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는 단순히 2년에 한 번 열리는 ‘큰 전시’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보여줄지를 시험하는 현장이자 도시 문화의 구심점이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한 도시의 축제를 넘어 한 국가의 예술 방향을 견인한 것처럼, 한국에서도 지역 비엔날레들이 세계와 지역을 잇는 플랫폼으로 도약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장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올 하반기, 마음먹고 지역으로 나서면 도시의 공기까지 바꿔놓는 현장을 체감하게 될 비엔날레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1. 한글 국제 프레 비엔날레
 미스터 두들 작품. 사진 제공 : 한글 국제 프레 비엔날레
미스터 두들 작품. 사진 제공 : 한글 국제 프레 비엔날레
가을이 깊어 가는 세종 조치원 일대가 한글의 숨결로 물들었다. 9월부터 10월까지 6주간 열린 ‘2025 한글 국제 프레 비엔날레’는 ‘그리는 말, 이어진 삶’을 주제로 한글을 세대를 잇고 감정을 품는 예술적 언어로 확장해 보여주었다. 전시는 조치원 1927 아트센터, 산일제사, 북세종 상생문화지원센터 등 도시 재생 공간 전반에서 진행되었다. 강익중, 구본창, 김휘아, 빠키, 영국의 미스터 두들(Mr. Doodle) 등 국내외 작가 100여 명이 회화·설치·미디어·영상·인터랙티브로 한글을 새로 해석했고, 관람자는 자모가 빛·소리·움직임으로 변주되는 장면을 마주하며 익숙한 문자가 예술의 언어로 다시 피어나는 순간을 경험했다.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도시, 세종시는 한글의 상징성을 품고 있지만 그간 문화예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이번 ‘한글 국제 프레 비엔날레’는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전시를 넘어, 도시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예술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문화적 기반을 세우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제 시선은 내후년 열릴 본행사, ‘2027 한글 국제 비엔날레’로 향한다. 올해의 ‘프레 비엔날레’가 예고편이었다면, 다음 장은 한글이 예술로서 세계와 어떻게 호흡할 수 있는가를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무대가 될 것이다.
2. 대구 사진 비엔날레
 오픈 포트폴리오 현장 사진. 사진 제공 : 대구사진비엔날레
오픈 포트폴리오 현장 사진. 사진 제공 : 대구사진비엔날레
2006년 첫선을 보인 대구사진비엔날레는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사진’을 주제로 내세운 국제 미술 행사다. 회화나 설치에 비해 종종 주변부로 밀려나던 사진이라는 매체가, 이곳에서는 예술의 중심이 된다. 올해 10회를 맞은 비엔날레는 ‘The Pulse of Life, 생명의 울림’을 주제로, 30개국 2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진 축제다. 대구문화예술회관과 도시 전역에서 7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인간·자연·기술이 교차하는 생명의 현장을 탐구한다. 총감독 엠마뉘엘 드 레코테는 퐁피두센터와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의 시선을 벗어나 “모든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계”를 이야기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주제전과 특별전, 초대전을 비롯해 포트폴리오 리뷰·국제사진심포지엄·프린지 포토 페스티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전시를 넘어 사진 예술의 담론과 교류의 장으로 확장된다. 특히 1:1 멘토링 방식의 포트폴리오 리뷰에는 국내외 사진 전문가 10인이 참여해 작가들과 직접 소통하며 창작 과정을 나눈다. 프랑스 작가 니콜라 플로크의〈물의 색〉은 전 세계 바다의 색을 기록하며 생명의 근원을 시각화하고, 메건 리펜호프는 카메라 없이 파도와 바람의 흔적을 인화지에 남기는 사이아노타입 기법으로 자연의 숨결을 포착한다. 한국의 주상연은 나뭇가지와 혈관 이미지를 병치해 인간과 자연의 구조적 닮음을 드러낸다.
