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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바로 이 맨션에 있다

『그랜드맨션』을 읽고 떠오른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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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1년은 내가 지금까지 지냈던 그 어떤 1년보다도 임팩트 있고, 비현실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2007년 나는 도쿄에서 근무 할 기회가 생겨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 두고 일본행을 선택했다. 나이도 많은 싱글 여자였던 나. '가면 연애도, 결혼도 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모두들 "걱정 마라 네가 갔다 와도 우리는 여전히 싱글이며 결혼하지 않고 있을 것이고 너 또한 일본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연애 하거나 결혼할 확률은 높지 않지 않겠냐"며 모두들 나를 도쿄로 보내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나의 도쿄 생활에서의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첫 번째 숙소는 도쿄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사이타마현이란 곳의 신축 맨션이었다. 나의 회사는 전국에 체인을 둔 맨션 회사 L사와 계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여러 지역 중에 선택하는 것이었는데, 아무튼 나는 좀 먼 대신 신축이라는 이점이 있는 그곳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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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있던 날은 일본에 도착한 지 3일째


퇴근을 하고 역 근처의 슈퍼에 가서 이것저것 요리할 재료들을 사 가지고 집에 들어왔다. 3층짜리 맨션이었는데 1층은 보안에 취약하기 때문에 3층이라 다행이라고 했다. 아주 작은 현관과 부엌 그리고 방에는 조그만 다락방이 있는 복층 구조라서 2층에 잠자리를 만들어 놓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구조였다.


새 건물이라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소음에는 너무나 취약 해 옆 방에서 핸드폰의 진동소리나 딸꾹질 소리까지 바로 내 방에서 나는 듯 들릴 정도였다. 모두들 1인 세대로 각자 그 닭장 같은 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다시 그날 저녁으로 돌아가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TV와 온갖 불을 다 켜 놓고 요리 좀 해 보겠다고 장을 봐 온 것을 방에 내려 놓고는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지만) 복층으로 올라가 요리 할 동안 읽을 책을 꺼내러 올라간 상태에서 그대로 이불 위에 누워 버렸다.


그러니까 1층에는 방, 복도, 부엌에 불이 다 켜져 있고, TV가 켜져 있고, 장을 봐온 재료들은 방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책을 꺼내러 올라가서 그대로 옷도 갈아 입지 않고 곯아 떨어진 것이다. 한참을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은 철문이었고 굳게 닫혀져 있지만 잠그지 않았던 것이다. 잠결에 그 철문 소리가 옆 방일 거라 생각했고, 머릿속으로는 ‘아 불을 꺼야 하는데, TV도 꺼야 하는데’ 하며 비몽사몽의 상태였는데 그때 작은 발자국 소리가 바로 이 방에서 나는 것처럼 들렸고 조금 있자 바로 아래에서 사다리를 살짝 움켜 쥐고 한 발짝 두 발짝 올라오는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느꼈다.

 

감각적으로 느끼고 바로 고개를 들자 한 남자가 날 쳐다 보고 있었다. 그 거리는 1미터. 그 순간 나는 인간이 낼 수 없는 괴물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아아…악!!!!” 마치 이 소리의 파장으로 나를 보호하겠다는 본능으로 한번도 듣도 보도 못한 짐승의 소리를 냈고, 그 남자는 놀라서 다시 내려가 후다닥 나갔다. 다시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뛰어 내려와 철문을 열어 밖을 살폈다. 그 새 어디선가 문이 ‘쿵’ 하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내 옆집 사람이 복층에서 창문으로 내다 보는 게 느껴졌다. 마치 누가 이 시간에 이렇게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냐는 듯. 나는 그대로 들어와 그때부터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새벽 1시였다. 그 상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심지어 휴대폰도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방 한 구석에 그대로 주저 앉아서는 TV를 끄러 가지도 못하고 불을 끄지도 못한 상태로 동이 트는 것을 보았다. 다행히 토요일에 신주쿠 시내에서 동료를 만나기로 했다. 이 끔찍한 사실을 아무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내가 물소리에 듣지 못할까봐 문을 다 열어 놓고, 샤워를 하면서도 계속 문만 쳐다봤다. 간신히 옷을 입고 신주쿠 스타벅스에 도착하여 동료를 만나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그날 동료와 함께 집에 가서 급한 소지품과 옷가지를 챙겨서 다른 동료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있으면서 다른 숙소를 알아봤고 경찰에 신고를 했고 동료들과 함께 가서 이삿짐을 챙겨 나왔다.

