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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계획 생활

사소한 매일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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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모든 책마다 '나를 잘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나'가 도대체 뭐라고. 일주일에 세 번 운동도 못하는 시시한 나는 그만큼의 사소함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2018. 01. 12.)

출처 언스플래시.jpg

         언스플래쉬

 

내 마음의 달력에는 1월 1일부터 구정 연휴까지에 '계획절'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전 세계인이 1월 1일이 되면 약속한 듯이 헬스장을 가고, 일찍 일어나 일기를 쓰는 주간. 1월 3일까지 축제는 절정에 치닫고 1월 4일부터 또한 약속한 듯이 언제 그런 계획이 있었냐는 듯 다시 작년의 일상으로 들어오는 주간으로 시작하는 절기다. 중국 인구가 한날한시에 제자리에서 뛰면 지축이 움직인다는 농담이 있었는데, 새해마다 전 세계가 계획을 세우는데 세상은 이상하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계획을 세우는 걸 좋아한다. 시간과 우선순위에 따라 계획별로 줄을 세운다. 키 순서가 맞아떨어지고, 하나씩 '달성'이라는 문에 들어가면 안도감이 든다. 학원과 헬스장이 붐비고 뭔가 이뤄낸 기분이다. 다 같이 즐기는 명절에 빠질 수 없어 나도 새해 계획을 세웠다.

 

- 일어나서 출근 버스에 오르기 전까지 SNS를 보지 않는다.
- 집을 나서기 전 물티슈로 어디든 먼지를 닦고 나간다.
-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플랭크를 시도한다.
- 피아노를 친다. 연습한 날은 연습 내용을 기록한다. 연말에 기록을 토대로 '이것 봐! 내가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했어!' 하고 소수의 지인에게 자랑한다.

 

기존의 명절 경험에 비추어 몇 가지 바뀐 게 있다. '외국어 단어를 하루에 100개씩 외우기' 같은 정량적이고 거시적인 목표는 없어졌다. 이미 회사에서 숫자로 요구하는 목표가 충분하다. 일상까지 계량할 수 있는 목표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지키지 못하리라는 것도 안다. 10년 전만 해도 숫자로 가득 찬 계획판이었는데....... 전통이란 이렇게 바뀌기 쉬운 것이다.


요즘 내 계획의 대세는 아주 사소하고 작은 버릇 고치기다. 방을 깨끗하게 치우는 건 너무 큰 일이다. 먼지로 뒤덮인 방에서 우울하게 보내느니 환경을 더럽혀도 물티슈로 방 어느 구석이든 한 번씩 훔쳐낸다. 일주일에 세 번씩 한 시간 운동도 될 리 없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엉덩이를 한 번쯤 떼서 플랭크를 하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그 정도는 할 만하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데, 하루에 2, 3분 정도 하면 뇌가 습관을 바꾸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넘어간다고 한다. (생각보다 멍청한 장기다) 착실하게 연구 결과를 따라서 오늘이 12일인데 아직 꾸준하게 지키고 있다.


그 밖에도 거시적이지만 사소해 보이는 계획이 베스트 계획안에 들어가 있다. 일할 때 허리 펴기라든가. 이 계획은 대실패다. 지금도 허리를 구부린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굉장히 어려운 계획인데 1월 1일만 되면 턱턱 내놓게 된다.


자기 계발의 시대가 지나고 사소함과 일상이 시대 정신이 되었다. 일상을 지키려는 노력이 자기를 계발하려는 노력을 이긴다. 『좀머 씨 이야기』처럼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메뉴를 먹는다. 최근 읽은 『아무튼, 계속』에서는 매일 같은 일을 한다. 샤워를 하고 물기를 훔친다. 읽다 보면 누구도 이 하루 들을 내게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작년에 읽은 모든 책마다 '나를 잘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했다. '나'가 도대체 뭐라고. 일주일에 세 번 운동도 못하는 시시한 나는 그만큼의 사소함이 쌓여서 만들어진다. 일을 미래로 몰아서 크게 만들어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언젠가 각잡힌 옷장을 만들겠다며 추상미술 같이 쌓아둔 옷 산을 내버려두고, 부모님에게 잘하겠다는 마음은 한 달에 한 번 전화를 할까 말까 하는 저조한 통화실적으로 막을 내렸다. 큰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지고, 남은 건 일상뿐이다.


나는 이 사소하게 변한 명절 예식들과, 사소한 내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작은 물이 모여 큰물이 되고 사소함이 모이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는데, 계획이 잘 지켜지자 기분이 좋아져서 더 큰 계획을 세우겠다며 덜컥 피아노 레슨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피아노 선생님은 첫 레슨에서 고치면 좋을 사소한 연주 부분을 삼백 개쯤 표시해주었다. 과연 나는 이 사소함을 잘 지킬 수 있을 것인가. 계획절의 두 번째 주간이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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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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