도시는 이번 비엔날레 기간 동안 거대한 카메라처럼 변모한다. 가와우치 린코의 감성 사진전, 젊은 작가들의 〈인카운터〉, 포토북 전시와 프린지 포토 페스티벌이 동시에 펼쳐지며 대구 전역이 이미지의 장으로 확장된다. 결국 이 비엔날레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생명의 순간을 바라보고 있는가.”
3.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 전경 이미지. 사진 제공 :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 전경 이미지. 사진 제공 : 청주공예비엔날레
1999년 첫선을 보인 청주공예비엔날레는 국내는 물론 세계 공예계에서도 주목받는 대표 축제다. 회화나 조각이 아닌 ‘공예’라는 본질적 창작 행위를 중심에 두며, 손끝의 기술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세상 짓기 Re_Crafting Tomorrow’다. 9월 4일부터 11월 2일까지 청주문화제조창과 시 전역에서 열리며, ‘짓다’라는 행위를 통해 인간·자연·사물이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탐구한다. 공예를 삶의 감각으로 되살리고, 디지털 시대에 손의 감각이 가진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번 전시는 72개국 1,300여 명의 작가와 2만 5천여 점의 작품이 참여한 역대 최대 규모다. 프랑스 작가 모나 오렌(Mona Oren)의 설치 프로젝트를 비롯해 장인정신이 깃든 섬세한 공예품부터 반려동물을 위한 유쾌한 작업까지, 인간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등장한다. 공예비엔날레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체험과 교류의 장으로 확장된다. 작가 인터뷰, 워크숍, 공예 스튜디오, 어린이비엔날레 ‘놀러와요! 누구나 마을’ 등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시간의 결을 엮는 언어, 공예. 이번 비엔날레는 손끝으로 짓는 세계가 얼마나 다채롭고 강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4. 전남수묵비엔날레
 공재 윤두서의 ‘세마도’. 사진 제공 : 전남수묵비엔날레
공재 윤두서의 ‘세마도’. 사진 제공 : 전남수묵비엔날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2018년 첫선을 보였다. 시작은 조용했지만, 몇 해 전부터 “한번 가본 사람은 꼭 다시 찾는다”라는 입소문이 퍼지며 수묵 애호가들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남도의 바람과 바다 냄새 속에서 다시 수묵이 피어오르는 계절,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문명의 이웃들 (Somewhere Over the Yellow Sea)’이 8월 30일부터 10월 31일까지 목포·진도·해남 일원에서 열린다. 전통 수묵의 깊이와 현대 예술의 실험성이 만나는 이번 행사는, 붓과 먹이 미디어·설치·디지털 예술과 손을 잡는 현장을 보여준다. 이번 비엔날레에는 20개국 8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해 수묵의 농담을 기반으로 다매체 설치, 조각, 미디어아트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인다. 321년 만에 공개되는 조선 후기 화가 윤두서의 〈세마도〉가 전통의 근원을 증명한다면, 김은진의 〈신의 자리〉는 자개로 빚은 화려한 산수 속에 인간의 무의식을 담아낸다. 이예승의 VR 설치작 〈몽유화유〉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그림 속으로 들어가 풍경을 완성하고, 김지아나와 이진경의 작업은 수묵을 공간·소리·텍스트로 확장하며 전통과 실험의 경계를 허문다.
