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여원 추혜인, 나답게 살고 죽을 사람들의 동네
이 이야기는 ‘끝까지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편안히 죽기 위한 돌보고 돌봄 받는 커뮤니티 만들기’에 대한 것입니다.
글: 박의령 사진: 표기식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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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라 춤을 추는 사람과 강아지, 왕진 가방을 들고 경쾌한 발걸음을 옮기는 의사 선생님, 아령을 든 흰머리의 여성까지. 몽글몽글한 일러스트가 그려진 책 표지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인지 고양이가 휠체어를 밀고 있네요. 돌봄이란 그런 것입니다. 서로를 지탱해 주기도 하지만 한 쪽이 무너질 수도 있는 다각의 레이스.

 

세상에 그늘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담은 무영(추혜인)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의사와 세상에 ‘어쭈’라고 맞서고 싶었으나 체면을 생각해 어라(유여원)라는 닉네임을 쓰는 실무가는 어릴 때 생각했던 노후대책인 의료협동조합을 끝내 만들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아도 잘 살다 잘 죽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여성에서 성별을 구별하지 않는 시민들로 번졌습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즉 ‘살림’의 12년 여정 안에는 도전과 시행착오, 무엇보다 사람들의 삶이 있습니다.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공동체의 지난 날들의 기록인 『나이 들고 싶은 동네』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자리한 동네
 

여성학자 권김현영 님은 은평구가 살기 어떠냐는 질문에 언제나 “여긴 ‘살림’이 있어”라고 대답한다고 했어요.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을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알 수 있게 설명해 주세요.

무영 살림은 어떻게 하면 비혼 여성들이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어요. 건강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의료기관을 운영하면서 관리해 나가면 100살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면서 여성 운동도 열심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기획했고요. 은평구에 자리 잡고 주민들과 교류하면서 현재는 의원, 한의원, 치과 같은 의료 기관들과 데이케어 센터라고 하는 돌봄 기관까지 같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2년 348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해 현재 조합원은 5천 명이 넘었고 직원들도 200명이 넘을 만큼 성장했어요.


노후에 대한 걱정이 20대 후반에 문득 커졌다고 했어요. 많은 여성들이 그 시기에 불안이나 결정에 대한 압박을 겪는 것 같아요. 저 또한 그랬거든요. 

무영 그 나이쯤 독립이 화두가 돼요. 특히 원가족에서부터 벗어나 잘 살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이 가장 커지죠. 당시에는 원가족에서 벗어나면 결혼해 자기 가족을 꾸리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는데 같이 활동했던 여성 단체인 ‘언니 네트워크’에서 ‘비혼 여성’이라는 단어를 밀고 있었어요. 비혼 선언, 비혼 선서, 결혼식처럼 비혼식도 하고요. 신혼집 살림살이를 돕듯 선물과 축의금을 건네면서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응원하는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독립이라는 관계의 재정립 후에는 돌봄이 따라와요.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어라 결혼하지 않아도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하는 시기였어요. 비혼 여성들 사이에서도 나답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정의가 필요했고요. 노후에 대한 걱정이 결국 협동 조합을 만들자는 생각까지 미친 거죠. 공동체 안 사람 한 명 한 명이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누구를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지 않고도 즐거울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보통 미래를 위한 노후 준비라면 금전적인 재테크를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웃음) 협동조합을 만들어 여자들을 위한 병원과 학교, 은행을 세우자! 라는 대담한 생각을 굳히려면 두 사람의 동질감이 없어서는 안 됐을 텐데요. 

무영 전 좀 오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두고 봐라, 늙어 죽기 전까지 남편과 자식 없이도 외롭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웃음) 아무래도 혼자 해결할 수 없는 프로젝트니까 주변에 많이 얘기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려고 했어요. 어라 쌤과 얘기를 나눠 봤는데 완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의대생인 저와 다르게 경영에 관심 있는 조직가의 자질이 있었어요. 

 

어라 저희가 5살 차이거든요. 보통 학교에서 자주 마주치기 어려운 나이차인데 무영쌤이 학교를 계속 다니셔 가지고.(웃음) 제가 입학하고 신입생 새터에 나갔는데 반성폭력 자치규약을 교육하러 오셨어요. 가해자에게 사과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으로 피해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강의가 인상적이었어요. 가해자가 돈으로 보상하게 되면 가해자 역시 자기가 벌인 일을 평생 잊을 수 없게 된다는 얘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당시 여성주의자 선배들 중에 멋진 사람들이 되게 많았지만 그중에 특히 같이 일을 도모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많은 동네 중 나이 들고 싶은 동네로 은평구를 고른 이유가 있을까요?

