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을 편집하는 방법을 영수증으로 알려주는 것, 제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신작 『40세 정신과 영수증』과 『24세 정신과 영수증』 개정판을 펴낸 정신 작가. 2만 장의 영수증으로 기록한 삶을 사랑하는 마음.
글 : 염은영 사진 : 표기식
202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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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작가가 새로운 책 『40세 정신과 영수증』을 펴냈습니다. 2004년 출간한 『24세 정신과 영수증』으로부터 꼬박 20년의 세월이 흐른 반가운 재회입니다. 『40세 정신과 영수증』은 삶을 자기답게 기경해온 작가가 사랑을 찾아 한국을 떠난 용기로부터 출발한 이야기이자 매일의 일상에 숨겨진 빛을 발견해 기록한 햇살 같은 에세이입니다. 그동안 2만 장의 영수증을 모으고 일기를 써온 작가는 삶을 마주하는 지혜에 대해 “1년 치 영수증을 모아서 타임라인으로 펼쳐 들여다보고 재구성한다”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영수증을 모으고 기록한 것을 “편집”함으로써, 우리가 지나온 한 시절의 “수위를 정하는 것”인데요. 이를 통해, 적어도 고통스럽게 아프고 슬펐던 시간에 골몰하는 관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인생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망설여질 때 작가는 “51%의 마음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는 것”을 택합니다.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머물러 있기에 시간은 너무 빠르니까요. 그러니 실패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을 품은 작가의 해맑은 용기를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은 것일 텝니다.




다시 정신과 영수증

 

드디어 만났네요. 새로운 『정신과 영수증』을요. 20년을 기다렸습니다. 출간 소감을 여쭤요.

일단 ‘끝났다!’예요. 어떤 일을 시작해서 끝맺는 누구나 느끼는 바로 그 기분이요. 더불어 ‘끝났다’는 제게 ‘시작이다!’이기도 합니다. 『24세 정신과 영수증』을 출간한 후로도 내내 영수증을 모아왔지만, 오래도록 책을 쓸 생각은 못 했는데요. 비로소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동안 쌓아온 것을 정리하고 싶기도 했고, 이 작업을 하고 나면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선 새로운 『정신과 영수증』을 끝낸 게 너무 좋고요. 한국에서의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미국 집에 돌아가면 제가 계획하는 새로운 상자를 열게 될 텐데, 그 일이 정말 설레요. 엄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그렇게 책을 좋아하더니 결국 해냈네.” 엄마는 『24세 정신과 영수증』의 존재는 완전히 잊어버리시고, 이번 책을 첫 책이라고 생각하셨더라고요.(웃음)

 

이 두 권을 같이 내자고 하신 것은 작가님의 제안이셨지요?

애초에 책 제목을 ‘나이'와 ‘정신과 영수증’을 붙여 짓고자 했어요. 혹 책이 늘어나게 된다면, 만화책 시리즈처럼 꽂아둘 수 있게요. 그러다 보니 판형도, 디자인도 일관되게 하고 싶었어요. 이 일을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는 때를 만나고 적을 찾게 되면서, 자연스레 두 권의 『정신과 영수증』이 태어날 수 있었어요.

 

두 권 사이의 시차가 꽤 큽니다. 30대를 건너뛰고 『40세 정신과 영수증』으로 돌아오셨어요. 우리가 그때의 기록을 만나지 못했던 까닭이 궁금합니다.

 30대 때는 뭐 했냐면요. 독자분들과 똑같은 30대의 삶을 살고 있었어요. 회사원이었고, 그중에서도 마케터였죠. 이것이 제 본업이었고 정말로 바쁘게 일했던 것 같아요. 일에 집중하느라 책을 쓰진 못했지만, 그때에도 매일같이 영수증을 모으고, 영수증마다의 메모들을 남겨왔어요. 그래서 언제든지 『30대 정신과 영수증』을 내자고 하면 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기록들이 다 살아 있으니까요. 데이터가 터질 만큼 많아요. 그때를 떠올려보면, 친구들이 제게 “뭐 해? 왜 이렇게 안 와?" 하면 메모하고 있었거든요.(웃음) 요즘엔 음성 기록하는 것이 너무 수월해서 주로 음성 메모를 남기고 있는데요. 저희 아들이 그걸 막 따라해요. “엄마 진짜 진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이런 말들을요.

