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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관계로 나아가는 하지현 교수의 심리학 수업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 하지현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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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 함께하는 시간, 과정에 집중하고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그날의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마음의 문제를 예리하게 분석해 명쾌한 해답을 들려주며 많은 이에게 신뢰받는 정신과의사 하지현 교수가 이번에는 성인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책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을 펴냈다. 취업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한 성인 자녀가 많아졌고, 아예 결혼하지 않으면서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자녀도 흔한 시대다. 저자는 독립하지 못한 성인 자녀, 연로한 부모님, ‘중년의 위기’라는 3중고를 맞이한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해 삶의 균형을 잡고 행복을 찾아가는 방법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어른이 된 자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인생 후반기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부모와 자녀가 어른과 어른의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응원과 공감, 해결책을 건네는 책이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은 연로한 부모님과 독립 못 한 성인 자녀에 끼인 중장년 세대를 위한 심리학 도서인데요. 이런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듣고 싶어요.

자녀가 잘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이왕이면 더 잘 자란 상태에 부모의 품에서 떠나기를 바라지요.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또 사회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다 보니, 독립의 시간이 뒤로 밀려가고 있습니다. 실제 통계를 봐도, 평균 취업·초혼 연령은 30세를 넘었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눈은 20대 중반의 자녀를 봐도 여전히 아이로 보게 됩니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보듯 마냥 불안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지원을 바라면서도 동시에 독립을 원하고, 지원을 간섭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와 자녀분들을 많이 만나고 있습니다. 저도 20대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요. 책이란 것은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고민을 풀어낼 때 가장 솔직해지고 진정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20년 전에 아이들이 어릴 때 『전래동화 속의 비밀코드』란 책을 썼고, 10대일 때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라는 책을 그래서 썼습니다. 이제는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부모가 자녀와 어른과 어른으로 관계를 맺기 위한 마음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쓰면서 많은 것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도 중장년 부모로서 이 책의 주요 독자들과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계실 텐데요. 집필 과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으실까요?

성인이 된 자녀에게 어른이 되어 마주하는 세상은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그에 반해 부모는 비록 세상이 꽤 바뀌었지만 자녀가 헤쳐 나갈 어른의 시간을 한 번 걸어왔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길 바라서 조언을 합니다. 이왕이면 실패하거나 돌아가지 않고 쭉 뻗은 가장 빠른 길로만 나아가길 바라니까요.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꼭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진짜 공부는 빙 돌아가고 실패해 보면서 몸으로 직접 느끼며 하는 것이니까요. 부모는 자녀가 지름길로 이끌기보다 길을 헤매고 실패를 겪을 때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하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경쟁에서 뒤로 밀리는 것 같아 속상하더라도, 인생을 길게 바라봤을 때 필요한 숨 고르기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는 경험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자녀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아직 젊은 뇌는 도파민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새로운 경험에 끌리고 더 강한 보상을 얻습니다. 그에 반해 부모의 뇌는 이제 도파민에 덜 반응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경험해도 전에 비해 둔감합니다. 이런 뇌의 반응 차이로 자녀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할 때 부모는 시큰둥하고, 그 때문에 의견 차이가 생기기 쉽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점 차이로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요. 이와 같은 연령에 의한 뇌의 반응 차이가 관점과 태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달라지면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갈등 요인도 많을 것 같아요. ‘어른을 키우는 어른’의 고민으로 내원하시는 내담자들께 자주 드리는 조언이 있으실까요?

