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것은 이유가 있다
1년간 40여 개국 150여 곳의 시장을 방문했고, 오랜 시간 고객에게 사랑받고 있는 여러 시장과 상인들을 만났다. 세월의 광풍에도 살아남은 시장과 상인들에게는 자신만의 확고한 장사 철학이 있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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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세계에서 모르는 세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_클로드 베르나르

 

어느 날 공(空) 점포가 수두룩한 지하상가에 강의를 가게 되었다. 상가에 들어서는 순간 장사가 심각하게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고통이 그분들의 얼굴에 나타나 강의하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강의 중에 처음 입사했던 이랜드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곳에서 정말 행복하게 일했고,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이랜드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했던 2년간의 경험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랜드는 1980년 이대 앞 보세옷 가게로 시작해서 오늘날의 대기업이 된 회사다. 보세옷 가게에서 대기업이 되기까지의 남다른 경영 전략과 VMD(비주얼 머천다이징, Visual Merchandising & Design) 기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질문을 하셨다.


“나도 80년도에 옷 가게 시작했는데, 난 왜 다 망해 가는 상가에 있는 걸까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그저 상투적인 답변을 하고 말았다. “사장님도 열심히 하시면 잘될 거예요. 힘내세요.” 하지만 그런 영혼 없는 대답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알고 그분도 알고 있었다.

 

이랑주저자

이랑주 저자

 

당신은 어떤 나무꾼인가?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왜 그럴까? 전통시장 상인과 소상공인 분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신다. 하루에 12시간은 기본이고, 새벽에 나와 도매 장사를 하고 낮에 시장 한 귀퉁이에서 쪽잠을 잔 뒤 다시 오후 소매 장사까지 하신다. 하루에 14~16시간씩 누구보다도 열심히 30년간 일해 왔는데, 누구는 대기업 CEO가 되고 왜 그분은 망해 가는 상가에 있는 것일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이 벌고, 더 잘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철학자도 경영학자도 미래학자도 아닌 내가 한마디로 답을 내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VMD 컨설팅을 다니면서 만난 상인 분들의 생활 패턴을 곰곰이 살펴보니 문제가 보였다. 바로 열심히 일만 하는 게 문제였다. 그 안에서 열심히만 할 것이 아니라 가끔은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구경도 다녔어야 했다.

살아남은것들의비밀


두 명의 나무꾼이 있었다. 한 명은 하루 종일 나무를 베고 가끔은 야근도 하면서 열심히 하루에 14시간을 일했다. 다른 한 명은 하루에 8시간만 나무를 베고 일찍 퇴근했다. 20년 뒤 하루에 8시간 나무를 벤 사람과 하루에 14시간 나무를 벤 사람 중 누가 더 성공해 있을까? 단순 노동시간으로 따진다면 당연히 14시간씩 일한 사람이 더 부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년 뒤 더 성공한 것은 8시간만 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8시간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러 다녔다. 하루는 옆 마을에 있는 숲에 갔더니 전기톱을 가지고 나무를 베고 있었다. 다른 날은 조금 더 멀리 떨어진 숲에 가보았다. 그 숲에서는 나무를 가공해서 종이를 만드는 공장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는 마을로 돌아와 공장을 세워 갑부가 되었다.


8시간만 일하고도 성공한 기업가가 된 사람은 자신만의 숲에 갇히지 않고 더 넓은 숲을 보러 떠나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직접 모험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책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했다. 그는 시간 활용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일할 시간, 도끼를 갈 시간, 낯선 도끼를 찾아다닐 시간을 적절하게 잘 분배해서 인생 전체를 설계한 것이다.


그가 낯선 세상과 만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하루에 14시간씩 열심히 나무만 벴다. 평생 공장에서 나무 베는 근로자로 살았다. 20년 뒤 근육이 다 빠져 버린 팔뚝과 무딘 도끼날로는 젊을 때만큼 많은 나무를 벨 수 없었고, 공장을 세울 자본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안목도 없었다. 그는 젊은시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고, 낯선 세상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모험을 불필요한 행동이라 치부해 버렸다. 그 결과 20년 뒤 더 큰 두려움과 맞닥뜨린 것이다.