 

 

범인은 바로 이 맨션에 있다

 

난 강력하게 범인이 그 맨션, 그것도 같은 3층이며 오른쪽이 아닌 왼쪽 복도 쪽에 사는 사람이라고 확신을 했다. 경찰서에 가서도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경찰은 타이핑이 아닌 볼펜으로 사건 경위를 받아 쓰다가 틀리면 다시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며 처음부터 새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 있는 젊은 경찰은 각도기와 자를 가지고 지도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지금이 몇 년도 인지 의심스러웠고, 과연 이들이 제대로 범인을 잡아 줄까 의심스러웠다. 현장검증이 있는 날 같이 갔는데 내가 강조 한 것은 범인이 이웃일거고 키는 몇 센티 정도 되고 수염이 있고 눈이 컸고 지금이라도 다시 본다면 난 바로 알아 볼 수 있다고 하였지만 이웃들을 근거 없이 대질 할 순 없다며 지문 채취를 수사물에서 보던 방식으로 하고 있었다. 나의 예상은 맞았다. 과연 그 경찰들이 범인을 잡을 생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몇 개월 후에 나에게 어느 경찰서로 출두해서 범인 얼굴을 가려 보라고 해서 갔더니 작은 방에 데려가 아주 오래된 앨범 같은 걸 보여 주며 범인이 이 안에 있냐고 했다. 답답할 노릇이다. 사진은 흑백이었고 최신 사진들도 아니었다. 이런 이미지 같기도 하고 살이 좀 빠진 이미지라고 했더니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면 안되고 사진을 보고 바로 “바로 이 사람이에요!” 해야 수사를 할 수 있단다. 결국 사건 종결을 하고 싶어서 나를 불렀단 생각이다. 사인을 했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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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두 번째 숙소는 우에노라는 좀더 시내에 있지만 사다코가 튀어 나올 듯한 큰 아파트였다.  마루도 다다미였고 엘리베이터는 세 사람이 타면 꽉 차 버리는 아주 오래된 아파트. 나는 그 아파트를 ‘링’아파트라고 불렀다.  방이 세 개가 있었는데 동료들과 함께 사용하는 아파트라서 나는 곧 다른 맨션을 구해서 나갈 동안 임시로 있을 곳이었다.


구석에 있던 작은 방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방이라고 했다. 나는 그 곳에 짐을 풀었다. 잠을 자고 있는데 너무나 선명하고 큰 ‘비닐봉지’ 소리가 내 등뒤에서 났다. 조금 부스럭대다가 다다미 위를 타다다다 지나가는 소리가 나기도 하고 다시 비닐을 갖고 장난을 치는 소리가 계속 났다. 난 귀신이 무섭진 않는데 그렇다고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아 뒤를 돌아 누울 수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난 지금 깨어있고 네가 무섭지 않으니 제발 나가주렴’이란 뜻으로 한국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 시간이 새벽 5시. 나는 누운 그 상태로 전화를 해서 안부만 전하며 별일 없다고 하고 끊었다. 그 도깨비 귀신은 잠시 조용하더니 몇 번의 더 장난질을 치고는 사라졌다. 회사에 와서 이 얘기를 하니 그 방 기운이 좀 이상하다며 몇몇 동료들이 겪은 얘기를 해줬다. 역시 별로 좋은 기운의 방이 아니었다. 나는 그날로 안방에 있는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방을 옮겨 같이 안방을 사용했다.


세 번째 숙소는 스가모라는 좀더 시내와 가깝지만 아주 아주 오래되고 공동묘지를 지나가서 바로 나오는 곳에 위치한 맨션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귀신이 무섭지 않다. 그래서 퇴근할 때 공동묘지 한 복판을 가로질러 지름길로 다녔다. 이 집은 너무 좁아서 친구들이 한국에서 놀러 오면 슈트케이스를 바로 현관에다가 쌓아 놓아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작은 방에 침대가 있어 나는 주로 2층 침대에서 잠을 잤다.


