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의 곰팡이를 청소하는 동안 세탁소에 옷을 맡겼다. 세탁소에서는 두 달 넘게 행거 세 개에 내 옷을 맡아주었다. 서울 OO구 OO세탁소 사장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주방 집기뿐만 아니라 서재의 책도 곰팡이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새로운 의혹에 휩싸였다. 혹시 나무나 종이 물건 몇 가지뿐만 아니라 집 안 전체에 곰팡이가 퍼진 게 아닐까. 곰팡이는 주방과 욕실의 줄눈이나 무신경하게 방치한 식품에만 이따금 생기는 것인 줄 알았는데, 곰팡이가 핀 부분을 집중적으로 닦거나 도려내거나 버리면 가정 살림은 다시 청결을 회복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가정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가 곰팡이에 점령당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상황은 들은 적도 없고 본 적도 없기에 나는 여름내 곰팡이 굴에 살면서도 해맑게 눈치조차 못 챈 것이 아닐까.
서재 벽에서 최초로 목격한 곰팡이 무리를 지우고 여행을 다녀와 주방을 소독하는 며칠 동안, 알코올 냄새를 맡으며 사물을 하나하나 닦는 기계적 반복 행동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나는 요가에 의존했었다. 비는 계속 내렸다. 후덥지근해도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닫았다.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서재에 요가 매트를 깔아 놓고, 하루치의 소독 노동을 마감한 다음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패드로 요가 동영상을 보며 따라 했었다. 태양신 경배 자세를 취하며, 내 바깥의 다정하고 힘센 기운이 내게 닥친 고난을 이해하며 그것에 맞설 끈기와 용기를 하사하기를 바랐었다. 팔다리를 늘려 절하며 마음을 곧게 빗질했었다. 밖에 태풍이 불었다. 열었던 창문을 닫았다. 선풍기와 에어컨은 없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그 방에서, 곰팡이는 간절한 인간적 구도를 비웃듯, 아니 인간에 무감하게, 자기의 포자와 균사를 책에서 책으로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공급되는 습기와 합작하여. 나는 뭉실뭉실 부푸는 곰팡이에 둘러싸여 저기압 기단과 비구름 너머 무력한 태양신에게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즈음에 이르러 하루에도 몇 차례씩 트위터에 절망을 쏟아냈다. 곰팡이가 굉장한 생명력으로 번져가는 집에서 그것을 막겠다고 혼자 사투하는 데 지쳐서, 지치지 않으려고, 누구든 내 상황에 공감해 주기를 바랐다. 눈 돌리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수 있지. 더럽겠지. 징그럽겠지. 불쾌하게 왜 이런 걸 전시하나 싶겠지. 이해한다. 비가 계속 내렸다. 에어컨 없는 집은 습습하고 더웠다. 반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사이인데도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여러 실질적 조언을 전해주는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H.는 매일 전화해서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책은 다 버려도 된다고, 자기가 다시 다 줄 거라고, 밥 잘 챙겨 먹으라고, 매일, 정말이지 매일, 전화해서 생의 의지를 북돋아 주었다. H.의 매일의 전화와 그 마음과 말로 인해 나는 H.의 글쓰기와 그 동력의 비밀에 가장 깊이 들어가게 된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이어서, 자기 바깥과 타자를 향하는 이런 힘으로, 그런 글을 쓰는 것이로구나. 깊이, 깊이, 깊이, 앎에 닿았다. P.는 푸르스름하거나 허연 곰팡이 사진을 보자마자 소스라치며 이런 것은 사람의 살림집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사람이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고, 자연의 실재에 경외감을 표하며, 아, 나는 P.의 이런 과학 애호가적 면모를 참 아끼지, 그래도 사람이 사는 집을 사람이 살 수 있게 지키라고 제습기를 주문해 주었다. W.는 깨끗함과 돌봄을 기원하는 뜻에서 사치스러운 보디로션을 깜짝선물로 보내주었다. 친구들의 말과 구호의 손길 덕분에 나는 곰팡이와 만나 곰팡이를 겪으며 곰팡이와 함께하는 삶을 버틸 수 있었다. 태풍이 올라왔다. 비는 그치다가도 다시 내렸다. 습기는 생명의 원천. 생명체의 고향과 밥. 곰팡이에게도, 사람에게도. 넋 놓고 있을 수 없었다.
