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혜 "더 진지하게 책을 내고 싶다는 신호탄 같은 의미의 책"
『우정 도둑』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무조건 1등이야, 라는 생각으로 읽고 써요. 이 마음과 경험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2023.05.31)
메일링 구독 서비스 <유지혜 페이퍼>를 운영하고, 『쉬운 천국』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유지혜는 신작 『우정 도둑』에 대해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우정 도둑』이 작가를 꿈꿔본 적 없던 그가 진지하게 계속해서 책을 내는 작가가 되겠다는 신호탄과 같은 책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우정 도둑』에서 유지혜 작가는 '다른 모든 것들과 친구가 되기를 선택하는 과정'이 자신을 오롯하게 만드는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하자면 모든 것과 우정을 나누는 일, 관계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 같은 것.
"하루를 살아가는 게 점 같은 걸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점들을 그냥 가방에다 넣어 놓는 거죠.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고요.
그러다 나중에 이 점들을 펼쳐 놓고 보면 다 연결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옛날에는 그것들을 연결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저 자신한테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요.
그러다 수많은 관계들을 발견하면서 저 자신이 중요하지 않아지는 경험을 했던 것 같고요.
나 자신한테 두었던 시선을 돌려 다른 것들을 보면 굳이 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잃어버린 것들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어요. 이 책에서 그런 마음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어요."
제목에 '도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20대에 세 권의 책을 내고, 30대의 시작을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로 하면서 앞으로 여행 에세이는 내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사실 모든 글에 여행적인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에 꼭 여행이라는 갈래로 책을 나눠서 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었죠. 여행이 진짜로 저에게는 삶이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렇게 제가 20대를 지나고 30대가 되면서 저에게 가장 필요한 단어가 무엇일까 생각했고요. 그게 우정이었어요.
제가 해온 여행을 생각해보면 항상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제가 잘한 것은 별로 없어요. 항상 그 사람이 있는 숙소에 머물렀고, 약간 좀도둑처럼 타인의 어떤 것을 훔치면서 살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출판사 분들과 엄청나게 오랫동안 회의를 해서 이 제목으로 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책에 담긴 어떤 글도 이 제목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완전히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썼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회의 끝에 '우정'과 '도둑'이라는 두 단어를 찾으셨을 때 무척 기쁘셨겠어요.
이 단어들을 찾았을 때 너무 희열을 느꼈어요. 사실 책의 내용을 쭉 보면 그 안에 이미 이 단어들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엮다 보니까 발견하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책이 제 스스로에게는 전환점이에요. 앞으로 더 진지하게 책을 내고 싶다는 신호탄 같은 의미가 있는 책이에요.
'전환점'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번 책을 계기로 달라진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다른 활동도 많이 했고요. 사실 작가를 꿈꿔본 적도 없었어요. 좋은 글이라는 것도 잘 몰랐고요. 그저 저의 경험을 쓴다는 생각으로 썼죠. 그러다 20대 중후반부터 엄청나게 책을 읽으면서 그런 책들의 작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느지막이 했어요. 그러면서 글을 쓰는 것을 평생의 숙제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인지 책이 나오면 설레거나 떨리는 것도 사실 없고, '다음에 또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생각이 앞서요.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도 그렇게 동요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쓰는 글 자체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기 시작하신 거네요.
『쉬운 천국』 때까지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쓰고 모았다면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부터 글을 쓰는 스타일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저는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 게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거의 숭배하듯이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볼 때는 이 글이 안 좋을 수 있고요. 부족할 수도 있지만요. 책을 좋아하는 마음은 무조건 1등이야, 라는 생각으로 읽고 써요. 이 마음과 경험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제 독자층은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 분들까지가 많은 것 같아요. 압도적으로 많은 게 20대 분들인데요. 온라인 서점에 한 번도 평점을 남겨본 적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존 독자층이 아닌 거예요. 책을 아예 안 읽던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이 제 책으로 책이라는 세계에 입문해서 제가 추천해 주는 고전을 읽고 점점 다양한 독서로 나아가는 걸 보거든요. 그래서 제 역할은 '독서'라는 경험이 훨씬 쿨하고 우리한테 중요한 거라는 사실을 설득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통로를 열어주고 물꼬를 터주는 역할이요. 서점에 제 책을 팬심으로 보러 왔다가 다른 책을 살 수도 있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독자분들과 같이 읽는다는 게 너무 좋아서요. 그런 문화를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우정 도둑』을 읽으면서 나로 오롯해지는 것을 많이 고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이것이 작가님께 중요한 화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게 연결되는 시대잖아요. 저도 어떨 때는 핸드폰을 몇 시간 동안 하게 되는데요. SNS 활동이나 이런 걸 오래 하게 되면 뇌가 망가진다고 하더라고요. 어느 책에서 읽은 말 중에 '고통의 반대는 권태'라던 말이 기억나는데 저는 고통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권태를 느낀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되게 자극적인 권태인 거죠.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 연락이 잘 안 되는 걸로 유명한데요.(웃음) 그렇게 몰입하지 않으면 되지 않는 일도 있다고 생각해요. 글뿐 아니고요. 회사원이건 서핑 강사건 많은 분들에게 몰입의 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요. '온앤오프'가 확실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같거든요. 상대를 아무리 좋아해도 내가 올곧게 서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를 확실하게 사랑해 줄 수 없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러니까 '온'을 제대로 하려면 '오프'가 확실히 있어야 되는데, 오프가 나 자신에게는 온인 거죠.
