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소와 엄 : 저희 로고송이 바뀌었어요. 아티스트한테 부탁해서 로고송을 만드는 게 로망이었는데요. 저희가 생각하는 감성을 정말 잘 살려주신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
불현듯(오은) : 로고송 때문에 한 번 더 듣게 되더라고요.(웃음) 오늘의 주제는 ‘이 작가처럼 쓰고 싶다’입니다.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박상현 저 | 남해의봄날
정혜승 ‘alookso’ ceo께서 추천사를 이렇게 쓰셨어요. “기자의 언어와 다르다”고요. 이 문장부터 너무 좋았어요. 뭔가를 탐사하듯, 보도하듯 쓰는 게 아니라 거기에 개인적인 시선, 일상적인 것들을 건져 올리면서 썼다는 거잖아요. 책을 안 읽을 수가 없었죠. 작가님의 이력이 흥미로운데요. 미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그 다음에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다고 해요. 그러다 뉴미디어에 투자하는 일을 했고, 지금은 여러 매체에 미디어에 대한 글을 쓰고 계시다고 하거든요. 다양한 일을 하셨기 때문에 식견이나 깊이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셨어요. 한편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미국 내에 아시아인 혐오가 극에 달했었죠. 때문에 이 책은 이방인으로서 외국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까지 잘 짚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바라본다는 것은 이미 타성에 젖은 상태일 수 있겠죠. 때문에 객관성이 조금 상실될 염려가 있어요. 아무리 냉철하게 나의 주관을 빼고 객관적으로 사회를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은 끊임없이 한국의 상황들도 예의주시하면서 미국의 상황을 비교하며 전개하는 글쓰기를 하시는데요. 부지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거든요. 그런 것도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작가님의 냉정한 시선이 빛을 발하는 책이었고요. 이것은 어쩌면 균형 감각에서 오는 것 같더라고요. 균형 감각 덕분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면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 자체가 무척 산뜻하고 탁월하게 전개되는 글들이 모여 있어서요. 그 균형 감각과 어떤 사안을 알고자 하는 마음, 탐구하는 마음이 결합하면 이런 글이 나오는구나 생각했고요. 작가님과 언젠가는 양질의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호텔의 어떤 표면에도 손을 대지 않게 되고 커튼, 손잡이, 수도꼭지, 테이블 등 주위 모든 것이 위험한 존재로 다가온다. 강박장애나 세균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 어떤 건지 이제야 감이 오는데, 그들만큼 능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 세상에 들어와 어설픈 흉내를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주디스 바니스탕델 글·그림 / 김주경 역 | 바람북스
표지의 그림을 보세요. 어떤 여성이 있는데 주머니에 뭔가가 있죠. 소녀의 환영입니다. 핏빛이죠. 처음에는 표지 그림을 심각하게 보지 않고 그냥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요. 제목과 표지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이 책을 조금 더 상상해보실 수 있을 거예요. 작가는 벨기에에서 만화와 일러스트 작업을 하는 작가고요. 이 그래픽노블은 수채화 느낌이 강한 그림을 갖고 있어요. 저는 그림이 너무 좋아서 이 작품을 여러 번 봤던 것 같아요. ‘페넬로페’라는 이름을 들으면 딱 떠오르는 게 그리스 신화잖아요. 이 작품에서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이 페넬로페인 거예요. 주인공 페넬로페는 인도주의 의료 단체에서 일하는 외과 의사입니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돼요.
“내 이름은 페넬로페. 하지만 난 베를 짜지 않는다. 남편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아들도 없다.”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 휴가를 맞아 페넬로페가 벨기에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맞는 이야기예요. 페넬로페에게는 일주일 후면 열여덟 살이 되는 딸이 한 명 있는데요. 전쟁터에서 환자를 돌보느라고 딸을 4년 동안 보지 못했어요. 페넬로페의 부모님과 언니는 페넬로페가 집에 정착하기를 바라죠. 한편 남편과 딸은 페넬로페를 이해해요. 페넬로페가 어떤 마음으로 전쟁터에서 환자를 돌보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받아들인 거예요. 하지만 집에 정착한다면 환영하겠죠. 더구나 4년 만에 집에 왔으니 페넬로페 역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그리움이 얼마나 크겠어요. 그런데 페넬로페가 벨기에로 돌아오기 전에 시리아에서 부상당한 어린 소녀를 치료하다 수술에 실패를 했어요. 그 죽은 소녀의 환영이 페넬로페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가족들이 반겨주고, 휴가 기간 동안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자꾸 죽은 소녀의 환영이 보이면서 페넬로페는 심리 상담도 받게 되죠.
