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특집] 고명재 "마주하게 된 모든 인연이 시의 '연'"
<월간 채널예스> 2023년 6월호
사랑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계속 시를 마주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과 함께 경험하고 싶어요. 민들레는 어디에 있든 노랗고 희니까요. 꽃은 어디든 서슴지 않고 피는 거니까요. (2023.06.01)
예스24는 2015년부터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투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7년간 147명의 젊은 작가들을 소개했고, 180만 9798명의 독자가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올해도 6월 12일부터 7월 9일까지 투표를 진행합니다. 문학의 힘을 믿는 독자분들의 변함없는 응원을 기대합니다. |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16인'에 든 소감
너무 신기하고 산뜻하고 신이 났어요. 아니 아니, 내가 이런 소식을 받다니!? 요즘 제가 자주 다니는 길에 이팝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데, 그거 보다가 연락을 받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소식이 더 환상적으로 느껴졌어요. 아름다운 거 보니까 좋은 소식도 날아드는 거구나. 전서구를 받는 마음이 이런 거 아니었을까.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다가 활짝 웃었어요. 이런 큰 일(?)에 난생처음으로 선정되어 봐서, 너무너무 신기하고 놀랍고 막 그래요!
첫 책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의 기억
날아갈 것처럼 기쁘고 후련했어요. 쌀알 한 톨만큼의 후회도 아쉬움도 없고 오로지 율동과 기쁨과 리듬의 마음, 밝은 마음뿐이었어요. 책이 정말 예쁘게 태어나서 아유- 예뻐라! 감사해라! 이 생각만 종일 했던 거 같아요. 책 만들어 주신 분들이 진짜 많이 사랑을 쏟아 주셨거든요. 그래서 수채화처럼 말갛게 기쁘기만 했어요. 마음은 유쾌 상쾌 통쾌했고 감사한 사람들 얼굴이 계속 생각나서 종일 가슴을 쥐고 다녔어요. 그 사람들 앞에 얼른 책을 드리고 싶었어요.
매일 실천하는 글쓰기 루틴
주로 도서관의 열람실이나 조용한 곳에서 손가락을 풀고 글을 쓰고는 해요.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드립 커피를 내리면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요. 하루 두 잔, 커피는 꼭 마시고 문장이 막히면 벚나무 아래를 걸어요. 진짜 막막할 땐 엄마 가게에 전화해요.
"엄마 오늘 많이 팔았어?"
"아니"
"오늘 고등어조림 너무 예쁘더라"
그런 이야기를 볕 쬐면서 엄마랑 해요. 볕을 그렇게 온몸에 차곡차곡 채우고 나면, 저녁에도 양지 같은 마음으로 쓸 수 있어요. 루틴은 이게 전부예요. 커피 두 잔과 전화 한 통. 그거면 충분해요.
글 쓰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연(緣), 사랑, 용기. 사물이든 물질이든 닿고 만나고 이어져야 언어가 피어난다고 믿어요. 그렇게 마주하게 된 모든 인연이 시의 연(聯)이 되고, 그 연들이 사랑을 굴려요. 책에 관한 사랑, 사람에 관한 사랑, 계피나 시금치 혹은 더덕에 관한 사랑. 작은 것에서부터 거대한 것까지, 손톱에서 지중해까지. 애정이 있어야 몸도 언어도 움직이는 것 같아요. 용기를 내어 한번 움직여보는 거죠! 부질없음을 알고도 한번 해보기. 그렇게 글은, 단순한 언어의 집합체라기보다는 순간적인 마음의 율동이나 응집 같아요. 그러니까 곧 사라질 눈송이들이요. 목적 없이 운동하고 존재하는 것. 소멸할 줄 알고도 드러나는 것. 사람의 수명과도 꼭 닮았지요.