 

왠지 작가님은 손으로 기록을 남기실 것만 같았어요.

『24세 정신과 영수증』 덕분에 일찍이 아카이브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니 기록하는 데 있어 새로운 기술이 있다는 게 반가울 수밖에요. 인공지능 기술 같은 것을 좋게,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요. 이런 기술이 장착된 기기의 도움을 받아서 쉽게 기록할 수 있으니 편리하죠.

 

『24세 정신과 영수증』은 세 번째 물성을 입고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재발간의 계기가 독자분들의 성원이었던 만큼, 세 번째 발간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독자분들은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시리라 짐작돼요. 그러면서도 새로운 독자분들이 나타나실 테고요. 혹시 벌써 새로운 독자분들을 만나셨나요?

두 가지 이야기를 같이 해볼게요. 먼저 기존 독자분들의 이야기예요. 예전엔 몰랐던 사실이 있어요. 제 책의 독자분들과 제가 위아래로 족히 열 살 정도 나이 차가 나더라고요. 저는 으레 저보다 어린 분들이 제 독자층이겠거니 했는데, 첫 출간 당시에 3, 40대 분들도 읽어주셨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검색으로 어떤 분들이 책을 사주셨는지 자주 들여다보는데, ‘우리 딸이랑 같이 읽었다’라는 글이 있더라고요. 독자층이 생각보다 넓었던 거예요.(웃음)


그리고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에요.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를 데리고 놀고 있는데,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 왔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잘 보여서 내년에 우리 아이를 보내볼까 하는 마음에 이 얘기 저 얘기 나누고 있는데, 제 아이가 제 친구 이름을 언급하는 걸 선생님이 들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퍼즐이 맞춰지셨나 봐요. 아이 이름, 동네 위치, 제 친구의 이름. 그분이 “정신 작가님?” 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요. 새로운 독자분을 어디서 만나게 될까 궁금했는데 놀이터였어요.(웃음) 그리고 벌써 만난 새로운 독자들이 있어요. 제 남편과 아이예요.



영수증을 모으고 편집하기=기억의 수위를 정하는 지혜

 

수많은 영수증 중에서 책에 담기기 위해 선택받은 영수증들에는 어떤 기준이 있나요?

이번 책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그거예요, 편집. 『24세 정신과 영수증』을 만들 때는 편집을 몰랐고, 『40세 정신과 영수증』을 만들면서 비로소 편집의 세계를 알았어요. 물론 『24세 정신과 영수증』에도 편집 작업이 있었죠. 다만 그 작업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어요. 알고 한 것과 모르고 한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큰 줄 몰랐고요. ‘영수증을 모은다’라고 했을 때, 보통 하루 평균 세 장 정도는 모을 수 있어요. 누구나 그럴 거예요. 그럼 한 달 모으면 백 장, 1년 모으면 천 장 정도 될 거예요. 저는 그걸 25년 했으니, 2만 5천 장의 영수증을 갖고 있는 셈이고, 그만큼의 이야기를 기록했으니 정말 많죠. 이 중에 어떤 영수증을 선택할 것인가가 그래서 중요한데, 이 말을 하기에 앞서 사람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게 있어요. 1년 동안 영수증을 모아 보시라는 거예요. 1년 치 영수증을 시간대로 쫙 늘어놓으면, 마치 필름같이 느껴져요. 자르고 넣고 뺀다는 측면에서 그래요.


