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책
정공법으로 가면 역시 생존 가이드북
솔직히 말해서, 몇 년 전 처음으로 생존 가이드북을 읽었을 때는 선인장을 짜내 물을 찾거나 자동차 배선을 건드려서 강제로 시동을 걸게 하는 법을 언제 쓸까 싶었다.
요즘 출퇴근길에 마스크 차림으로 다니고 있다. 전부터 황사나 꽃가루 날림이 심한 계절에는 마스크를 곧잘 끼고 다녔지만, 원래대로라면 본격적으로 여름에 접어드는 이런 계절에는 참 드문 일이다. 그런데도 지금은 언제 어딜 가도 나처럼 눈만 내민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원인을 따지고 보면 썩 내켜 하며 반가워할 현상이 아니라 씁쓸하지만, 그 동안 혼자만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 받을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심지어 부모님께서 근 20여 년 만에 나에게 외출 후에는 손을 꼭꼭 씻으라고 신신당부하고 계셔서 약간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 와중에 우연히 보게 된 서민 교수의 신문 칼럼이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는 각오로 2년 반을 버티자.‘는 말로 끝나서 마음에 와 박혔다. 오늘을 살기도 고된데, 심지어 다가오는 다음 날에도 살아남아있도록 궁리해야 한다는 게 퍽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내 삶이고 내 안전인 것을.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정작 행동을 취하려고 해도 마스크, 손 소독젤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났다. 모를 땐 일단 책이다. 전염병을 다룬 소설이나 전쟁 문학, 표류기, 포로 체험기, 좀비 아포칼립스 등 극한 상황을 다룬 책이 많이 있는데, 정공법으로 가면 역시 생존 가이드북이다. 생존 가이드북은 말 그대로 여러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주는 책인데 다소 생경한 분류와는 달리 꽤 다양한 책이 출간되어 있어서 놀랐다.
『생존 지침서』는 조난당했을 경우,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경우, 살면서 크고 작은 사건 및 사고를 겪게 되었을 때 살아남는 법을 안내하고 있다.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으니 대중교통에서 값비싼 물품을 꺼내지 말라는 얘기가 있어서 영국(정확히는 영국의 지하철)에 대한 쓸데없는 불신이 생겼지만, 마치 설명서 속 주의사항같이 간결하면서도 명확한 그림과 담담한 문장을 읽으며 가능성이 낮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위기사항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이 수확이다.
그렇게 워밍업을 한 뒤에는 더 자세한 『SAS 서바이벌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저자는 영국 특수부대 교관 출신인데, 앞선 책이 식용 버섯과 독버섯은 매우 흡사하게 생겼으니 면밀히 비교한 뒤 조심스레 먹어볼 것이라고 설명한다면, 두 번째 책은 식용버섯과 독버섯의 삽화와 상세한 설명까지 수록하고 있는 식이다. 물론 더 두껍고, 더 무겁다.
해외 저자의 글이 확 와닿지 않는다면 한국인 저자가 도심형 재난에 대비하는 법을 다룬 책은 어떨까. 『재난시대 생존법』은 전쟁 등 모종의 이유로 사회적 기능이 마비되었을 때를 가정하고 다양한 생존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언제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서 퇴근길 지하철이 마비될지 모르니, 직장 책상 아래에는 편한 운동화 한 켤레를 마련해두라는 팁에서부터, 라면은 장기보관에 적합하지 않으니 보존식품으로는 건빵과 소면을 추천하는 등, 보다 비근한 사례가 많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몇 년 전 처음으로 생존 가이드북을 읽었을 때는 선인장을 짜내 물을 찾거나 자동차 배선을 건드려서 강제로 시동을 걸게 하는 법을 언제 쓸까 싶었다. 마스크에서 너무 멀리 간 것 같은 생각도 조금 들지만, 이런 류의 책은 한번씩 읽어볼 만 한 것 같다. 꼭 정확한 지식을 외워두지 않더라도 언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는 것을 가끔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생존력이 약간은 높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내일 읽으려고 사둔 책도, 주말에 입으려고 아껴둔 옷도, 당장 지금 내가 안전해야 있는 것이니까.
생존 지침서
존 '로프티’ 와이즈먼 저/이영경,이은일 공역 | 필로소픽
세계 최정예 특수부대 SAS의 생존기술을 담은 서바이벌 가이드북. 등산, 여행, 캠핑, 재해, 전쟁 등으로 문명생활에서 벗어났을 때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생존을 위한 필수장비의 선택과 준비, 물도 식량도 없는 오지에서 살아남기, 비바람에 끄떡없는 피난처 짓기, 부상당한 동료를 위한 응급처치, 태풍?홍수?지진 등 자연재해 극복하기,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상황에서 길찾기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이 서바이벌 시나리오와 함께 소개된다.
SAS 서바이벌 가이드
존 '로프티’ 와이즈먼 저/이영경,이은일 공역 | 필로소픽
세계 최정예 특수부대 SAS의 생존기술을 담은 서바이벌 가이드북. 등산, 여행, 캠핑, 재해, 전쟁 등으로 문명생활에서 벗어났을 때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생존을 위한 필수장비의 선택과 준비, 물도 식량도 없는 오지에서 살아남기, 비바람에 끄떡없는 피난처 짓기, 부상당한 동료를 위한 응급처치, 태풍?홍수?지진 등 자연재해 극복하기,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상황에서 길찾기 등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 기술이 서바이벌 시나리오와 함께 소개된다.
재난시대 생존법
우승엽 저 | 들녘
비상식량의 조건에서부터 정수방법, 비상장비와 대체장비 활용법을 총망라하다!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생존의 법칙, 생존의 기술 ‘생존의 시대’가 오고 있다. 정부 당국과 사회적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서 각자 스스로의 안전을 대비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도시에 살고 있는 평범한 시민의 눈높이에서 일목요연하게 재난에 대비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추천 기사]
- 1990년대를 추억하는 책 2권
- 우리 부부는 귀가 얇습니다
- 범인은 바로 이 맨션에 있다
- 인생도, 독서도 타이밍
언젠가는 ‘안녕히 그리고 책들은 감사했어요’ 예스24 MD.
22,500원(10% + 5%)
22,500원(10% + 1%)
11,700원(10%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