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대녕 ‘‘자기 문장을 쓰기 위해선 시를 관통해야’’
독자들이 윤대녕의 그런 흔적을 찾아 모여들었다. ‘깊고 황홀한 윤대녕의 소설세계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윤대녕 낭독회. 작고 한시적인 ‘윤대녕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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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가을이 익어가는 시절, 별이 떴고, 바람이 불었고,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 홍대부근 한 카페, 윤대녕 작가가 독자들과 만났다. ‘젊음과 늙음의 경계’라는 오십대의 나이로 접어들었고,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았다는 윤 작가는 그런 시간을 그러모아 『도자기 박물관』 을 내놨다. 7편의 단편소설로 이뤄진 이 소설집은 예의 윤대녕 다운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지는 한편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현실이 눈물을 그려내고 있다. 이날, 독자들이 윤대녕의 그런 흔적을 찾아 모여들었다. ‘깊고 황홀한 윤대녕의 소설 세계를 만나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윤대녕 낭독회. 작고 한시적인 ‘윤대녕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작가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앞의 작품들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 많다면 중반 이후 작품들은 시적이면서 현실적인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의 입출구를 마련한 것들이 든다. 이 소설들 가운데 이전 작품과 차이가 있거나 다르다고 생각하는 작품이 있다면? 혹은 인상적으로 생각한 작품이 있나?

작품을 쓸 때, 비평가들이 전작 등에 대해 평가를 하는데, 스스로는 외부에서 오는 평가 때문에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경계한다. 나는 ‘윤대녕’이라는 창작주체를 관통하지 않은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과거, 작위적인 변화도 싫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작품이) 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시간이 가져다 준 것이 아닐까. 의도적으로 다른 것을 시도한 것은 없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앞의 작품들에 더 마음이 간다. 나의 본질, 감성이라고나 할까.

이 소설들에는 어떤 열기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전작 『남쪽 계단을 보라』 작가의 말에서 ‘자, 그렇다면 삶의 화염 속으로’라는 말로 맺음 했다. 이번 작품들을 보면, 불구덩이 속에 사는 고통이나 기다림, 고독, 인고 등의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읽어볼만한 작품을 낭독해 달라.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 는 2년 전에 썼었는데, 실화에서 따왔다. 폭행이 행해지는 장면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고통에 관한 주제,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남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표제작으로 하고 싶은 생각도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 서간체 소설이다.
(윤대녕 낭독) 병원에서 퇴원한 후의 삶도 곡절이 많기는 합니다만 더 이상 여기에 쓰지는 않으렵니다. (중략) 하지만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가 시작되려면 좀더 마음의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략) 그대는 먼 곳에 혼자 있는 게 아닙니다. 비록 잠들어 있으나 바로 여기, 지금, 나와 함께 숨쉬고 있습니다. 내 손길이 느껴지지요? 그대는 잠결에 내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꿈에서 나를 보고 있지요? 밖에는 지금 먼 데서 불어온 바람이 우리를 모로 지나쳐 또한 먼 곳으로 불어가고 있습니다. 바람의 소리가 귓전에 들리지요? 이렇듯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p.31~34)
이 부분을 골라준 이유가 있다면?

서간체 형식으로 돼 있고, 화자가 주인공이다. 사실,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나라고 얘기한다. 편지를 쓴 대상은 독자이고. 타인, 나도 또 다른 타인이고, 타인은 또 다른 나인데, 어떻게 이해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스스로 하고 싶었다.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질문과 답을 이 소설을 통해 해보고 싶었다. 그대는 먼 곳에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것부터 끝까지는 작가로서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대목이다.

7편의 배치가 나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작가의 말에 마지막 교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책을 만든 책임 편집자(황예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에피소드도 듣고 싶다.

