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공간에 살고 있나요?
『집이 나에게 물어온 것들』 장은진 저자 인터뷰
남편과 함께 1년 4개월에 걸쳐 지은 집 ‘기윤재(奇潤齋)’는 아침에는 빛으로 밤에는 어둠으로 꽉 차는 집이다. 집은 삶을 반영하고 삶에 영향을 주기에, 집의 여러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은 깊은 사유의 원천이 된다.
남편과 함께 1년 4개월에 걸쳐 지은 집 ‘기윤재’는 아침에는 빛으로 밤에는 어둠으로 꽉 차는 집이다. 불안을 넘어서는 문지방(현관), 빛의 산책로(창문), 정주의 말뚝(문패), 너와 나의 별세계(다실), 변화의 구조(스킵 플로어), 별 헤는 방(옥탑방), 수컷의 바람(비밀의 방), 머리와 가슴의 시가 흐르는 공간(책장)……. 집의 공간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며, 그곳에 머무는 사람과 삶을 함께한다. 집은 삶을 반영하고 삶에 영향을 주기에, 집의 여러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험은 깊은 사유의 원천이 된다. 내 몸이 딛고 부딪히고 어루만지는 나의 공간, 나의 집이 불러일으키는 생각과 마음을 담아낸 이 책은 공간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돌아보게 해준다.
편리한 도시를 떠나 교외에서 살기로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도심의 가장 번화한 곳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편리로 따지면 무엇이든 쉽게 구할 수 있고, 어디든 쉽게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새로운 물건, 가게들이 즐비했고요. 많은 사람이 매일 오가는 동네였습니다. 어릴 적에는 주변의 모든 자극이 배움이고, 도전이었고 그걸 즐겼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피로함으로 바뀌는 때가 오더라고요. 시각, 청각이 예민한 편이거든요. 들려오는 자동차 엔진 소리로 아빠 차, 옆집 차, 앞집 차를 구별할 정도였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소리들을 보고 듣는 일이 점차 힘들어지더니, 어느 순간 버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 환경이 특별히 안 좋았다기보다는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는 제 임계치가 낮아진 시기였습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신혼집 이야기를 나눌 때 단호하게 지금의 동네로 오자고 했어요.
집을 짓고 나서 가장 후회되는, 그래서 또 기회가 된다면 바꿔보거나 새로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평소에 ‘아, 이렇게 할걸.’ 하는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그런데 질문을 받으면 또 생각이 잘 나지 않습니다. 오래지 않아 잊고 또 적응해서 살아갑니다. 공간이 사는 방법을 이끌기 때문일 수도 있고, 후회로 계속 돌아볼 만큼 치명적인 부분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요. 남편에게 물으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텐데, 일단 저는 그렇습니다.
후회와는 별개로, 집을 또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단층집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의 집과 완전히 반대되는 집이요. 한 층씩 평면을 쌓아가면서 완성한 공간들을 단층 평면에서는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 얼마만큼 재미있게 집이 지어질 수 있나 궁금하거든요.
제가 ‘다음에 또 집을 짓는다면’이라고 가정을 하면 기윤재에서 평생 살 거 아니냐고 물으시기도 하는데요. 저는 집에는 물리적인 수명뿐만 아니라, 관계의 수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가족들의 생애주기에 따라 언젠가는 집을 옮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히려 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집이 더 애틋해집니다. 그 시간까지 기윤재에서 후회 없이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집 이름에 담긴 의미가 독특합니다. 어떻게 이름 지은 것인가요?
건축가와 설계 계약을 하자마자 원하는 집에 관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만들었습니다. 남편과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을 서술하고 요약한 키워드들과 사진 자료들을 넣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 표현할 이름을 첫 페이지에 넣어야겠더라고요. 이름과 이름의 의미를 알고 설계에 들어가는 것과 아닌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뽑아둔 키워드들이 영어로 된 형용사들이었는데요. 한글로 바꾸고 의미를 압축해서 표현할 한자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남편과 아이 이름을 한자로 써봤는데, 그 안에 우리가 생각하는 집이 담겨 있더라고요. 남편 이름에서는 소방봉, 미끄럼틀, 그물침대와 같이 기발한 장치들이 많은 집을 표현하는 기(奇)자를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남편이 이런 장치들과 비밀의 방까지 아이디어를 많이 냈습니다. 밝은 기운을 가지고 풍요롭고 넉넉한 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아이의 이름에서 윤(潤) 자로 따왔어요. 이렇게 기발하고 넉넉한 집, ‘기윤재’가 되었습니다.
