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가 되는 사이, 자매 이야기
『자매의 책장』 류승희 작가 인터뷰
상처받고 위로받는 가족이라는 존재, 그럼에도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교차하는 두 인물을 통해 담담히 풀어냈다. (2023.08.07)
'2013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 작가, 어른 만화와 어린이 만화를 종횡무진하며 꾸준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류승희 작가가 『자매의 책장』을 출간했다. 『자매의 책장』은 두 자매가 보낸 1년 동안의 일상을 담았다. 상처받고 위로받는 가족이라는 존재, 그럼에도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교차하는 두 인물을 통해 담담히 풀어냈다. 두 자매가 고단한 일상에 지쳐, 갈 때나 가족으로부터 상처 입을 때, 위로가 되어 준 건 '책'이었다. 자매는 책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다독이며 앞으로 다가올 삶을 응원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책들은 독서를 좋아하는 작가의 책장 속 책들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별거 아니지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동생의 추신처럼 곳곳에 숨은 작품을 찾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의 방』 이후 4년 만에 장편 만화가 나왔습니다. 전작에 이어서 『자매의 책장』에서도 여성들이 가진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점이 돋보입니다. 『자매의 책장』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요?
2014년에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 당시 첫째 아이가 백일이 안 된 갓난아이였어요. 아이를 안고 장례를 치르면서 죽음과 탄생이 멀지 않다는 걸 느꼈죠. 그 뒤로 오랫동안 아버지에 대한 만화를 그려 보려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갓난아이였던 첫째는 어린이집에 가고,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엄마가 되고, 달라지는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가족이란 뭘까?'란 의문이 들었어요. 그렇게 고민하던 어느 날 자매의 이야기라면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우주'와 '미주'가 떠올랐고, 그 뒤로는 빠르게 작업이 진행되었어요.
『자매의 책장』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인 언니 '우주'는 아픈 어머니와 둘이 살면서 고된 직장 일에 시달리고, 동생 '미주'는 아이가 태어난 뒤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합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공감할 수 있을 텐데요. 작가님에게 '가족'과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아이가 태어난 뒤로 삶이 많이 달라졌어요. 아이라는 존재가 제 삶과 작업 모두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아이들이 태어난 뒤로 저의 어린 시절을 자주 떠올려요. 가끔 아이를 기른다는 건 어린 시절을 두 번 사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어렸을 때의 가족과 지금 내가 만들어 가는 가족의 차이를 느끼면서 많은 생각을 해요. 엄마라는 역할, 아이들 육아, 남편과의 관계, 작업과 양육의 균형 등등... 하나도 쉬운 게 없어요. 그래도 앉아서 고민하기보단 뭐든 그리려고 해요. 저는 일상의 모든 것이 다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소한 일상이라도 꾸준히 기록하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고 하죠.
『자매의 책장』 속에는 다양한 책들이 등장합니다. 『대성당』, 『올리브 키터리지』, 『수전 손택의 말』은 등장인물인 ‘우주’와 ‘미주’가 읽거나 필사하는 장면으로 작품에 인용되기도 하고요. 만화를 보면서 숨어 있는 책을 찾아내는 재미까지 쏠쏠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작가님의 서재 속 책들과도 닮아 있을 것 같은데요. 등장하는 책 가운데 영감을 받거나 좋아하는 책이 따로 있나요?
제목 그대로 책이 우주와 미주를 이어주는 매개체라서, 어떤 책을 넣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우선은 제가 읽은 책을 넣으려고 했고, 거실 책장을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책을 만화 곳곳에 넣어 두었어요. 독자분들도 아는 책을 발견하면 재밌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만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책은 『대성당』, 『끝과 시작』, 『올리브 키터리지』, 『축복』인데요. 모두 저한테 의미 있는 책입니다. 그 책들을 읽으며 많이 위로받았고, 또 제가 닮고 싶고, 존경하는 작가들이에요. 물론 제 책장 가장 좋은 자리에 꽂혀 있는 책들이지요.
