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김주원 “한계를 넘어서 보는 건 너무 멋진 일“
2006년 ‘브누아 드 라당스’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수상한, 한국 발레의 대명사 발레리나 김주원이 들려주는 틀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무한한 예술에 관한 이야기.
글ㆍ사진 신연선
2025.01.31
작게
크게

사진 : 표기식


“처음이자 끝.” 발레리나에서 작가로의 변신을 꾀한 김주원의 첫 산문집 『나와 마주하는 일』의 출간 소감을 묻자 나온 말이었습니다. 3년을 꼬박 고군분투했던 작업이었는데요.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책의 문장들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풍부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김주원의 발레와 꼭 닮아 있었습니다. 발레라서 가능했던 경이로운 일들에 대해 “결국 발레는 나의 삶의 등대가 되어주었다”(110쪽)고 말하는 예술가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발레라는 것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책을 쓰는 작업은 어땠나요? 쓰기와 발레 사이에 의외의 공통점이 있었을까요? 

춤은 저에게 노하우가 있잖아요. 약 36년 정도를 췄으니까요. 반면 글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았어요.(웃음) 발레라는 예술은 과학적이에요. 규칙이 있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워질 수 있죠. 글도 분명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저에게는 그와 같은 기본기가 없으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어떻게 멈춰야 될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뭐가 좋은 글인지 뭐가 완벽한 문장인지 모르니까 혼란스럽더라고요. 진짜 힘들었어요. 2박 3일 일정으로 글을 정리하려고 강릉에 간 적이 있는데요. 한 문장을 3시간 붙들고 있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저를 많이 돌아봤거든요. 일부러 꺼낸 이야기도 있고요. 글을 쓰기 위해 예전 자료를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 지점에서는 너무 좋았던 시간이었어요. 

 

완벽해야 한다는 마음 탓에 쓰기가 더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막상 문장을 풀어낼 때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잖아요. 

클래식에는 정해진 룰이 있어요. 예를 들어 피아니스트가 노트 하나를 틀리면 그 사실을 듣는 사람이 아는 것처럼 발레도 그렇거든요. 다리 높이가 조금 낮아도, 바퀴 수가 떨어져도 바로 실수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일단 동작적으로 완벽을 기해야 하고요. 또 이것이 표현하는 예술이니까 한없이 깊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도 있어요. 때문에 발레리나들은 완벽을 향해 가는 지점이 있죠. 작은 토슈즈 위에 서서 동작을 만들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문장도 그랬던 것 같아요. 쓰다 보면 절대 꾸며지지 않더라고요. 수식어 같은 걸 쓰거나 감정을 더 쓰면 마음에 안 드는 거죠. ‘뭐 이렇게 꾸며’ 같은 생각도 들고요. 결국 다 쓰고 나서도 엄청 고쳤어요. 쓸데없는 미사여구는 다 빼고, 어떤 챕터는 아예 버리기도 하고 그랬죠.

 

그래서인지 문장이 되게 담백한데 동시에 깊이 있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발레 이야기여서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49살인데 36년 정도 춤을 췄으니까요. 거의 평생을 춤과 함께한 셈이죠. 그래서 발레 이야기를 빼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요. 20대 중반에는 발레리나 김주원 말고 사람 김주원을 사랑해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 적도 있고요. 어떤 시기에는 삶과 일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 현명하게 들리기도 했는데요. 공연 하나를 준비하려면 모든 일상이 공연을 위한 일정으로 짜이는데 어떻게 분리를 하겠어요?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거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까 나의 모든 삶이 무대에 들어가고, 내가 작품 속에 들어가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인 거예요. 심지어 춤을 추지 않는 순간조차 춤을 위한 준비를 하는 순간이니까요. 지금은 김주원과 발레는 같은 거구나, 생각하고요. 그래서 제목도 『나와 마주하는 일』이라고 했어요. 제목을 ‘발레’라고 할 수는 없고, 발레를 표현한 저의 언어가 이것이었어요.

