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셰럴드 Amy Sherald, <미셸 오바마 초상>, 2018
5살짜리 조카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차 안에는 동요만 흘렀다. 아이 아빠가 된 후로 내 동생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흥얼흥얼 동요가 나온다. 노래를 따라 부르던 동생이 갑자기 어떤 노래가 시작하자 “어, 이 노래 안돼 안돼” 하면서 황급히 음악을 끄고 다른 곡으로 바꿨다. 노래를 별로 신경 써서 듣지 않던 나는 왜 그러냐 물었다. 동요 가사가 ‘아빠는 넥타이 메고 출근하고, 엄마는 행주치마를 입고 배웅하는’ 내용이란다. ‘어른이 되면’이라는 동요다. 21세기에도 이런 동요가 불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남자는 일하는 노동자,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 나아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는 사람으로, 반면 여자는 이 노동자이며 가장이며 시민인 인간남성의 보조자로 길러진다. 놀이와 교육은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상상의 영역을 분리시킨다.
가장 ‘큰 일’ 하는 사람이 머무는 곳. 청와대. 그 곳의 주방, ‘퍼스트 키친’이 궁금하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초청한 오찬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송로버섯, 캐비어 샐러드, 능성어 요리, 샥스핀찜, 한우 갈비, 바닷가재 등 화려한 음식을 대접했다는 소식은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었다.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초기에 시장에서 ‘감자의 향기’를 맡던 사진을 떠올리면 그들의 식탁은 저 높은 곳 어딘가에 있는 듯 하다. 감자를 살 때 상처가 났는지 싹이 났는지 알이 굵은지 살피긴 하지만 냄새를 맡진 않는다. 감자 향기 맡는 사진에 비하면 감 말리는 영부인 김정숙 씨의 사진은 훨씬 좋은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영부인이 음식으로 세금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한식전도사’ 김윤옥 씨는 밥으로 외교를 펼치려 시도했으나 그 많은 국고가 어디로 증발했는지 궁금증만 남았다. 김정숙 씨는 “직접 만든 요리 내조”를 한다. 10시간 넘게 정성 들여 만든 인삼 정과를 후식으로 대접하고, 기자들을 위해 화채를 만들고, 해외동포를 위해 직접 담근 무깍두기와 함께 간장게장 400인분을 준비하고, 장병에는 통닭을 선물하며, 멜라니아 트럼프에게 직접 말린 곶감을 대접하는 등 '내조외교'를 선보인다. 그동안 ‘직접’ 담그고 ‘손수’ 준비한다는 기사가 여러 차례 쏟아졌다. 나아가 언론은 영부인의 역할에 대해 기대감을 내비친다. 요리로 여야 원내대표들 마음 사로잡을까, 영부인의 '요리선물'을 통해 국회와의 협치를 기대한다 등등.
그 동안 영부인 김정숙 씨의 활동을 소개하는 기사에는 이처럼 영부인이 만든 음식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말만 들어도 침샘이 자극받는다. 더구나 미국 교포를 위해 준비한 간장게장은 정말 감동이었다. 외국에 살면서 어지간한 한국 음식은 대충 비슷하게라도 흉내를 내어 만들거나 사먹을 수 있지만 게장은 도무지 해결이 안 되었다. 직접 대면한 적 없지만 문 대통령과 영부인 모두 호감 가는 인상이고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들이 내뿜는 매력이다.
세심하면서도 털털한 이미지를 주는 영부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영부인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 정치 속에서 지지율 관리에 힘써야 할테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전하려고 애쓰는 메시지다. “비늘 손질 잘 해주세요”, “주부 9단의 면모”, “소금을 잘 뿌려달라”. 작년 추석 장보는 영부인을 언론은 이렇게 묘사한다. 언론의 기사 하나하나가 주부에 대한 평가다.
영부인은 ‘유쾌한 정숙씨’라 불릴 정도로 친근함을 준다. 그러나 이 ‘유쾌한 정숙씨’를 대하는 시선을 보면서 때로 유쾌하지 않다. 2012년 한 방송에 출연했을 때 요리하는 김정숙 씨를 보며 제작진은 이렇게 묻는다. “남편 분이 좋아하시겠어요. 요리 잘 하셔서.” 그러자 김정숙 씨는 “내가 음식 못해도 좋아했을 것 같은데?”라고 답한다. 여자에게 요리를 잘 한다 못한다는 평가를 내리고 이에 따라 남자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심사한다.
여자는 어떤 위치에 있든 결국 음식으로 사람을 대접하고 돌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영부인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미국 영부인들의 요리법을 묶은 『영부인의 요리책 : 미국 대통령들이 좋아하는 요리First Ladies Cookbook: Favorite Recipes of all 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라는 책도 있다. 영부인의 이미지와 역할이 이처럼 전통적 성역할을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데 머물러 있으며, 또한 유권자들이 이 모습을 보길 원한다.
미국 영부인 중에서 음식 못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엘리노어 루즈벨트다. 게다가 그가 영부인으로 백악관에 있을 당시에는 대공황 시기라 그는 백악관의 요리부터 간소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루즈벨트 집권 이후 백악관의 식탁은 예전보다 훨씬 소박해졌고 엘리노어 루즈벨트의 식탁은 악명을 떨쳤다. 1937년 백악관에 초대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지금까지 그가 먹은 음식들 중 최악의 식사였다고 말했다. 후에 헤밍웨이와 결혼하는 유명한 종군기자 마사 겔혼도 루즈벨트 부부와 식사를 하기 전에 미리 샌드위치를 먹었다고 할 정도로 엘리노어 루즈벨트의 요리에 불만을 드러냈다. 요리에 대한 책임은 여자의 몫으로 규정된다.
정치인이 남성에 고정되어 있고 이 남성의 아내들은 남편을 위해 안팎에서 밥을 푼다. 유권자들은 (남성) 정치인의 (여성) 배우자들이 모여 자원봉사 하는 모습을 훈훈하게 바라본다. 이는 모두 ‘일하는 남자’와 ‘남자를 보조하는 여자’를 자연스럽게 보기 때문이다. 여자의 시간은 여자의 것인가. 결혼한 여자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결혼한 여자의 자리는 누가 정해주는가. 이를 여성의 도리나 의무라고 우기지만 결국 착취를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여성의 시간은 가족을 위해 쓰여야 하며 여성의 자리는 남편 옆에서만 가장 ‘정상적인 권력’을 갖도록 구성되어 있다. 가부장제는 그렇게 여성 착취를 여성의 권력으로 포장해서 굴러간다. ‘내조’라는 말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엘리노어 루즈벨트가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미국 영부인으로 꼽히는 이유는 그가 남편을 잘 내조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영부인 상에서 어긋나고 여성인권의 진보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나는 영부인이라는 개념이 차차 사라지길 원한다. ‘영부인의 역할’에 대한 개념은 ‘남성 대통령’이 대통령의 기본이 되는 한 바꾸기 어렵다. 배우자가 없는 대통령, 여성 대통령, 동성애자 대통령 등이 등장하면서 남성 가부장 대통령이 기본값이 되는 제도가 흔들려야 한다. 나는 어서 빨리 두번째, 세번째 여성대통령을 보고 싶다. 그래서 더 이상 ‘여성 대통령’이란 말조차 무의미해졌으면 좋겠다. 영부인을 두고 ‘여사’냐 ‘씨’냐 논할 일도 없어야 한다. 대통령의 ‘부군’이 해외교민을 위해 만든 간장게장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어색한가. 그 어색함이 여성에게만 자연스러울 이유는 없다.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