우리가 우리 삶을 기록한다고 했을 때, 최소 ‘1년 기록하기’를 목표를 세운다고 해도 무척 막연해요. 그런데 1년 치 영수증을 모아서 타임라인으로 펼처놓고 들여다본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어요. 재구성하는 일이 쉬워지죠. 이 작업이 편집이고, 이 편집의 힘이 얼마나 크냐면 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가능해요. 제 경우, 너무 슬픈 일은 빼고 그 이야기는 쓰지 않아요. 살면서 슬픈 기억들이 있었어요. 다시 열어봐도 너무 슬퍼서 이 이야기들과 잘 헤어지고 싶었는데 이걸 편집으로 해결할 수 있었어요. 편집의 기준을 세우고 그에 해당하지 않는 것들은 빼버리기로 한 거예요. 그럼 그 시절의 수위가 결정돼요. 그렇게 기억을 재편성하면 ‘내 아픔은 그냥 이 정도였던 거야’ 하고 조금 가벼워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참 유익하죠. 그래서 하실 수만 있다면, 1년에 한 번씩 영수증 모은 것을 정리해보세요. 그럼 정신과 상담을 안 받게 될 수도 있어요.(웃음) 자기 삶을 편집하는 방법을 영수증으로 알려주는 것. 이번 책을 통해 제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예요.

 

편집을 통해 기억의 수위를 정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덕분에 처음 해봅니다. 무거운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가벼워질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 같아요.

저는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잖아요. 글을 쓸 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과업인 그런 사람이죠. 어떤 이야기든 함부로 지어내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다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요. 예전엔 그저 모든 걸 진실되게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요. 진실은 유지하되 무엇을 보여주고 숨길 것인지는 제 몫의 조절이더라고요.

 

그렇게 한 권의 책이 탄생했고, 한 시절의 슬픔이나 아픔과도 이별하고요.

네, 맞아요. 이제는 이렇게 남겨둔 것이 사실 같아요. 편집된 기록으로 남은 이 책이 오롯한 제 과거처럼 느껴져요. 게다가 이제 이 나이가 되니까 기억에서 사라진 것도 많거든요. 그러니까 이 작업을 매년 할 수 있으면 진짜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쓰겠다는 목표와는 관계없이, 1년에 약 일흔 장에서 백 장 정도의 영수증을 뽑아 정리하는 걸 하고 싶어요.

 

1년보다 더 짧게는 어려울까요?

한 달은 제가 해보니까요. 너무 스토리가 없어요. 적어도 천 장은 있어야 이야기될 만한 게 뽑아져요. 아, 이런 것도 좋겠어요. 지금이 5월이니까 올해가 약 6개월 정도 남았지요? 이 기간 동안 영수증을 모으고, 올해 말에 영수증 편집 작업을 해보는 거예요. 제가 해봐서 좋은 것을 다른 분들과도 함께하고 싶어서 커뮤니티 같은 걸 만들고 싶어지는데요.(웃음) 이런 제 모습을 보면, 저는 작가라기보다 프로젝트 매니저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아요.

 

작가님의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재능은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싸이월드 세대거든요. 그 시절 싸이월드 클럽 ‘영수증을 주세요’를 운영하셨지요. 그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지금 세대들에게 유행하는 ‘리추얼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고요.

그때 정말 많은 분이 참여했어요. 이런 이야기들이? 할 만한 것들로 가득했죠. 정말 글 잘 쓰는 분들이 많았고요. 책 제목을 ‘이름+나이+영수증’으로 정한 또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누구나 쓸 수 있는 제목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예요. 제가 한국에 계속 있어서 함께하면 좋겠지만 곧 떠나니 커뮤니티를 남기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그 바람의 일환으로, 서울에 있는 동안 독자분들을 만나는 기회에 ‘영수증 일기 쓰는 법’을 알려드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써보고 싶어요. 더불어 그 자리에 함께한 독자분들을 서로 이어주고요. 북토크 같은 행사를 통해 작가와 독자가 연결되는 것도 좋지만, 같은 자리에 모인 독자분들도 연결되면 참 좋을 것 같거든요. 이미 같은 결의 사람일 테니까요. 예상하기로는 전체 인원의 1/10쯤 모이게 될 텐데, 제 눈엔 벌써 이분들의 채팅창이 보인단 말이죠.(웃음)




자매애로 빚어낸 또 한 번의 프로젝트 『40세 정신과 영수증』

 

『정신과 영수증』은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프로젝트라고 생각됩니다. 함께 만든 분들이 이토록 정확히 명시된 책이 그래서 특별하고요. 책을 볼 때면 이제는 자연스레 사이이다 사진가, 공민선 디자이너의 이름을 떠올리게 돼요.

