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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문장으로 소설을 쓴다. 제주에서 돌아온 소설가 윤대녕

“왜 하필 호랑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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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는 제주도의 자연과 마흔이라는 나이와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는 글쓰기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여러모로 그와 출판사의 애를 바싹바싹 태웠다.

2년 만에 발표한 장편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와의 사투 탓인지 눈가에 패인 주름이 더 깊어 보였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더할 나위 없이 컨디션이 좋았다가 서울에 올라온 후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추석 연휴를 응급실과 병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여름 내내 긴장을 하면서 버티다 긴장이 갑자기 풀린 탓인가 봐요. 지쳤다는 자각이 드니 몸이 바로 아파오더군요. 아내가 잠시 다니러 온 것을 빼고는 연휴 동안 내내 혼자 누워 있었어요. 마라톤 뛰다가 막 골인 지점을 통과한 사람처럼요. 금방은 좋아지지 않네요.”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는 제주도의 자연과 마흔이라는 나이와 여전히 그를 놓아주지 않는 글쓰기가 만들어 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여러모로 그와 출판사의 애를 바싹바싹 태웠다. “제주도에서 다 쓰고 한 번 손을 보고 올라왔기 때문에 금방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 수 있겠거니 했지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 원고를 읽어보니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드는 거예요. 딱 집어서 이야기할 순 없는데 뭔가 달랐습니다.” 제주도의 윤대녕이 쓴 글을 일산의 윤대녕은 생경스러워했다. 그렇다고 ‘제주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5월 내내 당황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다녀와서 다시 고쳐 써야 된다고 마음을 먹고 시작했습니다. 그달 내내 하루에 10시간에서 12시간 동안 글만 썼습니다. 그때 무리를 해서 지금 몸이 안 좋은 것 같아요. 초고를 바탕으로 3번 고쳐 쓰고 출판사에 넘겼어요. 내가 생각하는 수준까지 글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을 몰아붙였습니다.” 사실 그 정도면 소설을 거의 새로 쓴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원고를 보낸 다음 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조판 들어가지 마세요. 원고를 손볼 수 있게 삼사일만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원고를 수정했다. 그 원고를 보낸 다음 날 아침 또 전화를 했다. “조판은 하되 프린트로 뽑지 마세요.” 그리고 또 원고를 손 봤다. 그리고 작가와 편집자의 손을 거친 다섯 번의 교정 작업. “최종 원고를 넘기기 전날, 내가 쓰고자 했던 것의 95% 정도에 도달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머지는 재능의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원고를 넘겼습니다.” 원래 여러 번 원고를 손보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번엔 좀 심했다. 그럼에도 줄거리는 바뀌지 않았다.

“왜 하필 호랑이인가요?” “그럼 토끼라고 할까요, 쥐라고 할까요? 악어를 쓰는 작가도 있고, 코끼리를 쓰는 작가도 있듯, 저는 호랑이를 씁니다. 제가 호랑이띠라서(라고) 라면 대답이 될까요?” 역시 만족할만한 대답은 아니다. 결국 읽는 이의 몫이라는 것. “그래서 호랑이는 잡으셨나요?” 조용히 웃곤 대답하지 않는다.

그는 주변에 잘 동화된다. 제주에서는 제주의 자연에 동화되고, 이곳에서는 도시에 동화된다. 도시에 동화된 눈으로 자연에 동화된 감각으로 쓴 글을 읽으니 무엇인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서의 윤대녕은 문명과 사회 시스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문명이 아니라 자연에 영향을 받는다. 달에 인한 물때의 변화, 자연의 순환이라는 리듬을 타고 소설 한 편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제주도에 가지 않았으면 쓰지 못했을 겁니다. 제주도에 동화되어 그 리듬에 맞추어 썼으니까요. 바다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성에 기대어 쓴 소설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작품을 읽으니 윤대녕스러움이 느껴지지 않고, ‘누가 이 소설을 읽을까’는 의구심도 들더군요. 그리고 이 작품이 어디에 해당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는 죽음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설이다. 안팎의 절망이 사람들을 죽인다. 저마다의 호랑이에게 잡혀먹은 셈이다. 그리고 소설 속의 여러 죽음들은 새로운 생명으로 결말이 맺어진다. “소설 속에 너무나 많은 죽음을 벌여놓아서 결론은 그렇게 밖에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죽음을 건강한 의미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평가절하 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경험은 엄숙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러 무작정 제주도로 내려가는 62년생 81학번의 영빈은 확실히 작가를 닮아 있다. ‘자전적이다’라는 평을 받는 이번 소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영빈과 나는 객관적인 경력은 확실히 닮아 있습니다. 그렇게 보이리라는 것을 감수하고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 속 인물은 좋든 싫든 작가의 창작물이니 작가의 일부를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 속에서 제 모습이 가장 많이 반영된 인물은 영빈이라기보다는 그의 친구 Y입니다. 그 상 받을까 말까 전화하는 친구 말이에요.”

