식민사관의 영향으로, 우리는 해방 이후에도 조선 후기를 ‘당파싸움’과 ‘민중의 몰락’으로만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부터는, 조선후기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영?정조 연구를 통해 조선후기가 문화적으로 융성하였고, 자생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진 시대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조를 다룬 많은 영화는 바로 이러한 학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흔히 정조는 세종과 함께 조선의 훌륭한 지도자로 손 꼽힌다. 하지만 <미인도>는 정조의 문체반정으로 희생되어야 했던 예술혼에 주목했다.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는 정조지만, 다소 교조적인 면도 있었습니다. 그는 소설이나 시가 쓰여지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 교과서적인 글만 좋아했던 후학군주였습니다.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나 예쁜 여자 그림에는 관심이 없고 도덕적인 얘기만 좋아하였기 때문에, 패관소설 쓰는 사람을 모두 잡아들이고 책도 불태웠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정조의 ‘문체반정’입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희생되어야 했던 예술혼에 대해 주목한 영화가 바로 <미인도>입니다.”


인간의 다양한 면모가 드러나는 일제강점기


조선후기에 이어 일제강점기를 다룬 한국 영화로는 <라듸오데이즈>, <모던보이>, <기담>, <마이웨이>등이 있다. 일제강점기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다룰 수 있는 시기지만, 그만큼 영화로 다루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일제강점기 영화는 처음에는 세트장 제작이 어려워서 잘 찍지 못했습니다. 조선 시대는 기존의 민속촌 등을 활용할 수 있는데, 일제강점기 세트장은 새로 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죠. 또한 일제강점기는 참 다루기 힘들고 괴로운 시기입니다. 항상 ‘나라 잃은 슬픔’이 따라다니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기 인간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일제강점기는 영화계에서 회피해온 시기였는데, 국문학계의 신여성, 모던보이에 대한 연구 성과가 축적이 되면서 최근 많은 영화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찍는 분들이 일제강점기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많이 하신 것 같은데, 이 부분이 아직까지는 관객에게 잘 전달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관상>이 그려내지 못한 수양대군의 속내


2013년 천만에 육박하는 흥행 기록은 세운 <관상>은 조선 전기 세조의 왕위찬탈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문종은 그의 사랑을 받지 못해 몸부림치다 성리학적 여성관에 위배된다 하여 쫓겨난 세자빈이 두 명이나 있을 정도로 여성에 무관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단종을 낳은 현덕왕후가 문종이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사망하였음에도, 문종은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다가 죽습니다. 결국 단종은 자신을 보위할 외척 세력도 없이 열두 살의 나이에 왕이 됩니다.”


<관상>에서 수양대군은 이리의 상, 김종서는 호랑이의 상으로 묘사된다. 영화에 따르면 수양대군은 피도 눈물도없는 악인, 김종서는 충실한 신하이자 선한 인물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만일 그때 수양대군이 왕권을 차지하지 않았다면 김종서가 왕위를 찬탈하고 이씨가 아닌 김씨의 나라가 들어섰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종서는 4군 6진을 개척한 사람으로 오랫동안 북관에서 활동한 탓에 사병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수양대군 입장에서 볼 때 김종서는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죠. 수양대군의 할아버지인 이성계가 딱 그렇게 조선을 세웠습니다. 우왕과 창왕에게 잘해주다가 제거하고 스스로 왕이 된 사람이 바로 태조 이성계였던거죠. 결국 수양대군이 왕위 찬탈을 하지만, 그가 김종서를 처리한 배경에는 이러한 불안이 존재했다는 것은 영화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입니다.”


『한국사 영화관』은 악과 선이 분명히 갈리는 영화와 달리 입체적이고 복잡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집현전 학자들이 김종서의 제거를 문제 삼거나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 등은 그 당시 김종서의 행보에 대한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킬 때 내걸었던 명분이 바로 “왕을 조정하며 모반을 일으키려 한 김종서를 죽인다”였다. 애초 계유정난의 명분에 단종 폐위는 없었다. 물론 찬탈의 수순으로 계유정난을 일으켰지만, 수양대군을 따라 김종서의 제거를 순순히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김종서의 권력이 왕권을 넘어설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컸다는 증거다. 김종서 제거 당시 집현전 학자들은 이를 문제 삼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집현전 학사의 대명사인 정인지 등은 정난의 공을 인정받기까지 했다.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육신 등은 형식상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된 다음,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죽은 것이지 계유정난 당시 수양대군을 비판하지는 않았다.-『한국사 영화관』,中


정조의 ‘역린’은 사도세자의 죽음


현빈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된 <역린>은 정조 시대 ‘정유역변’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으로 왕의 분노를 의미한다.


“영화의 제목인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합니다. 용이라는 짐승은 잘 길들이면 올라탈 수도 있지만, 그의 목 아래에 있는 직경 한 자쯤 되는 역린, 즉 다른 비늘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 있는 비늘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린은 왕의 분노를 살 수 있는 문제, 왕의 비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정조에게 역린은 사도세자의 죽음이었습니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이끈 노론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의 왕위 계승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영조가 정조의 대리청정을 언급하자 정조의 외종조부 홍인한이 "동궁께서는 노론과 소론을 알 필요가 없으며,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조정의 일에 이르러서는 더욱 알 필요가 없습니다"라며 이를 반대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정조가 즉위식 이후 했던 첫 마디가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론 세력은 정조의 즉위 이후에도 끊임없이 그를 암살하려고 했습니다. 정조 즉위 1년인 1777년 일어난 정유역변 역시 이러한 암살 시도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날 정조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고이자 침전인 존현각에서 책을 읽다가 누군가가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조사해보니 지붕에는 깨진 기와가 있었고, 이를 통해 자객이 침투했던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때는 자객을 잡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임금을 암살하기 위해 서쪽 담장을 넘던 범인을 잡게 되면서 암살에 연루된 인물은 모두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역사영화를 통해 자신의 ‘사관’을 키우자


마지막으로 김정미 저자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다섯 편의 영화 <화려한 휴가>, <변호인>, <슈퍼스타 감사용>, <써니>, <살인의 추억>을 예고편 형식으로 짧게 보여주며, 역사영화를 통한 역사관 형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다섯 편의 영화는 80년대에 공존했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광주가 나오고,사람들이 고문을 당합니다. 같은 시대에 프로야구가 생기고, 여자들이 연쇄적으로 죽어가고, 써니 노래를 들으며 학창시절을 보낸 7공주가 있습니다. 이 영화들을 통해 ‘80년대의 사회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감독은 80년대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감독의 생각에 내가 동의하는지 아니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나만의 관점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자신의 ‘사관’을 키우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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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영화관김정미 저 | 메멘토
이 책은 668년 고구려 멸망 과정을 그린 〈평양성〉에서 1981년 부림사건을 다룬 〈변호인〉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20편을 중심으로 한국사를 읽어낸 역사교양서이다. 영화적 서사와 역사적 진실 사이의 간극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구려시대부터 한국 근현대까지의 역사를 압축적으로나마 한 흐름으로 살펴볼 수 있게 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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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노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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