 

아, 제목은 작가님께서 직접 정하신 거군요? 

네, 발레를 한다는 건 연습실에서 거울을 통해 하루 종일 저를 보고 있는 일이거든요. 연습하는 내내 저 자신을 마주해야 하죠. 어떨 때는 저의 비뚤어진 감정을 봐야 할 때도 있고요. 질투에 휩싸인 제 얼굴을 봐야 할 때도 있어요. 옆에 있는 사람은 너무 예쁜데 나는 너무 이상해 보일 때도 있죠. 매 순간, 매일, 온종일 저를 마주하는 게 발레라서요. 제 자신을 무척 잘 알게 되기도 해요. 

 

덕분에 저 자신을 어느 정도 컨트롤하는 방법이 생겼는데요. 제 자신을 너무 들여다보니까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고요. 삶에 한결 겸손해지더라고요. 제 자신도 훨씬 사랑하게 됐어요. 그 이유로 타인도 훨씬 배려하고 사랑하게 됐고요. 그러면서 춤도 더 깊어진 것 같은데요. 결국 발레라는 것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구나, 정말 나와 마주하게 하는구나, 깨달았어요. ‘나와 마주하는 일’이 예술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죠. 

 

책의 입구에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는 모든 이에게’라는 말이 적혀 있어요. 어떤 마음을 담으셨는지 궁금해요. 

어떻게 보면 ‘모든 이들에게’의 다른 표현인데요. 구체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히 저는 청년들과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세상이 자꾸 “적당히 살아도 돼” “쿨한 게 멋있는 거야” “너무 안달하지 마” “쉬어 가”라고 말하는 것 같거든요. 저는 그렇게 삶을 종용하는 게 싫었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내 자신을 체크해 본 후에 갖게 되는 마음이니까요. 그럴 때 쿨함과 여유란 스스로 선택한 게 되잖아요. 이들이 치열하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가 뭘 사랑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탐색한 뒤에 그것을 만날 기회를 줘야 하는데요. 그러지 않은 채 쿨함만을 강조하는 것 같았어요. 결코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저는 이 길이 내 길인지, 이 선택이 내 선택인지 알아볼 기회와 울타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런 혜택을 너무 많이 받았고요. 덕분에 저는 진심으로 제 삶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어요. 그런 이유로 우리 후배님들한테 말 걸고 싶었던 거예요. 매 순간 한계를 마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그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에요. 그렇게 해본 후에 진짜로 자신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니까요. 응원하는 마음이었어요. 한계를 넘어서 보는 건 너무 멋진 일이라고요. 

 

사진 : 표기식


자연처럼 흘러가는 예술가

 

들어가는 글의 “머물러 있지 않는 예술가”(15쪽)와 나가는 글의 “파도처럼 잘 흘러가는 사람”(153쪽)라는 말이 절묘하게 맞물려 있죠. 작가님의 지향성이 ‘변화’ ‘새로움’에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요. 변화의 희열은, 어떤 것인가요?  

새로움을 지향한다기보다는요. 저는 고여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령 똑같은 작품을 매년 출 때도 있거든요. 똑같은 안무, 똑같은 음악, 똑같은 의상으로 무대에 서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지겨워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더구나 주연이라면 제일 많이 출 텐데 말이에요. 저는 작년에, 한 달 전에 췄던 <백조의 호수>와 이번의 <백조의 호수>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한 공연 안에서도 첫 번째 췄던 <백조의 호수>와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의 <백조의 호수>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매 순간 저를 새로운 곳에 던지는 것 같아요. 

 

“나는 편안함이 불편하다. 안전해서 게을러지는 순간 고된 미로를 찾는다.”(138쪽)라는 문장이 떠오르네요. 