편집자 황예인 : 편집자 이전에 윤대녕 소설의 오랜 독자였다. 인터넷카페의 회원이기도 하고. 2006년 낭독회 때 휴가 나온 남자친구와 함께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웃음) 처음에 작가가 줬던 소설의 순서는 달랐다. 나는 그 소설들 가운데 「반달」 을 무척 좋아했고,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 마지막에 배치가 돼서 아쉬웠는데, 다시 작가가 두 번째로 배치를 바꿔줬다. 그게 기분이 참 좋았다. 작가의 글씨체가 참 예쁘다. 벚꽃처럼 생겼다. 교정지에 써 준 글씨와 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윤대녕 : 「반달」 은 이 소설들 가운데 가장 최근에 쓰인 소설이다. 지난겨울에 썼다. 나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다. 자연의 느낌, 냇물에서 피어오르던 환절기의 안개, 소가 도망쳐 나가고, 누군가 사라져서 등불을 들고 들판을 마을 사람들과 찾아다니던 기억 등이 내 감수성이나 삶을 바라보는 시각, 살아내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줬다. 어렸을 때 한옥에서 자랐는데, 눈이 오는 소리 등이 감수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고. 윤극영 선생의 ‘반달’이라는 노래가 내게 지극히 아름답게 각인돼 있었다. 「반달」 을 쓴 직접적인 계기가 있다. 통영에 친구처럼 지내는 시인이 있다. 섬을 떠도는 낭만가객인데, 나와 죽이 잘 맞는 친구다. 지난겨울, 통영에서 술 한 잔 함께 하면서 반달을 봤고, 가족들과 서해안 포구에 가서 제철인지도 모르고 왕새우를 찾았던 기억이 파편처럼 구성돼서 이 소설을 쓰게 됐다. 풍경이 내겐 무척 중요하다. 시간의 흐름도. 별, 달, 해 등도 시간의 흐름이고. 우리는 순환성의 흐름 내에 있다고 보는데, 길을 잃기도 하고 다시 길을 찾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편집자 황예인 낭독) 밤바다는 무섭도록 고요하고 적막했다. 불길한 느낌이 들 정도로 배조차 흔들림이 없었다. 조금이었으므로 하늘엔 반달이 떠 있었다. 커다란 빗자루로 쓸어놓은 듯 별들이 하얗게 무리를 이뤄 포물선을 형성하며 이동하고 있었다. (중략)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요컨대 나라를 거울을 통해 매 순간 상대를 찾고 그리워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었다. 또한 상대를 통해 나라는 존재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이제 와서야 말할 수 있지만, 별들의 생성과 소멸처럼 우리도 어느 순간 파괴되면서 동시에 태어나는 것이다.(pp.70~73)
이 작품들을 쓰면서 즐겨본 시집이나 꼽을만한 시인이 있나?

문청 시절, 70~80년대 詩를 무척 좋아했다. 그때만큼 詩를 읽었던 적이 없다. 여러 시인의 詩를 꾸준히 읽는 편이다. 숙제처럼 詩를 읽는 것은 아닌데, 언어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고 유지하는데 시집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사람으로 치면 눈물 같은 것이 詩다. 詩를 읽고 있으면 가슴이 울렁울렁한다. 그게 문학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감수성을 무디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시인을 보면, ‘영매인’이라며 대접하고 들어간다. 나는 소설을 쓸 때도 반드시 詩를 읽어야 자기 문장을 갖출 수 있다고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얘기한다. 詩를 관통해야만 자기 문장, 자기 개성이 들어간 문장을 쓸 수 있지 않나 싶다.




작가의 말에 ‘눈물’이라는 기타 연주곡을 언급한다. 배경음악처럼 들으면서 썼던 음악이 있나?