연결 자아를 오프하고, 오롯한 나를 온하는 거군요.
예를 들어서 저는 인스타그램 같은 것에도 활동기가 확실히 정해져 있어요. 안 할 때는 과감하게, 사람들이 날 잊겠지 같은 생각은 아예 안 하고 그냥 책만 써요. 제가 멀티가 안 되기도 하고요. 다 오프하고 글만 쓰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야만 완성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나로 오롯한 시간에, 작가님은 어떤 존재가 되나요?
저를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시는데 저는 제 얘기를 하기보다는 듣고 싶어요. 그래서 여행에서도 모르는 사람 인터뷰를 하기도 했었죠. 한번은 호텔 청소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처음에는 오만한 마음으로, 청소에 대한 어떤 철학 같은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의 행복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이민자로서의 삶 같은 것들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직업으로 누군가의 삶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최근에는 사람들이 다 너무 외롭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다른 사람한테 화가 안 나고, 누구나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응원의 마음도 우정이랑 연결돼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나의 탁월한 어떤 부분을 발견하는 것보다 그걸 누군가한테 알리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그런 외로운 사람들에게 그런 것 말 안 해도 내가 알아줄게, 이런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요. 누군가를 멋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니고 그냥 그 사람 자체로 있는 자체의 얘기를 듣고 싶다고요.
결국 우정이네요. 말씀을 들으면서 우정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돼요.
제 친구들이 20대 때부터 지금까지 해준 게 그거였어요. 제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어도 될 거라고 얘기해주고 미래를 봐준 사람들이죠. 그런 존재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로 오롯할 수 있었어요. 우정은 담백하게 상대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정은 무조건적인 긍정이에요. 상대에게 이런 저런 얘기나 조언도 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무조건 믿어주는 게 우정이죠. 이런 우정, 다정함이 한 사람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걸 느꼈어요. 긍정적인 게 생산적이라는 말이 와 닿았던 적이 있는데요. 누군가를 비판하고, 무언가에 냉소해서 그가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진지할 땐 진지하지만 그 진지함이 몸에 밴 상태에서 가볍게 살아가는 것, 그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게 우정과 여행의 공통점은 내게 있는 문제를 잊어버린다는 거거든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누구나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된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파고들었던 것 같은데요. 그러기엔 시간이 없다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내게 있는 문제를 잊어버릴 만큼의 우정이 있으면 그게 오히려 건강한 인생이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특별히 눈길이 간 것은 '지현'과의 우정 이야기였어요. 쓰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제목이 『우정 도둑』이니까, 그 안에 친구 얘기가 나오려면 그 부분을 엄청 잘 써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현과의 이야기를 <페이퍼>에 연재를 했을 때는 있는 그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거든요. 게다가 엄청 반응이 좋았어요. 결국 그 글은 거의 고치지 않았어요. 그냥 거의 초고 그대로인 글인데요. 초고 그대로의 모습이 저희의 우정과 닮은 것 같기도 해서 너무 많이 고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저희가 다퉈서 한 달 동안 연락을 안 했거든요. 그렇지만 더이상 연락하지 말자는 말 같은 건 안 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아무리 서로한테 서운한 말을 해도 끝까지 갈 거라는 믿음이 있죠. 이 정도의 관계에 대한 신뢰가 사랑이랑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사랑은 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하지만 우정은 연락을 했을 때 상대에게 답장이 없어도 애정을 애걸하는 표현을 한 번 더 써 보내지 않아도 되는 사이 같아요. 예전에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고 썼었는데요. 우정은 끝이라고 생각해도 시작인, 그래서 끝나지 않는 책인 거죠.
끝나지 않는 책이라니, 참 좋아요.
어떤 사람을 봤을 때 못난 모습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요. 이 사람의 못난 모습을 많이 아는 게 우정에 있어서는 레벨이 높은 거죠. 만약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기만 하고, 이 사람한테 느끼는 서운함이나 그에게서 발견한 후짐이 없었다면 그와는 안 친한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다양한 모습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신하지 않는 것이 우정이라고 생각해요.
글 중에 '당신'을 호명하는 글들이 있었어요. 그건 어떤 존재인가요?
어떤 영향을 받은 건 아니고요. 대부분의 글이 나의 이야기로 출발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쓴 글이에요. 그럴 때는 주어를 바꾸는 게 확실히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쓰게 됐어요.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서요.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당신'이라고 칭함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될 거라는 기대인 거죠.
책을 읽으면서 뭐든 '응시하는 사람'이라는 인상도 받았어요.