편안해지는 걸 경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몸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일 거예요. 안주하거나 만족하는 순간 발전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다른 누구보다 제 자신이 저의 가장 큰 경쟁자인 거죠. 그래서 고여 있는 게 싫었고요. 미친 듯이 안달하기도 하고 저를 너무나 괴롭힌 시기들이 많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는 스스로 그토록 괴롭힌 시기가 필요했던 만큼 잘 흘러가는, 자연 같은 예술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는데요.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저의 표현이나 춤이 계속 삶을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그렇게 자연과도 같은 예술가이고 싶어서 머무르지 않고 흘러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깊이 들어가 자유로워진”(53쪽)이라는 표현도 얘기 나누고 싶어요. 한참 머물렀던 부분이었거든요. 깊어지는 때에야 얻게 되는 자유란 어떤 것일까,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발레는 틀이 있고요.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면 틀렸다고 해요. 그것을 어떤 사람은 답답해하거나 발레의 영역이 딱 그만큼인 줄 아는데요. 오랜 시간 클래식 춤을 고민하고, 오케스트라에 있는 모든 악기 소리에 반응하면서 춤을 추다 보니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점점 발레의 틀 안으로 들어가는데 틀 안에 틀이 없는 거예요. 울타리가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울타리는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틀 안에서 우러나는 감정 하나하나를 만들어내는 건 정말 끝이 없는 거예요. 바이올린 소리 하나에 어떤 표현을 하고, 북소리가 날 때 눈빛이 변하는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저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고요. 틀에서 계속 깊어지고 깊어지고 깊어지다 보면 오히려 더 자유로워지더라고요. 그 틀이 감사하고요. 왜냐하면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고 더 들어가게 하니까요. 

 

깊이 들어가서 자유로워지는 걸 느낄 때의 엄청난 희열과 만족감 한편에는 그곳까지 다다를 수 있을까, 하는 과정에서의 불안이나 회의도 있을 텐데요. 

저 역시 지금도 그래요. 예전처럼 150회씩 무대에 서지는 않지만 지금도 1년에 20회 정도는 무대에 서고 있는데요. 저는 무대에 서기 전에 엄청 긴장하거든요. 아직도 30분 전에 나가서 계속 움직이고, 무대 체크하고, 어떤 토슈즈를 신을지 무대에 서기 10분 전까지 고민하고 그래요. 어쩌면 긴장을 해야 무대 안에 들어가서, 어떤 막을 하나 지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몰입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예술가마다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게 정답은 아니지만 저는 그래요. 그래서 지금도 너무나 혼란스럽고요. 너무나 어렵고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 힘들어요. 작품을 준비하고 만들 때는 옆에 있는 사람을 너무 힘들게 만들기도 하죠. 어쩔 수가 없어요. 무대에 서는 순간 저희는 산화되고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준비가 만 배는 잘 돼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진 : 표기식


거짓말이 없는 곳, 무대

 

“나에게 실패란 더 이상 도전하지 않는 것”(47쪽)이라는 부분은 ‘어떻게 실패를 대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실패의 순간도 ‘공부’라고 생각해버리기까지 어떤 삶의 경험이 있었던 걸까요? 

<해적>이라는 작품으로 18살에 데뷔했을 때의 일인데요. 발등에 금이 갔어요. 스트레스 골절이었어요. 너무 연습을 많이 한 스트레스로 뼈에 골절이 생긴 거죠. 그때 눈물을 머금고 마취 주사를 맞고 공연을 끝냈거든요. 그 후에 곰곰이 생각했어요.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실패예요. 연습한 기량만큼 보여줄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 이후로 엄청 몸 관리를 잘하게 됐어요. 

