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시피 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전할 말이 없기 때문일 리는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대화한 과학자들 중 다수는 놀라운 삶의 여정을 되돌아본다. 그들은 특이한 관심을 가졌으며 전공 분야를 훨씬 벗어난 곳까지 생각을 펼친다. 한 마디로 인간으로서 그들은 우리가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잘 아는 배우나 축구선수, 정치인 못지않게 흥미롭다.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 하면 천재적이지만 아쉽게도 생활에는 무능력해서 세상을 향해 혀를 쑥 내밀기나 하는 아인슈타인을 떠올린다면, 그 이유는 한편으로 과학자 들 자신에게 있다. 과학자는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부정하려 한다. 과학은 객관적이고자 한다. 인간은 멀찌감치 떨어져야 한다는 식이다. 과학 논문에서 ‘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또한 과학자는 당연히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정을 갈구하므로 자신을 둘러싼 신화에 동조한다. 과학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한껏 펼치는 것을 포기하더라도, 최소한 속세를 벗어난 지식인이라는 자부심과 존중을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대중이 과학자의 생각과 느낌을 잘 모르는 것에는 더 깊은 두 번째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는 과학을 마치 대롱을 통해 보듯이 편협한 시선으로 본다. 과학을 경제적 부의 원천으로 보는 것은 정당하다. 실제로 과학은 우리에게 효과적인 의약 품, 컴퓨터, 온갖 안락을 제공하지 않았는가. 보아 하니 과학자가 연구실에서 하는 일은 비록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유용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 일은 우리를 정말로 움직이는 것, 우리 삶의 실존적 질문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과학이 우리 문화의 일부임을 간과하는 것이다. 책, 음악, 영화와 마찬가지로 과학은 문화의 한부분이다. 애초부터 자연과학은 우리 존재의 수수께끼를 다뤄왔다. 그리고 최근 들어 과학은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명확하게 알려주는 많은 통찰에 도달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나 는 우리에게 그런 통찰을 선사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 책은 내가(2편의 예외를 빼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유럽, 미국, 인도의 과학자들과 나눈 대화를 묶은 것이다. 축약된 대화록은 이미 주간지 ≪차이트 마가진ZEIT Magazine≫에 실린 바 있다. 대화 상대들은 누구나 자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릴 뿐 아니라 자신의 연구를 더 큰 맥락 안에 놓는 솜씨가 돋보이는 인물이다. 시인으로도 유명한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세계가 맞을 운명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내기를 거는 우주론자, 그리고 생리학자이면서 파푸아뉴기니의 원시림에서 문명의 기원을 연구하는 인물도 등장한다. 나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최대한 다양한 관심을 털어놓게 하려 애썼다. 지리학자나 인류학자와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대화 상대는 아무 거리낌 없이 주관적으로 선정했다. 내가 보기에 그의 업적이나 성품이 특별해서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대화를 제안했다.
이 책의 등장인물 중 백인 남성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여성은 달랑 2명,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출신이 아닌 사람도 단 2명뿐이다. 그러나 이 비율은 우리 시대의 실상이다. 나는, 일생 동안 많은 업적을 이루고 보통 인생 후반에나 도달할 법한 폭넓은 통찰을 지닌 과학자 들을 물색했다. 그 정도 나이의 과학자 중에 여성이나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출신은 여전히 드물다. 다행히 지금 연구실에서 성장하는 젊은 과학자들은 다양하므로, 20년 뒤에 내가 만날 대화 상대의 구성비는 사뭇 다를 것이다.
거의 모든 대화 상대는 내가 처음 만난 사람이다. 대개 나는 대화 상대를 이틀에 걸쳐 2번 만났고, 장소는 항상 대화 상대가 정했다. 대개의 경우 연구실에서 대화했고, 때로는 오랫동안 산책하면서, 또는 식당, 박물관, 대화 상대의 여름 별장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과학자들에게 미리 요구한 것은 시간뿐이었다. 우리의 대화는 대체로 5시간 동안 진행되었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대목을 뽑아서 이 책에 수록했다.