정원의 샌드박스를 비롯해 거실로 올라갈 수 있는 미끄럼틀, 클라이밍 벽까지 집 안 곳곳에 아이를 위한 공간이 있습니다. 이 집에서 아이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나요?
말씀대로 집에서 즐길거리들이 아주 많아요. 그런 요소들은 이 집의 특별한 구조 덕분에 생겨난 것들입니다. 기윤재에서 얻는 공간의 경험이 일반적이지는 않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와 친구들이 그린 집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은 아파트와 아파트 놀이터, 주변 상가들을 그렸더라고요. 더 디테일하게 그리는 친구는 자신의 집이 몇 층에 있는지 표시를 하고요. 저희 아이의 그림을 보니 입체파처럼 여러 시선에서 그렸더라고요. 마당에서 바라보는 집 안에 테이블은 멀리 소실점이 있는 듯 원근법으로 그리고, 지붕과 하늘 사이에 집 뒤에 있는 석축을 그린 걸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친구들과는 다른 공간에 대한 경험치가 삶에서 하나의 은유로 작용하면 좋겠습니다. 삶에서 어떤 문제를 겪을 때, ‘대다수가 알고 있는 답이 아니라 다른 답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집처럼.’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밖에서 보면 이층집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공간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스킵 플로어 구조를 활용해 이렇게까지 입체적으로 공간을 나누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기준이 있었나요? 처음 의도대로 완성되었나요?
저희는 원하는 공간들을 텍스트와 사진 정도로 쭉 나열해서 건축가에게 전달했고, 그 모든 걸 도면 위에 구현해 주신 건 역시 건축가입니다. 건축가들의 사고는 스케일은 크면서 디테일에도 강합니다. 그 사이에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고요. 설계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매스 작업이라고 집의 큰 덩어리들을 결정합니다. 제 눈에는 다양한 크기의 점보 지우개를 이리저리 얹어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매스 작업 후에 구조를 잡았는데요. 그때 기윤재의 대지가 약간의 경사면에 있으니 스킵 플로어 구조로 해보자고 건축가님이 말씀 해주셨습니다. 구조 내에서 저희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넣기 위해서 건축가와 함께 고민했습니다. 기준이라면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었습니다.
이 입체적인 구조가 사실 평면도만 보면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요. 건축사무소에서 ‘스케치업’이라는 프로그램으로 3D로 만들어서 보여주셨습니다. 컴퓨터 화면 속과 정말 똑같이 지어지더라고요.
현관문을 닫으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는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개방형 공간입니다. 주택에 살면서 느끼는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모든 장점을 뒤집어 보면 단점이 됩니다. 탁 트인 개방형이라서 좋지만 그만큼 밖에서 안이 잘 보여서 사생활 유지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 좋은 만큼, 제가 챙길 부분이 많습니다. 여름에는 생동하는 푸른 나무들을 보며 저도 들썩들썩하는데요. 마당을 돌아보면 무성한 풀들을 뽑는다고 한바탕 전쟁을 벌여야 합니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왕이면 눈도 많이 오고요. 그만큼 동파 방지를 철저히 해야 하고, 눈이 오면 골목을 쓸어야 합니다. 마을 분들 생각하면 눈 내리는 걸 넋 놓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죠. 봄볕, 가을볕을 즐기고 싶으면 하얀 피부는 포기해야 하고요.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내놔야 하니까요. 이걸 알면 모든 일을 장단점으로 느끼기보다는 ‘이게 사는 거지.’ 하게 됩니다.
