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큰 어려움, 시련은 무엇일까. 사는 동안 우리는 원하는 곳에 취업하기 위해, 돈을 벌고 집을 구하기 위해, 가족을 꾸리거나 혼자 살기 위해, 건강을 챙기며 좋은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고 고민하고 실패하며 나아간다. 이런 개인적인 어려움만으로도 사는 게 꽤 벅차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개인의 삶 밖에서도 사건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는 굉음에 놀라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보도되는 사진과 영상들을 보며 그런 일을 일으킨 인간들과 세상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결코 나의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전쟁이나 참사, 악덕한 사건과 사고 앞에서 우리는 안과 밖이 다 들끓는 절망에 빠진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도, 외면하지도 못한 채 일상과 감정이 납작해지는 좌절감 속을 헤매게 된다.
이렇게 세상과 인간이 싫어지는 순간에, 그러면서도 계속 뉴스를 살피며 무언가 좀 더 나아진 것이 있지 않을까,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다.
조세희 저 | 이성과 힘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약자와 중산층, 학생과 주부, 노동자와 자본가가 각 단편소설의 화자로 등장한다. 재개발 지구의 철거민으로 돈이 없어서 아파트 입주권을 포기하고 새 터전을 찾아 떠나야 하는 난장이 가족의 사연 위로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가 겹친다.
법정에서 난장이의 큰아들은 은강의 경영주를 언급하며 “그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외치지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몸이 작았다고 생명의 양까지 작았을 리는 없다.”고 말한다. 수도를 고치는 난장이를 만난 뒤 “저희들도 난장이들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라고 말하는 신애의 목소리도 있다.
난장이 연작을 읽으며 우리는 분노와 슬픔을 느끼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나아가 난장이에게 연대감을 갖고 난장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에 부끄러워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존 윌리엄스 저/김승욱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존 윌리암스의 『스토너』에 나오는 영문과 교수 스토너는 능력이 없고 게으르고 부정직한 학생이 박사 과정을 이어가는 것을 반대한다.
“저 친구가 교육자가 되는 것은…… 재앙이야.”
대학 사회, 공고한 권력 앞에서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은 스토너는 강의 시간표와 관계, 평판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지만 굴하지 않고 외로운 투쟁을 해나간다. 여기서의 투쟁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수업을 해나가고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거대한 세력과 대항하다가 고립되는 상황에 처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묵묵히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레이먼드 카버 저/김연수 역 | 문학동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는 사고로 아들을 잃게 된 부부가 나온다. 그들은 아들이 병원에 입원한 뒤 살아나기를 기다렸지만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지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정체가 불분명한 사람의 전화 때문에 고통받는다.
“나는 못된 사람이 아니오. 적어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전화로 못된 짓 하는 사람은 아니라오. 요약하자면, 더 이상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는 걸 알아줬으면, 뭐, 그렇다고나 할까요. 부탁이오.” 그 남자는 말했다.
우리는 악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자신이 한 일과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고통의 빗장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그녀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그리고 인생은 악인이라고 여겼던 사람에게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기도 하고, 별것 아닌 롤빵에서 일상을 회복할 가능성을 찾는 비밀스러운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삶의 작은 기쁨을 잃어버리고 누구와 어떤 마음을 나누어야 할 지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소설 속 인물들이 나눈 따뜻한 롤빵과 커피를 권하고 싶다. 그러면 누군가는 이야기하기 시작할 수도 있고 “그들은 지치고 비통했으나, 빵집 주인이 하고 싶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현실은 좀 더 팍팍하고 막막하고 우리는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동심원을 키워나가며 이해와 유대를 조금씩 넓혀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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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