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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야지

남자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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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야 한다. 아니면 백로 노는 곳에 까마귀가 가든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든 뭐 별 일 생기겠느냐만, 여왕벌 있는 커뮤니티에는 일반인 여성이 가 봤자 연애하기는 글렀다. 남자도 마찬가지인데 지덕체를 두루 겸비한 꽃미남 있는 곳에 일반인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등장한들, 회원수가 늘어날수록 회비는 저렴해진다는 규모의 경제를 입증해주는 역할밖에 못한다. 『논어』에 나오지 않나.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사람이 있다” 고. 셋 이상만 모여도 그 모임에는 우아한 날개짓을 자랑하는 여왕벌이나 품격 있게 갈기를 휘날리는 숫사자처럼 특출난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보통 수준의 지덕체를 겸비한 일반인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가 가야 한다. 아니면 백로 노는 곳에 까마귀가 가든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자원이 한정되어 있기에 생기는 ‘희소성’. 인간의 욕망이 무한한지 아닌지는 논란거리지만, 여하튼 희소할수록 가치는 높아지는 듯하다. 우리는 여초집단에서 남자 한 명, 남초집단에서 여성 한 명의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지 익히 봐왔다.

 

 

여성들 많은 곳에서 일하던 ‘가’군은 지금 어디에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작년 9월에 쓴 글 중에 ‘여성들 많은 남자편에서 다룬 ‘가’ 군이라는 남자가 있다. 가 군이 바로 백로 노는 곳에 간 까마귀다. 그는 아마조녜스라는 직장에서 전설의 20대 1 생일파티를 이끈 주인공이다. 그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데, 여성의 손 40개가 부딪치면서 난 박수 소리는 갈릭 전문 퀴진을 초토화시켰다.

 

‘가’ 군은 부정하더라도, 그는 아마조녜스에서 꽤 인기가 많았다. 생수통 꽂을 때, 경품 나를 때, 행사 사진 찍어야 할 때, 그를 향한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가’ 군은 지성과 성품과 체격, 3박자를 다 갖춘 덕택에 이성으로써 매력도 꽤 있었던 것 같다. 직접 사귀자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친구나 선배나 후배를 소개시켜주겠다는 말은 참 많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소개팅해 준 사람은 그보다는 적었다고 하지만. (아, 이건 인기가 없다는 증거인가.)

 

그랬던 ‘가’ 군이 팀을 옮기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은 20대 1을 재현하기는커녕 남초인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예의상 소개시켜준다는 말이라도 꺼내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의 주위는 온통 폐허, 침묵. 외로웠는지 축구 슛 연습을 하다가 팔을 깼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축구 하면서 발이 아니라 팔을 다쳤을까. 나는 눈물 콧물이 쉴 새 없이 나오면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입은 그가 먼저 열었다.

 

“너, 사람이 가장 외로울 때가 언제인지 아니. 바로 아플 때,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야.”

 

그리고 ‘가’ 군은 내게 소개해줄 만한 여성이 없는지를 물었고, 나는 흔쾌히 거절했다.

 

 

남자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느냐 하면

 

‘가’ 군은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그때 너무나 담백하게도 거절한 데 대한 죄책감이 남아있는지라 이 자리를 빌어서 이야기한다. ‘가’ 군이여, 책을 읽으시게. 상대적으로 책 읽는 남자는 책 읽는 여성보다 희소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희소하니까, 책 읽는 남자는 책 읽는 모임에 가면 어지간해서는 주목을 끌 수 있다. 이건 상식과 경험으로 모두 알게 된 사실인데, 대한민국 대표 서점 예스24에서 책을 사는 주 고객이 여성이다. 개인적으로 나갔던 독서 모임도 가는 곳마다 여성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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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독자가 남자보다 많은 모습은 작가와 독자 만남에서 흔하디 흔한 풍경이다

 

책 관련 일을 하며 특히나 이런 분위기를 골수까지 느끼게 하는 곳이 저자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다. 남자가 많은 행사는 거의 없다. 특히 문학 쪽은 더 심하다. 역시나 여성 독자가 더 많이 참석했던 어떤 소설가의 행사였는데, 그때 들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소설가는 “소설은 타자의 이야기를 듣는 통로인데, 한국 사회의 불통 원인은 어쩌면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자들이 소설을 많이 안 읽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라고 진담 섞인 농담을 건넸다.