나는 이미 일본에 온 지 한 달이 되었지만 그때 그 사건으로 인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에어컨 소리에도 민감해서 잠이 깼고, 이 좁은 집에 그 누구라도 함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부스럭 소리에 잠이 깼다. 그 순간 난 누군가의 눈과 마주쳤다. 그건 바로 쥐가 천장에서 떨어지면서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쥐 가족이었다. 나는 다시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침대에서 뛰어 내렸다. 가까이 사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와달라고 하였고 그 새벽에 달려온 동료는 안에서 쥐를 때려 잡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난 이후 들어가 옷장을 열어보니 옷들 사이에는 쥐 똥이 가득. 그제서야 내 책들을 쥐가 갉아 먹고 알 수 없는 얼룩이 쥐의 오줌이란걸, 더 끔찍한 건 쌀 봉지의 한쪽 끝이 쥐가 파 먹어 너끈히 쥐가 드나들며 쌀을 퍼 먹었을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 동안 쥐 가족과 함께 같은 쌀을 먹으며 쥐 똥이 있는 옷을 입고 다녔을 것이다.


 

그 누구라도 함께 있고 싶었지만 그게 너희는 아니잖니


소름이 끼치면서 엉엉 울음이 터졌다. 도둑을 마주쳤을 때도 울음이 나지 않던 것이 그제서야 울음이 터졌다. 울며 쓰레기 봉투에 옷을 주어 담아 버렸다. 빨래를 하기도 싫을 정도였다. 나는 다시 그 길로 짐을 싸 가지고 나왔다. 이쯤 되니 회사 동료들이 걱정스럽게 “이상, 이상은 일본하고 안 맞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얼마나 일본에서 살고 싶었는데.’


다시 호텔에서 몇 일 지내다가 네 번째 맨션을 구했다. 명백한 사유가 있을 때 위약금 없이 집을 옮겨 주었다. 아마 맨션회사에서도 왜 유독 이 사람에게만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나 골칫거리였을 것 같다.


나카노구의 신에고타로 이사 후, 그제야 나에겐 평화가 찾아왔다. 일본을 떠날 때까지 있던 그 동네는 사람 냄새 나는 깨끗한 동네였다. 적당히 시내와 떨어졌고 주택가는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동네 구경할 맛도 나는 내가 진정 꿈꾸던 일본의 소박한 동네. 봄이 되면 온갖 꽃 향기가 동네 전체를 수 놓는 동네. 틈만 나면 자전거로 산책을 하는 그런 동네가 다행스럽게도 나의 마지막 숙소였던 것이다.


며칠 전 읽은 『그랜드맨션』이라는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은 4층짜리 맨션에서 사는 사람들의 미스터리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여러 사람들의 시점으로 똑같은 사건을 맞춰보는 재미. 지독한 층간소음, 고령화 사회의 독거노인들, 가정폭력의 문제가 나온다. 읽으며 내내 일본에서 지냈던 맨션들이 그려져 오랜만에 나의 도쿄 숙소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했다. 도둑인지 치한인지부터 도깨비 귀신, 심지어 쥐까지 나를 괴롭혔지만 그래도 내게 일본에서의 1년은 너무나 행복했던 호시절이었음을 그때 함께 했던 동료들과 안주거리로 얘기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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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맨션 오리하라 이치 저/민경욱 역 | 비채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나만 아니면 상관없고 서로 믿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그늘이 반영된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연일 쏟아져 나오는 뉴스가 더는 남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 ‘서술트릭의 대가’로 불리는 작가답게 밀실은 물론 다중시점과 시간차 서술 등의 기법으로 읽는 즐거움 또한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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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윤정

아르토 파실린나의 블랙유머를, <크리미널 마인드>의 마지막 명언을, 김기덕과 홍상수를 좋아하지만 어둡지 않아요. 밝고 유머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여자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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