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다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G. 김희재 소설가)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55회) 『탱크』
사랑이 나오니까 당연히 상실이 잇따르고 상실이 잇따르니까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2023.08.24)
둡둡은 그동안 한 번도 탱크 이야기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저 바라던 게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있다, 어쩐지 예감이 좋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정도의 말을 했을 뿐이었다. 단순히 종교적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라거나 탱크의 규칙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탱크에서 한 기도가 너무 간절하고 소중했기 때문에 차마 말할 수 없었다는 것을 양우는 알려야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둡둡이 양우의 그 한마디에 모든 걸 걸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함께 기도하러 가달라는 둡둡의 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고 기꺼이 응하고 만 것은 그 때문이었다.
김희재 작가가 쓴 장편 소설 『탱크』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오늘 모신 분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완성'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마음으로 첫 번째 장편 소설을 낸 작가입니다. 같은 소설로 올해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죠. 『탱크』의 김희재 소설가입니다.
황정은 : 어서 오세요.
김희재 : 안녕하세요. 김희재입니다.
황정은 : 반갑습니다.
김희재 :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정은 : 나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소설 『탱크』가 첫 장편 소설인 거죠?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김희재 : 감사합니다.
황정은 : 그리고 한겨레문학상도 받으셨어요. 수상도 축하드려요. 「작가의 말」에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의 일기를 수록하셨는데요. 2023년 5월 16일 일기에 "됐다. 감사합니다."라고 쓰셨더라고요. 그날이 당선 소식을 들은 날이었을까요?
김희재 : 그날 저녁 7시 정도에 당선 소식을 들었는데요. 사실 약간 마음을 놓고 포기하고 있었다가 받은 소식이어서 더 정신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황정은 : 듣고 어떠셨어요?
김희재 : 일단 너무 정신이 없었고... 정말 정신이 없었고... 저는 그것보다는 일찍 (당선) 연락이 갈 거라고 생각을 해서 마음을 놓고 친구와 밥을 먹고 있었는데요. '한겨레입니다' 하고 연락이 와서 정말 '됐다. 감사합니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너무 가슴이 뛰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눈물이 나지 않았나요?
김희재 : 눈물 났죠. 눈물도 나고 진짜 정신이 없었어요. 앞이 하나도 안 보이고, 약간 먹은 게 다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황정은 : 얘기 듣는데 제가 다 가슴이 뛰네요. 상상이 돼서. (김희재 작가님은) 영화영상학과에 진학을 하셨고요. 사운드 기술을 전공하셨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10년 넘게 녹음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오시기 전에 녹음실에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어떤 일인지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김희재 : 제가 하는 일은 전반적인 사운드 음향이라기보다 음악에 국한돼서 음악을 녹음하고 믹스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영상 음악을 많이 하는데 드라마나 영화에 들어가는 음악을 연주자 분들을 섭외해서 연주하시는 것을 녹음하고 그 데이터들을 잘 만져서 하나의 음악 파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황정은 :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쯤 하셨을까요?
김희재 : 사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대학 가서 시나리오 쓰면서 하게 됐고, 그 전에는 그냥 정말 좋아하는 게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소설을 진짜 읽는 걸 좋아했는데, 그래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소설은 읽을 수는 있지만 쓸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되게 강하게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읽을 때는 너무 재미있고 좋은데 '참 대단하시다, 이걸 다 어떻게 쓰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가 필사를 하면서 '비슷하게 써보기라도 할까?' 하면서 쓰면서 제 것을 찾아갔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 오늘 『탱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텐데요. 『탱크』라는 소설은 무엇보다도 믿음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었거든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가님에게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김희재 : 진짜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로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저 역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 생각하고 썼지만, 쓰면서 자꾸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는 생각을 받았고, 사랑이 나오니까 당연히 상실이 잇따르고 상실이 잇따르니까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
황정은 : 사랑이 상실로 연결되는 게 필연이었습니까? 왜 그랬을까요?(웃음)
김희재 : 그러게요. 사실 이게 '뭐를 써야지' 하고 구성을 잡고 기승전결을 짜고 쓴 게 아니라, 그냥 도선이부터 쓰고 양우랑 둡둡이 쓰고 탱크 나오고 손부경 황영경 나오고 하면서 진행된 거라... 그런데 제가 습작을 할 때 보면 사랑이 상실로 이어지는 이유는 중간에 자꾸 극복 불가능한 갈등을 넣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황정은 : 소설에 등장하는 탱크는 간절한 바람을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하는 장소인데요. 산속에 놓인 빈 컨테이너입니다. 그리고 이 사물은 기도의 효과를 보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종교적 상징이 되기도 하잖아요. 이름이 왜 탱크일까요? 왜 그런 이름을 붙이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희재 : 정말 단순하게, 이걸 쓸 당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사를 많이 봤는데 거기에 탱크가 정말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제가 약간 어원 찾는 걸 습관적으로 해서 '탱크는 왜 탱크가 됐지?' 하고 찾아봤더니 물 저장소로서의 탱크를 영국군에서 약간 보안 유지 식으로 장갑차에 붙인 거더라고요. 그러니까 장갑차 탱크도 사실 딱히 다른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물 저장소 탱크에서 착용한 단어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놀랐고 '탱크라는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는 하나였는데 엄청나게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됐구나. 굉장히 재밌다. 나도 같은 의미의 탱크에 다른 이미지를 넣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황정은 : 저는 이 탱크의 세계관이 낯설지 않거든요. '간절한 것이 있으면 우주가 돕는다.'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를 해보자면 '사람의 인생을 생각한 대로 흘러가기 마련. 의식을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흘려 보내면 우주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줄 것이다. 간절함은 현실이 된다는 것을 믿으라'라는 내용이잖아요. 혹시 출처가 있을까요?