무영 오프라인 모임을 신촌이나 홍대 근처에서 자주 하다 보니 마포구도 생각했는데 이미 마포 의료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마침 한국여성재단 초대 이사장이었던 박영숙 선생님이 여성 단체들이나 여성 협동조합들을 위한 무료 인큐베이팅 공간을 은평구에 만들면서 그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직접 지내다 보니 은평구에는 활동가, 독거 노인, 비혼 여성, 장애인도 많이 사는 동네였어요. 그리고 시민사회 단체 분들을 만났을 때 너무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점점 합이 맞아가는 걸 느껴서 눌러앉게 됐죠.
 

협동 조합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하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어라 2022년 살림이 10주년을 맞았을 때 조합원들과 이를 어떻게 기념할지 고민했어요. 그해 1년 동안 조합원들과 함께 모여 지난 10년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야기 마당이란 걸 66번 진행했거든요. 우리가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 기념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결론이 났고, 조합원이 아닌 사람들이 읽어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책에 담고자 했어요. 

 

무영 이 책 말고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기획되어 자라왔는지를 사회학 연구자의 입장에서 본 글도 조합 안의 다른 친구가 쓰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고 갈무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어라 쌤과 제가 가장 알맞았고 무엇보다 무급으로 쓸 수 있는 게 저희 둘밖에 없는지라.(웃음)




돌봄은 ‘연루’다

 

살림의원과 한의원, 치과, 산부인과, 데이케어 센터는 여성주의 의료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죠. 일반 의료 시스템과 어떻게 다른가요? 

무영 최근에는 환자들이 인터넷이나 AI를 통해 많은 정보를 알아보고 병원에 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와 일반인들 사이에 정보 격차가 굉장히 많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하면 건강의 주체인 환자들이 자기 결정권을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지 전문가들이 조력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이 저는 여성주의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의사와 환자의 평등한 관계에 페미니즘이 부합하는 면들이 많거든요. 

 

어라 일단 협동조합이랑 여성주의가 굉장히 궁합이 잘 맞아요. 변화할 수 있고 가능성이 있고 힘을 합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전제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많은 수에 열려 있어요. 처음부터 여성주의자로 태어난 게 아니잖아요.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경험하고 알게 되면 여성주의 기반을 더 이해하고 동의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조합원의 20%가 남자이지만 조합원 신청 때 성별 기재를 따로 안 해요. 중간에 성별이 바뀌는 분들도 많고요.

 

돌봄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 의료이지만 여행하는 동안 대신 화분을 돌봐 주고 수도가 고장 났을 때 세면대를 빌려줄 사람이 가까이 있기를 바라는 이들도 있어요. 

어라 중증 환자나 죽음을 앞둔 이를 돌보는 것만이 돌봄의 다가 아니고, 돌봄을 끌어내리는 것도 필요한 게 맞아요. 많은 조합원들에게 내가 어떤 돌봄을 할 수 있고 어떤 돌봄을 바라고 있나 조사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일상적인 돌봄에 대한 필요가 많더라고요. 아픈 사람을 돌볼 때 병원에 와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꽃병의 꽃을 갈아주는 사람부터 기저귀를 갈고 씻기는 사람까지 대상이 같더라도 돌봄의 스펙트럼이 넓어요. 또 주변을 돌볼 때는 나서지만 정작 본인이 불편한 상황에 처했을 때 민폐라는 생각에 숨기는 사람들도 많고요. 차차 서로의 반려 동물을 산책 시키는 것부터 시작해 서로가 연결되어 안심이 되는 돌봄으로 넓혀 나가려고 해요.  

 

시니어들의 협동운동 모임 ‘흰머리 휘날리며’, 산행 소모임의 줄임말인 ‘산소’로부터 온 ‘오투’, ‘불광천을 달리는 사람들’ 혹은 ‘불금에 달리는 사람들’의 모임인 ‘불달’ 등 살림 안에 소모임이 참 많아요. 작명 센스도 엄청난데요.

어라 소모임 만드는 데도 규정은 있어요. 조합원 3인 이상이 참여하고 운영 규칙, 조합원의 약속을 지킨다는 약조를 하면 됩니다. 소모임을 하면 뭐가 좋냐, 특별한 건 없어요.(웃음) 그래도 작은 공동체를 운영하는 경험이 되게 중요한 민주주의 경험이거든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반찬 만들기 같은 사소한 일도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하는 동안 힐링이 된다더라고요. 그러면서 건강도 챙기고. 이름은 조합원분들이 머리를 맞대어 만드는 건데 참 재미있죠. 


죽음을 준비하며 유언장을 쓰듯, 살아있는 현재를 위해 돌봄장을 쓰는 대목이 인상 깊었어요. 둘의 차이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무영 언젠가 농담처럼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사레들리는 일이 참 많거든요. 만약 뇌경색이 왔을 때 연하 곤란이 생겨 사레들리는 일이 잦으면 두 가지 중에 선택해야 해요. 수술을 해서 말을 못하는 대신 음식을 직접 먹을 것인가, 그 반대인가. 저는 말을 못 해도 음식을 직접 먹는 걸 선택할 거라고 얘기해요. 직접 음식을 먹는 것보다 대화가 중요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돌봄장은 본인이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울 때를 대비해 돌봄의 선택과 범위, 취향까지 써놓는 거죠. 