집필 습관인데, 소설을 쓸 때 그 시기에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을 되풀이해서 듣는다. ‘눈물’이라는 곡은, 사람에게 영롱한 부분이 눈물이라고 생각하는데, 오십을 넘으니 진심을 나누고 싶다는 의미로 작가의 말에 언급했다. 15~16년 전인가, 부산에 사는 한 독자가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여행을 다니고 있던 분인데, 그 독자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주 오래 전 그 독자와 소통을 할 즈음, 나를 만나면 ‘눈물’이라는 곡을 연주해주고 싶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마음에 깊게 박혔다. 두어 번 그 분과 만났다. 최근에 그 분이 사회복지활동을 하는데, 근래 조금 힘드셨나 보더라. 그 분 생각이 나기도 하고, 「반달」을 쓰면서 그 곡을 자주 들었다.
“지금의 내 감정은 그들과 만나 다만 조용히 눈물을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근대 속울음이 빈번한데, 막상 속시원히 울어볼 기회가 없었다. 그들 모두가 내게는 단 하나의 별이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리라. (중략) 마지막으로 독자를 포함한 모든 그들에게, 요즘 내가 자주 듣고 있는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기타 연주곡 를 전해주고 싶다. 자, 이제 그럼 몇 년 뒤에나 다시 만나십시다.”(p.317)
이번 작품집은 소통과 말 건넴에 대한 모티프가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어느 시점이후 변화가 감지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예전에 했던 약속, 채무 때문에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고, 갑작스런 연락이나 편지를 받기도 하고, 그런 시차가 들어나기도 한다. 작가의 육성으로 표제작인 「도자기 박물관」의 낭독을 듣겠다.
(윤대녕 낭독) 영숙이 떠나고 나서 그는 늙어가기 시작했다. 그해가 저물기도 전에 그의 머리칼은 백발로 변했다.… “마음껏 우시오. 그 미칠 듯한 마음이 이 화염 속에 앉아 있음과 다름없어질 때까지. 나는 곧 말을 잃을 것이니 그대와는 더 할 얘기가 없소. 다시 눈보라 속으로 가실 거요? 그럼 갔다가 한 백년쯤 지난 뒤에 어느 집 마루나 뒷간쯤에서 다시 만나십니다.” (p.114~117)
이번 낭독으로 왜 이 소설을 택했는지?

자전적인 심정으로 쓴 소설이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소설을 썼다. 일관되게 한 곳만 보면서 그랬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도 줘야 하고, 일방적으로 살아왔지 않은가, 회한일 수도 있는 느낌으로 한 번쯤 정리를 하고 싶었다. 도공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었다. 실제로 20년 이상 소설을 써 왔다. 도자기를 쫓아다니는 사람, 끝내는 불가마 앞에 앉아서 불 속의 그릇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인생 자체가 한때 뜨겁게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설을 하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써야만 그 국면을 넘어가는 것은 분명하다. 과거에도 이런저런 힘든 일이 있었는데, 글을 쓰는 동안에 그런 것을 넘어서 다음 단계가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써야만 내 나이와 상태를 넘어서 새롭게 시작되는 나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의 기원으로 따지자면, 어느 시점을 기원의 장면으로 꼽는가?

유년기였다. 9살이 되면서 부모에게 갔다. 그 전에 조부모 밑에서 성장을 했는데, 조부는 학교 교장선생 출신이었고, 조부 집에 오가는 큰아버지, 삼촌 등이 내게 보여준 이미지나 인상이 강렬했다. 늘 책을 읽거나 바둑을 두시거나 클래식 기타 등을 치기도 하시고, 집을 나갔다가 2년 만에 돌아오시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내게 삶의 뉘앙스를 줬다. 나도 크면 그렇게 살아야하는구나 싶었다. 특히 큰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큰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처자식이 있는데도 집을 나가 2년 만에 봉두난발로 돌아와서 할아버지께 크게 혼나기도 하셨다. 이런 존재들 속에서 감수성이 굉장히 민감해졌고 영향을 받았다. 어떻게 보면 선망의 대상이었고, 멋있어 보였다. 그때 형성된 삶에 대한 뉘앙스, 감수성, 떠도는 자의 모습, 돌아온 자의 모습 등이 깊이 각인이 됐다. 내 감수성 자체는 거의 그 시절 형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독자들과 윤대녕이 나눈 이야기

지인들에게 윤대녕 작가의 책을 권하면 작가의 삶을 다룬 실재 경험을 쓴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수필 같다는 거다. 지인들에게 어떤 이야길 해줘야 할까?

경험의 일부가 덧대져서 텍스트가 되는 것이다. 나를 관통하지 않은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과거 문학을 배울 때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독자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자고 다지고 있다. 1인칭 소설이 많아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지나가는 생각이 소설의 모티프는 될 수 있는데, 그런 것을 구성하는 과정이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런 구상은 어떻게 하는지?