 

185쪽

 

아는 세상에서 모르는 세상으로


나 역시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나무만 베는 나무꾼’으로 살았다. 2012년은 내가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회사를 다니며 야간 대학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왔다. 매 순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다들 이렇게 사니까 ‘바쁜 게 좋은 거다, 잘하는 거다’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하지만 두려웠다. 이게 언제까지 갈까? 앞으로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나도 20년 동안 내 안에 갇혀서 이 생각이, 이 방법이 맞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지하상가의 상인 분이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똑같이 시작했는데 누구는 다 망해 가는 지하상가에 남았고 누군가는 대기업 회장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변화를, 모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닐까? 낯선 것과 조우하는 시간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 아주머니가 던진 인생의 화두는 내 몸 전체를 괴롭혔다. 답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졌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잡념들로 잠 못 드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한 가지는 지금까지 해왔던 익숙했던 것들과 이별을 고하고 낯선 곳으로 나 자신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열망은 나를 더욱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란 ‘내가 허용한 제한적인 경험의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불편했지만 이러한 생각은 나를 더욱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강력한 힘이 되었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아는 세계에서 모르는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나는 잠시 멈췄다. 운영해 오던 회사의 문을 닫았고, 엉뚱하고 대책 없는 마누라 덕분에 남편도 잘 다니던 S그룹에 사표를 던졌다. 그런 우리를 보고 모두들 미쳤다고 했다.


“갔다 와서 뭐 먹고 살려고 그래?”
“이렇게 안정적인데 그냥 그대로 살지.”
“여행 다녀온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 나이에 뭘 다시 또 시작하려고 해, 여행하다가 입 돌아가!”


하지만 스티브 잡스 형님의 명언이 우리를 응원해 주었다.

 

미쳐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

 

모험을 시도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 드라마도 없고 가슴 뛸 일도 없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도 경계에 서 있으면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된다. 내 두 발로 경계를 넘어야만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일단 뒷수습 고민은 접어 두고 세계를 향해 들이대기로 했다. 한 달간 짧게 계획을 세우고 2012년 3월, 남편과 나는 1년간의 세계 일주를 떠났다. 다른 숲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른 사람은 뭐해 먹고 사는지 보기 위해 숲 밖으로 나선 것이다.

 

315쪽

 

 

살아남은 전통시장의 비밀을 찾아 떠나다


여행의 주제는 세계의 전통시장 탐방이었다. 한국의 전통시장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살아나는 시장보다 사라져 가는 시장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 8년 동안 나는 전국 방방곡곡의 전통시장을 돌아다니며 많은 상인들을 만나고 여러 점포에도 가보았다. 한국의 전통시장은 이렇게 힘든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데, 해외 다른 나라의 시장은 어떤지 궁금했다. 한 시장이 백 년을 유지하기도 힘든데, 대체 어떻게 수백 년의 세월을 이기고 현재까지 살아남아 고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지 그 비법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해외의 다양한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가게를 둘러보기로 결심했고, 마흔이 넘은 나이에 배낭 하나 메고 겁도 없이 세계 속으로 뛰어들었다.


1년간 40여 개국 150여 곳의 시장을 방문했고, 오랜 시간 고객에게 사랑받고 있는 여러 시장과 상인들을 만났다. 세월의 광풍에도 살아남은 시장과 상인들에게는 자신만의 확고한 장사 철학이 있었다. 1년간의 세계 일주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몸소 체험하게 만들었다. 세르비아에서는 권총 강도를 만나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아마존에서는 비행기가 악천후로 불시착하는 아찔함을 경험했다. 벨기에와 브라질에서는 소매치기를 당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두 발로 직접 전 세계의 전통시장을 다니며 경험한 여러 사례들과 그 속에서 배운 그들의 장사 철학이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전통시장 상인과 소상공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14년 봄
이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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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이랑주 저 | 샘터
이랑주 대표는 국내 1호 VMD(Visual Merchandis) 박사이다. 그간 그는 전통시장 제품진열 전문가로, 전국 방방곡곡의 전통시장을 다니며 수많은 상인들을 만나고 여러 점포를 찾았다. 진열 교육도 하고 컨설팅도 해주었다. 그러던 2012년 3월 1년간의 세계 일주를 떠났다. 40여 개 나라 150여 곳의 시장을 방문했고, 오랜 시간 고객에게 사랑받고 있는 여러 시장과 상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직접 두 발로 세계의 전통시장을 다니며 경험한 여러 사례들과 그들에게 배운 장사 철학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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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주 #전통시장 #살아남은 것들의 비밀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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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ppo

2014.08.29

좋은 책으로 다가옵니다. 후속작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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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아

2014.05.09

스티브 잡스의 말, 미쳐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그래 살아남으려면 뭔가에 미쳐야 한다. 미쳐야만 미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비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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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jinsim

2014.04.26

전통 시장에서 상인들에게 몇번 속은 적이 있어서 그리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진 않아요. 사리에만 밝은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그 중에 정직한 상인도 드물게 있긴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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