전시는 해남의 고산윤선도박물관, 진도의 소전미술관, 목포문화예술회관 등 6개 전시장에서 열리며, 각 지역은 ‘전통–근대–미래’의 시간선을 따라 구성된다. 목포 실내체육관은 대형 미디어 설치관으로 변신해 팀랩과 파라스투 포로우하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관람객을 감각의 파도 속으로 끌어들인다. 남도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전시장을 이동하다 보면, 마치 먹의 번짐처럼 전통과 현대가 서서히 뒤섞인다.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는 더 이상 ‘먹그림 전시’가 아니다. 물, 바람, 기술, 인간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예술의 실험장이며, 지금 이 시대 수묵이 얼마나 유연하고 생명력 있는 언어인지를 증명하는 자리다. 가을빛과 파도, 한지 냄새가 어우러진 전남에서 수묵이 건네는 여운을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공재 윤두서의 ‘세마도’ 진본을 321년 만에 최초로 일반 공개하였다. ‘세마도’는 현전하는 말 그림 중 제작 연대가 기록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5.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장 외관. 사진 제공 :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전시장 외관. 사진 제공 : 광주디자인비엔날레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포용 디자인(Inclusive Design)’을 주제로, 나이·성별·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를 끌어안는 디자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다. 작은 생활용품부터 자율주행 버스까지, 디자인이 일상과 미래를 바꾸는 힘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드는 데서 나아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게 한다. 눈길을 끄는 작품들도 많다. 청각장애인 기사와 소통할 수 있는 블랙캡 택시 서비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양말, 혼자서도 탈 수 있는 불균형 시소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세심하게 삶을 더 편리하고 따뜻하게 바꾸는 디자인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관람객은 그 앞에서 ‘디자인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광주는 도시 전체가 비엔날레의 일부처럼 살아 숨 쉰다. 실제로 ‘비엔날레길’이라는 도로명이 있을 만큼, 도시의 흐름과 전시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가을빛이 내려앉은 광주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전시장에 닿는다.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결국 디자인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다정한 방식임을 보여주는 전시다. 올가을, 포용의 디자인이 여는 새로운 세계를 직접 만나보길 바란다.
6. 바다미술제
 사진 제공 : 바다미술제
사진 제공 : 바다미술제
바다와 예술이 만나는 순간, 도시의 해변이 아름다운 색으로 물든다. 2025 바다미술제 ‘Undercurrents: 물 위를 걷는 물결들’은 9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는 다대포 일대에서 열린다. 산과 강, 바다가 맞닿는 지형에서 보이지 않는 흐름이 예술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며, 설치·미디어·회화·조각 등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이 바다의 리듬에 맞춰 호흡한다. 다대포 해수욕장, 몰운대 해안 산책로, 고우니 생태길, (구)다대소각장 등 바다와 가까운 장소들이 모두 전시의 무대가 된다. 참여 작가들은 바다의 순환, 해양 생태계, 강과 바다가 뒤섞이는 경계의 풍경을 주제로 ‘언더커런츠(Undercurrents)’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흐름을 탐색한다. 가을의 빛과 해풍이 교차하는 이 시기에, 작품들은 바다의 온도와 함께 색과 질감을 달리하며 변화하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 해변 위 작품을 따라 걷는 일은, 결국 바다와 예술 사이를 산책하는 일과 같다.
이번 바다미술제는 감상의 무대를 넘어 공론의 장으로 확장된다. 전시 해설, 워크숍, 참여형 이벤트가 이어지고, 심포지엄 ‘Ocean Voices’에서는 인간과 바다의 관계를 예술과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깊이 있게 논의한다. 작품 제작부터 철거 이후의 환경적 영향까지 고려해 재료를 선정하는 ‘지속 가능한 미술제’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25 바다미술제는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 속에서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흐름을 시각화하는 자리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늘 곁에 있던 바다의 목소리를, 이번 가을 다대포의 바람과 함께 직접 걸으며 들어보길 권한다.
● 전시명: 한글 국제 프레 비엔날레
● 기간: 2025년 9월 1일(월) – 10월 12일(일)
● 전시명: 대구사진비엔날레
● 기간: 2025년 9월 18일(목) – 11월 16일(일)
● 전시명: 청주공예비엔날레
● 기간: 2025년 9월 4일(목) – 11월 1일(토)
● 전시명: 전남수묵비엔날레
● 기간: 2025년 8월 30일(토) – 10월 31일(금)
● 전시명: 광주디자인비엔날레
● 기간: 2025년 8월 30일(토) – 11월 2일(일)
● 전시명: 바다미술제
● 기간: 2025년 9월 27일(토) – 11월 2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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