이번 소설의 토대는 80년대의 암울했던 대학 시절에 겪은 프락치로 오해받은 지극히 성실하고 평범했던 형의 자살과 90년대 초반에 겪었던 성수대교 사건이다. 시대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개인적이고 보다 근원적인 이야기다. “‘왜 성수대교인가’ 지금까지 조용하다가 ‘이제 와서 80년대를 이야기하는가’ 하는데, 성수대교는 제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성수대교가 붕괴되던 전 날, 소설의 Y처럼 상(94년에 받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고 지인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성수대교 기사를 접했어요.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첫 작품집 『은어낚시통신』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생각지도 않은 상을 받았습니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군대와 직장 생활을 거쳐 겨우겨우 등단해서 상이라는 것을 받았는데 그 모든 것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몸이 아팠어요.” 첫 단편집을 세상에 내놓은 날 그는 회사에 사표를 썼다. 그리고 실크로드에서 사막을 체험했다. 등단한 후, 가장 지독한 문학적 몸살을 앓았을 때다. 모든 것이 다 허망했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선배가 지나가는 말로 그러더군요. ‘그래도 글을 써야 되지 않겠냐,’ 그 말을 듣고 글을 쓰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직후 쓴 작품이 중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이었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을 담았다.

계속 단편을 쓰고, 단편들을 묶어 작품집을 내고, 장편을 썼다. 문학적으로 충만한 상태에서 썼던 세 번째 작품집, 써야 하는데 써지지 않아 고통스럽게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던 네 번째 작품집. 마라톤을 하듯, 체력과 재능을 모두 소진시켜버리는 장편들.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처럼 한 작품 한 작품 뚜렷한 발자국이 이어진다. 해남을 여행하면서 썼던 「천지간」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상에 대해서 크게 욕심이 없는 그였지만 등단하기 전 제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상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상을 받은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순조롭기 그지없는 나날이었다.

2002년 그는 또다시 심한 몸살을 앓게 되었다. 작품은 물론 가끔씩 청탁을 받아 써오던 잡문들도 일체 끊었다. 그리고 제주도로 내려갔다. “정말 그즈음에는 한 줄도 쓰지 않았어요.” 소설에 대한 강박이 힘들었다. 글쓰기보다는 글 읽기에 주력했다. “그래도 감각은 잃지 말아야 되기 때문에 책은 계속 읽었습니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새롭게 미국 문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헤밍웨이, 레이먼드 챈들러, 폴 오스터, 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까지 독서를 즐겼다고 했다. 기름기가 빠지고 열이 식어버린 몸의 변화에 걸맞게 문체 역시 기름기가 빠지고 짧아졌다.

“다양하게 작품을 읽다보니 제 문장을 다시 한 번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형용사 부사를 조금씩 배제하려고 했고요. 문장은 짧게, 지문도 대사 한두 줄로 압축해 표현했습니다. 불필요한 수식과 감정을 제거하고 하드하고 건조한 느낌으로...” 그는 좋은 문장을 ‘달항아리’에 비유했다. “단순히 소박한 것이 아니라 진솔한 것이 좋지요. 화려함은 배타성이 있습니다. 배타성이 없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리스마와 에너지가 느껴지는 강한 문장이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의식 과잉으로 느껴져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 읽어도 편하고 천박하지 않는 문장. 소박하고 질박함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 좋습니다. 「상춘곡」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상춘곡」에서 편안하고 꾸미지 않는 문장을 썼지요. 그런데 문장은 결국 몸과 깊이 관계가 있습니다. 몸이 변하면 문장도 변합니다.”

제주에 있으면서 문장도 성격도 하드하고 드라이해졌다. 바다낚시를 즐기다가 하마터면 죽을 뻔한 일도 겪었다. 그러면서도 그 위험에 매혹되었다. 며칠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셨다. 홀린 사람처럼 매일 바다로 나갔다. 마라톤을 하면서 달라진 하루키처럼 그 역시 제주도에서 생활과 몸이 바뀌면서 문장 역시 바뀌었다.

