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하지 않는 도시, 살아남는 도시의 조건
저는 지역소멸의 가장 큰 원인은 청년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적 현실이라고 봅니다.
글: 출판사 제공 사진: 출판사 제공
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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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소의 시대, 도시는 점점 작아지고 사람들은 떠나갑니다. 사람이 떠나고, 도시가 조용히 작아지는 지금,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요? 『소멸하지 않는 도시』는 그런 질문에서 시작된 책입니다. 단순히 사라지는 도시를 걱정하기보다,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작가 경신원은 다양한 도시를 직접 걷고,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 있는 도시’의 조건을 섬세하게 기록해왔습니다. 그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 듣고 싶어, 작가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려보았습니다.

 


책에서 “도시는 건물이나 도로가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관계로 이뤄진다”고 하신 말씀이 특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살아 있는 도시’란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생각하는 ‘살아 있는 도시’는 사람들이 서로 어울리고, 다양한 계층이 함께 살며,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켜켜이 쌓이는 곳입니다. 한마디로 사람 냄새가 나고, 내가 사는 동네에 애착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도시입니다. 요즘 말하는 ‘15분 도시’나 ‘3분 동네’도 사실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개념이죠.

이런 관점이 강조되기까지는 긴 역사가 있었습니다.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로 이동했지만, 급격한 인구 증가에 비해 집과 도로 같은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도시계획은 사람보다 물리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리의 슬럼가를 정비해 샹젤리제를 만든 조르주 외젠 오스망(영어권: 조지 하우스만)이나, 뉴욕에 대규모 고속도로를 관통시키려 했던 로버트 모세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비슷한 흐름을 겪으며 획일적인 도시 경관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며 도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죠. 사실 이 질문에 훨씬 앞서 답을 내린 분이 제가 가장 존경하는 제인 제이콥스 선생님입니다. 그 분이 말한 도시의 본질은 물리적 시설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관계, 기억입니다. 도시의 생명력은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일상의 흐름에서 비롯됩니다.저는 그런 도시가 바로 ‘살아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개발보다 매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 참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보통은 건물 짓고 뭔가 “크게” 바꿔야 발전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작가님이 말하는 도시의 ‘매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나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도시만의 힘이 궁금해졌어요.

제가 말하는 도시의 ‘매력’은 그 도시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 다시 말해 “굳이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어떤 도시는 오래 머물고 싶고, 어떤 도시는 금방 떠나고 싶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도시가 갖고 있는 매력입니다. 저는 개발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이 필요한 곳은 당연히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90% 이상 도시화된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물리적 개발보다 각 도시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도시의 매력은 사실 도시 경쟁력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말한 것처럼, 도시는 사람과 기업이 모여들 때 활력을 얻습니다. 1950년대부터 교외화 현상으로 서구사회의 도심은 서서히 쇠퇴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더욱 급격히 쇠퇴되었습니다. 이후 ‘어떻게 사람과 자본을 다시 끌어 모을 것인가’가 도시재생의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많은 도시들의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도시의 매력이란, 사람들이 그곳에서 머물고, 일하고, 즐기고 싶게 만드는 힘이며 ‘살아 있는 도시’를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도시를 떠난 사람들, 특히 청년 세대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죠. 그중에서도 직접 만나신 분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나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읽는 저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작가님은 어떠셨을까 궁금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리나라에서 인구소멸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전라도 신안군 출신의 30대 초반 한 청년입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 TV에서만 보던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었어요… 지역을 왜 떠나냐고요? 서울에서는 집 문만 열고 나가면 필요한 게 다 있어요. 그런 인프라가 좋은 거지, 서울이 좋은 건 아니예요. 저처럼 비수도권, 농촌 출신이 서울에서 살려면 정말 힘들어요.”

이 이야기는 제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지역을 떠나는 이유가 단순히 ‘서울이 좋아서’가 아니라, 삶의 기본 조건이 어디에 갖춰져 있느냐의 문제라는 사실이 너무 명확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전라도에서 만난 다른 분들도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하지만, 의료, 교육, 일자리 같은 기본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선택지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결국 ‘서울로 가야만 한다’는 압력이 만들어진 것이죠. 또 하나는 고향에서조차 서울로 가지 않는 사람들을 패배자로 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저는 이 왜곡된 인식이야말로 오늘날 수도권 과잉집중과 지방 소멸을 심화시키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성공하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지역소멸의 가장 큰 원인은 청년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적 현실이라고 봅니다.

 

책에서 “도시의 쇠퇴는 단순히 산업 때문만은 아니다”라고 하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산업이 무너진 이후, 도시 공동체가 함께 무너지는 과정이 어떤 식으로 이어졌는지 작가님의 시각으로 듣고 싶습니다. 

도시의 쇠퇴는 산업의 쇠퇴에서 시작되지만, 저는 그것이 단순히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산업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 도시에서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했던 이유가 더 나은 기회였던 것처럼, 이제는 그 기회가 사라진 도시를 떠나는 것이죠.

