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 저 | 이음
역사를 돌아보는 이야기를 하거나 만들어진 지 시간이 좀 오래 지난 시설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흔히 높은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가 무엇인가를 만들었다”는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남대문이나 동대문을 소개하면서 “건물 모습의 세세한 부분은 이후에 많이 수리되고 개조되기는 했지만 이 건물의 기본 틀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면서 만든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무척 많다. 비슷하게 어떤 다리나 건물을 가리키면서, “1970년대에 시장이었던 김 시장이 저 다리를 지었다”라고 말하거나, 어떤 공장이나 댐을 가리키면서 “무슨 대통령이 저것을 만들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말이야 바른말이지, 이성계가 설마 남대문이나 동대문을 만들었겠는가? 이성계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을 설계하는 기술 책임자도 아니었고 공사 감독자도 아니었다. 나는 남대문을 만들 때, 이성계는 돌 하나조차도 자기 힘으로 운반해 쌓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과연 “이성계가 남대문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게 옳은 일일까? 물론 어떤 시설이나 물건이 탄생할 때, 그러한 탄생을 지시하고 추진한 책임자의 공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을 서울에 두고 서울을 위한 성벽을 건설할 생각을 품지 않았다면 남대문, 동대문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책적으로 남대문, 동대문이 잘 건설되기 위한 지원을 해 준 공도 분명히 짚어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정책적 결단이 굉장한 일이라고 무척 높게 평가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전부라고 해서는 안 된다.
남대문이 지금 보기에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축물이라면, 분명히 남대문의 모습을 설계한 장인과 그 건물을 짓기 위해 노력한 기술인들의 공이 크다고 봐야 한다. 힘을 모아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의 공도 분명히 포함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는 이런 기술적인 공적, 실제 일을 한 사람들의 고생은 너무나 쉽게 잊히곤 했다. 남대문의 유려한 처마 곡선이나 이층 지붕 구조에 삼태극 무늬를 집어넣은 개성적인 설계가 탄생하는데 어떤 사람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까? 남대문 정도의 건물을 설계하고 건설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해 가며 전수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지금은 그 모든 기술인들의 이름 석 자조차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이것이 기술의 세세한 부분을 기록하고 돌아보고 공유하기를 등한시했던 과거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이런 실수는 알게 모르게 지금도 꽤 남아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어느 지방에 큰 공단이 건설되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치자. 그 도시가 성장하고 그 지방의 경기가 좋아지는 데도 공단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당국에서는 흔히 사람들 사이에 “그 새로 생긴 공단은 어느 시장 때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많이 퍼뜨리곤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나중에 정치 상황이 바뀌어 그 시장의 반대파들이 득세할 경우, 옛 시장을 공격하기 위해 이제는 역으로 “그 공단이 사실은 문제가 많았다”는 비판이 같이 유행하게 될 때가 있다. 심지어 어떻게든 그 공단의 문제점과 단점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그 공단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별로 안 되었다”, “잘못된 공단인 것 같다”라는 주장까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게 옳은 일일까? 잘 된 공단을 어느 정치인이나 세력가가 만들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일은 나쁘게 말하면 아부일 뿐이다. 좋게 말한다고 해도 일이 잘 되는 데 필요했던 한 가지 측면만을 지적한 언급이었다고 봐야 한다. 기술적인 성취는 정치인뿐 아니라, 항상 그 일의 성공을 위해 정말 노력하고 애쓴 현장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공단이나 공단을 건설하기 위해 현장에서 실제로 땀 흘리며 고생한 기술인과 노동자들의 모습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기술적인 성과조차도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 종종 엉뚱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런 일은 이중으로 꼬인 시선의 부작용이라고 본다.