“염기(鹽氣) 때문이라고도 해요.” 그러면서 자신의 첫 번째 단편집의 표제작인 「은어낚시통신」을 기회가 되면 고친 것으로-수정 작업은 이미 끝냈다고 했다- 새롭게 출간하고 싶다고 했다. “「은어낚시통신」은 문장이 마음에 안 들어요. 표제작이기도 한데 부사나 형용사가 너무 과도하게 쓰인 부분도 많고...” 80년대와는 차별되는 90년대의 참신함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첫 단편집 『은어낚시통신』은 10년 동안 20쇄를 찍을 만큼 많이 읽힌 책이다. 대부분의 책이 2~3년을 못버티는 출판 현실에서 10년을 버텼다는 것은 그의 작품에 90년대 독자들이 열광했던 ‘참신함’ 외에도 시대에 상관없이 인간이 고민하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업 작가 경력 10년차인 윤대녕은 ‘변신’이라는 말을 싫어하는 듯 했다. 제주도 이후 문학적으로 많이 바뀔 것 같냐 는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우리나라 평론가들과 독자들은 작가에게 지나치게 많은 ‘변신’을 요구합니다. 작가의 개성과 세계관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늘 다른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한 작가가 그렇게 다채로운 소설을 쓰긴 힘듭니다. 우리 문단은 충분히 다채로운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한 사람에게 다채로움을 요구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요. 자기다운 글을 쓰면 그만이지요. 저는 요즘 나오는 한국 소설들 다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단단한 완성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보여주면 됩니다.” 피츠제럴드가 말했다. “우리는 삶에서 감동적인 경험을 두세 가지 겪게 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작가로서의 기술을 배운다. 우리는 두세 가지 이야기를 아마 열 번, 독자들이 들으려고 하는 한 어쩌면 백 번이라도 되풀이해서 말한다. 물론 이야기할 때마다 새롭게 변장하면서 말이다.”

그는 무척 규칙적이고 단순하게 살아간다. 산에 가고, 달리기를 하고, 매일 일정한 시간 이상 글을 쓰고, 주말은 가족과 함께 밥을 먹거나 쇼핑을 한다. “후배나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운동 열심히 하고, 나이 들면 술 담배 하지 말라고-젊었을 때는 저도 많이 했으니까- 합니다. 소설은, 특히 장편 소설은 체력이 없으면 절대로 쓸 수 없습니다. 체력이 없으면 떠오르는 영감을 따라갈 수 없고, 원하는 묘사를 할 수 없고, 자신이 도달하려고 했던 곳까지 굴을 팔 수 없습니다. 소설은 몸입니다. 몸이 건강할 때 문장도 잘 나옵니다.”

예전에는 한밤중에 작업을 했지만 지금은 오후 2~3시 늦으면 4시에 작업실로 ‘출근’해 보통 10시쯤 ‘퇴근’한다. 매일 중간에 한 번도 쉬지 않고 6시간 씩 글을 쓴다. 잠깐이라도 쉬게 되면 리듬이 끊긴다. 10시간에서 12시간씩 글을 쓰는 날도 있다. 주5일 시대지만 그는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 주로 단편이나 잡문을 작업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일요일은 꼭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쉬는 것이 별 것이 아니다. 집안일을 보고 아내와 함께 쇼핑을 하고 식사를 함께 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글쓰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즐기면서도 글쓰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고, 완성도를 위해 스스로를 ‘달달’ 볶는 스타일이다. 크리스마스와 독립기념일 그리고 자신의 생일을 제외하고 매일매일 2천 단어를 쓰는 글쓰기 광 스티븐 킹의 모습과 닮아있다. 스티븐 킹은 일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진짜 중노동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그처럼 윤대녕도 글을 쓰지 않으면 안절부절 못한다. 글을 쓰지 않으면 책이라도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절에 쉬러 간 적이 있었는데 사오일이 지나니까 글이 쓰고 싶어 죽겠더라구요. 쉬러가면서도 노트북을 들고 갔어요. 그래서 그때 어려운 일을 겪고 있던 친구에게 편지라도 써야겠다 해서 정말 편지를 썼는데 원고지 200매가 되더군요.” 아무 구상도 없이 술술 써내려갔고 수정도 하지 않았다. “작가가 되면 한번쯤 그런 작품을 쓸 때가 있습니다. 정말 아무 고민 없이 술술 써내려가는 그런 작품을 쓰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소설가’를 천직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전적으로 소설만을 써야 하는 인생인가라는 것에 대해서는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습니다.” 소설가가 소설을 쓰는 것은 정말 리얼한 현실인데 가끔가다가 소설을 쓰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운좋게 소설로 알려지고, 소설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다른 무엇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닐까 괴로울 때가 있어요.” 또 다른 괴로움도 뒤따른다. 재능에 대한 절망, 떠오르는 영감을 따라가지 못할 때의 실망, 완성도에 대한 끝없는 집착이 그것이다. 하지만 끝없이 절망한 다음 날에도 여전히 책상 앞에 서서 승부가 나지 않는 글쓰기라는 진검승부에 다시 몰두한다. D. H. 로렌스가 말했다. “작가는 원고지에 피를 쏟아놓는다”라고. 회의하면서도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그는 역시 ‘소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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