 

마찬가지로 좌절이 되는 순간이나 제가 하고자 했던 걸 얻지 못한 순간이 오면 저는 침착하게 그 순간들을 되돌리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꼭 가져요. 보면 이유가 다 있거든요. 만약 어떤 감정이 부족했다면 이 감정에 대한 노력은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하다 연극하는 선생님을 찾아가서 드라마적인 걸 배워보겠다는 결론을 내리고요. 발레블랑만 잘 어울린다고들 하면 나 같은 외형으로 카르멘을 연기하려면 어떤 드라마가 필요할까, 생각하다 모든 카르멘 영상을 다 찾아봤어요. 그런 다음에 제게는 무기가 생기는 거니까요. 좌절하고 무너진 순간은 정말 성장하는 계기가 됐어요. 실패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 그런 순간은 정말 큰 공부가 되고 무기가 되는 순간들이었고요. 다음 스텝을 위한 공부와 발전을 해주게 했던 계기들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곳에서 멈춰버린다는 것이 더 불안한 거예요.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는 거니까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챕터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지나간 일에 후회하느라, 다가올 일을 걱정하느라 지금을 허송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현재에 충실한 사람”(81쪽)의 이야기도 더 듣고 싶어요. 

지금처럼 인터뷰를 하면 저는 이 순간이 제일 중요해요. 이 인터뷰가 정말 소중해요. 그래서 이런 순간에 최선을 다해 보는 거예요. 그렇게 했을 때 감사한 결과들이 많았어요. 물론 그러지 않을 때도 있었죠. 보면 그 후에 제가 후회를 하더라고요. 근데 시간이 흘러버리고 나면 어쩔 수가 없고요. 특히 몸은 너무 정직해서 그 시간을 소홀히 보내면 다음 날 바로 티가 나요. 공을 들인 만큼 몸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죠. 감정은 다소 거짓말을 할 수 있겠지만 몸은 거짓말을 못해요. 또 무대는 숨을 곳이 없잖아요. 발가벗겨지는 곳이고 거짓말이 없는 곳이거든요. 그런 직업을 갖고 매일 충실한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까 더 그런 방식으로 살게 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만 생각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것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발레는 집중을 잃으면 중심이 안 잡히고요. 몸에 집중하지 않으면 부상을 당할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일단 너무 힘들어서 집중해야 돼요. 취미 발레를 하시는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발레를 하는 이유가 발레할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나기 때문이라고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를 떠나서 발레를 할 때는 자신한테 집중하고 자기만 생각한대요. 발레 자체가 그렇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 : 표기식


『나와 마주하는 일』은 작가님의 예술론, 예술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해요. 방금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무대, 노력의 진실만이 드러나는 무대를 “내가 추구하는 예술의 깊이”(84쪽)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충이라는 건 생각할 수조차 없”(104쪽)는 것이겠죠? 그 엄중함과 냉혹함이 작가님을 어떤 사람으로 변화시켰는지 궁금합니다.

예술가들은 저마다 너무나 다르긴 한데요. 저는 어릴 때 되게 예민한 아이였어요. 불편한 옷을 입으면 한 시간 동안 쇼크가 온 것처럼 경직이 되어서 누워만 있기도 했고요. 어디선가 물소리가 난다고 이틀 동안 잠을 안 자기도 했어요. 입안에 느껴지는 음식의 질감이 싫어서 메추리알만 먹고 살고요. 그러다 발레를 시작하면서 달라졌거든요. 그런 이유로 발레를 ‘나와 마주하는 일’이라고 한 건데요. 제가 살 수 있게 해준 것이 발레예요. 발레를 통해 제 자신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컨트롤 하는 법을 배웠고요. 무언가에 극도로 예민해지는 순간 어떻게 나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지 이제는 알아요. 발레가 저를 살렸다고도 표현할 수 있고요. 발레할 때가 가장 편안해져요. 그러니까 발레에 제 성향을 맞췄다기보다 발레라는 예술을 하면서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발레로 인생을 배웠고, 이제는 춤에 삶을 담는다고도 했어요. 결국 발레란 작가님께는 삶 그 자체인 것 같아요.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저는 무대에서 결혼을 엄청 많이 했어요.(웃음)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춤을 출 때는 하잖아요. 그래서 어릴 때는 질투의 감정이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도 춤을 추면서 배웠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이 되니까 제가 일상과 삶에서 느꼈던 것들을 춤 안에 표현해 내기 시작하더라고요. 누군가를 바라보는 느낌, 누군가를 이해하는 춤과 누군가를 용서하는 춤 안에 김주원이 담기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발레는 정말 리허설이구나,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발레라는 삶의 리허설을 통해 배웠다 했다면 이제는 내 삶이 발레를 위한 리허설이기도 한 거예요. 정말 발레는 곧 내 삶이고, 내 삶이 곧 발레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자발적인 추방의 이유

