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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내 직업이 기차 승무원은 아니었다

기차를 타면서부터 매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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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내 직업이 기차 승무원은 아니었다. 스물두 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7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가끔 여행사에서 긴급 모객 하는 도깨비 여행이 유일한 낙이었던 평범한 직장인 이었다. 그런 내 삶이 2012년부터 많은 변화가 생겼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공부가 하고 싶었던 나는 스물아홉 살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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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오늘도 무사히 승무를 마치고 집에 와 책상 앞에 앉았다. 스프레이로 단단히 고정시킨 머리를 아직 풀지도 않은 채이다.

 

그동안 승무하면서 틈틈이 집필한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려 한다. 이 책은 심오하거나, 진지하거나, 생각에 잠기게 하거나, 어떤 질문을 던지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많은 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술술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부터 짧지만, 그래도 알차고 재밌게 살아온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서점에 가서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촤르륵 하고 책갈피를 빠르게 넘기듯, 글을 쓰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어떤 에피소드는 웃으면서 신나게 써 내려갔고 어떤 글은 가슴 아팠던 순간이 떠올라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내 직업이 기차 승무원은 아니었다. 스물두 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7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가끔 여행사에서 긴급 모객 하는 도깨비 여행이 유일한 낙이었던 평범한 직장인 이었다.  그런 내 삶이 2012년부터 많은 변화가 생겼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공부가 하고 싶었던 나는 스물아홉 살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교 졸업하면 뭐 할 거야?”

 “글쎄, 아직 생각 안 해봤어.”

 

친구들의 질문에도 저렇게 대답할 뿐 딱히 무엇을 해야겠다고 정한 것은 없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일 년 후,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유학가면서 ‘앞으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하는 작은 기대를 안고 떠났다.

 

어렸을 때는 우리 가족, 우리 동네, 학교 친구가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에서 만난 친구와 직장동료들이 생기고 인간관계가 넓어졌고 저절로 내 시야도 넓어졌다. 중국에 서 여러 나라 학생들과 지내며 그동안 내가 옳다고 생각한 고정관념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는 기숙사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깼다.


“벌써 아침이네? 알람이 따로 필요가 없고만.”


두터운 커튼을 뚫고 들어올 정도로 밝은 빛 때문에 눈을 찡그리며 시계를 집어 들었다.


“엥? 이게 머야?”

 

시계에는 숫자 3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밝은데 새벽 세시 반이라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창문을 한없이 쳐다봤다. 그때 중국은 하나의 시간으로 통일하고 있다는 것을 수업시간에 배운 기억이 났다. 여러 민족이 섞여 있어서 시간을 통합해서 쓸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글로만 배운 것을 몸소 경험해 보니 이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해졌다. 집과 회사를 오가며 지내던 단조로운 내 인생에서 새로운 문을 열고 더 넒은 곳으로 나간 기분이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 매일매일 이렇게 신기하고 가슴 뛰는 경험을 하고 싶다.’ 그렇게 작은 소망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나이의 시작인 서른 살에 기차 승무원이 되었다. 나에게는 지금까지 총 세 대의 기차가 생겼다. ‘남도해양열차 S트레인 승무원’으로 첫 발을 디디고, ‘평화열차 DMZ트레인’을 거쳐 현재 ‘정선 아리랑열차 A트레인 승무원’으로 부산에서부터 아우라지까지 전국을 돌아다녔다.

 

“관광열차 승무원? 거기서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내 직업을 소개하고 수없이 많이 들은 질문이다. 이제는 기차여행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 많은 분들이 관광열차를 찾아오고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변화는 외국인 손님들의 증가이다. 내국인 못지않게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손님들은 한국의 관광열차를 꽤나 반기는 모습이다.

 

얼마 전 어느 중학교에 가서 ‘전문 직업인과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다.

 

“기차 승무원은 어떤 일을 하나요?”

“관광열차는 KTX와 많이 다른가요?”

“스펙은 어떻게 되나요?”

“비행기 승무원과 기차 승무원은 하는 일이 같나요?”

 

학생들의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해 주면서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알린 것 같아 뿌듯했다. 주변 지인들에게만 들려준 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하니 조금은 쑥스럽기도 하다. 아직도 진행 중인 내 인생의 한 토막을 뚝 떼어내서 이곳에 적어 놓으니 묘한 기분도 든다.