책 표지에 쓰인 그대로예요. ‘글 정신, 사진 사이이다, 디자인 공민선.’ 여기서 제가 한 건 글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늘 그래요. 손에 잡히지 않고 두둥실 떠 있는 글을 손에 잡히는 책으로 만들어준 것이 사이이다 작가와 공민선 디자이너 덕분이기 때문에 이들의 이름과 업적이 널리 알려지기를 진심으로 원해요. 두 분 모두 자신이 한 멋진 일에 이름을 앞세우는 분들이 아니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새로운 『정신과 영수증』은 두 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프로젝트예요. 두 분과 함께 만드는 게 아니면 세상에 또 다른 『정신과 영수증』은 없었을 거예요.

 

『40세 정신과 영수증』 작업을 시작한다고 하셨을 때, 두 분의 반응이 궁금해요. 누구보다 기뻐해주셨을 것 같아요.

“나 이제 책을 만들 거야" 하고 단체 대화 창에 이야기했을 때, “그래, 잘했어. 축하해” 하는 인사가 돌아왔어요. 그러면서 곧장 “이제 그럼 내가 미국에 갈까?”라고 사이이다 작가가 그러는 거예요. 사진 촬영 준비가 다 돼 있다면서요. 그렇게 두 사람이 미국에 오기로 했고, 이들을 기다리면서 ‘나 참 잘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이 책에 실릴 사진을 찍기 위해, 정말 그것만을 위해 그 둘이 비행기를 타고 미국까지 와준다는 게 너무 감사했어요. 그리고 도착해서는 저와 함께하지 못했던 그 시간들을, 그동안 같이 있었던 것처럼 촬영해주겠다면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며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작업을 해주었어요.

 

두 권의 책의 시차가 무려 20년이 넘는데, 세 분의 관계가 변함 없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이 관계가 오랜 시간 아름답게 이어져올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들려주셔요.

만일 그런 게 있다면 또 이상하기도 할 것 같기도 하지만.(웃음) 그래도 굳이 분석해보자면, 두 분이 정말 인격이 좋으셔요. 그래서 제가 묻어가는 게 있고, 이 두 분에게 부족한 제 마음을, 혹은 좋지 않은 면을 들킬까 봐 불안해하며 두 분의 모습을 닮으려 열심히 쫓았던 것 같아요.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아지는 관계이고, 그만큼 자연스럽게 흘러온 관계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면, 우리 셋 모두 되게 독립적인 사람들이에요. 각자 잘 지내는 것이 서로 잘 지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매일 채팅창을 붙들고 연락하지 않아요. 어쩌다 한 번 통화하면 세 시간씩 걸리지만요.(웃음)

20대에 이 두 사람을 만나고 나서 저는 충만했던 것 같아요. 결혼 전에 저는 이성에 대해 결핍을 느낀 적도 많고 어려움도 겪었는데요. 아시겠지만 연애 문제로 허비되는 시간이 참 많잖아요? 감사하게도 우정에 있어서는 한 번도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어요. 두 분 덕분에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세 분의 공동 작업을 받아들여줄 수 있는 회사와 새로운 『정신과 영수증』을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독립 출판을 생각했어요. 우리는 밴드인데,(웃음) 제가 단독으로 새로운 회사와 계약을 하고 우리 멤버들을 데리고 들어가는 데 있어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으니 걱정이 됐어요. 제가 새로운 회사에도, 우리 멤버들에게도 서운하게 할 수 없고, 다 같이 사랑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중간 역할을 잘하려고 했죠. 다행히 서로 잘 융화되었고요.



선물처럼 나타난 이야기장수

 

자연스레 『40세 정신과 영수증』과 『24세 정신과 영수증』 개정판이 둥지를 틀게 된 이야기장수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여쭙게 되네요.

