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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에고와 셀프가 균형을 이뤄야 해요"

정여울 작가의 북클러버 ‘마음을 관찰하고 보살피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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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는 사회화를 하려는 자신의 모습이에요. 때로는 셀프가 에고를 뚫고 나와야 할 때도 있는데, 제한이 없으면 또 셀프가 나오기 어렵거든요. 글쓰기에서도 분량의 제한도 겪어보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해야 발전할 수 있어요. (2020. 08. 14)


지난 8월 3일,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북카페 피터캣에서 정여울 작가의 예스24 북클러버 마지막 모임이 열렸다. 기존 작가의 북클러버와 달리 글쓰기 세미나로 기획된 이번 이번 행사는 ‘마음을 관찰하고 보살피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정여울 작가의 강연이 진행된 후, 참가자들은 ‘내가 살지 못한 삶’이라는 주제로 쓴 글을 함께 읽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콘텐츠 시대,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마음을 보살피는 글쓰기’는 요즘 많은 분들이 하고 싶어 하는 글쓰기가 아닐까 싶어요. 책을 낸다거나 구체적인 목표를 잡지 않고, 글을 씀으로써 더 나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거죠. 사실 마음을 보살피는 데 제일 좋은 방법은 미디어를 멀리하는 거예요. 사람을 현혹시키는 미디어 친화적인 텍스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우리를 성장하게 해줄 수 있어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 텍스트를 보는 편이 좋습니다.”

시대에 따라 인류의 작품은 텍스트로, 텍스트에서 콘텐츠로 그 흐름이 변화했다. 괴테, 헤르만 헤세와 같은 대작가들이 활약하던 20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작품의 시대. 20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텍스트의 시대가 열린다. “어렵기로 정평이 나있는 푸코의 『말과 사물』이 빵처럼 팔리던 시기”였던 이 시대는 작품 자체보다 비평과 이론이 번성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작품의 시대는 그야말로 작품성이 중요하던 시기였어요. 작가가 누군지, 작품성의 진정성이 있는지, 감동적인지? 이런 단순한 것들이 중요했죠.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지 못했고, 극소수의 뛰어난 사람들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전문성이 있는 건 맞지만 작가의 특권의식이 강하던 시기였죠. 텍스트의 시대로 비평가들이 활약하게 돼요. 지성과 예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대에는 문학과 영화와 음악 다양한 장르가 서로 오가면서 자유롭게 비평을 했어요. 엘리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철학과 문학과 이론이 하나가 되던 멋진 시대였어요.“

텍스트의 시대는 해체주의와 함께 시작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해’산은 했지만 다시 합’체’하진 못했다. 여러 이론과 작품, 실험이 점차 축소되었고, 텍스트의 시대와 콘텐츠의 시대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자본주의가 격화. 미국 대중문화가 세계를 점령한 후 콘텐츠의 시대가 도래했다. 

“콘텐츠의 시대가 오면서 텍스트의 다채로운 매력이 사라졌어요. 콘텐츠는 무조건 팔려야 하거든요. 이 시기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Source Multi-Use)의 시대라고도 볼 수 있는데, 문학작품도 자본이 투자되는 하나의 투자처로 여겨집니다. 콘텐츠의 대표적인 예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국 드라마 ‘프렌즈’를 들 수 있어요. 모두 좋은 콘텐츠이지만, 보는 사람을 다소 유치하게 만든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남성의 경우, 마초적이거나 권력이 있는 캐릭터로, 여성의 경우는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죠.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역시 원작의 ‘할머니’ 캐릭터를 없애고 인어공주의 아버지를 등장시키면서 인어공주를 수동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어요.”

콘텐츠의 시대에는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읽고 쓰는 능력이 저하된다. 엘리트주의라는 비판은 있지만 책과 작가를 중요하게 여겼던 텍스트의 시대에 비해, 콘텐츠의 세계에서는 독자의 문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정여울 작가는 콘텐츠 시대의 원작 훼손 문제도 함께 덧붙였다.

“사실 모든 그림동화는 원작의 형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형됐다고 볼 수 있어요. 원 소스 멀티 유즈를 많이 하다 보니 현대적인 해석이 점점 강해졌고, 이걸 넘어서 ‘다시 쓰기’까지 가게 된 거예요. 고전 동화는 현대인들 기준에서 너무 잔혹동화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전 시대 사람들은 그러한 부분을 잔혹성이 아니라 상징과 은유의 영역이라고 보았고, 아이들도 충분히 이 점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봤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을 그렇게 아름답게만 보는 건 거짓이라는 거죠.”