『자매의 책장』에는 서점, 도서관, 전철, 병원, 카페, 놀이터처럼 일상적인 공간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동네의 풍경이 변하는 모습을 통해 계절의 흐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작품을 그리면서 만화 속 계절과 실제로 같은 계절을 보내며 작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경험이 만화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표현되었을까요?
작년 봄에 지금 살고 있는 도시로 이사를 왔는데요. 막 『자매의 책장』을 그리기 시작한 때였어요. 제 책상이 거실 창문 바로 옆에 있는데 1층이라서 창밖으로 아파트 화단의 나무들이 보여요. 작업하는 틈틈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거의 매일 동네 공원으로, 뒷산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신기한 건 만화의 계절을 제가 같이 살게 되었다는 거죠. 보통 만화를 그리면 인터넷에서 자료 사진을 찾아 배경을 그리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산책하다 본 풍경을 찍어서, 그 향기와 감촉을 느끼면서 그렸어요. 각각의 계절이 가진 공기와 감촉도 어떻게든 만화에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작업하다 보니 저의 산책길에 우주와 미주가 함께 있는 듯이 느껴지더라고요. 아마도 그 경험 덕분에 우주와 미주의 일상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연필로 그렸던 전작들과는 다르게 디지털 작업을 하셨습니다. 『자매의 책장』을 그리면서 어떤 점이 크게 달라졌을까요?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이번 작업은 지원 사업을 받아서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좀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디지털로 작업을 했는데, 사실 그리면서 여러 번 후회 했어요. 실물 원고가 없다 보니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최종 결과물을 보니 디지털 작업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림이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고, 앞으로는 컬러 작업을 더 해 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네요. 저의 다른 만화도 그렇지만 이번 만화에서는 배경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우주가 사는 집과 미주가 사는 집, 서로 다른 동네 풍경, 책장의 위치, 그날의 날씨와 계절의 변화 등등. 조금씩 달라지는 일상의 디테일을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나리 나리 고나리」(모두 3권) 「검정마녀 미루」(모두 2권) 등 어린이 만화도 꾸준히 그리시는데요. 어른 만화와 어린이 만화를 작업할 때 어떤 다른 점이 있을까요?
어른 만화는 저에게서 나오고, 어린이 만화는 저의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것 같아요. 어른 만화는 제가 궁금한 것, 제 안에 오랫동안 남는 풍경에서 시작한다면, 어린이 만화는 아이에게 제가 말해 주고 싶은 것, 알려주고 싶은 것에서 시작하거든요. 「나리 나리 고나리」 「검정마녀 미루」 모두 아이와 놀다가 첫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어린이 만화는 제가 아이에게 주는 긴 편지 같은 느낌이에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른 만화, 어린이 만화를 계속 번갈아 작업하고 있는데, 상반되는 리듬이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작품 활동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자매의 책장』이 독자분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면 좋겠는지 한마디 부탁드려요.
지금은 만화와는 좀 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전은 신선한 자극도 되고 재미있어요. 이 경험이 만화 작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요즘은 느긋하게 쉬면서 소소한 일상을 즐기고 있습니다. 『자매의 책장』 원고를 올 초에 마감하고, 이제 책으로 나왔으니 정말 끝났다는 느낌이 드네요. 우주와 미주를 떠나보내는 게 너무 아쉽지만, 지난 1년 동안 우주와 미주를 만나서 행복했어요. 그녀들이 어디서든 꿋꿋이 잘 살아갈 거란 생각이 들어요. 독자분들도 만화에 담긴 사계절의 풍경 안에서 조금이나마 따뜻해지면 좋겠습니다.
* 류승희 날마다 산책하고, 가끔 여행하고, 틈틈이 요가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고이는 소소하고 사소한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나만의 책상에 앉아 가만가만 만화를 그리는 일을 좋아합니다. 쓰고 그린 책으로는 『나리의 숲에는』, 『그녀들의 방』,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어린이 만화 「나리 나리 고나리」(모두 3권) 「검정마녀 미루」(모두 2권)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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