나를 쓰게 만드는 사소한 것들
첫째, 눈앞에 놓아둔 얼른 읽고 싶은 책. 둘째, 초콜릿 혹은 비스킷. 셋째, 마음속의 리듬감. 책 욕심이 많아서 여러 권의 책을 주변에 쌓아 둬요. 그러면 그 책들의 영향권 아래에 놓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쓸 용기를 얻어요. 초콜릿과 과자를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에요. 하지만 이걸 먹어야 평상심이 잡히는 슬픈 중생인 걸요. 마지막으로 쓰고 싶다는, 묘한 리듬감 같은 게 있으면 행복해요. 주룩죽 죽죽, 나아가고 싶은 마음의 상태를 리듬감이라고 표현했는데요. 그게 있을 때 가장 행복하게 즐겁게 써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
너무 많아서 그럴 수 없어요. 절대로 한 분만 꼽을 수는 없어요! 너무 잔인한 질문입니다. 그 대신 (질문을 조금 비껴나가서) 최근에 가장 사랑하는 작가님을 말씀드릴게요. 아주 오랫동안 제가 좋아해온 분인데요. 바로 윤경희 작가님입니다. 이 분의 『분더카머』와 『그림자와 새벽』은 정말이지, 내용도 아름답고 문장도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무언가를 마주하는 마음까지 아름다워서, 읽으면 내내 무언가를 배우는 느낌이 들어요. 함께 살기. 함께 읽기. 좋아하기. 이 귀한 마음이 『그림자와 새벽』에 있어요. 그래서 저는 마음이 어두워질 때마다 이 책을 펼치고 작가님의 선하고 올곧은 목소리를 듣고는 해요.
글쓰기 작업에 영감, 도움을 줬던 책
롤랑 바르트를 많이 좋아했어요. 원래도 좋아하기도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내고 난 뒤, 더 깊이 좋아하게 되었어요.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난 후에 썼던 책이나 강연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밝은 방』도 정말 좋아했는데요. 오늘은 그 이후에 출간된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를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 책 안에는 '쓰기'라는 행위가 어떻게 시간을 생생하게 일으키는지. 소설이나 문학이 무엇을 꿈꾸는지.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지만 얼마나 아름답고 충만한 일인지를 아주 잘 말해주고 있어요. 조금 두껍지만 펼쳐보면 흠뻑 빠져들게 되어요. 정말 사랑스러운 책이에요.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의 글만큼이나 타인의 글과 얼굴을 사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 글을 쓸 때 저는 자아가 너무 컸어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글'을 엄청 중시하며 '나의 글쓰기'에만 몰두했는데요. 그 '두꺼운 나'를 훌렁 벗어던지니까 시원한 변화가 느껴졌어요. 다른 사람들의 아름다운 글, 어떤 시인의 빛나는 장점들, 어떤 소설가의 놀라운 문장들. 그런 '타인의 빛'을 응원하고 사랑하게 되니까, 그때부터 자신의 글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어요. 나를 드러내기 위한, 나를 자랑(전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타자(어떤 시나 글 혹은 그것의 진실)를 잘 드러내기 위해 물러서는 것. 그 물러섬이 오히려 더 용감하고 아름다운 전진이란 걸 아주 느리게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
민들레처럼 시를 흩뿌리기. 시라는 장르를 사방팔방 자랑(?)하기. 요즘은 시가 얼마나 행복하고 명랑하고 재미있는 장소인지를,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제가 지금 계명대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곳에 시 읽고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지방에서도요. 그래서 요즘은 같이 시 쓰고 읽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함께 잘 할 수 있는지 관심이 많아요.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지방에서 시 쓰는 일을 오래오래 같이 하고 싶어요. 꼭 서울이 아니라도, 사랑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계속 시를 마주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과 함께 경험하고 싶어요. 민들레는 어디에 있든 노랗고 희니까요. 꽃은 어디든 서슴지 않고 피는 거니까요.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말'
멋있는 척하지 않는 말이요. 치장하거나 꾸미거나 자신을 잘 보이려는, '(특정한) 목적 하에 있는 말’이 아니라, 눈앞의 존재나 상황에 온전히 마음을 쏟는 말이요. 그건 꼭 메시지를 지니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믿어요. 많은 애견인들이 반려견을 향해 흐물흐물한 목소리로, 불분명한 발음으로, 존재를 부르죠. 거기에는 멋이나 꾸밈 따위는 없어요. 오로지 '눈앞의 너'를 향한 사랑만 있어요. 그런 말은 사람뿐 아니라 존재를 나아가게 해준다고 믿고 있어요. 그러니 개들이나 아이들이 와락 달려와 안기는 거 아닐까요?
*고명재 시인. 198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2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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