내가 설정한 목표는 2가지였고 간단했다. 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알고자 했다. 사실 내가 보기에 이 2가지는 단일한 질문을 둘로 나눠 표현한 것일 뿐이다. 나는 과학자가 일을 할 때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도외시할 수 있다 는 허구를 믿어본 적이 없다. 과학자의 이력과 (또한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데) 문화적 뿌리가 그의 관심사를 규정한다는 점은 거의 자명하지 싶다. 그러나 나의 접근 방식은 대다수의 대화 상대에게 대단히 낯선 것이었다. 그 점을 감안할 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형성한 다 음에 많은 대화 상대가 나의 사적인 질문 을 받아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여성 신경과학자 한나 모니어는 “개인으로서 나는 과학에서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는데, 혹시 과학자 자신도 이런 분위기에 마지못해 짓눌려 있었던 것일까? 나와 대화하느라 애를 먹은 상대도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학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며 끊임없이 학생들 앞에서나 전문 학회에서 강의하는 지식인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 을 받자 갑자기 말더듬이가 되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약간의 자기 이야기를 확실히 즐겼다. 다만 내가 그들을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끌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은 찜찜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냈다. 깊이 숙고하지 않은 문장으로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깊었다.
다름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들과의 대화가 가장 허심탄회하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은 틀림없이 우연이 아니다. 특히 나는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와의 만남을 앞두고 몹시 긴장했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내가 과학자로 활동한 20년 동안 수많은 논문과 책으로 내 곁에 있었던 전설적인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내 세대의 물리학자 중에 와인버그를 최고의 권위자로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텍사스 주 오스틴의 대학 캠퍼스에서 빌린 자전거를 타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마냥 헤매며 와인버그의 연구소를 몇 번이나 지나친 끝에 약 속 시간보다 늦게 땀을 흘리며 그와 마주 앉았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내가 몸 둘 바를 모르는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일찍부터 큰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가 이런 말을 수천 번쯤 들었으려니 생각하며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때 와인버그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요? 참 기쁜 일이네요.” 그 순간 나를 옥죄던 사슬이 풀렸다. 나는 와인버그만큼 거들먹거리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자신의 오류, 태만함, 의심을 와인버그만큼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도 거의 못 봤다.
모든 것을 성취한 사람은 누구 앞에서도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내가 만난 과학자 들은 나로 하여금 절로 정중한 태도를 취하게 했다. 그러나 나의 존경심을 자아낸 것은, 흔히 이야기하는 일류 과학자의 탁월한 지적 능력이 아니었다. 물론 대단한 지능의 소유자들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사고 능력을 지녔다고 짐작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화학자 로알드 호프만은 대화 중에 “노벨상 수상자도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도 노벨상을 받았다. 나는 이렇게 덧붙이겠다. 그런데도 그들이 남들은 할 수 없는 고공비행을 한다면, 그것은 탁월한 뇌를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라 뇌를 더 잘 훈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능이 애초부터 높지 않았다. 다만 지금껏 길을 걸어오면서 지능을 발전시켰다. 그들 각각은 세계라는 모자이크를 이루는 조각 몇 개를 알아낸다는 것을 삶의 목표로 정했다. 모든 대화에서 번득여 나를 경탄시키고 거듭 감동시킨 것은 바로 이 헌신의 능력이었다. 헌신은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큰 대가를 요구한다. 하지만 첨단 연구를 위해 그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에 대해서는 여성 과학자 2명만 털어놓는다. 남성들은 이 주제를 외면하고 여성들만 언급했다는 사실 역시 내가 보기에 우연이 아니지 싶다.
미디어는 늘 성공한 연구 소식만 전하기 때문에,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실패와 실망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지 아는 일반인은 극히 드물다. 자연의 수수께끼는 미로와 같다. 모든 틀린 길 각각을 최소한 한 번씩 거치고 나야 비로소 해답이 보인다. 심지어 운이 좋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옳은 길에 접어들더라도 사소한 문제에 시달리며 몇 년, 때로는 몇십 년을 보낸 다음에야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과학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지능이 아니라 끈기다. 고집에 가까운 끈기, 후퇴와 자기회의에 굴하지 않는, 특히 경쟁에 아랑곳하지 않는 끈기 말이다.