김희재 : 진짜 출처가 많아요. 모든 마인드셋 책에서 주장하는 바이기도 하고. 일단은 가장 첫 번째 출처는 성경인데, 성경에도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구절이 있어요.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찾으라, 그리하면 될 것이다.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이런 건데, 저는 성경을 읽을 때 그 문장이 되게 강렬했거든요. 그런데 진짜 신기한 게 기독교 천주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비슷한 문장을 다 설파하고 있더라고요. '너희가 원하고 바라면 우리 신이 그걸 들어준다. 그러니까 열심히 바라라.'
그런데 더 신기했던 건 마인드셋 책들, 자기 계발서들도 다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간절히 원해라, 그러면 우주가 들어준다.' 혹은 '뭔가 어떤 다른 힘이 들어준다. 미래가 들어준다.’ 저는 이게 약간 믿음의 본질처럼 느껴졌어요. 사람들이 이걸 진짜 간절히 원하는구나. 얼마나 옛날부터 원했으면 모든 종교의 교리의 초석처럼 '너희가 원하면 우리 신이 들어준다'라고 하고, 자기계발서도 계속 원하면 들어준다고 하고. 믿음의 본질 희망의 본질이 여기 있다고 생각을 해서 이 세계관으로 뭔가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황정은 : 둡둡과 양우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 싶어요. 양우가 둡둡을 따라서 탱크를 방문합니다. 양우는 딱히 탱크의 세계관을 믿지는 않는 사람인 거잖아요. 그래서 양우가 그 장소에 가서 이런 광경을 보는 거죠. '여름 습기에 녹슬어 가는 컨테이너가 폐허의 모습으로 서 있다'는 거잖아요. 간절한 기도를 하는 장소인 것이고 방문하는 사람들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그곳을 찾아가는 건데, 그 장소의 모양이 왜 하필 페허였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이런 장소에 기도실을 세우셨어요?
김희재 : 일차적으로 표면적인 이유는 이게 어떤 승인된 종교도 아니고 소설 속에도 나왔듯이 뭣도 아닌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걸 보여서 좋을 것도 없고, 그래서 최대한 안 보이는 쪽에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못하면 걸릴 수도 있고 제재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안쪽에 넣었는데 계속 쓰다 보니까 이미지적으로도 조금 페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어쩌면 좀 영험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탱크(가 있는 곳) 아래쪽에 과거 서낭당이었던 곳도 넣었고요.
황정은 : 소설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어떤 믿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반드시 붙들어야 하는 문제였다." 일단은 둡둡이 가졌던 믿음이 둡둡 자신에게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살기 위해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소설로 쓰는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김희재 : 과정에서 습관적으로 자아 성찰을 많이 했는데요. 의도치 않게. 원래 약간 뒤돌아보고 반성하고 습관적으로 검열하고 이런 걸 하는 편이긴 한데, 이 이야기들을 쓰면서 세상의 많은 약간 비극들을 정말 많이 생각하면서 계속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이때까지 바라고 지금 바라고 있는 게 얼마나 하잘것없나. 나는 이거 없으면 죽나?' 약간 이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둡둡의 이야기에 제가 더 끌렸던 것 같아요. 뭔가 이거 없으면 죽는 사람이 가진 힘 같은 것에 끌리고, 거기에서 저도 몰랐던 저의 결핍이나 이런 걸 발견했던 과정이었습니다.
황정은 :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작가님도 이 소설 전후로 기도나 믿음을 오래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걸 생각하는 일이 작가님에게 왜 중요했나요?
김희재 : 그걸 생각하면 일단은 잘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게 저한테 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를 하면은 그래도 기도를 하는 동안에는 제가 뭘 원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나는 계속 살아서 뭔가를 하고 싶은 사람이구나' 이걸 깨닫게 되고, 그런 과정들이 저한테는 힘이 되고 동력이 되어서 저한테 너무 중요했고. 저는 낙관적이라기보다는 약간 비관 쪽에 가까운 편이어서 그렇게 의식적으로 자꾸 기도를 하고 다짐을 하고 믿음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약간 좀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저한테 믿음과 기도는 약간 노력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희재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서울에서 음악을 녹음하고 믹스하는 일을 하며 산다. 산책과 걸으면서 보고 듣고 상상한 것들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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