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인류애를 회복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소설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과 시련은 무엇일까요? 세상이 싫어지는 순간, 더 나은 무언가를 찾고 싶은 분들을 위한 소설을 소개합니다.
글ㆍ사진 서유미(소설가)
2025.01.21
작게
크게

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 시련은 무엇일까. 사는 동안 우리는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 위해, 돈을 벌고 집을 구하기 위해, 가족을 꾸리거나 혼자 살기 위해, 건강을 챙기며 좋은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고민하고 실패하며 나아간다. 이런 개인적인 어려움만으로도 사는 게 꽤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개인의 삶 밖에서도 사건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굉음에 놀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보도되는 사진과 영상들을 보며 그런 일을 일으킨 인간들과 세상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결코 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전쟁이나 참사, 악덕한 사건과 사고 앞에서 우리는 안과 밖이 다 들끓는 절망에 빠진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도, 외면하지도 못한 채 일상과 감정이 납작해지는 좌절감 속을 헤매게 된다.

 

이렇게 세상과 인간이 싫어지는 순간에, 그러면서도 계속 뉴스를 살피며 무언가 좀 더 나아진 것이 있지 않을까,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저 | 이성과 힘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약자와 중산층, 학생과 주부, 노동자와 자본가가 각 단편소설의 화자로 등장한다. 재개발 지구의 철거민으로 돈이 없어서 아파트 입주권을 포기하고 새 터전을 찾아 떠나야 하는 난장이 가족의 사연 위로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가 겹친다.

 

법정에서 난장이의 큰아들은 은강의 경영주를 언급하며 “그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치지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고 말한다. 수도를 고치는 난장이를 만난 뒤 “저희들도 난장이들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라고 말하는 신애의 목소리도 있다.

 

난장이 연작을 읽으며 우리는 분노와 슬픔을 느끼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나아가 난장이에게 연대감을 갖고 난장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에 부끄러워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토너』

존 윌리엄스 저/김승욱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존 윌리암스의 『스토너』에 나오는 영문과 교수 스토너는 능력이 없고 게으르고 부정직한 학생이 박사 과정을 이어가는 것을 반대한다.

 

저 친구가 교육자가 되는 것은…… 재앙이야.”

 

대학 사회, 공고한 권력 앞에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은 스토너는 강의 시간표와 관계, 평판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지만 굴하지 않고 외로운 투쟁을 해나간다. 여기서의 투쟁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수업을 해나가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세력과 대항하다가 고립되는 상황에 처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묵묵히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저/김연수 역 | 문학동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된 부부가 나온다. 그들은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뒤 살아나기를 기다렸지만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지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의 전화 때문에 고통받는다.

 

나는 못된 사람이 아니오.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전화로 못된 짓 하는 사람은 아니라오. 요약하자면, 더 이상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는 걸 알아줬으면, 뭐, 그렇다고나 할까요. 부탁이오.” 그 남자는 말했다.

 

우리는 악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과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의 빗장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인생은 악인이라고 여겼던 사람에게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별것 아닌 롤빵에서 일상을 회복할 가능성을 찾는 비밀스러운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삶의 작은 기쁨을 잃어버리고 누구와 어떤 마음을 나누어야 할 지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소설 속 인물들이 나눈 따뜻한 롤빵과 커피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야기하기 시작할 수도 있고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현실은 좀 더 팍팍하고 막막하고 우리는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동심원을 키워나가며 이해와 유대를 조금씩 넓혀나갈 수 있는 것이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출판사 | 이성과 힘