교외의 전원주택에서 살기를 꿈꾸는 사람이 많을 텐데, 그 일을 실현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전원주택을 꿈꾸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어렴풋이 생각만 해보실 게 아니라 명확하게 글로 써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지금 사는 곳에서 포기할 수 없는, 좋은 부분들도 함께 적어보세요. 직주 거리, 자녀들의 학교, 교통, 상업 인프라…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내가 전원주택에 가고픈 이유와 현재의 집이 가진 장점을 비교해 보는 거예요. 이왕이면 혼자가 아니라 가족들과 대화하면서요. 당장 어렵다면 가족들의 생애주기, 즉 은퇴나 자녀 입학, 취업 등과 맞춰보면서 주택으로 가는 시기를 정해봅니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대지 구입, 예산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보는 거죠. 꿈을 글이나 그림으로 선명하게 표현해 두면 실현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고 생각합니다.
이 집에서 작가님이 가장 애정하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한 공간에 애정을 쏟기보다는, 집 안 곳곳을 공평하게 애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집을 돌보는 느낌이 들어서 꽤 즐겁거든요. 집을 둘러보다가 근래 소외되었다 싶은 공간이 있으면 의식적으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왜 여기에 요즘 오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보고, 가구나 물건들의 위치를 바꿔보고요. 읽는 책들도 가져다 놓습니다.
그래도 하나를 뽑자면, 요즘은 게스트룸의 평상이에요. 사실 여름에서 이즈음까지는 가족들과 자주 여기서 잠을 잡니다. 특히 비가 오는 날 밤에는 정말 최고예요. 창문을 활짝 열고 누워서 소리를 듣는데요. 비가 떨어져 데크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옥상에서 우수관을 타고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 샌드박스에 덮어놓은 천막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마치 캠핑장에서 옆 텐트가 비 맞을 때 나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생생한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릴 적 생각도 나고, 마음이 정말 편안해집니다. 땅과 맞닿아 사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세이 작가와 티소믈리에는 서로 잘 어울리는 직업으로 보입니다. 두 가지 일이 저자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두 가지는 상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완성될 수 없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 글은 누가 읽어주지 않으면 혼자 쓰고 마는 일기가 되고, 제가 내어드리는 차를 마실 사람이 없다면 혼자 하는 소꿉놀이가 되고 말겠죠. 혼자서만 간직하는 행위가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작가와 티소믈리에라는 이름이 붙었을 때 그 일의 의미는 상대가 있어야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늘 달고 있어야 하는 일이죠.
상대에게 무언가를 내보이는 일은 설레면서도 두려운 일입니다. 내보였을 때의 평가, 즉 ‘최고’를 정하는 건 제가 아니라 상대의 일이니까요. 그래서 하는 동안은 되도록 ‘최선’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하는 거죠. 책은 한 잔의 차와 같습니다. 맛있는 물과 차를 고르듯 책에 담을 내용을 잘 선별하고 적절한 물의 온도와 시간으로 맛있는 차를 우려내는 것처럼 내용에 알맞은 언어로 시간을 들여 썼습니다. 눈으로 먼저 차를 마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찻자리의 차림도 중요한데요. 그처럼 책의 표지와 삽입된 사진, 내지의 디자인까지 읽기 전에 보이는 부분까지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렇게 여러분께 이번 책을 내어놓습니다.
*장은진 창밖의 사람과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디자인을 배우고 업으로 삼았다. 민들레 홀씨처럼 방방곡곡 부유하며 살았다. 산사에 들어가고, 사막을 거닐며, 물 건너 이국에서 살기도 했다. 문득 홀씨의 꿈은 깊고 굵은 뿌리를 내리고 제 삶을 아름답게 꾸리는 것임을 깨달았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기윤재를 지었고, 그 안에 산다. 문장의 쉼표 사이에 숨어 있는 질문을 길어 올려 글로 엮기 시작했다. 머리는 시원하고 가슴은 따뜻해지는 글을 쓰길 소망한다. 매일 창가에서 차를 마신다. 여전히 창밖을 보길 좋아하지만, 창에 비친 나를 들여다보는 일에도 소홀치 않으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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