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장바구니] 『나의 오타쿠 삶』 『우리는 내륙으로 질주한다』 외
노견과 함께한 추억을 담은 만화부터, 탈덕과 함께 자신에게 팬을 선물하기로 하며 창단한 엉뚱한 팬클럽 이야기까지. 서점 직원의 신간 장바구니를 소개합니다.
글 : 채널예스
202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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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타쿠 삶』

정해나 저 | 낮은산

 

극장에 가는 날에는 뒤풀이할 시간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연의 막이 내리고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면 말이 빨라지는 사람들. 맞다. 사실 내 얘기다. "어떻게 사랑에 빠졌을 때 공부에 집중하고, 둑이 터지는 것처럼 그 대상에 대해 말하는 일을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시작부터 마음을 사로잡은 『나의 오타쿠 삶』은 '기억하는 한 평생 오타쿠'였다고 말하는 정해나 작가의 덕질과 성장기를 담은 에세이다. 뜬구름 같은 사랑을 붙잡아 손오공의 근두운처럼 올라타 버리는 씩씩한 오타쿠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를 좋아하면서 나를 발견하는 과정의 새삼스러운 소중함과 기쁨을 느낀다. "우리는 환상 속에서 진짜로 살아갈 길과 해야 할 사랑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니까."(11쪽) 때로는 '일코'를 해야하고, '현생'을 사느라 정신없는 오타쿠 동지들과 이 책을 함께 읽고 싶다. (이참슬 에디터)



 

『노견과 츠즈이』

츠즈이 글그림/김진희 역 | 문학동네                

 

곁에 노견이 있다 보니, 반려동물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를 만나면 자연스레 귀 기울이게 된다. 그렇게 살펴보게 된 책 제목이 ‘츠즈이와 노견’이 아닌 ‘노견과 츠즈이’라는 점이 좋았다. 실제로 츠즈이 씨는 노년에 접어든 반려견 A의 동물병원 검진 결과를 듣고 난 뒤,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고향에 남아 A와 함께 남은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한다. 첫 장을 펼치면 나오는 인사말을 옮겨본다. “안녕하세요! 츠즈이예요. 씩씩한 성인 여성입니다!! 옆에 있는 개는 A. 몇 년 전에 죽은 고향집 애견입니다.” 씩씩한 느낌표들과 죽은 노견에 대한 소개가 아무렇지 않게 나란히 등장하는데, 이것이 츠즈이식 방식이다. 고향집에서 A와 함께 보낸 마지막 시기의 추억을 미화하지도 않고 비관하지도 않으며, 담담하게 담아낸 에세이 만화다. (박소미 에디터)



 

『디어 올리버』

수전 배리, 올리버 색스 저/김하현 역 | 부키

 

눈으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신체 기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안구나 뇌는 물론이고, 귀에서 담당하는 평형 감각에 문제가 생겨도 양 눈으로 들어오는 이미지를 하나의 상으로 합쳐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어렸을 때 사시 교정을 받았던 신경학자 수전 배리는 대학에서 신경생물학 수업을 들은 이후에야 자신이 입체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전은 시력 훈련을 통해 입체시를 얻는 과정에서 올리버 색스에서 편지를 보낸다. 색스라면 입체시의 변화로 “세상이 얼마나 달라 보이고, 다르게 느껴지는지 상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전과 색스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50여 편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하지만 수전이 예상하지 못한 점이 하나 있다. 수전이 입체시로 세상을 보게 된 후, 색스는 안구의 흑색종으로 점차 시력을 잃기 시작한다. 본다는 것을 둘러싼 두 사람의 학문적 교류와 공감의 경험, 그리고 우정의 이야기다. (박소미 에디터)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박지영 저 | 현대문학

 

덕질하던 배우 W가 대형 사고를 치자 탈덕을 선언한 56세의 복미영씨는 자신의 팬클럽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위대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더 필요하잖아요, 팬클럽 같은 게. 그래서 제가 만들었어요, 복미영 팬클럽."(57쪽) 『고독한 워크숍』과 『이달의 이웃비』를 통해 고립과 돌봄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들려준 박지영 작가는 신작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를 통해서도 특유의 해학적인 문장으로 고립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 올린다. 자신의 삶을 희생하지만 조롱당하다 버려지는, 누구나 쉽게 '그래도 되는' 이모들이 모여 '팬클럽'이라는 안전지대를 만들고, 후지지만 다정한 그들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함께 수선해 간다. 용맹하고 경솔하게, 혐오와 절망의 시대에 지지 않고 살아갈 용기를 주는 소설. (이참슬 에디터)