스토너

<존 윌리엄스> 저/<김승욱> 역

출판사 | 알에이치코리아(RHK)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저/<김연수> 역

출판사 | 문학동네

Writer Avatar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Writer Avatar

조세희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삶을 다룬『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통해 시대의 그림자를 밝혀온 소설가.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돛대 없는 장선」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나, 문단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난장이 연작의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1976년 난장이 연작 『뫼비우스의 띠』 『우주공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을 발표하였으며, 1977년 역시 난장이 연작 『육교 위에서』 『궤도회전』 『은강 노동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등을 발표하였다. 1978년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를 이전의 난장이 연작과 함께 묶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집을 출간하여, 문학적 성취와 상업적 성공을 함께 이룬 문제작으로 주목 받았다. 그의 난장이 연작은 197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에 정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에서 난장이는 정상인과 화해하며 살 수 없는 대립적 존재로 등장하고 있으며, 1970년대 한국사회의 최대 과제였던 빈부와 노사의 대립을 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소설적 접근을 통해 한국의 1970년대가 이 두 대립항의 화해를 가능케 할 만큼의 성숙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그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그려내고 있는 난장이 연작에 환상적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계급적인 대립과 갈등이 마치 비논리의 세계나 동화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 결과 현실의 냉혹함은 더욱 강조된다. 연작 형식은 소설 양식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면서 이야기 형식의 긴장과 이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이 같은 형식이 난장이 연작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소설이 종래의 단편 형식으로는 현실에 적절히 대응할 수는 없으며 그렇다고 장편 양식으로 현실을 개괄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주제와 양식과 기법에 대한 도전과 그 성과는 1970년대 문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오늘 쓰러진 네모』(1979), 『긴 팽이모자』(1979), 『503호 남자의 희망공장』(1979), 『시간여행』(1983), 『하얀 저고리』(1990)를 비롯하여, 소설집으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 『시간여행』(1983)과 콩트를 사진과 함께 엮은 『침묵의 뿌리』(1986), 희곡 『문은 하나』(1966)가 있으며,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로 이상문학상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난쏘공' 이후에는 한 권씩의 소설집과 사진 산문집을 내놓았을 뿐 그는 글로 소통하는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집회 현장을 빠짐 없이 다니며 약자들의 투쟁을 렌즈에 담아왔으며, 언젠가 그간 찍은 사진을 정리해 후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함께 남길 것이라고 한다. 광주 이야기를 담은 「하얀 저고리」 역시 언젠가는 세상에 내놓을 계획이다. "'하얀 저고리'는 작품이 됐건, 안 됐건 끝내기는 할 것입니다. 한국에서 책 내서 만 명 정도 읽으면 읽을 사람은 다 읽은 거예요. '하얀 저고리' 내서 만 명 정도 읽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병 걸리고 의식 잃고 하다보니 죽는 것 무섭습디다. 그렇지만 진짜 힘든 건 좋은 작품을 쓰는 거예요.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이니까요" 산업화 속 서민의 애환 그린 조세희 작가는 2022년 12월 25일 향년 80세로 별세하였다.

Writer Avatar

존 윌리엄스

1922년 8월 29일, 텍사스 주 클락스빌에서 태어났으며 윌리엄스는 덴버 대학교에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미주리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54년에 덴버 대학교로 돌아와 30년 동안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쳤다.어릴 때부터 연기와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고 사우스웨스트의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에서 잠시 일하기도 했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 공군 소속으로 중국, 버마, 인도에서 복무했다. 미국 공군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한 윌리엄스는 복무 기간 동안 1948년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오직 밤뿐인』의 초안을 작성한다. 전쟁이 끝난 후 콜로라도 덴버로 이주한 그는 덴버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 시기에 소설 『오직 밤뿐인』과 시집 『The Broken Landscape』를 출간한다. 이후 미주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54년 다시 덴버 대학교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치며 교수의 길을 걷는다. 1960년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소설 『도살자의 건널목Butcher’s Crossing』은 1870년대 캔자스 개척자의 삶을 다룬 작품이었으며, 이후 두 번째 시집 『The Necessary Lie』도 발표하였다. 윌리엄스의 세 번째 소설은 미주리 대학교 영문학 교수의 삶을 다룬 『스토너』였고 1965년 출간되었다. 네 번째 소설은 1972년 발표한 로마의 가장 폭력적인 시대를 다룬 『아우구스투스』인데 그는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 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윌리엄스는 1985년 덴버 대학교에서 은퇴한 후 1994년 아칸소 페이예트빌의 집에서 숨을 거두었다. 집필 중이던 소설은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저서로는 『오로지 밤뿐 Nothing But the Night』(1948), 『도살자의 건널목 Butcher's Crossing』(1960),『스토너 Stoner』(1965), 『아우구스투스 Augustus』(1972) 총 네 편의 소설과 두 권의 시집을 발표했으며, 영국 르네상스 시대 시선집을 편집했다.

Writer Avatar

레이먼드 카버

1938년 5월 25일 오리건주 클래츠커니에서 가난한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재소, 약국, 병원 등에서 일하며 틈틈이 문예창작 수업을 받다가 1959년 치코주립대학에서 문학적 스승인 존 가드너를 만나게 된다. 이듬해 문예지에 첫 단편소설 「분노의 계절」이 실린다. 1963년 험볼트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고, 아이오와주로 이사하여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 참여한다. 1967년 그의 작가로서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편집자 고든 리시를 만난다. 첫 시집 『겨울 불면』을 출간하고 이후 UC 버클리,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 등에서 강의를 하지만, 알코올중독, 아내와의 별거, 파산을 겪으며 불행한 삶이 이어진다. 1976년 첫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를 출간하고, 이듬해 이 작품이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른다. 이후 구겐하임 기금, 아트 펠로십 소설 부문 국립기금,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에서 수여하는 ‘밀드러드 앤드 해럴드 스트로스 리빙 어워드’를 수상하며 의욕적인 창작활동을 이어간다. 1983년 그의 대표작이라 평가받는 『대성당』을 출간했으며, 이 작품으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다.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 회원이었으며, 1988년 암으로 사망한다.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에세이, 단편, 시를 모은 작품집 『정열』, 미발표 단편과 에세이 등을 묶은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시집 『우리 모두』 등을 펴냈다. 레이먼드 카버는 ‘미국의 체호프’라 불리며 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