표현만 달라졌을 뿐 23살에 썼던 글이나 지금 쓴 글이나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도 저는 응시하고 있었던 것 같고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똑같았어요. 사실 계속해서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게 작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이 집착하는 하나의 주제로 평생을 간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똑같은 얘기를 다른 표현으로 얘기하고 있을 뿐이고, 그러기에도 너무 인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한테는 그것이 결핍, 나한테서 퍼져 나가는 관계,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들 같고요.
책에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을 하죠. 가족이나 친구뿐만 아니라 잠깐 스친 인연까지도 말이에요. 관계에 대한 관심은 왜 그렇게 작가님께 중요한 주제일까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의 관계가 되게 깊었는데요. 엄마가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 놀라겠지만, 사실 엄마에 대한 그렇게 기억이 많지는 않아요. 엄청나게 사랑했고 엄청나게 좋아했는데 맞벌이 부부다 보니까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은 기억을 갖고 있진 못한 거죠. 또 이사를 너무 많이 다녔어요. 초등학교를 세 군데 다녔으니까요. 그때는 그게 싫다는 생각은 안 했고, 그냥 가족이 가니까 당연히 옮긴다고 생각했는데요. 어린 시절에 경험한 관계에 대한 결핍이 지금도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중학교에 가서야 확실하게 친한 친구들이 생겼거든요.
이후 살면서 관계가 이어지거나 끊어지거나 다시 만나게 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었고, 그것에 집중하게 됐어요. 그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기도 해서 더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뉴욕을 여행하면서도 생각했던 거예요. 미국 사회에서는 제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나 경계 같은 것들이 다 무너졌거든요. 워낙 다인종 사회이기도 하니까요. 그곳에서의 경험이 경계와 관계 같은 단어를 더 많이 생각하게 했어요. 저는 사실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만 마음에 들이기까지는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나도 엄청나게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깨닫게 됐던 거예요.
'여행'이라는 키워드도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거겠죠.
올해도 3개월 정도 뉴욕에 갈 계획을 하고 있어요. 최종적으로는 뉴욕에서 사는 걸 꿈꾸고 있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뉴욕은 메시지의 도시예요. 말이 많고 단어가 많은 도시죠. 어디든지 표지판이 있고, 사인이 있고요. 하다못해 노숙자도 책을 20권씩 쌓아 두고 읽으면서 자기의 철학을 판자에다가 써서 들고 있어요. 근데 보면 찰스 부코스키가 쓴 시 같아요. 그런 걸 보면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은 외국인한테 친절하긴 하지만 어색해하는데요. 근데 미국은 내 정원의 울타리가 있다면 그 울타리가 갑자기 와다다다 무너져서 거기를 사람들이 막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그런 정신이 없는 와중에 얼렁뚱땅 변화하는 것들도 있잖아요. 꼭 뉴욕으로 여행을 가야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내가 공부하고 책으로 알던 것들도 있지만 실제로 경험했을 때 우당탕탕 이루어지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요. 그건 절대 인터넷으로 할 수 없는 거니까 오프라인에서 뭔가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당신은 여행을 하면서 당신이 한국인이 아닌 세계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 국적의 뿌리가 지켜지는 것만큼이나 세계 안에 속해 있다는 것에서 안전함을 느낀다.'(256쪽)이라고 쓰기도 하셨죠.
사실 여행을 많이 안 해봤을 때는 나의 자아를 찾는, 나를 찾으러 떠나는 여행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저는 여행을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여행에서의 태도를 삶에 끌어올 수 있어야 여행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요. 또, 누구나 도망칠 어떤 통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저에게는 여행이에요. 도망치는 것에 대해서 너무 경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옛날에는 여행을 가면 내 인생이 좋아지고 나를 발견하고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아니라 그냥 도망이었던 건데요. 도망이어도 괜찮아, 어차피 인생은 도망이야, 이런 생각을 해요.
20대와 30대가 된 지금 나라는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말하는 입장에서 듣는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죠. 저는 외동딸이고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친구들은 저를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거든요. 생각해보니까 저의 성취나 이런 거는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없으면 저는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거예요. 사실 이 책도 그래요. 책을 읽어준 독자들이 중요하지 책은 사실 저한테 중요하지가 않아요. 이 책에 대해서 생각을 하나도 안 해요. 뒤라스가 한 말처럼 책이 나온 뒤 저자는 사라져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책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하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만약 책이 성취라면 그 성취가 만들어낸 새로운 관계들이 저에게는 더 중요한 거예요. 사실 옛날에는 제 성취가 엄청 중요했거든요. 주먹에 꽉 쥐고 있던 걸 확 놓으니까 더 자유로운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유지혜 스물네 살의 나이에 『조용한 흥분』과 『나와의 연락』을 출간하며 독자들에게 '낯선 여행자이자 인스타그래머'로 각인되었던 유지혜 작가.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물음에 그저 "학생"이라고 대답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글 쓰는 사람'이라는 단단한 자아를 보석처럼 발굴하는 시간을 보냈다.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비엔나... 스물여섯부터 스물아홉까지 4년간의 여행을 담은 『쉬운 천국』과 팬데믹 시절 일상을 재발견한 과정을 써내려간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는 출간 즉시 에세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정기 메일링 서비스 <유지혜 페이퍼>가 현재 시즌 15를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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