겉으로는 새로워 보이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 갈등은 보편적입니다. 모두가 잘 지내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다가 부딪치고 아파합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내가 익숙하게 해온 방식이 언제나 잘 통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나아가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놓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고기를 썰던 칼로 갑자기 회를 뜨면 잘 들지 않을 수 있겠죠? 나이가 들면서, 내 주변 상황이 바뀌면서, 또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면서 지금까지 잘 통하던 내 문제해결 방식이나 태도를 바꿔야 할 때가 있습니다. 관성의 힘이나 이전의 성공 경험들이 변화하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10대까지의 자녀를 대하는 방식과 20대를 넘어선 자녀를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달라져야 합니다.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완벽함’과 ‘충분히 좋음’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완벽함은 100점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좋음’은 60점을 넘기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100점을 지향하면 하나라도 부족하면 문제라고 느껴집니다. 100점이 아니면 본질적으로 실패로 보는 것이죠. 그런데 언제나 꽉 차 있는 물컵은 조금만 흔들려도 넘칩니다. 오히려 문제가 발생하기 쉬운 위태로운 상태입니다. 그에 반해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하고 있고,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나쁜 것들을 피하고 있다면 일단 기본은 된 것입니다. 가족과 자녀가 생활하기 위한 의식주를 제공하고 따뜻한 휴식처이자 ‘안전기지’로 부모가 역할을 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실은 그런 역할을 꾸준히 수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걸 60점이라고 여기고, 이를 완수하면 일단은 성공입니다.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바라보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나머지 40점을 채우는 것은 상황에 따라, 운에 따라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어도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가끔 100점을 찍지만 40점이 될 때도 많은 부모보다, 언제나 60점은 넘는 부모를 지향하는 것이 자녀와 부모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부모의 마음뿐 아니라 성인이 된 자녀의 마음과 태도에 관해서도 함께 다뤄주셔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한층 깊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위해 성인 자녀가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서로 지내온 관계의 시간이 길다 보니 자녀가 부모를 바라볼 때 좋은 기억만 갖고 있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사의 마음, 미움과 야속함의 감정이 공존하지요. 어린 시절 자신을 통제하고 간섭하던 부모에게 느꼈던 마음으로 부모를 바라보면 불평과 화부터 나오곤 합니다. ‘내 마음속 어린아이’가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풀어갈 대화도 바로 꼬여버리고 갈등으로 이어져 버립니다. 돌아서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거나, ‘역시 부모님은 안 변해’라는 확신만 강해지죠. 이때 ‘부모님과 나의 관계 어른과 어른의 관계’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어릴 때부터 이어진 감정의 흐름에서 벗어나 사회에서 만난 그 나이대의 어른과 처음 만나 대화를 한다고 가정해 보는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리셋 마인드’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전과는 달리 보일 것이고 감정의 급발진도 줄어들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어른과 어른의 관계로 나아가려면, 자녀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행복한 일상을 꾸리는 팁이 있을까요? 

저는 수십 년 동안 자녀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포기하면서 살아온 부모에게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무게중심을 나로 옮기자고 말합니다. 먼저 내게 남은 시간을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살아온 날보다 남은 시간이 적어진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만큼 하루의 가치는 매일매일 조금씩 커집니다. 그러니 하루를 더 의미 있고 소중하게 보내고 싶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녀를 키우느라 미뤄놓았던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걸 한번 쭉 적어 보자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지요. 적어둔 것들을 하나둘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삶의 무게중심이 나에게로 넘어와 있을 것입니다. 부모인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성인이 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기도 합니다.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은 앞으로 ‘어른을 키우는 어른’이 될 독자에게도 유익한 책일 것 같습니다. 그분들에게 어떤 마음가짐과 준비가 필요할지 말씀해 주세요.

행여 이 책을 펼쳐보고 “와, 애 낳고 키우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구나”하고 한숨부터 나올까 걱정이 되네요. 하지만 결과보다 과정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돌잔치 때 아이가 쥔 물건을 보면서 그려보았던 자녀의 미래가 실제로 현실이 될 일은 많지 않듯이,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보다 아이와 함께한 시간 속에 내가 경험하는 기쁨, 행복감, 만족감은 그 어떤 경험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 과정에 집중하고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그날의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좋은 부모입니다. 지금 그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른이 된 자녀에게도 좋은 부모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하지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병원과 학교에서 진료하며, 읽고 쓰고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캐나다 토론토 정신분석연구소에서 연수했고, 2008년과 2022년에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
하지현 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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