페넬로페는 누구를 탓하는 사람이 아니고요. 다만 너무나 동떨어진 두 세계를 고민하는,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이에요. 결국 이 작품은 페넬로페가 휴가를 보내고 다시 죽은 소녀의 환영과 함께 전쟁터로 떠나면서 끝이 나요. 그림과 함께 봐야 하는 작품이기 때문에 결말까지 이야기했는데요. 꼭 그림과 함께 보셨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건강해지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모로 새해에 나의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너무나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개인과 가정을 넘어서 더 연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의 관심은 아픈 사람들과 고통 속에 있는 연약한 사람들을 향해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눠주기 위해 기꺼이 떠났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은 그들대로 떠나간 이의 빈자리를 서로 메꿔가며 자신들의 삶을 살아간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어딘 저 | 위고
양다솔, 이길보라, 이다울, 이슬아, 하미나. 이 멋진 90년대생 작가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저마다 탁월한 작가들이시고, 지금 엄청 멋진 결과물들을 세상에 보이고 계시죠. 또 이들에게는 글쓰기 스승이자 동료인 ‘어딘’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10대 후반, 20대 초반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에 모여 두 시간씩, 때로는 세 시간도 넘게 자신들이 써온 글을 내보이고 서로의 글을 치열하게 피드백하면서 글을 써왔어요. 그곳이 ‘어딘글방’이고요. 이 책은 어딘글방의 글방지기, 김현아 작가님의 글방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은이 이름이 어딘이에요. 본명인 김현아를 쓰지 않고 어딘으로 넣었다는 게 되게 중요하고 좋게 느껴졌는데요. 무엇보다 ‘글방러’라고 부르는 글방의 참석자들을 동료로 부르고 싶다는 의미 같았어요.
특히 인상적인 장면이 2부 끝부분에 있어요. 글방러 중에 ‘99’라는 분이 있어요. 이 글방러가 글방을 마치고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는 길에 동료 글방러와 나누는 대화를 뒤따라 가던 어딘이 무심코 들은 거예요. 구구는 “어른들 말 반만 들으면 돼”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어딘은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져서 명랑한 마음으로 밤길을 걸으면서 생각해요. ‘내가 하는 말을 반만 들어준다니, 나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마음껏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지.’ 이렇듯 어딘에게는 수직적인 시선이 없어요. 완전히 수평적인 시선이죠. 글방러들을 나의 제자라든지 내가 가르쳐야 되는 존재로 생각하기보다 함께 배워가는 존재, 함께 글을 쓰는 동료로 여기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우리는 동료니까 서로의 말은 그냥 반만 듣고, 그러면서 서로 생각을 키워가자, 우리 동료가 되어서 나란히 걸어가자, 이런 말처럼 들려서 정말 좋았어요.
이 책을 읽으면 글쓰기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어딘은 글쓰기가 세상을 보는 시선이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에 대한 것이라고요. 어딘은 글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곧 삶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을 하고요. 그만큼 글을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도 얘기하는데요. 저는 어딘처럼 살고 싶어졌어요. 사실 어딘이 하는 말을 생각하면 이 작가처럼 쓰는 것은 곧 작가처럼 살고 싶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신기한 일이라고 나는 종종 말하곤 한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도 아주 열심히 진지하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매번 새롭고 놀랍다. 저 명민한 이들은 알아챈 것이다. 자신이 곧 우주라는 걸, 내 한 몸이 꽃일 때 온 세상이 봄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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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