 


『새를 초대하는 방법』

남상문 저 | 현암사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 하루를 보내보면, 자연의 빛과 소리가 이토록 다양했나 새삼스럽다. 이름 모를 곤충들과 동물들의 울음 소리, 사위가 깜깜해지면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밤하늘의 빛들. 여러 존재가 뒤섞여 시끌벅적한 자연이 느껴질 때, 비로소 도시를 떠나왔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도시의 쾌적함은 어떤 존재들을 자를 대고 자른 이면으로 내몰고 지우면서 유지된다. 길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비둘기를 마주칠 때 드는 슬픈 마음은, 언제고 도시의 구성품 밖으로 밀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새를 초대하는 방법』은 모든 생명을 환대하는 도시를 상상하는 한 건축가의 고민을 담은 책이다. "관용이 강자가 약자에게 보이는 소극적 아량이라면 환대는 양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상호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아 적극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낸다."(10쪽) 기후 위기 시대, 인간과 자연을 이을 수 있는 살아있는 도시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참슬 에디터)

 


『우리는 내륙으로 질주한다』

엘리자베스 비숍 저/이주혜 역 | 봄날의책

 

이주혜 작가가 소설 집필과 함께 번역 작업을 병행하며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한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과 엘리자베스 비숍의 시 전집을 책장에 나란히 꽂았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우리는 내륙으로 질주한다』. 겹낫를 떼고 한 문장으로 이어 붙여 소리 내 읽고 싶은 제목들이다. 두 번 반복되는 우리를 떠올리며 비숍의 다음 문장을 읽는다. “나는 왜 내 고모여야 하고 / 나 혹은 누군가가 되어야 하는 걸까?”(「대기실에서」, 242쪽). 시의 화자는 치과 대기실에 앉아 진료 중인 고모를 기다리다, 고모의 고통에 찬 비명을 듣고, 순간 자신의 입에서 고모와 같은 소리가 나오는 걸 듣는다. 누군가가 되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되기에 관해 생각하며, 책 후반부에 실린 비숍의 미출간 친필 원고 복사본과 비숍의 수정 흔적을 일부 살려둔 번역본을 번갈아 읽어본다. (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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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타쿠 삶

<정해나>

출판사 | 낮은산

노견과 츠즈이

<츠즈이> 글,그림/<김진희> 역

출판사 | 문학동네

디어 올리버

<수전 배리>,<올리버 색스> 공저/<김하현> 역

출판사 | 부키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박지영>

출판사 | 현대문학

우리는 내륙으로 질주한다

<엘리자베스 비숍> 저/<이주혜> 역

출판사 | 봄날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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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

1933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 퀸스칼리지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와 UCLA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다. 1965년 뉴욕으로 옮겨 가 이듬해부터 베스에이브러햄 병원에서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 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과 뉴욕 대학을 거쳐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에서 신경정신과 임상 교수로 일했다. 2012년 록펠러 대학이 탁월한 과학 저술가에게 수여하는 ‘루이스 토머스상’을 수상했고, 모교인 옥스퍼드 대학을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안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올리버 색스는 신경과 전문의로 활동하면서 여러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펴냈다. 인간의 뇌와 정신 활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들려주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이처럼 문학적인 글쓰기로 대중과 소통하는 올리버 색스를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렀으며,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색스는 독자들을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초대하여 근본적인 형태의 공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썼다. 그는 왕립내과학회, 미국문화예술아카데미,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었으며, 2008년 엘리자베스 2세는 그에게 대영제국 명예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지은 책으로 베스트셀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비롯해 《색맹의 섬》 《뮤지코필리아》 《환각》 《마음의 눈》 《목소리를 보았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 웠다》 《깨어남》 《편두통》 등 10여 권이 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자신의 삶과 연구, 저술 등을 감동적으로 서술한 자서전 《온 더 무브》와 삶과 죽음을 담담한 어조로 통찰한 칼럼집 《고맙습니다》, 인간과 과학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과학에세이 《의식의 강》, 자신이 평생 사랑하고 추구했던 것들에 관한 우아하면서도 사려 깊은 에세이집 《모든 것은 그 자리에》를 남겨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