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맨 마지막 말은 사랑한단 말밖에 남지 않았다" (G. 신미나 시인)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60회) 『다시 살아주세요』
“삶을 가끔 흐린 눈으로 보아야 할 때가 있다. 정확한 진실이 삶을 찌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첫 산문집 『다시 살아주세요』를 출간하신 신미나 시인님 나오셨습니다.
몇 장의 원고로 과거를 소환한들, 당신의 기억을 복구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요. 그전에 엄마는 이미 멀리 가버렸지요. 혼자서만 갈 수 있는 곳. 죽음조차 따라 갈 수 없는 곳으로 멀리 가버렸어요. 이상하게도 나는 슬픔과 희미한 희열을 동시에 느낍니다. 당신이 내게 준 사랑의 화기火氣 때문에요. 나는 불을 마셨어요. 엄마를 마시고 소화하고 흡수했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나의 피부와 눈물과 근육이 되었어요. 나는 당신을 먹고, 다시 뜨겁게 낳았어요. 당신은 나의 피 속에서 흘러요. 엄마. 다시 살아주세요.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어 살아주세요.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신미나 시인님의 첫 산문집 『다시 살아주세요』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다시 살아주세요』에는 이별의 슬픔도, 가난의 고통도, 그리고 아픈 사람의 상념과 아픈 사람을 지켜보는 복잡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데요. 신미나 시인님은 그 속에서도 사랑을, 삶을, 생기를 바라봅니다. 식물과 달걀말이, 선물로 받은 애호박과 약과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리면서 말이죠.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다시 살아주세요』를 쓰신 신미나 시인님을 모시고 ‘이야기’로 다시 사는 일에 대해 대화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 신미나 편>
오은: 첫 산문집이에요. 2007년부터 작품 활동 시작하셨으니까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그 사이 시집을 출간하시기도 했고, 시툰도 내시긴 했으나 산문을 이렇게 본격적으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은 처음인데요. 책 내고 어떤 마음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신미나: 다 그렇겠죠. 각자의 책은 각자 소중하니까요. 헛헛하기도 하고 또 기쁘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호흡이 느려서 원래는 산문집을 한 권만 벽돌 책으로 내겠다고 친구들에게 장담하고 그러기도 했어요.(웃음) 그렇지만 출판사 사정도 고려해야 하고 여러모로 생각해야 될 것도 있잖아요. 출판사와 계약은 했지만 사실 산문집을 내는 건 그래도 기간이 지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개인적인, 뜻밖의 일도 있었고 해서요. 제 생각보다는 좀 일찍 묶게 되었어요.
오은: 등단 16년이 됐고, 첫 산문집인데 일찍 나왔다고 하시니까요. 얼마나 천천히 책을 묶으시려고 했는지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웃음) 근데 산문집은 뭔가 시집과는 다른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가장 내밀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잖아요. 왠지 표지부터 계속 쓰다듬어주고 싶으셨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신미나: 이 산문집은 정말 도망갈 데가 없겠다, 이런 생각은 들더라고요. 숨을 곳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시 같은 경우에, 저는 오래 뭉근하게 끓인다고 해야 될까요. 그런 식으로 호흡이 느리게 작업을 하는 편인데요. 산문집은 좀 갱신해 보고 싶다는 욕망도 생기더라고요. 시를 쓸 때는 너무 오래 붙들고 아껴둬서 놓친 것들이 좀 있었어요. 딱 그 시기 아니면 쓸 수 없는 어떤 단어가 주는 희열이라든가 고양감 같은 것들을 거칠더라도 생생하게 날 것으로 보여도 괜찮은 것들이 있는데 말이에요. 그런 부분을 시집에서는 많이 정제하고 절제하는 편에 속했던 것 같아요.
반면에 이번 산문집은 어떻게 보면 제 생에 가장 뜨겁게 감정이 올라왔을 때, 이것을 이전에 했던 것처럼 필터에 거르지 않고, 여과하지 않고 한번 날 것으로 그대로 써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생생한 감정이 주는 치열함, 맹렬함 같은 걸 담아봐야 되겠다, 하고요. 이런 지점이 시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네요.
오은: 신미나 시인님의 프로필을 소개하겠습니다. “시를 쓸 때는 신미나. 그림 그릴 때는 싱고이다.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와 시툰 『詩누이』 『안녕, 해태』(전3권) 『서릿길을 셔벗셔벗』을 쓰고 그렸다.”
제가 시인 님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참기름이에요. 주기적으로 참기름을 저한테 주셨는데요. 이 고소한 것을 들고 대중교통으로 어딘가로 이동하고, 길을 건너고, 상대가 만날 장소에 천천히 찾아가는 장면을 그리면 뭉클해지기도 하는데요. 책에 등장하기도 하지만 요새는 약과에 빠져 있다고 하시거든요. 제가 며칠 전에 박연준 시인님을 만났는데 신미나 시인님께서 약과를 주셔서 먹었더니 너무 맛있어서 또 주문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신미나라는 사람에게 내가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건네는 일 주는 일은 어떤 의미일까요?