『40세 정신과 영수증』 작업은 지난해 9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원고를 약 60% 정도 써놓고 나서 ‘이제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이 있어서 캐나다에 들렀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팟캐스트 ‘여둘톡(김하나, 황선우 작가가 진행하는 ‘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을 듣다가 이연실 대표님 존재를 알게 됐죠. 그 자리에서 와이파이를 구매해서 이연실 대표님이 쓴 『에세이 만드는 법』을 다운로드 받아 다 읽었어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 이연실 대표님께 연락했고요. 함께하기로 하고 나서부터 글 작업은 3~4개월 정도에 끝났고, 사진 촬영은 2월 초, 그리고 책이 5월에 나오게 된 거예요. 정말 초스피드로요.(웃음) 이연실 대표님을 만나서 고친 것도 많아요. 그게 참 좋았어요. 편집자가 곁에 있으니 든든했어요. 제가 본업 때문에 책을 낼 여력이 안 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 공백은 결국 편집자가 없어서였구나 싶었죠.

 

추진력이 좋으신 걸까요? 책을 내기로 마음을 먹고 편집자를 직접 찾아내신 걸 보면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한데, 제가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어요. 제게 나타난 거예요, 선물처럼. 이번 책에서도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차지했던 바로 그 이야기가 신앙 이야기예요.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정치나 종교에 대해 언급하는 게 사실 불편한 지점이 있어서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만큼 한 사람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저는 이 책을 쓸 때, 정말 솔직하기로 했으니까 하느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써서 사람들이 싫어할 수도 있지만, 이걸 빼면 이 방대한 이야기의 구조가 무너지더라고요.

 

상업 출판에 있어 해당 원고에 종교성이라는 면모가 두드러진다면, 담당 편집자는 ‘덜어내자’라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을 법해요.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이야기를 다 수용하다니, 용기 있다’ 하면서요.

사실 편집자님이 첫 독자잖아요. 그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여러 과정을 거쳤고, 지금의 수위로 출간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렇게 작업 막바지에 다다랐는데 이연실 대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성당에 나가보고 싶다고요. 첫 독자가 이런 반응이라면 저로서는 정말 좋은 것 아닌가 생각해요.


 

당신의 삶을 관통하는 ‘정신과 영수증’

 

『24세 정신과 영수증』의 첫 출간이 2004년입니다. 현재까지도 트렌드로 여겨지는 Y2K 스타일이 한창이던 바로 그때죠. 유행이 돌고 돈다고 하지만, 20년 전의 문화가 지금의 젊은 세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24세 정신과 영수증』의 개정판 출간 주기가 절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저는요. 중학생 독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때 그 중학생 독자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참 멋지게 성장했더라고요. 책에 등장하는 아그네스처럼요. 당시에도 중학생 독자들이 많았다고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중학생 시절에 되게 많은 걸 할 수 있구나 싶어요. 고등학생은 입시 준비로 독서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제 중학생 시절만 떠올려봐도 그래요. 그때 주로 진지한 책을 읽었어요. 중학생은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에요. 그래서 독자분들을 직접 만나면 드리고 싶은 말씀이 혹시 주변에 중학생이 있으면 이 책을 꼭 선물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거예요.

 

중학생 독자분도 만나셨어요?

못 만났어요. 10대 독자분들은 아직.

 

북토크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10대 독자분들을요.

어떤 분들이 오실지 궁금하고 기대돼요.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 소중하고요. 제가 그리는 제 독자분들의 이미지가 있어요. 앞서 언급했던 놀이터에서 만났다던 그 어린이집 선생님! 딱 그런 모습이에요. 몽실몽실한 솜사탕을 닮았고, 그런 솜사탕을 좋아하는 사람. 저는 솜사탕 메이커이고, 우리 독자분들은 솜사탕을 좋아해서 만들어 놓으면 그걸 기가 막히게 집어 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제 글과 닮은 분들이죠. 아마 오는 분들 보면 옷 스타일이며 뭐며 무척 닮아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분들을 매칭해드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거예요.(웃음) 하여튼 이제는 제가 저 스스로를 끌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게 다행이다 싶어요.