그런 만큼, 높은 사람들에 대한 아부가 대단히 중요했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렇게 기술인과 노동자들이 평가를 받지 못했던 사례는 매우 흔하다. 한국의 금속활자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앞서 있는 유물이라 자랑할 만하다는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금속활자를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이 금속활자를 만들었는지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고려의 고려청자가 훌륭한 기술을 동원해서 만든 아름다운 문화재라는 이야기도 굉장히 유명하다. 그런데 고려 시대에 실제로 자기 손으로 청자를 잘 만들었던 사람의 이름을 하나라도 떠올릴 수 있는가? 고려청자의 푸르스름한 색깔이 아름답다고 격찬하는 글도 오래전부터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런 색깔을 만들기 위해서 무슨 약품을 어떻게 섞어서 어느 정도의 온도로 자기를 구워야 하는지 처음 개발했던 사람, 고생 끝에 그 지식을 알아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혹시 아는가?
그 잊힌 이름들을 찾아내고 그 사연을 돌아보는 것은 일단 그것이 정당한 평가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리고 나는 더 중요한 이유로 그런 사연들을 알아야만, 어떻게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고 어떤 방법으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점도 꼭 말해 보고 싶다. 뛰어난 공적을 남긴 기술인과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을 때 미래에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길 수 있도록 우리가 지금 무엇인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성계만 칭찬할 게 아니라, 남대문을 지은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만 앞으로 건축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우아한 건물을 완성할 수 있는 인력을 길러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인의 발명과 혁신』은 바로 그런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있는 책이다. 책의 방향은 비교적 알려진 편인 일화들 중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만한 이야기들을 두루두루 모아 놓은 쪽에 가깝다. 그러니까 잊힌 과학 기술인들의 삶에 대해 발굴해 세세하게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는 쪽이다. 특히 책에 실린 최무선, 정약용 등의 조선 시대 인물들에 대한 사연은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후 책에서 좀 더 무게를 싣고 있는 현대 한국 기술 발전에 관한 이야기들은 따라가며 읽다 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정리해 놓은 책이 결코 많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한국 경제가 이 정도까지 성장한 이유가 반도체나 자동차 수출이 잘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자동차 기술을 갖추는 데 어떤 과학자들과 연구원 누구누구가 고생했는지에 대해 어렴풋하게라도 아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
“누구누구 회장이 잘해서 그 회사가 그렇게 잘 된 거다” “어떤 회장이 대단한 인물이라 회사를 크게 키웠다” 정도의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많이 퍼져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지식은 역시 이성계가 남대문을 만들었다는 정도의 이야기다. 경영자들, 회장님들의 공도 분명 인정해 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이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는 데는 더욱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두꺼운 책도 아니고 어려운 책은 아니며, 내용 구성도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과학 기술인에서부터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같은 현재의 핵심 산업과 합판 산업, 근대 건축 초창기 시절 같은 지난 시절 큰 역할을 했던 굵직한 기술 분야를 같이 짚어 나가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더 교과서적인 구성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한 가지 관점으로 쏠려 있는 것을 경계한 대목도 눈에 뜨이고, 특정 인물을 무턱대고 찬양하고 높이는 것을 피하면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한 사실을 언급한 내용도 보인다. 그렇기에 이 정도는 다들 한 번 알고 지나가면 좋을 만한 상식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앞으로 한국의 다양한 산업 분야 각각에 대해 더 세밀한 경험을 파고들어 기록해 두고 알리는 책이 많이 나오면 좋을 거라는 기대를 해 본다. 요즘은 대한민국의 현대 과학 기술 발전 급성장기에 활약하셨던 분들이 서서히 노년에 접어 들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는 시기다. 더 늦기 전에 현장에서 일하신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깊은 교훈으로 기록되어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흔히 과학 문화를 고취하는 사업을 한번 해보자고 하면, 아인슈타인이나 리처드 파인만 같은 외국의 유명한 과학자들을 멋있게 전시물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과학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비슷하게 흉내 내 제작하는 일만 먼저 떠올리는 일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그것도 좋기는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 지금과 같은 기술 사회로 진입하기까지 누가 어떤 일들을 했는지, 우리 바로 곁의 이야기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알리는 일에 누구인가 더 많은 신경을 써 주면 좋겠다. 그것은 남산 타워를 건설할 때 모래와 시멘트를 지고 날랐던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처음 한국에서 인터넷 검색 엔진을 만들 때 일했던 프로그래머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꼭 과학과 기술에 관한 감동이 아니더라도, 그런 기억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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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작가)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 공학 학사 학위와 화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각종 대중매체에서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