 

그런데요. 힘들 때는 없으세요?  

너무 많죠, 너무 많아요. 힘드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쉽게 얻어지는 건 없더라고요. 제가 너무 부족한 게 많고요. 주변에 진짜 잘하는 친구들 많았어요. 그런데요, 저는 그 친구들 덕분에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제 조건이 좋았다면 오히려 재미없었겠다, 할 정도로요. 지금은 제가 하는 걸 그들은 못하잖아요. 다 다르고, 제가 가진 것이 그들에게는 없는 거예요. 

 

그런가 하면 노력한 만큼 꼭 얻어졌거든요. 특히 몸이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요.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거짓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노력한 만큼, 공을 들인 만큼, 시간을 투자한 만큼 얻는 것을 느꼈어요. 결국에는 제 자신과의 싸움이고요. 그렇게 제 표현이나 움직임을 점점 사랑하게 되면서 그 힘듦은 충분히 제가 감수할 수 있는 지점이 됐어요.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저도 같이 사랑하게 됐고요. 바로 그런 감정이 들 때 제 춤에 진심이 담겼거든요. 진정으로 춤에 빠져들었어요. 나를 사랑해야 나를 사랑하는 춤을 추게 되고 상대도 사랑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술로 자신을 마주하는 일을 모든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사진 : 목진우. 제공 : 국립현대무용단

 

자발적으로 추방된 자.’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어요. 편안할 때 불안함을 느낀다고도 했는데요. 어쩐지 그보다 더 큰 마음도 있으실 것 같거든요. 

예술가들은 시대를 조금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실제로 앞서가는 것 같아요. 어떤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새들이 먼저 알고 날아가는 것처럼, 예술가들은 감각적으로 워낙 깨어 있다 보니까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느끼는 면이 있어요. 결국 한 시대가 어떻게 될지 예시해 주는 사람이 저는 예술가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지점이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본능적으로 제가 가진 에너지를 전달할 수 없을 만큼 게을러지거나 둔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본능적으로 다시 감각을 예민하게, 사람들에게 진짜를 전달할 수 있는 상태로 다시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더 깊어지는 무언가가 필요해졌다고 느낄 때가 오는 거죠. 내가 또 다른 언어를 익힐 순간이 왔구나 싶어지면 새로운 장르의 예술가들과 작업하고, 그 장르에 몸을 던져 진심으로 그걸 배우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다시 제 춤을 출 새로운 무기가 생기고요. ‘자발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정확히는 본능적인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춤추는 것이 좋아요. 이제는 젊었을 때 췄던 것처럼은 못 춰요. 그렇게 에너지 있고 힘찬 춤은 출 수 없는데요. 그렇지만 이제 삶을 더 알겠거든요. 지금 내 나이에 맞는 춤을 관객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또 정말 깊은 열망은 후배 무용가님들을 위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그처럼 대단한 무용수들이 관객과 아름다운 교감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관객분들께도 아름다운 무용을 보고 삶의 커다란 감동을 받을 기회를 만들어 드리는 거죠. 그래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세상에 빛이 되는 작품들도 많이 올리고 싶어요. 제가 15년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발레축제’의 총예술감독 겸 대표로 올해부터 3년 동안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삶 가까이에 두고, 이 삭막하고 힘든 시기에 예술로 서로 배려하면서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많이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Writer Avatar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