유전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자신의 동료들을 “잡아먹느냐, 아니면 잡아먹히느냐, 둘 중 하나다”라는 원리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묘사했다. 왜냐하면 생물학자 들은 다윈주의자여서 무자비한 경쟁과 특히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최초 발견의 명예를 둘러싼 싸움은 다른 분야에서도 치열하다. 나는 일부 사람들이 악한 마법사라고 비난하는 크레이그 벤터의 솔직함을 높게 평가한다. 그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고 때로는 협력을 거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과학으로 이끌고 과학에 머물게 할까? 과학자가 천재적인 뇌를 타고나는 것이 아님과 마찬가지로 과학을 소명으로 타고나는 사람도 없다. 오히려 거의 모든 대화 상대는 어떤 ‘우연’이 그들을 현재의 관심분야로 이끌고 결국 성공을 가져다 주었는지 말한다. 세라 허디는 작가로서 첫 번째 장편소설을 마야인에 대해서 쓸 요량으로 자료를 수집하다가 인류학을 발견하고 인류학자가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경제학자로 손꼽히는 에른스트 페르는 원래 성직자가 될 생각이었다. 라가벤드라 가닥카가 인도에서 살았던 기숙사에 말벌이 들끓어 그의 관심을 끌지 않았다면, 그는 일류 행동과학자로 우뚝 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카리스마 있는 스승을 만나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이력에 비춰보면, 인생을 계획할 수 있다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희망임이 드러난다. 훗날의 최고 과학자들을 이끈 것은 긴 안목의 생각이 아니라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자신감이었다.
이 용기를 그들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용기는 신에게 도전하겠다는 뻔뻔함이 아니라 평생 기꺼이 앎을 찾아 헤매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내가 만난 과학자 들은 고유한 개성과 함께 이 마음가짐을 드러냈다. 불확실성은 최소한 앎만큼 강하지만, 특별한 자아는 그런 불확실성을 누리는 호사를 감당할 수 있다. 자만심 너머, 획기적인 연구 결과로 자신의 이름을 불멸의 반열에 올려놓겠다는 바람 너머에서 어떤 추진력이 그들 모두를 움직이는 듯했다. 그 추진력은 길 위에 있는 기쁨, 사람은 끝내 안주하지 못함을 정확히 아는 기쁨인 듯했다.
무엇이 과학자를 움직이느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답 하나는 가장 오래된 대답이기도 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서 유래한 것인데, 그는 근대 자연과학의 아버지로서 이 책에 역사적 관점을 제공한다. 레오나르도가 보기에 앎의 욕구는 자연에 대한 사랑, 따라서 삶에 대한 사랑의 한 형태다. “사랑은 앎에서 싹트며 앎이 확실해질수록 더 깊어진다.” 우리가 무언가를 제대로 이해하면, 우리는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된다. 또한 우리는 대상을 정확히 관찰함을 통해 결국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므로, 레오나르도에게는 말 그대로 모든 대상이 집중적인 연구 가치가 있었다. 냇물 속 자갈을 휘감아 도는 물살도 그랬고, 천체의 운동도 그랬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미지의 대륙에 발을 들인 개척자였다. 그는 개별 현상 각각을 따로 탐구했다. 그 현상의 상호관계는 기껏해야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 후 500년 넘게 자연을 탐구해 오면서 과학자 들은 수많은 연관성을 보는 법을 배웠다. 예컨대 과학자 들은 자갈을 휘감아 도는 물살을 지배하는 법칙이 별의 형성도 지배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작은 앎 조각이 더 큰 앎의 단서가 된다. 판자벽에 난 틈새가 바깥 풍경 전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만난 과학자들은 그런 경험을 “갑자기 모든 것이 맞아 들어가 는 경이로운 순간”으로 거의 똑같이 묘사했다. 아주 시시한 듯한 문제가 우리를 훨씬 더 큰 수수께끼로 이끄는 경우가 흔히 있다. 또 때로는 그런 문제가 그 수수께끼를 풀 열쇠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여기 모아놓은 대화 는 작은 것 속에 들어 있는 큰 질문에 관한 이야기다.
슈테판 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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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슈테판 클라인 저/전대호 역 | 청어람미디어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은 독일 최고의 과학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이 미국, 유럽, 인도 등에서 활약하는, 이 시대 최고의 과학자 13인과 수수께끼 같은 우리 존재와 삶 그리고 자연과학에 관해 나눈 대화를 묶었다. 자기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삶에 관한 통찰에 도달한 과학자들, 자신의 연구를 더 큰 맥락 안에 놓는 솜씨가 돋보이는 세계적인 과학자들을 만나, 과학과 삶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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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클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