 

‘會者定離’(회자정리)


나는 헤어짐에 익숙하다. 아니, 헤어지는 기분에 익숙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옆 반 친구들이 모두 쳐다볼 만큼 펑펑 울었다. 다른 중학교로 가는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슬픔보다 다시는 이 시절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사무치게 슬펐다.

 

나는 직감적으로 ‘헤어짐’을 느낀다. 갑자기 내가 있는 장소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거나 주변 환경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기분이 들고 나면 영락없이 내가 있는 곳을 떠날 상황이 생겼다.

 

이 책을 집필하고 나서 A트레인 승무원으로 발령이 났다. DMZ트레인 승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마치 내 동네같이 느껴졌던 도라산역을 떠날 생각을 하니 무척 서운했다.  ‘내가 이곳에 얼마나 더 올 수 있을까?’  발령 나기 며칠 전부터 임진강 철교 위를 지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난히 아름다웠던 임진강의 풍경과 눈이 소복이 쌓인 백마고지역을 사진에 담으면서 정든 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민통선 구역인 도라산역과 최북단 역인 백마고지역, 마지막으로 여행으로도 가본 적이 없는 강원도 정선까지. 나는 기차를 타고 매일매일 떠나고 있다. 이제는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헤어짐과 떠남에 익숙해지면서 새롭게 찾아온 것이 있다면, 일상의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이다.

 

기차를 타면서부터 매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기록했다. 기차에 탑승하는 모든 승객들이 나에게는 이야기 소재이다. 글을 쓰면서 새삼 느낀 건 내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는 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만의 노력이 아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며 또 한 번 감동을 받았다.

 

‘기차여행은 인생과도 같다’라는 글귀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입학, 졸업, 시험, 취업, 결혼, 가족 등과 같은 수많은 정차 역을 만나게 된다. 그 정차 역을 하나, 둘 씩 지날 때마다 다양한 사람들이 기차에 타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가끔은 고속선을 타고 지연 없이 빠르게 달려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빨간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로 바뀔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끝으로 유니폼 입은 내 모습이 선녀 같다고 해주시는 대한민국 최고 청렴경찰 아빠와 삶의 지혜를 끊임없이 가르쳐 주는 소녀감성 엄마, 그리고 내 인생의 든든한 나무 같은 오빠, 하얼빈에서 맺은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는 보배 같은 세진이,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자랑스러워 해주는 20년 지기 친구 은정 아름 효은, 꽃 같은 20대 초반에 만나 함께 서른을 맞이한 미녀 동생 수정이와 아름이, 덕분에 10년은 젊어지게 되는 단국대 중국어과 동생들과 많은 가르침을 주신 교수님들.

 

재능과 미모를 모두 겸비한 관광열차 승무원들. 서울 깍쟁이 언니를 부산사투리로 녹인 S트레인 동기들. 관광열차를 탄생시킨 코레일 관계자 분들과 코레일 관광개발 직원들. 멀리 미국에서도 내 책을 열렬히 응원해 준 아네스 안 작가님과 아름다운 ‘아트메신저’  이소영 작가님. 내 이야기를 멋지게 책으로 탄생시켜주신 도서출판 프리뷰 출판사 가족들. 내 기차에 탑승했던 수많은 승객들. 멋진 사진으로 도움주신 기차여행 전문가 박준규 님과 KTX 기관사 류기윤님. 그리고 지면에 다 적지 못했지만 나를 알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본다.

 

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독자 여러분께 이 책이 치열하고 각박한 사회에서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간이역 같은 역할을 해줬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는 순간 “아이고, 구경 한번 잘했네.”라고 해주신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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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환승역입니다 정세영 저 | 프리뷰
작가는 스물두 살에 대기업 사원이 되어 7년간 직장생활을 했고, 스물아홉에 중국어과에 편입해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서른에 관광열차 승무원을 시작해 매일 여행 같은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하고 시골장터에서 장보는 것을 좋아한다.늘 사진을 찍고 기록하고 알록달록하게 그림도 그리며 순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자신의 말처럼 책 곳곳에 자신이 찍은 사진들이 길지 않은 삶의 흔적처럼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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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세영

『서른,환승역입니다』저자

서른, 환승역입니다

<정세영> 저 12,600원(10% + 5%)

관광열차 승무원인 저자의 감성 에세이 레일 위의 꽃처럼 화사하고 따스한 그녀의 감성 에세이를 읽다보면 당장이라도 그녀의 기차에 몸을 싣고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매일 여행하는 여자 정세영 작가의 승무일기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의 이야기로 기록이 되어 남는다. 그녀의 여행일기는 일상의 기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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