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언제부터인가 생일, 크리스마스, 새해가 내게 주는 특별함이 점차 줄어들었다. 벌써 36번의 생일과 36번의 크리스마스와 36번의 새해를 겪어봐서일까. 어렸을 때에는 매년 1월 1일이면 결의에 차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꽤 오랫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보냈는데 말이다. 그러던 내게 몇 해 전부터 재미있는 연례행사가 생겼다. 바로 신년 음악회를 관람 또는 시청하는 것이다. 우연치 않은 기회에 신년 음악회에 초청 받은 적이 있는데, 왠지 모르게 음악회 내내 마음이 붕 뜨기도 하고 설레는 것이 '새 해'가 밝았음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그저 1년 중 하루일 뿐이라며 무미건조하게 흘려 보낸 그간의 기념일들이 갑자기 무척이나 아까워지기도 했다. 사실 삶의 어떤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로부터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인데 말이다. 그렇게 신년 음악회는 잠깐 잊고 있던 새해의 특별함을, 활력을 다시금 깨워주었고, 그 이후 매년 1월 1일이 되면 여러 신년 음악회를 거의 찾아보곤 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공연은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는 듣는 내내 마음을 춤추게 만드는 곡이다. 신년 음악회의 공식 레퍼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은 아마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유명한 왈츠 곡이다. 스스로 몸치라 여기는 나를 춤추게 만들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이 곡은 매년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를 찾는 이유이자, 이 음악회를 떠올리면 괜히 설레고 웃음짓게 되는 이유이다. 특히 빈 필하모닉이 신년 음악회에서 왈츠를 연주하게 된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독일 나치스가 오스트리아 빈을 장악했을 무렵 일종의 위로 공연 내지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음악회였던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에서는 무거운 분위기의 곡보다는 자국의 왈츠를 연주하며 그날 하루만큼은 전쟁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했다고 한다. 올해로 77회째 열리고 있는데, 이런 역사 덕분에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 90개국의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으로 1월 1일을 시작하고 있다.
지친 심신을 따듯함과 행복함으로 채워주었던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꼭 감상해보길 바란다.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여러 미디어를 통해 신년 음악회를 중계하고 방영해주었는데, 직접 가서 볼 기회를 놓쳤다면 이 음반을 통해 신년의 설렘을 다시금 느껴보길 바란다. 특히 올해 음악회에서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를 맡았는데, 이번이 벌써 그의 5번째 빈 필하모닉 신년 음악회 지휘라고 한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빈 신년 음악회”라고 극찬을 받았다고 하니 CD와 DVD로 지나간 순간을 간직해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것에 지루함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더 특별함을 부여하는 이유는, 생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단조로워졌던 새해 맞이의 순간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어주었던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를 앞으로도 오래 오래 설렘으로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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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cardo Muti 2018 빈 신년음악회 (New Year's Concert 2018) 리카르도 무티, 빈 필하모닉Johann Strauss, Johann Strauss II, Josef Strauss, Franz Von Suppe, Alphons Czibulka 작곡 외 2명 | Sony Classical / Sony Classical
90개 국가에서 방영되며 매해 약 5천 만 명의 방청자가 지켜보는 클래식 계의 가장 큰 행사로 자리 잡은 이 행사는 품격 있는 음악과 하모니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윤한(피아니스트,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美버클리음악대학 영화음악작곡학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現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전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