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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평어는 상대방의 이름을 친근한 목소리로 되찾아준다" (G. 이성민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58회) 『말 놓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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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생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수직적인 존비어체계가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말 놓을 용기』를 출간하신 이성민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나는 존비어체계가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항상 모험적인 삶을 산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존비어체계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모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를 높이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낮추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동등한 인간으로서 함께하는 모험이다. 그런 모험이 존재한다고 했을 때, 반말 B는 모험의 언어일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앞에 있는 동료와 함께 그와 같은 인생의 모험을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방원의 마음속에 생겨날 때, 방원의 주관성에서 발생하는 일은 이렇게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는 그 사람이 자기의 선배가 아니요, 자기가 그 사람의 후배도 아니다. 다만 똑같은 사람으로 마주 섰을 뿐이다. 아니다, 지금부터는 그 사람도 방원의 친구였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철학자이자 번역가 이성민 작가님의 『말 놓을 용기』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이성민 작가님은 한국어에 존재하는 존비어체계가 단순히 한쪽을 높이는 말이 아니라 ‘한쪽을 높이는 동시에 한쪽을 낮추는’ 차별적인 어법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것을 과연 한국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 되묻습니다. 그리고 ‘평어’라는 새로운 한국말을 제시하죠. 과연 평어 사용으로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그 누구도 낮아지지 않고 수평적으로 대화하는 일이 가능할까요?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말 놓을 용기』를 쓰신 이성민 작가님을 모시고 평어를 통해 가능해질 일상의 모험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 이성민 편> 

오은: 먼저 청취자들에게 양해를 구할 게 있어. 오늘 방송을 평어로 진행하는 실험을 해볼까 해. 말을 놓은 채 녹음하는 거라 나는 굉장히 긴장되는데, 성민은 어떤지 묻고 싶네. 

이성민: 나는 그건 긴장이 안 되는데 팟캐스트가 처음이라서 떨려.

오은: 성민의 경우 평어를 사용하는 관계가 얼마나 있어? 『말 놓을 용기』의 편집자와도 평어 사용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려운 점은 없는지도 궁금해. 

이성민: ‘디학’ 사람들은 매 학기 늘어. 매 학기마다 새로 학생들이 들어오니까. 디학의 학생들, 졸업생들과 평어를 사용하고 있고 선생 중에는 두 명과 평어를 써. 그리고 민음사 정기현 편집자랑 평어를 쓰고 있는데 평어를 쓸 때 딱 한 번 <릿터> 팀에서 평어 워크샵 요청을 해온 적이 있어. 그 팀 사람들을 다 만난 적이 있거든. 그때 모두와 평어를 썼는데 이후에 기현 말고는 아직 만날 일이 없었어. 그렇지만 만나면 아마 평어를 쓸 것 같아. 암묵적으로 동의가 된 것 같거든. 

개인적으로는 되게 오래된 평어 친구들이 있어. 대학원 시절에 평어를 쓰게 된 친구가 한 명 있고, 그 이후에 또 한 명이 있어서 두 명의 평어 친구들이 있지. 사실은 반말인데 그래도 나이 차이가 나면서 서로 반말을 쓴 거라서 원조 평어라고 볼 수 있지, 말하자면. 

오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평어를 쓸 수 있는 관계가 있고, 존비어체계에 물들어서 어쨌든 거기에 응하듯 말을 해야 될 때가 있을 텐데 이게 혼란스럽거나 하지는 않는지도 궁금했어. 

이성민: 개인적인 친분 관계에서는 사실 선택을 해야 되는 거잖아. 친하기 싫은 사람인데 굳이 평어를 쓸 필요가 없지.(웃음) 내가 지금 아주 오래된 평어 친구라고 하는 것도 내가 먼저 제안을 했을 거 아니야, 같이 평어를 쓰자고. 그랬을 때는 상대가 친구 하고 싶은 애였던 거지. 되게 이상한 건데 그 당시 내가 제안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동성과는 다 안 됐어. 이상하게 남자들, 동성 간의 선후배 관계는 그게 수용이 잘 안 되더라고.

오은: 평어 관계가 계속 유지되면 더 끈끈해지거나 이런 게 좀 느껴져? 

이성민: 그렇게 될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끈끈한 건 별로 안 좋아해. 다만 소통이 잘 되는 게 좋아. 정신적으로 소통이 잘 되거든. 

오은: 성민의 프로필을 소개할게. “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시립대에서 철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심리학, 인류학 등을 공부했으며, 관심 분야의 집필과 번역 작업을 해 왔다. 저서로는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줄리엣 미첼의 『동기간: 성과 폭력』, 슬라보예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비롯해 10여 권이 있다.” 

이제 『말 놓을 용기』가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겠어. 이 책, 어떤 책이야? 

이성민: 추천사를 보면 그 글을 써준 사람들이 다들 책 소개를 너무 잘했더라고. 어른들의 우정 지침서라는 표현도 있고, 용사들의 토템이라는 표현도 있잖아. 한국말에 도래할 어떤 새로운 혁명을 위한 책 같은 말까지 난 다 좋거든. 그래서 더 좋은 말을 생각해봤는데 못 찾았어. 은이 해줘. 

오은: 말이란 정보 전달이나 감정 전달뿐 아니라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예 같기도 하거든. 근데 그 관계의 지각 변동이 이 책으로 시작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그 이유는 이 책이 평행 선상에서 존재와 존재를 만나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야.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게 단순하게 누군가를 지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와 나는 동일한 존재다, 동일한 가치를 지닌 존재다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일 같았고,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 사회에 일갈하는 책이라고 생각했어. 