똑같은 상황에서도 느끼는 바가 다르고, 못 느낄 수도 있다. 경험 속에서 감흥하고 반응하는 거지. 찰나적으로, 오직 그 순간에. 내 안에 이것과 관련된 뭔가 이야기할 것이 있어서 그런 감흥이 있다고 생각한다. 깜짝 놀라거나 감동이 올 때 생각해보면, 몸에는 숱한 기억들이 내장돼 있는데, 그런 것에 끌려져서 나오더라. 무언가 하나를 생각하면 그와 관련된 이미지가 떠오르거나 보이거나 들린다. 책을 봐도 우연히 관련된 무엇이 나오고. 자기가 그것을 알아내고 끌어내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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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두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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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박물관 윤대녕 저 | 문학동네
2013년 가을, 윤대녕의 일곱번째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 이 출간되었다.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올해로 이십삼 년째, 그간 특유의 여로 형식과 시적인 문장을 통해 인간 존재의 거처를 집요하게 탐색해온 그의 신작 소설집에서 우리는 윤대녕 소설세계의 연속성을 느낄 수 있음은 물론, 그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깊이를 확보하며 새로운 소설세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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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도자기 박물관 #남쪽 계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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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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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단국대 불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당선되었고, 1990년 [문학사상]에서 「어머니의 숲」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출판사와 기업체 홍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4년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하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오늘의 젊은예술가상(1994), 이상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8), 이효석문학상(2003), 김유정문학상(2007), 김준성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2019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는 그의 최초의 기억은 조모의 등에 업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초등학교에 가던 날이다. 주사 바늘이 몸에 박히는 순간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곱 살 때 조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도 안 하고 1학년 2학기에 학교 소사에게 끌려가 교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내던져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웠다. 한자 공부가 끝나면 조부는 밤길에 막걸리 심부름이나 빈 대두병을 들려 석유를 받아 오게 했다. 오는 길이 무서워 주전가 꼭지에 입을 대고 찔끔찔끔 막걸리를 빨아먹거나 당근밭에 웅크리고 앉아 석유 냄새를 맡곤 했던 것이 서글프면서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독서 취미가 다소 병적으로 변해,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동맥'이라는 문학 동인회에 가입한다. 그때부터 치기와 겉멋이 무엇인지 알게 돼 선배들을 따라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백일장이나 현상 문예에 투고하기도 했고 또 가끔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써대며 찬바람이 불면 벌써부터 신춘 문예 병이 들어 방안에 처박히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자취방에 처박혀 롤랑 바르트나 바슐라르, 프레이저, 융 같은 이들의 저작을 교과서 대신 읽었고 어찌다 학교에 가도 뭘 얻어들을 게 없나 싶어 국문과나 기웃거렸다. 1학년 때부터 매년 신춘 문예에 응모했지만 계속 낙선이어서 3학년을 마치고 화천에 있는 7사단으로 입대한다. 군에 있을 때에는 밖에서 우편으로 부쳐 온 시집들을 성경처럼 읽으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 군복을 입고 100권쯤 읽은 시집들이 훗날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대 후 1주일 만에 공주의 조그만 암자에 들어가 유예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투명하게 보려고 몸부림쳤다. 이듬해 봄이 왔을 때도 산에서 내려가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뻔한 현실론에 떠밀려 다시 복학했고 한 순간 번뜩,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문학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데뷔 이래 줄곧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받은 윤대녕은 ‘시적인 문체’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글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시적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있어서이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려내는 뛰어난 서사의 힘이 느껴진다. 윤대녕은 고전적 감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동시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지향점을 잃어버린 시대에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젊은 세대의 일상에 시적 묘사와 신화적 상징을 투사함으로서 삶의 근원적 비의를 탐색한다. 내성적 문체, 진지한 시선, 시적 상상력과 회화적인 감수성, 치밀한 이미지 구성으로 우리 소설의 새로운 표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남쪽 계단을 보라』,『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대설주의보』를 비롯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달의 지평선』,『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누가 걸어간다』, 『어머니의 수저』,『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