 

책 속에 실제 친구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나와요. 기관이 아닌 집에 작은 호스피스를 만들고 돌봄을 나누다 지친 친구들까지도 돌보는. 죽음이라는 두려운 현실 앞에서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게 느꼈을 텐데요. 그런 경험을 통해 나답게 죽는 방법에 닿았을까요?  

어라 그동안 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들 외에 스스로 목숨을 놓은 친구들도 있어요. 잘 살다 잘 죽어보려고 열심히 돌봄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친구를 지킬 수 없었다는 사실이 힘들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그 친구가 떠나는 과정에 살림이 있었기에 조금은 다르게 떠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있어요. 장례식을 치를 때 원가족분들이 법적으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도 반영되어야 하고 친구가 생전에 밝힌 의지나 취향을 아는 우리, 그리고 그 사이에서 원칙대로 일하는 장례지도사가까지 있어요. 비건 친구들의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낼지 안 낼지부터 조율할 때도 있어요. 요즘 살림 조합원 중에서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따는 분들이 늘었어요. 살아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선택지와 존중이 가능할 때 나답게 죽을 수 있지 않을까요? 

 

 

 

넘어지더라도 발맞춰 뛰려는 사람들

 

각자의 힘이 모여 공동의 필요를 달성하는 것이 조합입니다. 10년 넘게 이 모토를 지켜오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무영 가장 어려운 점은 조합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는 거죠.(웃음) 그에 맞춰 계속 생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뜻하지 않게 관리자가 되거든요. 

 

어라 이사회가 있는데, 조합원들의 자원 활동으로 이루어지거든요. 무영쌤과 제가 책을 자원 활동으로 썼다고 놀라셨지만(책의 수익금은 살림으로 돌아간다) 살림은 너무 많은 분들의 자원 활동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특히 이사진은 오래 노동 운동을 하거나 노동자의 마음이 앞서는 분들인데 노사협의를 하는 동안 사측이라고 하니 엄청 충격을 받은 거예요. 왜 제가 사측을 해야 하죠? 막 이렇게 너무 고통받고 무서워하시고. 그렇지만 사측이 있고 노측이 있어야 새로운 노사관계도 만드는 거라고 납득시킨 적도 있어요.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쿠바 여행을 가서도 현지 병원에서 연수를 받고 일본의 의료협동조합 시스템을 정기적으로 정찰하러 간다죠. 그렇게 직접 눈으로 본 주변의 상황과 우리나라 의료협동조합의 현주소는 어떻게 같고 다를까요.

무영 쿠바 가는 비행기 값도 너무 비싸고 머니까 이왕 간 김에.(웃음) 쿠바는 1차 병원이 유명한 곳이죠. 공산 국가라 의사들이 다 공무원이었어요. 이런 상황을 흔하게 겪을 수 있는 건 아니라 3일 정도 경험을 해봤고요.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부터 의료협동조합들이 생겨 80년 이상의 역사가 있어요. 이후에 건강보험 제도가 만들어졌으니 국가 제도보다 먼저 의료 보장을 공동체적으로 접근한 셈이죠. 일본 전체 의료기관 중에서 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고 인턴, 레지던트 수련 병원도 다 있거든요. 한국도 민주화 운동 이전 청십자 조합이라는 최초의 조합이 등장했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했어요. 이후 새로운 의료협동조합들이 속속 생기며 30년 정도의 역사가 쌓였네요.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있었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의료를 해결해야 한다는 욕구가 적었지만, 다양한 필요에 의해 공동체를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상태예요.   

 

HIV 감염인의 치과 치료를 앞두고 의료진들이 의견 충돌을 겪는 장면은 책 속에서 가장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에피소드였어요. 협동조합에서 갈등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었나요?

어라 일단 다수와 다른 의견을 얘기하는 사람이 그 상황에 대해 너무 괴롭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살림 조합원이라면 이렇게 지켜 나가자는 조합원들의 약속이 있어요. 단 14개의 문장이지만 1년 동안 조합원들과 토의하고 설문조사를 거듭하면서 만들었거든요. 그 안에 문제 제기하는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그 사람 말이 맞다고 생각하면 옆에 서서 두 번째 사람이 되어주고 대안을 얘기하는 세 번째 사람이 되자라는 항목이 있어요. 조합이 커지면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시스템도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기존 방식이 실패하면 또 새로운 방법을 찾아가고 있어요.

 

처음부터 머리와 마음을 맞댄 두 사람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도 궁금해요.