하나의 기쁨을 위한 천 개의 고통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여주는 것. 정여울 작가는 이것이 라캉 정신분석학의 ‘상상계’에 가깝다고 말했다. 상상계는 언어 이전의 세계로, 일차원적인 쾌락을 중요시하는 이분법적인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대중문화의 엄청난 원동력이 바로 ‘상상계’. 사람들은 반복되는 해피엔딩 스토리 속에 아주 유치한 세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단순하고 행복한 일에만 집중하는 이런 ‘감탄고토’의 경향은 어른의 세계인 ‘상징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상계는 어린아이들의 세계예요.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에도 언급한 내용인데, 상상계에선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성취할 수 있고 행복을 얻을 수 있죠. 보이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언어도 필요하지 않아요. 반면 상징계는 언어가 중요합니다. 무언가 상징을 하기 위해선 언어가 필요하니까요. 언어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 고통을 통해 성장하는 어른들의 세계가 바로 상징계입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육지와 바다를 통해 상상계와 실재계를 아주 멋지게 표현하고 있어요. 인어는 바닷속에서만 살면 300년 동안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죠. 그곳이 바로 상상계라면, 상징계는 바다 위 육지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인어공주는 바닷속 행복을 뿌리치고 육지로 올라와요. 새로 생긴 다리로 칼로 찔리는 듯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인어공주는 왕자를 위해 기꺼이 춤을 춥니다. 사랑을 자신의 고통마저 감수하는 세계가 상징계라고 볼 수 있어요.”

상상계는 아이들의 세계, 상징계는 어른들의 세계. 그렇다면 라캉의 정신분석학 속 ‘실재계’는 무엇일까? “단 하나의 기쁨을 위해 천 개의 고통을 감수하는 것”. 정여울 작가는 실재계를 이와 같이 같이 설명했다. 

“왕자에게 버림받은 인어공주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돼요. 동트기 전 다른 이와 결혼한 왕자의 심장을 칼로 찔러 그 피를 발에 적셔 바다로 돌아가야 하죠. 하지만 인어공주는 칼을 바다에 버리고 ‘물거품’이라는 또 다른 존재가 되어 사라지는 선택을 합니다. 상징계의 고통을 뚫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 그게 바로 실재계라고 할 수 있어요. 베토벤이 귀가 먼 상태에서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고흐의 작품이 몇 세기가 지나 사람들이 사랑받는 것 역시 실재계죠. 노력이나 재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초인적인 경지라고 볼 수 있어요.”


인간 무의식 속의 ‘내면의 황금’

정여울 작가는 프로이트, 라캉, 융, 아들러의 정신분석학으로 인간 무의식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들 모두 기존의 철학과는 다르게 무의식을 강조했지만, 프로이트는 인간 무의식의 영역 대부분을 성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비교적 열등하다고 여겼다. 프로이트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려고 했던 라캉은 앞선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개념을 이용해 인간의 정신을 설명했는데, 인간은 언어라는 시스템을 통해 억압을 배운다고 주장했다. 융은 앞선 프로이트, 라캉과는 다른 무의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데, 그는 인간의 무의식에 창조성과 잠재력이 있다고 보았다. 

“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 에고와 셀프가 있다고 말해요. 잘 보이고 싶은 쪽으로 계속 진화하려는 건 사회화, 무의식적으로 더 발전해서 나 자신이 되려는 건 개성화예요. 융의 혁신적인 발전은 개성화를 인간의 중요한 욕망이라고 본 점이죠. 인간은 사회화만으로 절대 만족할 수 없고, 실패로 끝날지언정 개성화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건데, 이건 소위 얘기하는 개성 넘치는 삶과는 달라요. 눈에 보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진짜 나 자신이 되는 걸 의미합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그렇죠. 데미안의 도움으로 싱클레어는 상징계로, 결국 실재계에 도달합니다. 사실 문학 작품에서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죠.”

정여울 작가는 강연을 마치며 글쓰기에서 에고와 셀프의 균형을 잡을 것을 강조했다. 그 후에는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주제로 한 참가자들의 글을 함께 읽고, ‘나를 둘러싼 모든 억압이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또 한편의 글을 써보기로 기약하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에고와 셀프가 균형을 이뤄야 해요. 셀프에 좀 더 가까운 균형이요. 에고는 사회화를 하려는 자신의 모습이에요. 그 대신 시스템 안에서의 진정한 내 모습이기도 하죠. 때로는 셀프가 에고를 뚫고 나와야 할 때도 있는데, 제한이 없으면 또 셀프가 나오기 어렵거든요. 글쓰기에서도 분량의 제한도 겪어보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도 해야 발전할 수 있어요. 대신 아무에게나 자신의 ‘내면의 황금’을 보여줄 순 없죠. 진지하고 사려 깊은 사람에게, 보여줄 만한 사람에게 여러분 ‘내면의 황금’을 보여주세요.”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
정여울 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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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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