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깨달았다! 피츠제럴드가 왜 대가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섬세하게 단서를 끼워 넣은 흔적들, 피츠제럴드가 왜 대가라고 불리는지 몇 년 만에야 알게 되었다. 아전인수 격으로 온갖 자료를 주관에 끼워 맞추는, 도저히 자연스럽지가 못한 글들과는 차원이 다른, 오래 오래 고전이라 불릴만한 책이다.
글ㆍ사진 유서영(외국도서 MD)
2014.03.14
작게
크게
언제부터 이런 취향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세계 명작 동화를 열심히 읽은 탓인지 혹은 중고등학교 때 여러 나라의 고전 이라 불리는 소설들에 심취해서 인지, 요즘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서구권의 소설들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소설에 대한 막연한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긴 대하소설은 물론이고, 그냥 소설조차도 끝까지 읽는 일이 꽤 어렵다. 이런 나에게 모파상, 오 헨리와 같은 작가들의 단편선은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알게 해주면서도, 알려진 작품을 읽고 있다는 자부심도 주고, 줄어드는 페이지수를 확인하며 나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긍지도 주는 고마운 책들이었다.

F.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 [출처: 위키피디아]

피츠제럴드는, 개츠비를 읽고 나서 뭐 이런 재미없는 책이 미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로 불리는가 하는 의문이 꽤 오래 들었다. 사실 아직도 그렇다. 어쩌면 위대하다 위대하다는 소문만 들은데다가 강의 시간 텍스트로 끙끙대며 원서를 읽느라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남은 느낌은 아스라한 감정, 뒤틀린 인연, 위대하지 않은 개츠비의 이미지 같은 것들이었다.

모든 괜찮은 인연이 그렇듯 이 단편선 또한 우연히 접하게 되었는데, 개츠비 보다 훨씬 재미있고 이야기도 꼬여 있지 않아 진도도 빠르면서, 문장은 세련되고 재치 있게 꼬아두어 그 솜씨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개츠비에서 보여준 작가의 못된 심성이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텍스트를 텍스트로 읽지 못하고 드라마 주인공에게 빠져들듯 평하는 것이 다소 모자란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느 단편들은 정말 못 됐다고 밖에는 표현이 되지 않는, 작가의 전지전능함을 보란 듯이 내뿜는 불쾌함이 있다.

그러나 이 불쾌함은 불한당을 만났을 때와 같은 것이기 보다는, 운명과 자아, 타인과의 관계 등이 얽혀 만들어내는 사건, 즉, 필연 혹은 우연이 우리 인생을 지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씁쓸함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모순된 단어들을 모아서 정확한 묘사로 승화시키는 문장의 힘 때문이다.

앞서 불쾌함과 못됨에 대해 썼지마는, 사실 그보다는 유머러스하고 통렬하고, 아스라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더 많이 담겨 있다. 10분이 채 되지 않는 출근길에 짬짬이 전자책으로 읽었다. 짧은 시간에 읽혀도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해 섬세하게 단서를 끼워 넣은 흔적들, 피츠제럴드가 왜 대가라고 불리는지 몇 년 만에야 알게 되었다. 아전인수 격으로 온갖 자료를 주관에 끼워 맞추는, 도저히 자연스럽지가 못한 글들과는 차원이 다른, 오래 오래 고전이라 불릴만한 책이다.


img_book_bot.jpg

피츠제럴드 단편선 1 스콧 피츠제럴드 저/김욱동 역 | 민음사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로 꼽히는 『위대한 개츠비』 의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집. 장편 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는 피츠제럴드는 사십 년 남짓한 비교적 짧은 생애 동안 무려 160여 편에 이르는 단편 소설을 집필했다. 그중 가장 주옥같은 단편 아홉 편을 서강대 영어과 교수인 김욱동 선생님이 골라 번역하여 선집의 형태로 출간하게 되었다. 앞서 김욱동 선생님이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 는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꼽은 최우수 번역본으로 선정된 바 있다.