 

책을 안 읽어서 민주주의가 쇠퇴할 수는 있겠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나 거대 담론이라 잠시 뒤로 미뤄두고라도, 책 읽는 남자가 되면 확실히 매력은 상승한다. 사람으로서든 이성으로서든 말이다. 이상, 다자이 오사무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기억해보자. 멀리 과거에서 찾을 필요도 없이 옆에 있는 동료 여성은 누구보다도 김연수 작가와 심보선 시인을 훨씬 더 좋아한다.

 

굳이 역사적 자유 연애라는 틀로 인간과 인간이 만날 필요는 없겠지만, 문학 작품 안 읽는 탓에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누릴 수 있는 떨림을 못 겪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소설을 많이 읽어나가도록 하자. 자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책을 읽더라도 문학 작품을 보자는 방향으로 흐르는 듯하고 정리도 안 되고 수습도 안 되는지라 얼른 글을 마무리하겠다.

 

그래서 오늘 ‘솔직히 말해서’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이성애 중심주의에 반기를 든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연애하며 겪는 사건과 감정을 유쾌한 필체로 풀어낸 팜므팥알의 『연애의 민낯 , 역사적 자유 연애에서 결혼과 한 쌍으로 묶여온 출산과 육아를 생생하게 기록해낸 책 『엄마의 탄생』입니다.

 

* 글을 끝내는 시점에서야 깨달은 건데, ‘가’ 군은 대한민국 평균 기준으로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소설도 자주 읽는다. 그런데 안 생긴다. 역시 안 될 사람은 안 되나 보다.

 

 

엄마의 탄생

김보성,김향수,안미선 공저 | 오월의봄

『엄마의 탄생』은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 여성의 관점으로 파고들어간 책이다. 당연시되고 때로 강요되는 ‘엄마 노릇’이 사실은 어떠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분석, 그 속에서 당사자인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생생한 목소리, 그리고 대안을 제시한다. 신성불가침 영역인 ‘모성’을 철저히 현실에 비추어 구조적으로 해부했을 뿐 아니라, 이론과 당위에 가려져 간과되기 쉬운 실제 평범한 엄마들의 삶과 생각, 주체적인 분투까지도 담아냈다.

 

 

 

 

 

연애의 민낯

팜므팥알 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책은 남녀의 심리를 꿰뚫는 솔직발랄한 연애 드립은 물론이고, 연애하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법한 감정, 쿨하려 하지만 전혀 쿨하지 않는 ‘연애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다. 1부 ‘야매 연애 상담소’에서는 솔로들을 위한 연애 팁들이 담겨 있고, 2부 ‘구여친 이별 상담소’에서는 이별 후 현실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 오늘도 주말에 만날 소개팅남에게 영혼 없는 답장을 하며 ‘이번에도 아닐 것 같은데 그냥 뒹굴대며 텔레비전이나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이 책을 통해 말라가는 당신의 연애세포에 촉촉한 수분 크림 처방을 해보자.

 

 

 

 

젠더 트러블

주디스 버틀러 저/조현준 역 | 문학동네

섹스(sex)와 젠더(gender)의 구분을 허물고, 지배 권력의 토대인 가부장적 이성애주의의 본질을 폭로함으로써 기존 페미니즘의 패러다임을 단숨에 전복시킨 페미니즘 이론의 고전이다. 저자는 시몬 드 보부아르,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크 라캉, 자크 데리다, 그리고 미셸 푸코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현대 철학자들을 ‘퀴어 이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조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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