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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배고플 때 아니 외로울 때 찾아가는 곳

뮤지컬 < 심야식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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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도 이런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에도 이런 식당이 있으면 좋겠다! 뮤지컬을 보고 나면 단박에 드는 생각이다. 혼자서도 스스럼없이 찾아가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식당, 지친 몸을 이끌고 풀썩 주저앉으면 늘 먹는 것을 알아서 만들어 주는 식당, ‘무슨 일 있느냐?’는 물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의 체증까지 내려가는 식당 말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이런 식당이 신주쿠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하고 있다. 이렇다 할 간판도 없는 이 식당의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하나. 하지만 손님이 원하는 음식은 재료가 있는 한 만들어주는 주인 때문에 식당에 찾아오는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채로운 음식이 매일 밤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식당은 보통 사람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정부터 새로운 하루를 열어가는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간판도 없는 이 식당을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늘 먹던 것으로 주세요!  

 

뮤지컬 <심야식당>은 동명의 베스트셀러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아베 야로의 작품인 이 만화는 지난 2009년 일본만화가협회 대상을 받았고,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와 대만 등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또 일본에서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시즌3까지 방영되고 있다. 이 초라한 식당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심야식당에는 몇몇의 단골손님이 있다. 여전히 순정적인 나이 든 게이, 겉은 거칠지만 속은 여린 야쿠자, 노래하고 싶은 이름 없는 가수, 노처녀 삼인방, 나이 많은 스트리퍼, 그 스트리퍼를 쫒아 다니는 모태 솔로남. 그들은 메뉴에 돼지고기 된장국만 적힌 심야식당에 와서 저마다 자기만의 음식을 주문한다. 그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채롭고 또 소박한 음식을.

 

저마다 마음에 체한 음식이 있다!
 
비엔나소시지, 달걀말이, 오차즈케, 고양이밥, 버터라이스, 야끼소바... 단골손님들이 주문하는 단골메뉴에는 저마다 묵은 사연이 있다. 누군가는 맛있게 그릇을 비워내는가 하면 누군가는 젓가락도 대지 않고 바라만 본다. 음식에 얽힌 사연. 손님들은 자기 얘기 좀 들어달라고, 아니 자기 좀 위로해달라고 심야식당에 찾아가 매번 같은 음식을 주문한다. 각자의 삶에 풀리지 않는 숙제, 저마다 마음에 넘어가지 않고 걸린 음식이 있는 것이다. 사실은 말이야, 옛날에 말이야, 있지 그게 말이야... 손님들은 음식에 담긴 사연을 얘기하고 때로 서로의 음식을 나누며 허기진 몸과 마음을 채우고 달랜다. 어쩌다 보니 체증이 가시기도 하고, 체증은 그대로지만 그것에 익숙해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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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고 짜고 때로는 달콤한, 인생은 음식 같다!

 

음식 맛이 모두 똑같다면 어떨까? 우리네 삶은 마치 음식처럼 다채롭다. 맵고 짜고 쓰고 달콤한. 간이 덜 된 음식이 밍밍하듯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은 평탄하고 평온하지만 무미건조할지도 모른다. 매운 맛이 있기에 순한 맛이 부드럽고, 쓴 맛이 있기에 달콤한 맛이 감미로운 게 아닐까. 심야식당에 모인 손님들도 저마다 희로애락, 다채로운 삶의 맛을 맛본다. 같은 사람 때문에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고, 같은 사건을 놓고도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시리다. 조금만 조리방법을 달리하고 양념을 달리해도 맛이 바뀌는 음식처럼 말이다. 재밌는 것은 누구도 내일을 알 수 없는 법. 예측할 수 없는 음식 맛처럼, 또는 무수히 변형되는 조리법처럼 인생은 순간순간 맛이 달라진다.

 

왜 심야식당일까?

 

상처 입은 사람들은 왜 하필 심야식당에 찾아들까?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또 다른 하루를 위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아닌가. 기자는 문득 어쩌면 이 심야식당이 가상의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치유의 공간 말이다. 아픈 마음을 껴안고 들어가 일상의 가면을 벗고 내가 힘들고 아프다 하소연할 수 있는 공간. 하루의 피로를 수면을 통해 회복하는 것처럼, 마음속의 피로는 그렇게 털어내고 치유 받고 다시 힘을 얻어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심야식당의 주인 마스터는 눈가에 커다란 칼자국이 있다.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지만, 그 깊은 흔적 때문에 손님들은 어쩌면 더욱 편하게 자신의 곪은 상처를 드러낸다. 저만한 흉터가 있는 사람이면 꽤나 골 깊은 사연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동병상련의 안식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연을 하소연하지 않는다. 다만 모두의 사연을 들어주고, 기억해주고, 적절한 요리를 만들어주고, 그리고 담백한 위로의 말을 한 마디씩 건넨다. 곁에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러니 심야식당도, 주인 마스터도 모두 상상 속의 것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낸 치유의 레시피 말이다.

 

우리 동네에 심야식당이 있으면 좋겠다!

 

일본 작품에서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작품과는 다른 사람냄새가 있다. 물론 뮤지컬 <심야식당>은 국내 제작진에 의해 2012년 초연됐고, 2013년 서울뮤지컬 페스티벌 예그린 어워드 혁신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원작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냄새는 순수 한국 작품이 빚어내는 향기와도 사뭇 다르다. 조금 더 사람의 마음 바닥에 닿아 있고, 조금 더 진솔하다고 할까? 많은 인기를 얻은 일본 배경의 작품들은 대부분 무대가 소박하고, 공연에서는 퍽이나 힘든 과정인데도 직접 요리를 해서 함께 먹는 장면이 많다. 뮤지컬 <심야극장>에서도 대단하지는 않지만 음식이 등장한다.

 

 극장 규모가 있다 보니 객석 전체로 냄새가 퍼지지는 않지만 지글지글 볶고 뚝딱뚝딱 써는 소리가 오감은 물론 오장육부까지 자극하는지 모른다. 이렇게 화려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않은 잔잔한 무대에서 묘하게 위로를 얻는 것은 우리네 삶이 결국은 먹고 자고 싸고 울고 웃고, 실은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소박한, 잔잔한, 또는 지루한 일일 드라마를 찍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우리 동네에도 이런 심야식당이 있으면 좋겠다. 나만의 음식을 만들어주는, 내 허물쯤은 세 발의 피라고 생각되도록, 그래서 편안하게 상처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얼굴에 커다란 흉터를 가진 마스터가 운영하는 심야식당 말이다. 

 

저무는 한 해에 왠지 마음이 쓸쓸하고 허무하다면 소시민들의 소박한 삶이 있는 뮤지컬 <심야식당>에서 스스로를 다독여보면 어떨까? 내년 1월 18일까지 대학로뮤지컬센터 중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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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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