이성민: 나도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해. 여기 실린 글 중 처음에 쓴 글이 2014년이거든. 그리고 올해, 2023년에 쓴 글까지 포함돼 있으니까 횟수로 따지면 딱 10년이야. 그러니까 이 책에는 10년 동안의 평어에 대한 고민과 시간이 들어있는 것 같아. 평어가 되게 새로운 말이긴 한데 내 개인의 역사에서 보면 되게 오래된 문제거든. 그래서 10년짜리 책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 

오은: “평어는 ‘이름 호칭 반말’로 이루어진 새로운 한국말이다.” 이 문장이 책의 첫 문장이야. 본격적인 이야기 나누기에 앞서서 평어가 뭔지 청취자들에게 설명해 주는 시간을 가질까 해. 평어란 대체 뭐지? 

이성민: 가장 새로운 건 이름 호칭이라고 할 수 있지. 처음에 이름 호칭을 개발할 때 염두에 둔 게 반말 호칭이거든. 그러니까 반말 호칭을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어. 반말 호칭은 예를 들면 형, 누나, 오빠, 언니, 선배나 아랫사람 부를 때 누구야, 이런 거잖아. 성민아, 은아, 이런 것 말야. 이런 게 다 반말 호칭인데 이걸 쓰게 되면 이미 주어진 관계가 당겨져 와. 성인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어서 사용하는 게 평어인데 말이야. 가족 관계라든가 학교 관계처럼 성인 이전에 우리가 성장한 공간들 속의 프레임을 반말 호칭이 끌고 오기 때문에 그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 평어 관계에서는 반말 호칭을 쓰게 되면 반말로 그렇게 미끄러져 가는 거야.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이름 호칭이라는 걸 생각했어. 그냥 이름만 부르자고. 한국어의 경우 성명 가운데 성은 호칭으로 쓸 수가 없어. 일단 너무 짧아. 서양이나 일본 같은 데는 성 자체가 길기 때문에 호칭으로 쓸 수 있거든. 그러니까 한국의 이름은 호칭 자원이 되게 빈약한 거지. 그래서 쓸 수 있는 게 이름밖에 없더라고. 이때 주의해야 될 건 예를 들면 “성민이가 한 말” 이렇게 하면 안 돼. “성민이 한 말” 이렇게 해야 돼.

오은: 사실 우리에게는 반말이 있었잖아. 어릴 때 가장 잘 구사하던 언어 체계라고도 말할 수 있을 텐데 책을 읽다 보니까 ‘평어로 반말 자원을 문화적으로 개발한다’는 표현이 있더라고. 그 개발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하기도 하는데, 이게 존비어체계의 지속적인 방해를 또 받아왔다고도 이야기했어. 여기에 대해 얘기 좀 해줘. 

이성민: 나는 영어 번역도 하고 해서 영어권의 문화에 익숙한 편이거든. 이거는 가설인데, 거기는 반말이 평어로 올라가는 문화 같아. 어렸을 때는 당연히 걔네도 반말을 쓰겠지.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정치 사교계든 뭐든 나가게 되면 언어가 되게 점잖아져. 아름다운 언어들을 많이 쓰거든. 그럴 때 그런 언어를 나는 평어라고 부르고 싶어. 그러니까 성인이 돼서 사회에 진출해서 하는 말들은 어릴 때와는 다른 거야. 

예를 들면 영어권에서는 스피치 같은 거 잘해야 되잖아. 장례식이든 결혼식이든 나와서 한마디 하라고 하고. 그럴 때 잘해야 돼. 또 파티도 많이 하는데 그게 다 사교계의 고급 문화거든. 그때 말 잘해야지. 근데 우리는 그런 게 별로 없지 않나 싶더라고. 그걸 대체하는 게 우리는 존댓말 같아. 어른이 되면 그냥 존댓말 쓰는 거지.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이야.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줘. 

이성민: 내가 디자인 세계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읽었던 책이야. 공동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고, 디자인은 모르고 있을 때였는데 『커뮤니티 디자인』이라는 책을 만났어. 이 책은 일본의 디자이너 야마자키 료라는 사람이 쓴 책이고, 14개의 커뮤니티 디자인 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하는 내용이야. 야마자키 료는 원래 조경 디자이너였거든. 이 사람이 어느 날 공원에 있는데 그전까지는 공원도 누군가가 디자인을 한다는 거를 생각하지 못하다가 그 사실을 깨달은 거야. 그런데 그 다음 또 뭘 깨달았냐면 공원에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 공원을 누군가 디자인 했는데 이걸 아무도 안 찾으면 무슨 소용이 있지, 하면서 이 사람이 전업을 하거든. 그러니까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야. 그래서 커뮤니티 디자이너가 되고. 실제로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활동가야. 나는 이 사람한테서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 새로운 유형의 실천가를 봤거든. 그래서 적극 추천해. 

한 권만 추천하라고 그랬는데 하나만 보태면(웃음) 이 사람이랑 건축가가 서로 편지 형식으로 대화를 나눈 『작은 마을 디자인하기』라는 책이 있어. 말하자면 이게 뒷얘기야. 『커뮤니티 디자인』의 뒷얘기가 여기 담겨 있어서 같이 읽으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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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말 놓을 용기

<이성민> 저14,400원(10% + 5%)

나이와 경력에 따른 수많은 호칭과 직함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수직적 관계 구조를 타파하고 수평적 소통을 이뤄 보려는 숱한 시도들이 있어 왔다. 직함 대신 영어 이름을 부르는 기업 문화가 유행하고, ‘착한 반말’이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 언어로 활용되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 수평적 소통을 향한 열망이 새싹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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