신미나: 뭔가를 주는 일은 그 사람한테 어떤 기억을 주는 일 같아요. 저를 떠올리면 참기름하고 그 고소한 것이 먼저 떠오르듯이, 저도 어떤 이야기를 준 거예요. 한편으로 막상 좋은 참기름이 있다고 하면 또 오은 시인님이 떠오르고요. 그러면 이걸 들고 버스 타고 만날 장소까지 걸어가는 과정들은 사실 생략돼요. 그냥 그 순간에는 이걸 사서 줘야지, 하는 생각이 더 강한 거죠. 그래서 어쩌면 뭔가를 나누고 주는 일은 기억을 같이 나누는 일이란 생각을 해요.
아마 이건 제 어릴 때의 경험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어릴 때 아주 시골에 살았어요. 시골은 마을 공동체잖아요. 저희 어머니 경우 추석 무렵이 되면 마을 친구분들께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를 주시면서 가서 주고 와라, 이렇게 시키셨거든요. 닭 입장에선 너무 힘들었겠죠. 그렇지만 인간 입장에서는 또 그게 귀한 선물이어서요. 저는 그 꾸러미를 안 깨지게 받아 들고 개울을 건너서 친구분께 선물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니까 결국 뭔가를 준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주는 것 같아요.
오은: 『다시 살아주세요』에는 특히나 시인 님의 가족 이야기가 많습니다. 가족의 이야기를 쓰는 일이 ‘다시 사’는 일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제목이 남달리 읽히더라고요. 제목도 왠지 많은 고민이 있은 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싶어요. 『다시 살아주세요』라는 말을 담은 마음에 대해 들려주세요.
신미나: 지금껏 책 제목은 거의 제 주장대로 해왔던 것 같아요. 근데 이번 제목만은 제가 100% 양보한 제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제목은 눈 밝은 성혜현 편집자님과 마음산책 출판사의 정은숙 대표님께서 제안을 해 주셨던 제목인데요. 사실 저는 이 제목이 조금 쉽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시인 친구들에게도 다른 후보를 주면서 물어보기도 했죠. 후보 중에는 ‘밤을 열어 문장의 끝까지’처럼 결기를 다지는 것도 있었고요. ‘다리 위에서’처럼 담백하게 수식을 뺀 제목도 있었고, 리듬감을 살려서 ‘밤은 지나가고 나는 노래하네’ 같은 제목도 있었는데요. 결국은 이상하게 지금 제목에 마음이 동했어요.
편집자 선생님께서 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열린 제목이면 좋겠다고도 하셨고요. 이 책이 왜 다시 살게 하는지, 그 의미를 톺아보게 한다는 점에서요. 전혀 이 제목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묘하게 홀렸던 것 같아요.
오은: 책의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누구나 주머니 속에 접어둔 이야기가 있다.” 주머니라고 하면 우리가 마음 편하게 손을 집어넣기도 하는, 머쓱하거나 온기가 필요할 때 손을 넣는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또 다른 사람은 감히 나의 주머니에 손 넣는 경우가 드물어요. 타인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니까요. 결국 주머니란 나와 함께만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내밀한 공간이기도 한데요. 그 공간에 꼬깃꼬깃하게 접어 둔 이야기, 손길과 함께 마모되었을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헤치기로 결심한 데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16년 만에 산문집을 한번 묶어야겠다, 이 시기를 한번 정리하고 주머니 속에 사연들을 풀어헤쳐야겠다, 하고 결심을 하신 것 같은데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신미나: 어떻게 보면 작정을 하고 책을 쓰기로 한 것 같지만요. 사실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과하면서 쓰게 된 이유가 커요. 이 일은 제 삶에서도 정리될 필요가 있겠구나, 생각했죠. 어떤 삶의 의미가 다시 재편되는 경험이 생겼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정신적인 충격이나 생생한 공포에 가까운 슬픔을 경험하게 되면 이전에 의미 있었던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시 다른 서사로 재편이 되기도 해요. 그게 시간이 갈수록 놀랍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이걸 작정했다기 보다는 그런 충격적인 슬픔의 과정을 거치면서 한 번은 마무리 짓고 가야 되는 시점이 왔구나, 매듭을 동그랗게 묶어야겠다,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신미나: 저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웠어요. 그냥 최근 3년으로 범위를 줄여서 골라봤습니다.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를 추천하고 싶어요. 이토록 통렬하게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아주 예리하고도 치열하게 분석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걸 개인적 서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어떤 사회관계 구조망 속에서 다시 점검하고 살펴보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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