어라 저희가 서로 이렇게 안 다르면 운영이 안 돼요.(웃음) 저 같은 사람만 5천 명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해요. 서로 달라서 성공하는 경험이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엄청 많이 경험을 하거든요. 일단 이런 부분을 존중하고 조합 안에서 ‘마음 열기’라는 시간을 가져요.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는 게 너무 어색하고 싫다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화를 만들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연대가 생기거든요.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뭐니 뭐니 해도 직접 겪은 협동조합의 최고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영 나와 완전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비슷한 사람들과 같은 동네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안심돼요. 열쇠를 잃어버려도 주변에 맘 놓고 찾아갈 친구가 너무 많아요.(웃음) 저희 집에 욕조가 없으니까 목욕을 하고 싶으면 자기네 집에서 욕조를 쓰라고 할 정도로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죠. 마음이 든든하니까 그 마음을 등에 업고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어요.
 

어라 저는 사람이 됐어요.(웃음) 화가 많고 잘 내는 사람이라 대학교 때 별명이 스트리트 파이터였어요. 협동조합을 하면서 사람을 좋게 보는 사람이 된 거죠. 오늘의 불편러가 내일의 활동가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답답한 구석을 보는 사람들은 본인이 나서서 고쳐가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점이 나랑 비슷하다고 마음먹으니 상대방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더 탄탄한 관계망의 울타리 치기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어라 님의 이야기처럼 『나이 들고 싶은 동네』는 결국 좋은 이웃을 가진 행복과 더불어 내가 좋은 이웃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이 시대의 좋은 이웃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무영 먼저 일상에서 좋은 이웃이 되고 싶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넬 것. 그렇게 오고 가며 알게 되는 이웃의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도우려고 하고요. 주변을 진지하게 주시하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 노력하고 있어요.

 

어라 살림에서 했던 여성주의 자기 방어 훈련 중 하나가 ‘시민의 용기, 조합원의 행동’이었어요. 내가 위험에 처할 때도 자기 방어가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내가 무엇을 할지 생각해 보는 거죠. 안 좋은 상황이 현실에 닥쳤을 때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되게 소중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건강 강좌에도 ‘내 친구의 우울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내가 아프지 않아도 주변이 아플 때 어떤 도움이 될까, 최소한 해가 되지 않을 행동을 무엇일까 숙지하는 거예요. 주변의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않을까 해요.

 

살림의 청사진에서 의료 기관은 어느 정도 구축된 것 같아요. 은행이나 학교를 세우는 일도 남았지만, 올해가 끝나가는 시점에 내년에 당장 정비하고 싶은 살림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어라 한국 사회의 30대 시민이요. 외로워서 관계를 맺고 싶은데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불안하기도 한 나이대인 것 같아요. 다음 세대의 주역이기도 하고요. 30대 시민과 협동조합이 어떻게 같이 상생할 수 있을지 그들과 어떤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있어요.  

 

신나게 책을 읽다가 마지막에 살림의 맺음에 대한 언급이 나왔을 때 조금 멈칫했어요.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협동조합은 아름다운 끝맺음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림에게 맺음이 있다면 어떤 모습이고 싶나요.

어라 조합을 2012년에 만들었지만 조합원 348명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준비 기간 3년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첫해는 여성주의 건강과 협동조합을 공부하고 둘째 해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세 번째 해에 창립과 개원을 준비하는 계획이었어요. 만약에 문을 닫으려면 역시 3년의 과정이 필요할 거예요. 1년은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1년은 그 이야기들을 모아 어떻게 닫을 것인지 논의하고 나머지 한 해는 자료를 아카이빙 해야죠. 그 기간 동안 살림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향을 찾아가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연이 이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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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고 싶은 동네

<유여원>,<추혜인>

출판사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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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령

여러 패션 매거진의 피처 디렉터로 일하다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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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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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혜인

서울시 은평구에 위치한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의 가정의학과 의사. 1996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입학했으나, 1학년 겨울 성폭력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하다 “성폭력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료해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진로를 변경해 이듬해 같은 대학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여성 단체에서 활동하며 여성주의와 의료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다, 건강한 삶의 토대가 되는 의료협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에서 수련을 받았으며, 여성 단체에서 만난 어라 님과 뜻을 합쳐 2012년,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조합)을 창립했다. 건강하고 행복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온 8년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다. 현재 살림조합은 3,200세대가 넘는 조합원들과 함께 의원, 치과, 건강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안심하고 나이 들 수 있는 마을,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기 위해 ‘통합돌봄센터’를 준비 중이다. “여성주의만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기는 힘들지만, 여성주의 없이 좋은 세상을 만들 수는 없다”는 살림의 신념대로 모두가 존중받는 세상, 누구나 차별 없이 진료받는 사회를 위해 오늘도 왕진 가방을 챙겨 자전거에 올라탄다.