 



[관련 기사]

-열정적 논쟁의 역사-<위대한 개츠비>
-그 남자의 본명은 개츠비가 아니라 그저 개츠
-위대한 개츠비, 청담동 벼락부자에 얼굴은 조인성?
-<위대한 개츠비> 고전의 오해, 당신만의 밑줄을 그어라
-낯선 것을 가장 안전하게 만나는 방법 - 김영하가 읽은 몇 권의 책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5의 댓글
User Avatar

amorfati2

2014.03.20

이 단편선을 소개하는 몇몇 문장들은 이 단편선이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요. 특히 "어느 단편들은 정말 못 됐다고.. 작가의 전지전능함을 보란 듯이 내뿜는 불쾌함이 있다" 같은 문장이나 "모순된 단어들을 모아서 정확한 묘사로 승화" 같은 부분들을 읽다보면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만을 읽어본게 전부인 제 상황인 아쉬울 따름이지요. 이 기사를 읽다보니 게다가 시선을 끄는 몇몇 문장들 때문에 이 작품 정말 (기사처럼) 그런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불쑥 드네요.
답글
0
0
User Avatar

나라말

2014.03.17

어긋난 인연 탐심을 위시한 집착이 빚어낸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개츠비의 일생이 탐욕으로 스러져 간 인생의 단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답글
0
0
User Avatar

제이

2014.03.17

저도 처음 개츠비를 읽고 느낌 감정이었는데... 재독을 하니 다시 와닿더라구요..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답글
0
0

더 보기

arrow down
Writer Avatar

유서영(외국도서 MD)

어릴적 아버지가 헌책방에 다녀오시면 책을 한아름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보통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이었는데 몇 권이 됐든 하루 이틀이면 다 읽어버리곤 했습니다. 다 읽은 책들은 읽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요, 어른이 된 지금은 책 한 권 끝까지 읽는 일이 너무도 어렵습니다. 침대 옆 책상위에는 항상 읽고 싶은 책들을 몇 권 씩 쌓아 놓지만 그저 쌓여 있기만 합니다. 가끔 가슴 뛰는 책을 만나면 몇 줄 씩 읽고는 멈추고 곱씹고, 다 읽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일부러 아껴 읽습니다.

Writer Avatar

F. 스콧 피츠제럴드

미국의 소설가이며 단편 작가이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의 시기, 그중에서도 1920년대 화려하고도 향락적인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무너져 가는 미국의 모습과 ‘로스트제너레이션’의 무절제와 환멸을 그린 작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등과 함께 20세기 초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작품과 생애,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된 인물이다. 1896년 9월 24일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자퇴 후, 군에 입대하여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 1919년 장편소설 『낙원의 이쪽』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25년 4월, 피츠제럴드는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완성했는데, 1920년대 대공황 이전 호황기를 누리던 미국의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전후의 공허와 환멸로부터 도피하고자 향락에 빠진 로스트제너레이션의 혼란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작품에서 청춘의 욕망과 절망이 절묘하게 묘사되고 있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연극,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고 있다. 헤밍웨이는 “이토록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앞으로 이보다 더 뛰어난 작품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라며 작품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T. S. 엘리엇은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내디딘 첫걸음”이라고,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츠제럴드는) 이 소설로 동시대를 창조했다.”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데뷔작 『낙원의 이쪽』의 절반도 팔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죽은 후 재조명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장편소설로 『밤은 부드러워』, 『마지막 거물의 사랑(미완)』, 『말괄량이와 철학자들』, 『낙원의 이쪽』, 『아름답고도 저주받은 사람들』, 『재즈 시대의 이야기들』, 『위대한 개츠비』, 『얼음 궁전』, 『밤은 부드러워』, 『기상나팔 소리』등을 비롯해 중단편 160여 편을 남기고 1940년 12월 21일 4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