 

하고 싶은 걸 참고 돌아가시는 건데요?

제가 벌써 미국에 간 지도 8년 정도가 됐어요. 오래됐죠? 미국에서의 삶은 어떤 거냐면, 되게 단순하고 좋은 내향인의 삶이에요. 처음에는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그랬고, 그다음에는 아이를 낳으면서 살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됐어요. ‘확신의 외향인’으로 살던 제가 겪은 내향인의 삶을 두 글자로 정리하면 뭔 줄 아세요? ‘알.짜.’ 알짜의 삶이에요. ‘이렇게 알짜의 삶이 있었어? 왜 그동안 그렇게 공공재로 살아왔던 거야?’ 스스로에게 소리치곤 해요.(웃음) 저는 그동안 내향인의 삶을 너무 오해했어요. 내향형의 사람들은 외로운 삶을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몰입하며 나를 위해 잘 살더라고요. 덕분에 계획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성과도 잘 내고, 몰입의 경험을 하니 즐겁고요. 내향인이 누리는 삶의 기쁨을 알았어요.

 

작가님께 미국행은 사랑을 찾기 위한 모험 그 이상, 삶을 재조정하는 획기적인 선택이 된 것 같습니다. 『40세 정신과 영수증』의 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도요.

많은 분이 제게 앞으로 쭉 미국에서 살 건지 묻곤 해요. 저 스스로도 궁금해요.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어느 나라에 있게 될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보기도 하고요. 지금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두 나라를 왔다갔다하며 사는 거예요. 제가 떠날 때도 완전히 한국을 떠나 돌아오지 않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떠나는 첫날부터 그걸 느꼈던 것 같고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품으면서요.

제가 저희 부모님께 참 감사한 것이 저희 집이 부잣집이 아니거든요. 그런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꺼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제게 있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너무 가진 게 많았다면 겁도 많았을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잃는다고 해도, 깨끗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느낌이라 오히려 좋고요.

 

불안을 느끼지는 않으시고요?

느끼죠, 당연히. 다만 하고 싶은 마음이 51%면, 49%보다는 크니까 그걸 따라요. 1년이 얼마나 빠른데요. 망설이는 동안 멈춰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1년을 보내게 되는 거예요.

 

1년이라는 시간의 단위가 갖는 의미가 굉장하네요. 덕분에 1년 치 영수증 모으기에 도전해보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작가님. 오늘의 영수증은 무엇인가요?

(지갑을 펼쳐 보이며) 매일 지갑의 영수증을 싹싹 정리하기 때문에, 오늘은 없어요.(웃음) 요즘엔 택시도 애플리케이션으로 잡으니까 지류 영수증이 남지 않네요. 아마도 오늘의 영수증은 택시 영수증일 거거든요. 그러니까 어쩌면 저도 모르게 남은 영수증인 셈이죠. 그래서 저는 제 마지막 영수증이 참 궁금해요. 보지 못한 채로 남기게 될 영수증일 테니까요. 

제 마지막 영수증은 글쎄, 장례식 비용 영수증일까요? 아들에게 마지막 영수증을 잘 챙겨달라고 얘기해놓으려고 해요. 제 마지막이 어떻게 된 건지 기록으로 남을 수 있도록요.(웃음)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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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pfmqpfm83

2025.05.28

젊은 날 가장 좋아했던 책이었는데, 개정판을 예스24에서 발견하고는 소리를 질렀답니다.
배송은 받았는데, 여행길에 아껴보려고 고이 참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눈가가 촉촉해지는 이유는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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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세 정신과 영수증

<정신>,<사이이다>,<공민선>

출판사 | 이야기장수

24세 정신과 영수증

<정신> 글/<사이이다> 사진/<공민선> 디자인

출판사 | 이야기장수

40세 정신과 영수증 + 24세 정신과 영수증 세트

<사이이다> 저/<정신> 글

출판사 |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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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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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은영

쓰고 엮고 매만집니다. 더불어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