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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펼쳐지는 황홀경

<조성진 – 드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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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연주하는 음악은 평면 스크린을 뚫고 나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너무나 입체적인 3D영화 같았다. (2018. 01. 02.)

출처_언스플래시.jpg

                                언스플래시

 

 

그대의 영혼은 빼어난 풍경이기에
가면을 쓴 춤꾼과 광대들이 모여들어
류트를 연주하고 춤을 추지만,
기이한 가면 아래로 슬픔이 비치네.

 

사랑의 쟁취와 행운의 삶을
단조로 노래하나
자신들의 행복을 믿지 않는 듯하고,
그들의 노래는 달빛과 뒤섞여 흐르네.

 

슬프고도 아름다운 고요한 달빛은
새들을 나무 위에서 꿈꾸게 하고,
대리석 조각에서 내뿜는 높고 가느다란 분수는
황홀경에 흐느끼게 하네.

<달빛>, 폴 베를레느

 

프랑스의 시인 베를레느는 달과 관련된 시를 종종 남겼다. 그리고 여러 작곡가들이 그의 시를 음악으로 재탄생시켰다. 프랑스의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의 <달빛>이 그러하고,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바로 그 곡, <달빛>도 베를레느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2016년 여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는 드뷔시 <달빛>과 함께였다. <해피버스데이 드뷔시!>라는 공연의 사회를 맡으며 <달빛>을 연주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아닌 나로서는 꽤나 긴장되는 도전이기도 했다. 연주할 때에 악보를 잘 보지 않는 탓에, 5분이 조금 넘는 곡을 못해도 500번은 넘게 들었던 것 같다. 때로는 정말, 달빛 아래에서 그 곡을 들어보고 싶어 밤새 산책을 한 적도 있었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는 부담도 잠시, 그렇게 여름 내내 한번의 지루함도 느끼지 못하고 나만의 <달빛>을 완성해나갔다.


사실 그토록 드뷔시의 음악에 더욱 푹 빠져서 연습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그의 음악에 재즈적 요소가 다분히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재즈라는 장르는 음악사적으로 훨씬 나중에 탄생한 음악이지만, 드뷔시로 대표되는 “인상주의” 음악에 쓰였던 화음과 리듬에서 재즈에서 자주 쓰이는 선율과 코드 진행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전에서 낭만으로 이어지며 불문율처럼 사용되었던 전통적인 장/단조와는 달리, 인상주의는 조금 더 자유로운 악파였다. 특히 드뷔시는 당시 동양적인 화성에 매료되어 곡에 신비로움을 더했는데, 이는 현대 재즈에서도 많이 쓰이는 스케일이다. <달빛>을 시작으로 드뷔시의 다른 곡들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는데,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은 마치 재즈의 퍼즐 조각을 하나 하나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드뷔시의 음악은 여전히 내게 흥미로운 세계로 남아있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당당히 우승을 거머쥐며 문화예술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새 음반이 드뷔시의 곡들로 채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른 그 어떤 음반보다 더욱 큰 기대가 되었다. 화려한 음악회라기보다는, 오래된 박물관 내지는 미술관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드뷔시의 곡들을, 그리고 그 속에 녹아있는 재즈의 퍼즐을 어떻게 표현했을까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쇼팽 콩쿠르 우승 이후, 조성진의 연주를 실제로 본 적이 있었다. 시상식장에서 한 번, 그리고 갈라쇼에서 한 번. 사실 우승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후광효과를 차치하고서라도, 조성진의 연주는 꽂히듯 귀에 들어왔다. 굳이 표현하자면 처음으로 3D영화를 보았을 때, 그 느낌이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은 평면 스크린을 뚫고 나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너무나 입체적인 3D영화 같았다.


이번 음반을 통해 다시 만난 그의 연주는 여전히 공간감이 풍부했고, 입체적이었다. 동시에 편안하고 따듯한 음악이었다. 궁금했던 <달빛>은 다른 어떤 연주보다도 유연하고 매력적이었다. 베를레느가 표현하고자 했던,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슬프고 외로운 달빛의 시상이 조성진의 연주를 통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다. 드뷔시의 음악은 특히 귀로 들리는 선율보다 음악을 들으며 떠오르는 따듯한 색채,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해내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조성진의 드뷔시는 눈 앞에 펼쳐지는 황홀경 그 자체였다.


더불어 한 해의 끝자락에서 만난 조성진의 드뷔시는, 나이가 들수록 빠르게 스쳐가는 듯 한 1년을 덤덤한 척 흘려보내려 했던 결심을 무너뜨리는 음반이었다. <달빛>을 들으며 걷고 또 걸었던 작년 여름처럼 음반을 듣는 내내 사색에 빠졌고, 시간을 붙잡을 기세로 2017년의 순간 순간을 곱씹어 추억하게 만드는 연주였다. 한 해를 마무리할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조성진의 드뷔시 음반과 함께하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조성진 - 드뷔시: 영상, 어린이 차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외 Claude Debussy 작곡/조성진 연주 | Universal / Deutsche Grammophon
조성진 특유의 서정성과 다채로운 음색이 드뷔시의 인상주의 작품들과 만나 마치 피아노로 표현되는 한 폭의 수채화를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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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한(피아니스트,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美버클리음악대학 영화음악작곡학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現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전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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