만약 집 전체에 곰팡이가 퍼졌다면 문제는 책이 아니었다. 침실에도 곰팡이가 침투했을 가능성이 있고, 나는 그것을 모르는 채 곰팡이와 더불어 잠을 자고, 자는 동안 내내 곰팡이를 흡입했을 수 있는 것이다. 모골이 송연하여 당장 침실을 살폈다. 비가 내렸다. 창문을 닫았다. P.가 사준 제습기를 가동시켰다. 이불을 걷어내고, 매트리스를 들추고, 나무 가구의 서랍을 일일이 들어내 점검했다. 침구, 서랍장, 화장대, 그리고 그 안의 옷과 화장품은 다행히 무사했다. 곰팡이가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침구와 옷을 전부 새로 세탁하고 화장 물품을 하나도 남김없이 알코올 소독했다. 화장품 용기뿐만 아니라 머리핀들까지, 머리핀의 클립과 머리카락 고정 톱니까지, 마치 스위스 시계공인 양, 꼼꼼하게, 빡빡, 들여다보며 닦았다는 뜻이다.
행거의 옷을 살필 차례였다. 천연섬유 재질의 옷이 꽤 있었으므로 살펴보기도 전에 겁이 났다. 마음을 굳세게 먹고 행거에 걸린 모직 코트, 실크 원피스, 가죽 점퍼를 하나씩 살펴보았다. 목깃, 소매, 안감, 주머니... 모든 주름과 솔기마다 들추고, 뒤집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창문 가장 가까이 걸려 있던 순면 트렌치코트의 겉면에 하얀 곰팡이 점박이가 돋아 있었다. 90년대 말에 구입해서 20년 넘는 세월 동안 곱게 관리한 옷인데, 세상에나, 이 옷은 나와 함께 프랑스로, 미국으로, 다시 프랑스로, 그리고 한국으로, 여러 차례 화물선 컨테이너에 실려 수개월 동안 태평양, 인도양, 대서양을 건너는 고생을 할 때도 무탈했는데, 단 한 번의 이상한 여름에 이렇게. 실크 원피스 두 벌에도 흰 곰팡이가 점점이 붙어 있었다. 그 중 한 벌은 런던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지인에게 특별히 주문해서 2008년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입은 것이었다. 세상에 단 한 벌밖에 없는 나의 옷. 글 쓰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처음 나간 옷. 미신적 일념이지만, 이 옷을 어떻게든 살려야 앞으로 내 글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옷을 살리자. 차별 없이. 곰팡이가 보이든 안 보이든, 행거의 옷을 껴안을 수 있는 만큼 껴안고, 단골 세탁소로 향했다. 비가 내리지 않는 시간에 맞추어. 차가 없으므로 여러 번 왕복해야 했다. 세탁소 사장님께 간절히 사정을 고했다. 내 집이 곰팡이 피해를 입었다고, 곰팡이를 다 닦아내기 전까지는 이 많은 옷을 둘 데가 없다고, 드라이클리닝 해주시고 부디 내 집이 다시 깨끗해지는 날까지 맡아주실 수 있냐고, 그런데 그날이 언제 올지 나는 모르겠다고, 몇 주일, 몇 달이 될 수도 있다고. 평소 손님과 눈을 잘 안 마주치고 과묵함이 지나쳐 쌀쌀맞기도 한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번에 내 말과 정황을 이해했다. 아무 걱정 말고 맡기라 했다. 힘내라 했다. 세탁소를 나오며 나는 내 뻔뻔스러움과 그의 고마움에 미안하여 울었다. 이 문단을 쓰는 지금도 다시 눈물이 솟는다. 습기는 생명의 원천. 생명체의 고향과 밥. 삶과 사랑의 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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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희
문학평론가. 비교문학 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산문집 『그림자와 새벽』과 『분더카머』를 쓰고, 앤 카슨의 『녹스』를 비롯하여 그림책과 그래픽노블 여러 권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