제가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장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멀쩡한 집을 그대로 버려둔 채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모습이었어요. 빈집 문제는 겉으로 보면 물리적인 쇠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적·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결과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일자리도, 학교도, 지역 서비스도 사라지면, 그 도시에 남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는 그 이후에 연쇄적으로 나타납니다. 이웃이 하나 둘 떠나고 빈집이 늘어나면, 범죄 증가, 환경 악화, 상점의 폐업, 공공서비스의 축소 같은 문제가 차례대로 이어집니다. 공동체의 일상을 지탱하던 연결망이 끊어지면서 도시는 더 빠르게 쇠퇴합니다.

결국 도시의 쇠퇴는 산업의 문제에서 출발하지만, 사람이 떠나고 공동체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완성됩니다. 산업만 재생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시가 살아있으려면 일자리뿐 아니라, 관계와 삶의 기반을 다시 세우는 일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책에서는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런던 같은 세계 여러 도시들이 쇠퇴에서 다시 살아나는 과정을 소개해주셨죠. 이런 해외 도시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이고, 한국 도시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책에서 소개한 여러 해외 도시들을 살펴보면, 각각의 역사적 배경과 산업 구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한국 도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단일한 해법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도시는 위기를 겪을 수 있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그 회복의 핵심에는 ‘리더십’과 ‘도시의 매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디트로이트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디트로이트는 20세기를 이끌었던 자동차 산업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산업을 다각화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도시파산이라는 극단적인 위기까지 갔죠. 저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리더십의 부재, 즉 도시의 미래를 길게 보고 준비하는 힘이 부족했던 데서 찾고 있습니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뉴욕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뉴욕은 다양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도시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키워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과 인재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단순한 경기 부양이 아니라, 도시가 가진 잠재력을 매력으로 전환한 것이죠.

결국 도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매력’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그 도시에 머물고 싶고, 일하고 싶고,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것은 관광의 매력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만의 분위기, 문화, 공동체, 장소성, 그리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부심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의 매력입니다.

한국의 많은 도시들도 산업화와 탈산업화를 빠르게 겪으며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제조업 쇠퇴, 인구 감소, 지역 격차 같은 문제들은 단일한 해법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도시가 가진 자원—사람, 산업, 문화, 그리고 고유한 장소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도시 매력으로 발전시키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치적 이익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미래를 진심으로 고민하는 리더, 그리고 장기적 비전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리더십이 지금 한국 사회에 절실합니다.

 

책 마지막에 소개하신 도시를 살리기 위한 다섯 가지 전략(발견, 경험, 함께, 자라남, 한계 디자인)도 인상 깊었어요. 그 중에서도 지금 우리 도시들에게 가장 시급하다고 느끼시는 전략 하나를 꼽는다면? 왜 그것이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함께 듣고 싶습니다.

도시를 살리기 위한 다섯 가지 전략은 사실 어느 하나만 선택해서는 작동하기 어렵습니다. 이 전략들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순환하면서 비로소 효과가 나타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도시가 가진 매력을 발견하고, 그 매력을 시민들이 경험할 수 있게 만들고,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라나고, 마지막으로 도시가 가진 한계까지 디자인적으로 극복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도시’가 완성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전략이 가장 시급하다”기보다, 도시가 이 다섯 가지를 한 방향으로 엮어내는 종합적 전략을 세우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의 많은 도시들이 겪는 문제는 한 가지 전략의 부족이 아니라, 이 다섯 가지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지 못하고 단절된 채 추진된다는 점입니다.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한 전략은 파편화된 계획이 아니라, 시민과 지역의 잠재력을 중심으로 다섯 가지 전략을 유기적으로 통합할 때 진짜 힘을 발휘합니다.

 

작가님께 이 책은 도시를 위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독자에게는 살고 있는 ‘우리 동네’를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독자들이 어떤 생각이나 시선을 갖게 되길 바라셨나요? 작가님이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마지막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매력적인 도시는 관광객에게만 좋은 도시가 아니라, 먼저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도시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동네에 대한 애착, 소속감—sense of ownership과 sense of belonging—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두 번째 책 『엄마 말대로 그때 아파트를 샀어야 했다』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강남 바라기’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매력은 외부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공간을 스스로 의미 있게 만들고 자부심을 갖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서울시 도시재생사업 평가 프로젝트를 했을 때 성수동 주민분들이 보여준 자부심과 애정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공장지대였던 성수동이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민·지자체·상인분들이 함께 만든 작은 노력들이 오랫동안 축적되었기 때문입니다.

독자분들께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도시의 미래는 거창한 개발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동네를 어떻게 바라보고 돌보느냐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책에서 제안한 도시를 살리는 다섯 가지 전략— 지역의 매력을 발견하고, 그 매력을 일상에서 경험하게 하고,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고, 작은 아이디어가 자라나게 하고, 도시의 한계를 디자인적으로 극복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은 거주민의 자부심과 애정에서 출발합니다.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지금 사는 ‘우리 동네’를 다시 바라보고, 작지만 지속적인 애정과 참여가 도시를 바꾼다는 사실을 한 번 더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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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지 않는 도시

<경신원>

출판사 | 투래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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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